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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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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행 3:1~10)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또 하루를 선물 받았고 또 한 주간의 복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간 부흥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에게는 큰 축복의 말씀의 잔치였을 것입니다.
참석치 못한 분들은 참으로 좋은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으니 차례차례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복된 자리에도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하여
유혹하는 자, 이단자들이 숨어들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오늘 주보 가운데 끼워져 있는 종이가 그것입니다.
청년이 잘 대처했고 상황을 잘 보고해 주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특별히 통성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사랑합니다. 자매님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기도해 줍니다”
라는 말로 유혹하는 이단자가 있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 목사라고 해서 확인해 보니 가짜였습니다.

여러분, 처음 보는 사람이 어떤 신분이든지 …
친절하게 다가와서 교회에 대해 불평하고
다른 곳에 가면 더 좋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특별히 공짜로/무료로 성경을 배울 수 있다고 유혹하면 그것은 100% 이단자들입니다.
가정을 흔들고 신앙을 깨는 자들입니다.
특별히 교회 성경공부, 교회 안에서의 모임 외에
다른 곳에서 하는 부흥회/세미나 … 등에
담임목사 모르게 가자고 말하는 사람도 위험인물입니다.

교회 담임목사님이 보내서 왔다고 여러분의 집에 찾아가서
물건 사라고, 특별히 목사님이 추천해서 온 것이라고 …
말하는 사람들의 말도 믿지 마세요.
그렇게 좋은 물건 있으면 제가 직접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예배시간에 광고할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지역장, 교구담당 심방전도사님과 목사님들께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제가 합니다.
이상한 곳에 기웃거리지 말고, 아무에게나 머리 들이대고 기도 받지 말고,
아무하고 손 붙잡고 기도하지 말고 … 정신 바짝 차리고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방송실에서 카메라로
예배실에 앉아 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찍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출석 확인하기 위한 자료로 쓸 것이고 …
둘째, 가끔 자기 가방인 줄 알고 옆의 사람 가방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찾아내는데 쓸 것이고
셋째, 이단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자료로 쓸 것입니다.
고개를 드시고 …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 합시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부흥회 때 은혜 받은 말씀을 기억해 보며
받은 은혜를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특별히 다른 것 하나를 소개하자면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차이일 것입니다.
- 동물은 어떤 자극이 있으면 반응만 합니다.
도망가거나, 덤비거나, 소리 지르며 잡아먹거나, 잡아먹히는 것이 끝입니다.
- 사람도 어떤 자극이 있으면 반응도 하지만 그 후에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평가합니다. 반성합니다.
‘다음에는 … 이렇게 해야지’하며 계획합니다.
그러므로 생각 없고 / 평가 없고 / 반성 없고 / 계획이 없다면 …
변화 없이 살아가는 짐승보다 못한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 돼지, 개는 생각/평가/반성/계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없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 때의 소, 돼지, 개와
지금의 소, 돼지, 개는 똑같습니다. 사는 게 똑같습니다.

사람은 생각하고/평가하고/반성하고/계획하기 때문에 변화합니다.
발전합니다. 성숙합니다.
짐승과 다르게 변화된 인생, 변화하는 삶이 되려면 몇 가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정체성(identity)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나는) 어느 날 점 같은 것이 생겨,
세월이 흐르고 흘러 ~, 변하고 변해 ~, 움직이고 움직이다가 ~
달라지고 달라지다가 ~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월의 한계에 묶여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 짐승이 아닙니다.
개와 돼지가 살다 죽는 것과 사람이 살다가 죽는 것은 다릅니다.
죽으면 그만인 것이 사람의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개나 돼지와 똑같은 동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기에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 되고 소금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며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영혼을 가진 존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왜 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김상용씨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아시는지요?
다 모르셔도 맨 아래 두 줄만 아시면 됩니다.
“왜 사냐건 웃지요”
TV에 나온 어떤 대학교수는“웃지요”를 “쪼개지요”라고 표현하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웃는 것을 쪼갠다고 말한답니다.

왜 사냐고 묻는데 그냥 웃기만 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삶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서, 직장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땀 흘리고 일하는데 … 왜 사는지 모른다면 문제입니다.
단지 돈 벌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물질을 쌓아놓기 위해,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해 사십니까?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성경은“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했습니다.

인생은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 어떤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죽어라 일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하는지 모르고,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돈만 법니다.
세상살이가 일만하는 것이라면 불쌍한 인생입니다.
- 어떤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죽어라 공부만 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흥회를 인도하신 김동엽목사님이 어느 교회에 갔는데
권사님 한 분이 “우리 딸 중매 좀 서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몇 살이냐고 했더니 54살이라고 하더랍니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도 계속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3개나 받고
지금도 공부만 하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그것도 인생을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서는 열심히 배우고, 젊어서는 부지런히 일하고,
나이 들면 봉사하고, 때가 되면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상살이가 계속 공부만 하는 학교가 아닙니다.

- 어떤 사람은 날마다 먹고 놀다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이 무슨 놀이터입니까?
이 세상에 와서 겨우 먹고 놀다가 죽는 생애를 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우리를 왜 보내셨습니까?
돈이나 모아 놓고, 동물처럼 자식이나 낳고 살며,
놀다 오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는 유익을 끼치고
자신도 기쁘고 감사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라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성경말씀대로 믿고, 성경말씀대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야 할 하늘 백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는 떠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건강하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돈 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안정된 직장을 가졌다가 자랑하지 마십시오.
어느 날 건강도, 젊음도, 아름다움도, 물질도, 자식도 …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명예를 가졌든, 지위를 가졌든, 물질을 가졌든, 무엇을 가졌든지 …
그 모든 것이 나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떠나간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잃어버린 다음에 원망하지 말고,
없어진 다음에 낙심하지 말고 …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 건강, 가진 물질,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기쁘게, 감사하게,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나이 먹으면 주름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머리 희어지고, 눈 침침해지고, 힘 빠집니다.

