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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세상이 절하는 꿈 (창 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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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절하는 꿈 (창 37:1-11)

시골 시장터에서 뻥튀기 과자를 만드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학교에서 신상 조사서를 조사하는데 아버지 직업란에 이렇게 썼습니다. "곡물 팽창 사업!"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준 인생을 찌그러뜨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여건 가운데 태어났지만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여건의 한없이 넓히고 키우고 확대하고 팽창시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은 최악의 삶의 환경에서 최선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가 부르던 복음성가 가운데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하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예수님을 한 가지라도 온전히 닮을 수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성경 연구가 젠슨이란 사람은 요셉을 연구한 결과 요셉과 예수님의 공통점이 130가지나 더 되더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수많은 인물 가운데 가장 닮고 싶은 인물,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인물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요셉을 선택하곤 합니다. 구약에 많은 영웅들이 나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성공하지요. 성공하고 난 다음에는 예외없이 실수를 합니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도 이삭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모세도 다윗도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허물도 실수도 없는 예수님의 그림자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요셉이라고 하는 인물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라헬에게서 어렵사리 얻은 아들입니다. 요셉은 일찍이 어미를 잃고 세 명의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난폭한 열 명의 형제들 밑에서 자라나야 했습니다. 과연 최악의 환경에서 지구의 꿈을 꾸며 최고의 삶을 살았더 사람입니다.

그런 요셉을 아버지가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에게 채색옷을 입혔다고 했습니다. 남다른 옷을 입히고 그를 사랑했다는 얘기이지요. 쉽게 설명하면 신발 하나를 신겨도 요셉에게는 나이키 신기고 나른 형제들에게는 나이스 신기고 티셔츠 하나를 입히더라도 요셉에게는 빈폴 입히고 다른 형제들에게는 빈골 입히고 그런 게지요.

창세기 37장 요셉의 꿈을 다른 성경입니다. 성경 가운데 주일학교에서부터 꽤나 많이 들었던 내용이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꿈을 다루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알쏭달쏭한 말씀으로 오늘 본문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1절에서는 야곱이 가나안 땅에 살았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왜 야곱의 이야기처럼 기록을 하고 요셉의 이야기로 넘어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비록 콩가루 집안이었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실수할 수 있습니다. 갈등이 일어납니다. 방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속의 땅에 말씀의 은혜의 땅에 교회에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들도 그렇고 우리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절에 보면 요셉의 이야기를 다루며 "요셉의 생애는 이러하니라" 기록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라고 말했으면 그 뒤에 12형제 이야기가 자세하게 기록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요셉의 이야기라고 말하지 않고 요셉의 이야기를 기록하느냐는 겁니다. 지금 요셉의 꿈꾸는 사건은 한 개인 요셉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그 거룩한 약속이 요셉이란 한 인간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요셉이 꿈을 꾸고 애굽으로 들어간 이 사건은 나중에 이스라엘이란 한 나라가 세워지는 건국신화를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 훗날 출애굽을 할 때에 200만 대군이 나올 때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나오지요. 출애굽하기 위해서는 입 애국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이스라엘이란 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애굽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꿈이야기로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오늘 이 본문은 이스라엘판 건국이야기, 이스라엘판 주몽, 이스라엘판 왕건, 대조영, 태왕사신기 이런 거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2절 말씀에 보면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기록을 합니다. 요셉이 십칠 세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를 때에 75세, 하나님의 간섭, 하나님의 부름이 나타날 때부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기록이 되어집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75세 이전,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이전 아브라함의 생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지요.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간섭하기 이전 요셉의 이전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거룩한 성 역사는 우리 믿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서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심으로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으로서 내게 꿈을 주고 비전을 주심으로서 내 인생은 진정 시작이 되어진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성경에 기록된다고 한다면 몇 살부터 기록이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이 직접 운행하시기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간섭하기 시작하신 그 시점은 어느 때부터입니까? 여러분 그때부터는 여러분의 삶은 어떤 고난과 시련이 있다할지라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 삶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폐기처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습니다. 반듯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날까지 반드시 이루어 갈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맑고도 깨끗하고 밝고 정직하게 살았던 요셉.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더라 성경은 그렇게 시작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주변에 있는 많은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했더라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를 미워하고 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4절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5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8절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슬러 2절에 올라가서 보면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또 다른 이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그 형들의 잘못이 어떤 잘못인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독자들로 하여금 충분히 짐작하도록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래서 그 형들이 아버지의 양을 몰래 팔아 먹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성경은 요셉의 고자질을 인정하고 격려했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꿈꾸는 요셉 그는 정직하게 살았다는 말입니다. 야곱의 자식 편애 사건을 잘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편애 때문에 살았던 것입니다. 일방적인 편애를 입고 살았던 요셉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우리 인생을 다루시는데 공의로 우리를 다루시는 것 같지만 만약에 하나님께서 공의로 우리를 대하셨다고 하면 이 자리에 살아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무조건 편애하십니다. 천하 인간의 사랑할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온천하보다도 나를 더 소중히 사랑하십니다. 무엇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불구하고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여기 있는 것이지요. 사랑받는 아들 요셉 그는 바로 나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비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시기를 살 수 있습니다. 미움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낙망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준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어떤 시기나 오해나 위험에 부딪힌다 할지라도 너의 삶의 목적은 반듯이 주께서 이루어 질 것이다. 그 비전을 붙들고 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미워하여" 5절 "미워하여" 이어지는 6절에 그래서 그가 기가 죽고 꿈을 포기했나요. No. 아니예요. 6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지금 열심히 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꿈, 시련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요셉의 꿈,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바보 형제가 철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동생 바보가 형 바보에게 말했습니다. "형아 이상하다 철길은 멀리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데 저 큰 기차가 잘도 달린다 그치." 형 바보가 동생 바보에게 "야 이 바보야 잘 봐. 기차도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점 점 오무라 들잖아."

