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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렘 8: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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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렘8:18~22)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심하는 것 중 하나가 건강 문제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건강 문제는 아주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의학이 발달하고 병원도 많이 생겼지만 병자들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만 해도 정말 많은 병원들이 있습니다. 특히 대형 병원을 가보면 엄청납니다. 이따금 입원한 성도들을 심방하느라 병원에 가보면 그 규모에 깜짝 놀라고,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인간은 결코 질병의 고통에서 완전하게 해방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해 봅니다. “세상은 거대한 병동이다!”

  정말 희한하고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여전히 고칠 수 없는 질병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죠.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가 폐결핵이었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도 각혈을 하다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폐결핵 환자를 보기도 어렵지만, 설사 폐결핵에 걸렸다 하더라도 쉽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질병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직 불치병으로 분류되는 에이즈도 그렇고, 무서운 병으로 인식되는 암만 해도 별의 별 종류의 암이 다 있습니다. 

  또 얼마 전 신문에서 ‘수퍼 박테리아’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수퍼 박테리아는 항생제가 전혀 듣지 않는 병원균인데,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이즈에 결려 죽는 사망자 수보다 수퍼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죽는 사망자 수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앞으로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건강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니까,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78.6세인데 비해 건강 수명이 68.6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개 10년 정도는 질병 가운데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통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질병만 계산한 것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고통당하는 것, 영혼이 죄로 인해 사망의 그늘에서 헤매는 것 등을 감안하면 평생 질병과 고통 중에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인생을 가리켜 ‘생로병사’(生老病死)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최대한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특별히 육체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 그리고 영혼의 건강까지 주고 싶어 하십니다. 이를 통 털어 ‘전인건강’(全人健康)이라 말하죠. 하나님은 전인건강을 위해 우리를 질병과 고통에서 치유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치유를 가리켜 ‘전인치유’(全人治癒)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전인치유에 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고, 전인건강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유다 백성의 참상 : 깊은 상처와 절망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B.C. 600년 전후에 기록한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남쪽 유다 왕국이 큰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신흥 강국 바벨론의 침략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계속적인 바벨론의 침공이 있을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때 유다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절망 가운데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같은 마음으로 애통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선지자가 탄식하며 애통하는 노래, 즉 애가(哀歌)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18절을 봅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참상을 보고 큰 근심과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마음의 병이 깊었습니다. 21절에서는 뭐라고 노래합니까?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선지자는 유다 백성을 가리켜 ‘딸 내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얼마나 안타까워하는지 그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19절을 보면 백성들의 탄식이 나옵니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 ”
그들은 ‘먼 땅’ 즉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아무리 불러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아니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20절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이스라엘의 추수기는 4월~6월입니다. 이때 곡식을 거두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과일(포도, 올리브)의 추수기인 늦여름마저 훌쩍 지나갔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겁니다. 원망과 불신앙 가운데 절망에 빠져있는 그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참한 모습의 원인은 정작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선지자를 통해 경고한 그대로입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불렀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2] 유일한 치유자 : 여호와 라파

  그러므로 치유 받으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그들을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치유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이 말은 출15:26에 나오는데, 하나님의 칭호 중 하나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치유자 하나님’(God The Healer)이란 뜻입니다. ‘라파’는 히브리어로 ‘치유하다’ ‘고치다’ ‘온전케 하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라파만이 유일한 치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멀리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들의 비극의 근본 원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책망의 말씀을 전합니다. 19절(하). “ ...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그들이 하나님 대신 우상 신을 섬겼던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함으로 스스로 고통을 자초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할 한심하다는 겁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제쳐 두고 엉뚱한 데 가서 절하고 빌고 난리를 쳤으니 잘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제 그들에게 유일한 치유자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명심해야 살 길이 열립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치유자로 나타납니다. 마4:23~24 보면 예수님의 지상 생애 가운데 하신 사역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여기 보면 예수님이 별의 별 병을 다 고쳐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을 죄와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동시에 육체의 병, 마음의 병, 그리고 영혼의 병까지 다 고쳐주십니다. 이른바 전인치유를 베푸시는 ‘완전한 치유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치유자가 되시는 근거는 바로 십자가 대속입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예수 그리스도)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사53:5의 성취)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피 흘려 죽었습니다. 동시에 죄로 인해 인간에게 찾아오는 질병과 인생고를 다 짊어지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각종 질병을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 마8:17에서도 그런 사실을 증거합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사53:4 성취)

[3] 여호와 라파의 초청 :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다 백성은 회개하고 치유자 하나님께 돌아와 치유 받지 않고 엉뚱하게 원망과 절망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애통하며 호소합니다. 여호와 라파의 초청에 응하라는 겁니다. 