지난 주간에 여러 목사님들을 뵈었습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께서 자꾸 머리를 긁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왜 그러시냐고 여쭸더니 염색을 했는데 부작용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이면 진실하게 사세요.”
자연적인 하얀 머리를 왜 염색하시느냐고 그랬더니
그 목사님께서 “하나님, 저 고신일목사 흰머리 좀 나게 해 주세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염색해도 또 밀고 나오는 것이 흰 머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방법을 동원하여 주름살을 펴고, 머리 염색하고,
오이 붙이고, 진흙 바르고, 별짓 다해도 감출 수 없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시나 시조 외우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때 외웠던 시조 중에
"남도 준 배 업고 바든 바도 업건마는,
원수 백발이 어더러셔 온 거이고,
백발이 공도ㅣ 없도다 날을 몬져 늙킨다."
백발을 남도 준 일 없고 받은 일도 없건마는,
원수의 백발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고.
백발이 공평하고 바름이 없구나.
나를 먼저 늙게 하는 구나.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도 제가 돋보기 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런데 돋보기 쓴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치아)로 호두 정도는 가볍게 부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풍치로 이(치아)가 흔들려 걱정입니다.

저도 나이보다 들어 보인다고 하면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른 대접 해 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이보다 젊다고 하는 말이 듣기 좋아졌습니다.
부목사님들하고 식당에 가면
누구한테 먼저 밥을 갖다 주나 보려고 … 저는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아직은 밥이 저에게 먼저 안옵니다. 이○○ 목사님한테 먼저 갖다 줍니다.

하나님이 만든 자연의 원리는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나도 언젠가는 떠난다’는 것을 알고
오늘/건강할 때/한 살이라도 젊을 때/돈 있을 때 … 잘 해야 합니다.
부모님에게도 잘 하고, 이웃에게도 잘 하고,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움켜쥐고 있는 것 언제까지나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힘 있다고 자랑하지 마세요.
어느 날 기운 빠져 지팡이에 의존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돈 있다고 자랑하지 마세요.
그 돈이 언제까지나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있을 때 베풀고, 드리고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변화를 받아

자신이 누구인지/왜 사는지 언젠가 떠날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그 증거가 <변화>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그래서 자신이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게 된 사람은 <변화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 있어서 변화는 선택이 아닙니다.
의무입니다. 필연이고 필수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을 영접하고 변화 받은 사람으로/변화된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난 사람이 오늘 본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날마다 성전을 찾아오는 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날마다 성전 문 앞에 찾아오는 그 사람 속에는
영생도, 천국도, 예수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삶의 목적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2절에 소개된 대로 그는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성전을 찾았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서
예수님을 안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모태에서부터 교회에 다녔다고 해서,
몇 십 년 다녔다고 해서, 날마다 교회에 온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 할 때 많은 일꾼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에 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날마다 교회에 왔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짓는 일에 동참했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 1절에 소개된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을 찾았지만
- 2절에 소개된 걷지 못하는 사람은
구걸하기 위해, 돈 줄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날마다 성전에 갔습니다.
그 사람의 목적은 사람이었고, 물질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 해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단지 사람 만나기 위한 것이라면/목적이 잘못된 것이라면 …
오늘 본문의 성전 앞의 앉은뱅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목적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예배드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어제 오후에 보니 교회 뒤쪽 마당에 강아지 2마리가 있었습니다.
아주 예쁘기에 무슨 강아지냐고 물었더니
관리실 직원들이 기르는 강아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수육’이와 ‘전골’이라고 하더군요.
그 이름을 듣고 나니 강아지가 불쌍해 보였습니다.
이름에 기르는 사람의 목적이 들어가 있습니다.
강아지 기르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여러분이 예배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드리면서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찬송 중에, 기도 중에, 말씀 중에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가슴 떨림으로, 깨달음으로, 찔림으로, 감동으로 …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에 왔습니다.
오늘 예배 중에 말씀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품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예수 믿어 구원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사는‘변화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구걸하던 앉은뱅이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일어나 걷게 되자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바뀌어졌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있던 장소가 바뀌어졌습니다.
성전 문밖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보던 대상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입의 소리가 바뀌어졌습니다.
돈 달라고 구걸하던 입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우리가 자리 잡은 자리가 …
혼자 있을 지라도 … 가정, 일터, 교회에서든 …
- (3절)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어야 하고
- (6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자리여야 하고
- (7절) 은혜 받는 자리/축복받는 자리/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여야 하며
- (8절) 응답 받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나 복된 자리에 앉으려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 말이 달라야 합니다.
- 일이 달라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 말씀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의
- 보는 대상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 받으신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12:2)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실망했습니다. 상처 받았습니다. 서운 합니다.
그럴 줄 몰랐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 다 ~ 사람을 보고, 사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예수님이 실망을 주었습니까?
하나님이 상처 주고, 서운하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다 ~ 사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전 밖에 있는 삶이 아니라 성전 안에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전 된 삶이어야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속에는 하나님이 들어가 계신다고 했습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엡2:22)

그렇다면 우리 몸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전으로서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 변화된 사람,
변화하여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 …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복된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드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된 사람으로,
성전 밖에서의 삶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들마다 하나님께서 그 속에 계신다고 했는데
저들이, 우리들이 성전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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