참된 꿈은 멀리 가더라도 오무라 들지 않습니다. 참된 꿈은 시련이 있어도 찌그러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어떤 시련과 도전이 있고 역사가 시간이 흘러간다 할지라도 잘못되지 않습니다.

우리시대에 비극이 있다고 한다면 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동물은 꿈이 없습니다. 비전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 한다면 우리가 동물과 다른 점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살아갈 맛이 있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하루 하루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그 고난과 어려움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반듯이 꿈을 이루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믿고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꿈은 꾸는 것이 아닙니다. 꿈은 꾸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밤에 첫사랑을 만나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첫사랑을 꿈 꿔봐야지 꿈이 꾸어지든가요. 오늘밤에 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낙엽 쌓인 길을 걸어가며 시몬 너는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 손잡고 걸어봐야지 그래도 안 꾸어지는 겁니다. 꿈은 꾼 것이 아니라 꾸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야망도 내 속에 어떤 욕망이 있느냐에 어떤 욕심이 있느냐 여하에 따라서 야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도 하나님이 나를 쓰기로 작정하셨으면 하나님 앞에 순결한 그릇으로 내가 준비되어지기만 하면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생각지도 못했던 한번도 계획하지 못했던 계획과 꿈과 비전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10대에 꿈을 꾸었습니다. 20대에 그 꿈을 가꾸었습니다. 30대에 국무총리가 되어서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꿈 얘기를 하면 아버지로부터 야단 받고 형님들과 갈등을 일으켜야 되고 시기가 일어난다는 것을 요셉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계속적으로 얘기합니다. 왜요? 꿈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요셉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의 특징이 여기 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첫 번째 꿈을 꾸고 꿈 얘기를 합니다. 형들은 아유 저 왕자병. 고칠 수 없어. 그러고 넘어갑니다. 6절 요셉이 형님들 내가 꿈을 들으시오 또 얘기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입술로 선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비전이 무엇인지 내 꿈이 무엇인지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선포함으로 날마다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확인하면 할수록 내 삶속에 내 심비에 내 뇌에 각인되어 지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 회복에 대한 꿈,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여러분도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이 복음을 선포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그 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땅을 정복하는 그 꿈,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꿈이지요. 가슴 속에만 담고 있을 수 없는 꿈이지요.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 이름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꿈이지요.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이 기쁜 소식. 복음은 말 안해도 좋은 그런 소식이 아닙니다.

교육학에서 피그멜리온 효과라고 하는게 있습니다. 꿈을 말하면 말할수록 내가 나 자신에게 꿈을 말하든지 내 자녀들에게 꿈을 말하든지 그 꿈은 현실이 되어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에는 부메랑의 법칙에 의하여 던지면 한바퀴 돌아서 내게 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고 비판과 비난의 말을 하고 음란한 말을 하면 그게 내게 돌아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말을 하고 칭찬과 격려를 하고 사람들을 높여주는 예언적인 말을 하게 되었을 때에 그 영향력 내게 다가온다고 하는 것이지요.

일본의 파동학자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잔의 물에 내가 긍정적인 말을 하고 사랑의 말을 하면 물이 육각수로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집안의 분위기가 싸움박질이 일어나게 되고 나쁜 말을 하게 되고 소리를 지르게 되면 그 육각수가 깨져서 물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몸에 질병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몸은 60%가 물로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말하든지 내가 어떤 말을 듣든지 간에 그 말이 내 몸에 영향을 미치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 시절에는 물의 양이 훨씬 더 높습니다. 70% 75%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에 무슨 얘기를 들었는가 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 아이가 말을 못 알아 들을 때도 사랑한다. 하나님이 너를 축복한다. God bless you! 아이를 축복하게 되었을 때에 우리 몸속에 있는 물이 아이가 깨닫지 못하는 언어도 물이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 어떤 말을 들었느냐 하는 것이 인생이 행복한 인생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삶을 살 것인가가 결정되어지더라는 것이지요.