  본문 22절을 다시 봅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 고산지대에 위치한 성읍으로 유향(乳香, balm)의 주산지입니다. 유향은 유향목(乳香木)에서 진액을 짜서 만든 것으로, 진통제나 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재입니다. 길르앗의 유향은 아주 유명해서 멀리 애굽이나 두로 등 외국 등지에 수출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또 길르앗에는 유향을 잘 사용해서 질병을 치료하는 용한 의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중한 병자들은 다 길르앗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벨론에 끌려간 백성들은 길르앗에 갈 수 없습니다. 길르앗의 유향이나 의사들은 그림의 떡입니다. 선지자는 그런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상처받고 병들고 고통 받는 것 자체보다 더 딱한 일은 약이 있어도 쓰지 못하고, 의사가 있어도 찾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은 그것을 거부하고 엉뚱한 데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선지자가 지금 길르앗 유향을 언급하지만 사실은 치유자 하나님을 증거하는 겁니다. 백성들이 길르앗에 가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고, 회개하고 여호와 라파에게 돌아오지 않는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치유 받고 구원받고 승리할 수 있는데 왜 가지 않느냐 이겁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찾지 않아서 손해보고 망한 예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중에 아사 왕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는 한때 하나님은 잘 섬겼는데 나라가 번성하면서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그러다 말년에 발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아사 왕이 어떻게 했나요? 대하16: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무슨 말입니까? 아사 왕이 의사를 찾아간 게 잘못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의학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입니다. 인간에게 지혜를 주셔서 의학을 발전시키고 그 혜택을 보게 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근본적으로 치유는 하나님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인간 의사가 치료를 잘 해도 하나님이 치유해 주셔야 낫는 겁니다. 그래서 ‘치료’라는 말과 ‘치유’라는 말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수술을 하고 투약을 해도 그 이후의 일은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된다는 겁니다. 인체 속에서 그 모든 게 아물고 회복되는 것은 이미 의사의 손을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사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고치시고 우리는 봉사한다!” 많은 크리스천 병원들이 내거는 모토입니다. 인간은 진료 행위만 할 뿐 결국 하나님이 치유하신다는 겸손한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의사의 도움도 받아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치유를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병들어 아플 때 병원도 찾아가지만,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사 왕의 실책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병들어 죽고 맙니다. 

  여러분, 모든 인간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영혼도 육체도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만일 인간이 이를 거부하면 여호와 라파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치유는 병식(病識)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치유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병들었는데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의사를 찾아가지 않으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막2:17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 앞에 나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은혜를 구할 때 구원을 받습니다. 병든 것을 고백하고 치유의 은총을 간구할 때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 하면 그분의 그 능력과 은혜를 전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길르앗 유향’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눈물로 고백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치유의 은총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88올림픽 당시의 일화입니다. 남자 탁구에서 유남규 선수가 금메달을 땄는데, 숨겨진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는 국가대표로 발탁되어서 석 달 전부터 합숙하며 맹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유망주인데다가 본인으로서도 놓칠 수 없는 기회여서 가외로 2시간씩 개인 훈련을 하며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 개회 한 달 전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어깨에 심한 통증이 온 겁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어깨 힘줄이 늘어나고 어깨뼈도 처졌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는 그 수년 전 양영자 선수로부터 전도를 받았고, 그 동안도 이런 저런 신앙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심각하다 보니까 너무 고민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결단했습니다. 2주 동안 운동도 쉬면서 기도만 하기로 한 겁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 큰 시합을 앞둔 운동선수가 운동을 쉬다니! 어쨌든 이렇게 하면서 드디어 올림픽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습니다. 그는 한 게임 한 게임 간절히 기도하면서 임했습니다. 결국 그 모든 게임을 다 이기고 금메달리스트가 된 겁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국가대표순수인데다가 메달 유망주니까 얼마나 주변에서 신경을 썼겠습니까? 의료진에서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며 최선을 다해 치료했겠습니까? 그래도 안 됐지만, 여호와 라파 하나님이 그를 고치시고 승리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치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영적인 치유이고, 마음의 치유입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의 일화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전선을 시찰하며 병사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야전 병원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부상병 수용되어 있는데, 얼마나 잘 치료하는지 좋은 소문이 있던 병원이었습니다. 병원장은 브리핑을 하면서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군의관이 황급하게 달려와 보고합니다. 바로 그 전날 수술을 받은 병사가 자살을 했다는 겁니다. 병원장은 당황을 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성공적인 수술이라고 자랑을 했는데, 그 병사가 자살을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때 링컨이 조용히 병원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의술은 정말 탁월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은 육체만 고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온전한 의술은 마음의 상처도 함께 고쳐주는 것입니다.” 정말 딱 맞는 말이죠. 그 병사는 수술을 했지만 마음에 상처를 치유 받지 못했습니다. 불안했고 미래가 불투명하게만 생각되어 고민하다가 결국 자살을 결행한 겁니다. 그가 육체도 수술 받고 마음의 수술도 받았다면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 주변에도 육체는 멀쩡한데 마음의 상처와 마음의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육체의 치유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의 치유요 영혼의 치유입니다. 설사 육체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위로받고, 그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인도 캘커타에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고 행려병자 데려다 치료하고 임종을 지켜주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녀가 떠난 지금도 그 단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꺼번에 네 명의 병자가 들어왔습니다. 세 명은 웬만한데 한 명이 아주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세 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놓고, 그녀 자신이 심각한 병자 옆에서 간호를 해주었습니다. 어루만져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 그녀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그 병자는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그 병자는 마더 테레사의 손을 꼭 붙잡고 환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병자가 죽었으니까 치유 받지 못한 겁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어차피 육체의 병은 나아도 다시 걸립니다. 그리고 늙고, 마침내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치유를 받고 영혼이 구원받는 게 더 중요합니다. 구원과 영생이 궁극적인 치유입니다. 육체뿐 아니리 영혼까지 치유 받아야 진정한 치유요 그것이 곧 ‘전인치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전인치유의 은총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이웃들이 이런 은총을 받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치유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도 직접 여호와 라파에게 기도하고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외쳐야 합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예수님에게 온전한 치유가 있지 아니한가?” 아무쪼록 길르앗 유향보다 더 귀하신 치유자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심신의 상처를 치유 받고 전인건강의 복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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