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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제 (히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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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히 10:19-25)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과 신자와의 관계를 “생명적 관계”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떠난 상태에서 신자는 선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없이 이룬 모든 것들은 허탄한 것이다.

(약 4: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사람들이 소망하는 지위, 인기, 재능, 재물, 취미생활...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 없이 이룬 것들이라면 자신에게 혹 육신적 유익이 될지는 모르나 영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도리어 육신적으로 거둔 업적들이 타락과 실패의 원인이 될 수 도 있다.

나의 존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과 생명적 관계에 있다면 내가 우선적으로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신중하게 들어 주길 바란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지난 주일, 영국의 강해설교가 존 라일목사의 말을 인용해서 소개했었다. 그는 “거한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주님과의 밀접한 교제”라고 했다.

오늘은 히브리서의 말씀을 통해 “교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교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첫째는 수직적 입장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둘째는 수평적 입장에서 성도들과의 교제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1.하나님과의 교제(19-22) - 예배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 10: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 지금 함께 읽은 본문의 결론적 메시지는 22절 하반절에 잘 요약되어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것이다. 앞 부분의 내용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된 근거에 대한 설명이다. 그 근거는 3가지다(20-22절).

1)예수께서 지성소의 휘장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여기서 말하는 성소는 지성소를 말한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휘장은 힘 센 사람이라 할지라도 잡아 당겨서 찢어질 천이 아니었다. 그 휘장의 두께는 적어도 10cm 이상, 어떤 자료에는 30cm 정도까지 되었다고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내성전 지성소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위로부터 아래로 완전히 찢어져 둘이 되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휘장은 그의 육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 길은 “새롭고 산길”이다. 새롭고 산 길이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말한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상 길은 가면 갈 수록 피곤하고 괴롭지만, 하늘 가는 길은 생명길 되나니 은혜가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열어 놓으셨기에 이제 모든 성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성모 마리아나 신부

2)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
사도신경 중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보좌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변호하시는 대변자로 계신다.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예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는 한 우리가 하늘 아버지께로 나아감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3)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때는 물로 벗기지만 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벗기는 것이다. 씻는다는 면에서는 같으나 양심의 죄악을 씻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입술로 고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이 우리의 심령을 정결케 하는 것이다. 맑은 물로 몸에 더러운 것들을 모두 씻어낸 것 처럼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깨끗케 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그의 자녀로 삼으셨다. 그래서 신자는 누구나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나아 가야 하는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갈 것을 권면하고 있다.

참 마음이란? 진실하고 충성된 마음이란 뜻이고, 온전한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성숙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와도 같다.

자식 입장에서 자신을 효자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항상 부모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들이 잘 못해도 부모를 생각하고 있는 마음을 느꼈을 때 기쁜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가자”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배”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교제의 관계가 잘 이뤄지려면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어떤 자세로 드려야 하는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드려야 한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지침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다.

1)예배 시간 - 늦어도 10분 전까지 나올 것 - 조용히 회개기도하고, 말씀도 찾고,
2)헌금은 미리 정성껏 준비해서 헌금함에 넣을 것 - 믿음의 분량대로. 헌금 정신.
3)예배 순서 순서마다 마음을 다하여 집중할 것 - 신앙고백, 성시교독, 찬송가, 찬양대.
4)말씀 들을 때 - 집중해서 들을 것. 작은 노트에 받아 적을 것.
5)복장 - 단정하게 입을 것. 하나님 앞에 예의를 갖출 것.

이렇게 하면 예배 시간에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시간에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이뤄질 것이다.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성도간의 교제(23-25)

(히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히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그의 자녀들을 만나시기를 기뻐하신다. 또한 성도들끼리의 교제를 기뻐하신다. 부모님의 소망 중에 하나는 형제 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다. 성도간의 교제가 잘 이뤄지기 위해 먼저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한다.

1)개인의 믿음에 관하여
(히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교회를 신앙 공동체라고 부르는데, 신앙 공동체에는 공동으로 고백하는 신조가 있다. 그것을 사도 신경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도리요 소망이다. 신자들은 항상 자신의 신앙고백이 흔들리지 않도록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붙들어 주고 세워 줘야 한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2)공동체 안에서
(히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서로 돌아보아”라는 말은 피상적이 아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라는 것이다.
한 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다.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믿음의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보면 은혜 받은 성도들의 모습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소그룹 환경에서 잘 적용된다. 예)목장모임의 중요성.

3)모임에 대하여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러분, 모이면 살고, 안 모이면 죽는다. 내 영혼이 죽는다.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은 본 받을 것이 전혀 없다. 편의주의 세속주의 현상이다.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사단은 모이기 말라고, 가지 말라고 속삭인다.

예배모임, 목장모임, 기도모임, 봉사모임등..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한다. 되는 교회는 모이는 일에 불평하지 않는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이는 일에 힘 썼다.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박윤선목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할 3가지 이유에 대하여 말씀했다.

1)신앙생활의 관리를 위해
신자는 반드시 교역자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 만약 모이지 않고 개인 스스로 신앙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머지 않아 신앙이 약화되고 타락하게 된다. 개인 중심 신앙생활은 나태를 가져오고 결국 세속화되고 만다. 신자들은 교회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
예)논에 모를 심은채 그냥 내버려 두면 추수때 피밭이 되고 말 것이다.

2)복음운동이 유력해짐
이승만대통령,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말했다. 세상 일도 합심해서 뭉치면 성취할 수 있다. 성도들이 모여 합심하는 것은 영적으로 큰 유익이 된다.
예)수영로교회, 주중 모임.

3)영적으로 성장과 성숙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는 신자는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모여서 듣고 배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예)모든 예배와 성경공부, 모임.

모이기를 싫어하는 것은 마귀적인 현상이다. 신앙의 성장은 함께 모일 때 가능하다.
예)무디에게 찾아온 청년.

혼란하고 불안한 시대에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1)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관계가 잘 이뤄지도록. 예배에 성공하는 성도가 되자.

2)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른 지체들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왜? 섬기기 위해서.
성도들과의 교제 - 서로 격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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