요셉은 꿈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을 꾸셨습니까?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그 큰 비전이 있습니까? 담고 있지 마시고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에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웃들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확인되어지고 각인되어지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셔서 주께서 친히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요셉의 꿈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더라 하는 꿈입니다. 두 번째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더라 하는 얘기지요. 이 꿈은 보통 꿈이 아닙니다. 꿈이라는 것은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삶의 자재를 가지고 꿈을 꾸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환경의 터를 벗어날 수 없는게 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은 그런 꿈이 아니었습니다.

대학교 교정에서 두 학생이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교수님들이 지나가시면서 한 마디씩 하시는데 전공과목에 따라서 얘기가 다르더랍니다. 의상학과 교수님은 옷 찢어질라. 아동학과 교수들은 너희들이 싸우면 얘들이 보고 배울텐데. 경제학과 교수님은 싸우면 서로 손해인데. 법학과 교수님은 누가 잘못했는지 조용히 따져보지 그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데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담아서 봉투를 올립니다. 한 가정에 자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목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들이 하나님 나라 재목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썼습니다. 어머니는 개인택시 운전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들의 삶을 친히 운행해 주세요."라고 썼습니다.

이런 원리에 의해서 요셉이 꿈을 꾼다면 어떤 꿈을 꾸어야 될까요? 형님들의 양이 내 양에게 절하더라 라고 꿈을 꾸어야 옳습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정상적인 꿈입니다. 왜요? 요셉은 양치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양과 함께 노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집안의 목축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곡식단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집안입니다. 그런데 양치기가 곡식에 관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여기에 깊은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곡식과 관련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보여주는 꿈이었습니다. 양식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되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너희 집안에 곡식 때문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희들 집안이 망할 꿈이 아니라 이것은 바로 굉장히 중요한 하나님의 관심과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만큼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말아라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때 요셉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온전히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요셉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해달별에 관한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요셉을 얼마만큼 높여 주실까 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지요. 이 중동지방에서 당시에 해달별이라고 하는 것은 절하는 존재들이었고 절받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태양을 숭배합니다. 바알을 숭배합니다. 별을 숭배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요셉에게 절을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고난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계획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것이지요. 문화적인 배경을 뛰어넘는 우주적인 꿈이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되어질 것이고 그분의 고난을 통하여 하늘과 땅이 그에게 절하게 될 것이며 세계 모든 열방이 그 앞에 무릎꿇어 경배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예언적인 꿈이요 예언적인 계시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꿈의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꿈에도 내게 절 하더이다. 두 번째 꿈에도 내게 절 하더이다. 절 받는 꿈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꿈은 창세기 42장에서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꾸어야 될 꿈이 어떤 꿈이어야 하는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꿈을 꾸어야 한다면 어떤 꿈을 꾸는 것이 좋겠느냐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으로부터 절 받는 꿈을 꾸고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군림하고 남을 짓밟는 존재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식 내 교회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를 감동시키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입니다. 그러나 제게 감동을 주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를 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절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가 이 교회의 요셉입니다. 우리가 직장생활 합니다. 사장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장을 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가 그 회사의 요셉입니다. 시대를 울리고 민족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그 민족 역사 속에 요셉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들도 이 땅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많은 교회들에게 감동을 주는 넘어진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우길 원하는 그런 꿈을 꾸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가 그 시대에 요셉과 같은 교회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요셉의 꿈을 다루며 의미 있는 결론의 말로 창세기 37장 1장에 시작된 말씀을 11절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여운을 남기는 듯한 이 말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꿈 앞에서 너는 시기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네가 꿈을 꾸었을 때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아라. 소중히 네 꿈을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 않는 꿈을 꾸어라.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간직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꿈은 도전받게 될 것이다. 시기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말아라. 꿈을 소중히 간직해라. 주께서 어떻게 네 삶을 축복하고 이루어 가는가 경외감을 가지고 네 삶을 지켜 보아라.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큰 비전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늘 시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 꿈을 간직하고 축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해하는 세력도 있고 비전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으십시요. 그 비전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 교회가 비전 채플을 향한 꿈을 꾸었을 때 시기하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간직하고 축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이루어 집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복의 근원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할 것이다.

꿈은 이루어 집니다. 우리 교회는 꿈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가슴앓이를 안고 불신자를 전도하여 이 시대에 교회가 일어나고 민족과 세계열방을 섬기는 멋진 교회가 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주님의 심장속에 있던 그 교회를 이루어서 한국교회 부흥에 성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성령을 제한하지 아니하고 이 교회 있는 모든 성도들이 다 꿈을 꾸어서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될 때에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모든 성도들이 영광스런 면류관을 쓰는 그런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이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성경에 있는 꿈이요 이 시대 이 교회에 주신 꿈이라고 한다면 주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시기에 부딪힌다 할지라도 주께서 반드시 도와 주실 것입니다. 이 꿈을 자신의 꿈으로 이 꿈을 자신의 가문의 꿈으로 이 꿈을 자신의 생애 목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부어주시고 또 부어주셔서 이 꿈을 하나님이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 꿈이 세상으로부터 절 받는 꿈, 존경받는 꿈 일진데 주께서 그 꿈은 이루어 주십니다. 세상을 감동시키는 세상으로부터 존경받는 꿈을 꾸고 살아가십시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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