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지는 붙어 있어야 한다 (요 15:4-8)

  • 잡초 잡초
  • 657
  • 0

첨부 1


가지는 붙어 있어야 한다 (요 15:4-8)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거리에는 많은 과일들이, 우리의 입맛을 당기고 있다. 저는 포도를 좋아 하는데, 하나님께서도 포도를 좋아하시는지,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셨다. (시80: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라고 하였다.

  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있는 백성들을 쫓아내시고, 거기에 심으시고 영광을 나타내기 원하셨다. 그런데 (사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어, 좋은 열매를 맺을 줄 기대했는데, 악한 가지가 되었다는 탄식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여, 악한 열매를 맺는 악한 가지가 되어서, 실패한 포도나무가 되었다. 인생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실패한 포도나무다. 그러면 왜 실패한 포도나무가 되었을까요?

  예수님을 떠나서 열매를 맺으려 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농부시요,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제자들은 가지라고 하시며,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는, 과실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다.

  이제까지 너희가 포도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으려했는데, 열매는 맺지 못하고, 실패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실패했던 그 일들을, 내가 친히 포도나무가 되어, 의를 이루고, 생명을 이루어서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가지가 열매 맺기 위해서,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한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주님께 붙어있지 못하게 만든다. 신약의 성도들은 포도나무가 되는 싸움이 아니다.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싸움을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이니, 예수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

  떨어져서 스스로 열매를 맺고, 승리하려고 하면 잘못된 일이니, 가지여 붙어 있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는 출석하지만, 주님께 붙어있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된 가지가 될 수 없다. 교회를 다녀도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여기에 해당한다.

  요14-17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설교를 하신 내용이다. 본문의 내용처럼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죄는 지어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죄를 지으라는 말이 아니라, 가지는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왜 붙어 있어야 하나요?

1. 붙어 있어야 산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존하는 존재다.

  줄기를 떠난 가지는 살 수 없다. 물을 떠난 고기도 살 수 없다. 이처럼 주님을 떠난 사람도, 살 수 없다. 줄기를 떠난 가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어, 쓰레기통에 던져진다. 사람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어, 영혼의 쓰레기통인 지옥에 던져진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다는 말은, 단절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서로 왕래하고 교통하는 긴밀함이 있어야 한다. 나의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교통이 있고, 사귐이 있고, 긴밀한 교제가 있음을 말한다. 교통함이 없으면, 그 가지는 죽게 된다.

  생명의 예수님에게서 떨어지면, 열매를 맺지 못하기에 (5下)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했다.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하였다. 나무를 떠난 가지는 죽음이 있을 뿐이듯, 성도의 죽음은 그리스도를 떠나면 죽음뿐이다.

  성도는 그리스도로부터, 생명과 모든 능력과 양분을 공급받는 존재다. 따라서 성도가 강해지려면, 그리스도께 더욱 더 의지해야 한다. 예수님을 의지하면 할수록,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생명의 예수님이 없으면 결국 죽게 된다.

  하늘에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그 비행기 안에는 조종사, 과학자, 목사, 그리고 세계를 여행하는 청년, 모두 4명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가 고장이 나서, 추락하고 있었다. 비행기에는 공교롭게도 낙하산이 3개 밖에 없었다.

  평소에 훈련이 잘된 조종사는, 빨리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면서, 남은 2개를 3명의 손님들에게 던졌다. 그 다음 과학자가 “나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과학자니 살아야 한다.”며, 낙하산 하나를 메고 뛰어 내렸다. 낙하산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는데, 목사님은 “젊은이! 예수님을 믿나?”라고 말했다.

  청년은 “자신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목사님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낙하산을, 청년에게 주시면서 “자네가 가지고 뛰어 내리게,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 지금 죽어도 천국 가네, 나는 자네를 지옥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니, 살게 되면 예수님을 꼭 믿게!”라고 말했다.

