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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고 낙심하지 맙시다 (렘 31:27-34, 딤후 3:14-4:5, 눅 1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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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낙심하지 맙시다 (렘 31:27-34, 딤후 3:14-4:5, 눅 18:1-8 )

1.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여종이었던 애굽 여인 하갈이 아브라함의 자녀를 임신하고서 그 주인인 사라를 멸시하다가 쫓겨나서 광야로 도망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그 광야에서 갈 길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갈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실직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에게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아들을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하갈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광야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그 신음과 고통을 들으시고 그녀에게 찾아오셔서 갈 길과 할 일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거의 죽음 직전에 있던 하갈은 이렇게 해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이 이스마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실뿐만 아니라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기도, 그것이 비록 신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갈로서는 예상 밖의 하나님 만남의 체험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아브라함의 집에서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도 쫓겨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정말 뜻밖에 그 광야에서 자기를 친히 찾아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갈은 이렇게 자기를 찾아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브엘라헤로이”라고 했습니다.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십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거기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죽음의 세력아래 신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신음소리까지 들으시고 그들을 찾아주셨습니다. 모세가 그를 찾아오신 하나님께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이름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당시 죽음의 세력 아래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 조상의 하나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했을 때 “내가 거기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는 뜻이 바로 “여호와”라고 하는 신명의 뜻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밥 럿셀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과 협력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도록 맡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오냐!”하고 즉시 들어주실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응답을 주시기 위하여 이미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응답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결국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3차례나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번번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였고, 약한 그것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다려라!”고 하시기도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약속하시고 25년이 지나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만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대로 “기도하여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면” 때가 차면 우리의 생각이나 기도보다도 넘치는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도 시간을 특별히 정해 놓고 하는 기도, 즉 정시기도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간을 특별히 정하지 않아도 항상 기도하는 삶, 즉 무시기도도 있습니다. 혼자 또는 여럿이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결론은 그리스도인은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 주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복음성가 가운데 “기도할 수 있는데”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실망)하십니까? / 기도하면서 왜 염려(방황)하십니까?” 비록 오늘 우리 현실이 매우 암담하다고 할지라도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벧엘에서의 야곱은 우리에게 바로 이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형의 낯을 피해 도망가는 야곱에게 그날 밤은 정말 문자 그대로 캄캄했습니다. 전후좌우 그 어디를 둘러봐도 나갈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늘로 길이 뚫려있었습니다. 하늘로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그 뚫린 길, 열린 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절망을 극복하고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비록 사방이 다 막혀있어도 하늘로 길이 뚫려 있고 하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는 남편을 잃고 혼자서 어린 자식들을 키우면서 살아가는데 이런 불쌍하고 약한 여인의 등을 처먹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대하여 아무도 약하기만 한 이 여인의 편이 되어 그를 도와주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을 괴롭힌 사람은 그 지역에서 매우 유력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괜히 여인의 편을 들다가 그 유력한 사람의 눈 밖에 나게 되면 공연히 불이익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옳아서가 아니라 자기 입지에 문제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약하고 불쌍한 여인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에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법도 결국 강한 자를 편듭니다. 얼마 전에 「과거사 진상 조사위원회」에서 진보당 사건의 조봉암씨에 대한 재판이 당시 이승만 정권에 의하여 잘못되었다고 정부가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하는 결의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지난 날 독재자들의 하수인이 된 법조인들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무고한 국민이 희생되었는지 모릅니다.

   이 여인이 자기 문제를 가지고 법에 호소하였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습니다. 왜냐하면 재판장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유아독존의 인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라고 하면서 호소했지만 그 재판장은 상당기간동안 듣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인의 간청은 연기처럼 살아지는 듯 했습니다. 그래도 그 여인은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법에 한 가닥 기대를 끊지 않고 계속 재판장을 찾아가서 심지어 번거롭게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재판장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재판장은 과부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예수님은 이것으로 우리가 반드시 기도해야할 절실한 필요성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니다. 저 불의한 재판장도 자기를 자주 찾아와서 번거롭게 하는 과부의 호소를 들어주었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 현대 사회의 특징은 속도에 있습니다. 얼마나 빠르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속도 전쟁입니다. 그래서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느린 것”을 경멸하고 죄악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신앙에 유입되면서 많은 성도들도 뭔가 속히 해결을 보려고 합니다. 이런 심리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이비이단들입니다. 속히 응답받고, 속히 해결된다고 하는 것으로 많은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은 그와 반대입니다. 합2:3 말씀처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는 것”이 기독교 영성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을 믿고,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기도의 본질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기도”는 시간 낭비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께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부어드렸을 때 가룟 유다는 “왜 이것을 낭비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이야말로 주님께 가장 훌륭한 일을 하였노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낭비로 볼는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에게는 가장 귀한 일로 여김을 받습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들은 다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이사야, 다니엘, 바울, 사도 요한 등등 이루 다 거명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들은 다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 웨슬레 등의 이름이 궁창의 별처럼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어린이가 정원에서 의자에 앉아 글을 읽는 아버지 곁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 어린이는 무거운 돌을 들어 옮기려고 했으나 너무 무거워서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쉬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야말로 콩죽 같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속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네 힘을 다 사용하고 있지 않구나.” 이 말을 들은 어린이는 “아니에요, 저는 제 힘을 다 쓰고 있어요.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어요.” 아버지가 다시 말했습니다. “너는 나에게 도와달라고 청하지 않았잖니? 그것 역시 너의 힘이란다. 내가 여기 네 옆에 있는데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은 것은 네 힘을 다 사용하지 않은 것이니라.”

   그래서 오늘 누가복음 본문 마지막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는 자를 보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은 바로 생명이었습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믿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이 과부처럼 저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일이 능사였습니다. 당시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을 편들어줄 세력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수의 무리에 불과했던 기독교인들이 세속적인 방법으로 세상과 더불어 싸울 수 있는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이는 일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기도야말로 생명을 건 투쟁이었습니다. 저 얍복에서의 야곱의 씨름과도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여건이 해결되거나 개선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쉬이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늘 본문의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오래 기다리겠느냐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오늘 구약 본문 예레미야서를 보십시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담대하게 그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응답을 이미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다니엘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기도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오늘 딤후 4:3에는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기도무용론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오늘도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 큰 응답을 체험하는 여러분, 능력의 역사를 이루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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