  청년은 태연하게 말했다. “목사님! 염려하지 마세요, 과학자가 제 배낭을 낙하산인줄 알고 메고서, 뛰어내렸어요!” 고장난 비행기에는 낙하산이 생명줄이다. 이처럼 죄로 고장난 우리 인생의 생명줄은 예수님이시다. 낙하산을 메지 않고, 뛰어 내리면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도 죽는다.

  줄기 떠난 가지는,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 가지다. 이처럼 예수님을 떠난 사람은, 살아 다니는 것 같지만 죽은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는 말씀은, 지옥에 들어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그래서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 일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조금 가난하게 살아도 괜찮다. 이 세상에서 몸이 좀 아프게 살아도 괜찮다.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고 살면 지옥이다. 우리는 주님께 붙어 있어야 산다. 그래서 줄기에 붙어 있는 것처럼, 붙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청년이 교회 다니다, 시험에 들어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지만, 교회를 떠나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목사님께 교회는 이제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예배드리겠다고 했다. 며칠 후에 목사님께서 저녁에 심방을 갔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바로 화덕 옆에 앉아서, 가만히 불이 타는 석탄불 화로를 바라보고 계시다가 불집게로 석탄 하나를 집어서 밖으로 내놓았다.

  얼마 있지 않으니까, 꺼내놓은 석탄은 하얗게 되더니 그만 꺼져 버렸다. 그러나 화로 안에 있는 석탄은, 활활 타고 있었다. 목사님은 교회밖에 나와서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 쉽게 꺼지지만, 교회에 들어가 같이 함께하면, 성령의 불꽃 가운데 신앙이 활활 타, 살아있는 신앙이 된다.

2. 붙어 있어야 받는다.

가지는 줄기에 붙어 있어야, 줄기로부터 영양을 받아 결실을 맺게 된다. 가지는 붙어 있어야 살고, 붙어 있어야 받는다. 떨어지면 죽고, 떨어지면 받지 못한다. 가지에서 떨어지면 죽고, 받지도 못한다.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는, 물도 공급 받는다. 영양도 공급 받는다. 모두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떨어진 가지는 공급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주님께 붙어 있는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모두를 공급받을 수 있다.

  과수원의 있는 나무들은, 항상 주인의 관리를 받는다. 주인은 그 나무에서 많은 열매를 얻으려고, 나무를 잘 관리한다. 때로는 비료와 거름을 주고, 벌레가 보이면 농약으로 퇴치하기고, 겨울이 오면 보온을 해준다.

  지저분한 흙과 먼지는, 물로 깨끗이 제거해 주어서, 나무를 건강하게 지켜 준다. 이렇게 과수원의 나무들은, 주인의 관리를 받으며 살아간다. 성도들도 이처럼,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다. 특별이 우리는 무엇을 받게 되나?

(1)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다(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다.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께 구하면 기도응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기도의 응답을 받아 보셨나요? 저도 많이 받아 보았는데, 받아서만 기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 기도를 들으심이 더 기뻤다. 그런데 기도 응답의 비법이 있다. 그것은 주님께 붙어만 있으면 된다. 주님께 잘 붙어 있기만 하면, 기도의 응답은 너무나 쉽게 온다.

  그러므로 무엇을 구하지 전에, 먼저 참 믿음부터 점검해야 한다. 잘만 붙어 있으면, 열매는 맺게 해 주신다. 발전소에서 보낸 전기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전선이 끊어지지 않고 잘 붙어있으면, 전기가 온다. 이처럼 주님께만 잘 붙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기도도 응답된다.

(2)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9-10).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하나님은 과거에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광야를 40년 동안 지나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하셔서 같이 해 주셨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셨다.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만나를 내리셨으며,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여 마시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호자요, 공급자요, 부양자였다. 그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주님은 그들의 안내자가 되셨다. 병들었을 때 치료해 주셨다. 전쟁할 때, 그들의 군대장관이 되어 주셔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기에,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이런 사랑과 축복을 받았다. 주님께 붙어 있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넘쳐나기 바란다.

(3) 주님의 기쁨을 받을 수 있다(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갖고 계신 목적은, 우리의 기쁨이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 접촉되면 역사가 일어난다. (마15:31)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

  주님을 만남으로 기쁨과 감격이 가득한 삶,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를 갈라고 부르지 않았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도록 부르셨다. 주님은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하여 오셨다. 그런데 왜 위로를 받지 못하고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가? 주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3. 붙어 있어야 영광을 돌린다(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라고 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다.

  자동차는 굴러가라고,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었다. 굴러가지 않는 자동차, 시간을 알려주지 못하는 시계는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주님께 붙어있어서, 줄기가 주는 것을 받아서, 열매를 맺어야 할 사명이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주님께 붙어서 열매를 맺으면, 포도원의 주인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포도농사가 잘 되면, 누가 제일 기뻐하겠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포도원 주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의 열매를 많이 맺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한다. 많은 열매를 맺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먼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사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열매 맺는 생활을 하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다.

  제자는 선생님에게 배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제자’(Disciple)와 ‘훈련’(Discipline)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 안에 거하여서 열매를 맺게 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훈련을 기꺼이 받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은, 무엇이든지 순종하는, 성숙한 신자로 자라나게 된다. 우리는 열매를 많이 맺어서, 예수님의 좋은 제자들이 되시기 바란다. 인류 역사상 전성기를 누렸던 나라와 교회를 보면, 그들의 성공 비결은 한 가지다. 철저하게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서, 풍성하게 되었다.

  마르틴 루터 이후, 독일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 자신들을 그리스도와 철저하게 묶어버렸다. 그래서 독일문학이 성경이 되고, 독일음악이 찬송이 되었다. 법학과 철학이 하나님의 탐구가 되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움직이자, 독일은 온 유럽과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민족이 사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 민족과 예수 그리스도가 묶어버리는데 있다. 민족과 그리스도가 묶이면 영광이 나타난다. 김활란 박사는 우리나라 여성의 거성이다. 그는 양녀 김옥길 박사 그리고 이화여대 몇몇 보직 교수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흘 후에 내 본향으로 갈텐데, 내 인생을 정리해 다오. 내 옷은 이대 의상학과로 보내고, 생활도구는 식당으로 보내라. 내 집은 학교관사로 쓰고, 고려청자는 박물관으로 보내라. 평생 살면서 죄 안 지으려고 노력은 무척 했지만, 나도 모르게 지은 죄가 있을지 모르니 신문 광고 해라.

  내가 미처 용서를 빌지 못하고 떠난다고 말해 다오” 김활란박사는 이 말을 하고, 3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이 조선일보에 게재되었다. 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삶 속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나요?

  한국 초기 교회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온다. 한국에 교회가 처음 들어왔을 때,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교인이 있었다. 기독교를 신문명으로 받아들여 교회 나온 개화교인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런데 1911년, 일제는 총독암살 미수사건을 구실로 ‘105인 사건’을 조작, 민족지도자들의 검거에 나섰다. 그 검거 대상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일본 경찰들은 교회에 들이닥쳤고, 온갖 핍박을 가했다.

  그러자 개화교인들은 하나 둘씩 교회를 떠나고, 기독교인들만 남아 끝까지 그들의 신앙을 지키며 교회를 지켰다. 마지막까지 누가 교회를 지켜서, 오늘날 이렇게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발전하여 정치, 경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하나님의 축복 받은 나라가 되게 하였는가?

  개화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인,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 속에 사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베풀어주셨다.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주님을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붙어 있어야 산다. 주님께 붙어 있지 않는 사람은 지옥이다. 붙어 있어야 받는다. 기도응답도 받고 하나님의 사랑도 받고, 주님의 기쁨도 받을 수 있다. 붙어 있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주님께 붙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