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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초대 기독교의 메시지 (행 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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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기독교의 메시지 (행 1:12-22)
   
    오늘부터 수 주 동안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도행전에 수록된 사도들의 설교를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상당한 분량의 설교가 기록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다 공부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설교로 시작된 신앙입니다. 예수님도 설교가였고 사도들도 설교가였습니다. 사도들의 설교는 그 당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였지만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사도들의 영적인 권세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립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전하는 복음은 이십 일 세기의 복음이 아니고 일 세기 예수님의 사도들이 전하고 그들이 가르치고 기록하고 정립한 그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의 믿음에 기본이 되고 그것을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천년 전 사도들의 설교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들의 설교를 공부하려는 이유는 근원으로 돌아가서 차근차근 기초부터 공부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설교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믿었는가,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가르쳤는가,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식으로 신앙생활을 했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불필요한 짐, 불필요한 짐을 덜어버릴 수도 있게 되고 또 잃어버린 순수함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것은 좀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내용일 수 있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땅을 파고 옛 문명의 흔적을 찾습니다. 그들이 제일 많이 쓰는 도구는 호미입니다. 땅을 파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살던 집터를 찾든 항아리를 찾든 무덤의 비문을 찾든 땅을 파서 역사적인 자료를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연구해서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옛날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는 것을 추측합니다. 그런 물건들이, 그들이 땅에서 파낸 물건들이 옛날 사람들이 쓰다 버린 쓰레기일 수도 있고 사람을 묻은 공동묘지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금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비행기가 날아가다가 추락했다든가 화재가 났을 때 전문가들은 그 현장을 감식해서 원인, 사고의 원인을 규명합니다. 몇 년 전 콩코드기가 이륙하다가 추락한 사건이 있었지요. 그때도 전문가들이 현장을 감수해서 그 사고의 원인을 활주로에 있던 이물질이 콩코드기의 바퀴를 펑크 내고 그것이 엔진에 빨려 들려가서 화재가 발생했다 라고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근거는 사고 현장에서 이물질인 쇳덩이를 발견했고 그리고 타이어의 찢어진 자국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물질과 찢어진 자국의 모양이 맞더라고 합니다. 셜록 홈즈가 따로 없지요.

  이처럼 작은 단서를 가지고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성경말씀이 얼마나 귀중한 증거라는 사실을 소홀히 여기고 생각하지 못합니까? 영어 표현으로 하면 take for granted,너무 당연히 생각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확함이라든가 정직함이라든가 풍성함이라든가 역사성에 있어서 성경과 비교할 만 한 것이 세상에 없습니다. 성경은 누가 땅을 파다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믿던 사람이 후세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비교를 해보자면 예컨대 우리가 삼국시대 신라, 백제, 고구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근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가 아닙니까? 이 두 기록을 통해서 삼국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는데 삼국시대에 대한 다른 기록들도 있었는데 그것이 유실되었는지 아니면 애초부터 다른 기록이 없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상당히 제한된 소스를 통해서만이 삼국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이 기록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가 많지요? 사대주의 사상이 담겨있다느니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느니 이런 식으로. 그러나 아무리 그것이 왜곡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만이 옛날의 역사를 알 수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천 오백년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길이 그렇게 제한되어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이천년 전에 일어난 예수님의 사건, 또 기독교의 근원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기록들이 보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들고 계시는 이 성경책은 모두 몇 권이에요? 육십 육 권이에요? 한 권이지요. 육십 육권 들고 다니는 분 못 봤습니다. 한 권을 들고 다니지요. 그러나 한 권으로 묶어놓은 것이지 이 안에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구약에는 삼십구 권, 신약에는 스물일곱 권의 책을 모아 놓았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책들이 있었습니다마는 정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러니까 기록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기록이 너무 많아서 그 중에서 선정해야 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한 기록만도 네 개입니다. 그게 바로 복음서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명의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사건을 기록했고 사도들이 쓴 편지가 있는데 바울이 쓴 편지가 있고 베드로, 요한, 유다 그리고 저자를 알 수 없는 히브리서가 있고 사도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쓴 편지도 있습니다.

  이런 많은 기록들이 다 똑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예수님의 주되심,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과 또 예수님의 부활 등 예수님에 대한 똑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인간이 땅을 파서 항아리를 찾든 비문을 찾든 해골을 찾든 이런 작은 단서를 찾아서 큰 이론을 만들 줄 아는 인간이 왜 성경의 풍성한 증거는 무시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을 기록해 놓은 책이라고 하더라도 성경의 방대함이나 역사성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도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라면 얼마나 귀중한 보배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 같은 책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 감동에 있어서나 진리에 있어서나 일관성에 있어서나 성경 같은 문학을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직장에서나 아니면 친구들의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모여서 같이 성경을 연구하고 또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점점 더 현대인들은 바빠지기 때문에 저녁시간에 직장인이 셀 모임을 갖기 어렵다는 현실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른 게 셀 모임이 아닙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이는 사람을 저희 교회로 데리고 와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다니는 교회가 있으면 존중해야 됩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기도하고 성경말씀 읽고 또 그것을 논하고 서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여러분은 교회에서 정식으로 임명하지 않아도 이미 셀 리더가 되는 것이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고 작은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문적인 신학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데에서는 평강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직장에서 이런 모임이 있다하면 반드시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역사적인 자료로도 참으로 풍성한 내용을 갖고 있는 말씀인데
  첫째는 원시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원시 기독교.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오순절날에 탄생했다고 생각하지만 오순절이 오기 이전에 이미 교회는 존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들이 바로 교회의 핵심 멤버였습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모인 무리의 수가 한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같이 기도하던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 중에는 열 한명의 제자, 또 여인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아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본문이 기록하고 있지요.

  둘째로 원시 기독교 공동체가 모였을 때 어떤 식으로 모임을 가졌느냐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한 것은 첫째,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더라’ 그랬고 둘째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일어나서 '형제들아' 하면서 설교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최초의 설교는 오순절날 했다고 주장하지만 베드로는 그 이전에도 설교했습니다. 지금 본문에 기록된 것이 베드로의 첫 설교입니다. 여기에도 인용한 성경구절이 나타나고 이것도 성령의 감동으로 한 설교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설교를 해야 되겠다 생각해서 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즉흥적으로 한 것이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면서 빈자리를 채웁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갔습니다. 멸망했습니다. 그 빈자리를 남겨두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섬기던 자의 빈자리를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맛디아라는 사람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서 열둘이라는 숫자가 완성되게 했습니다.

  세 번째로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원시 기독교 공동체의 교리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기독교의 교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기독론이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교리이든 삼위일체 교리이든 구원론이든 이런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고 애초부터, 처음부터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처음 이전부터 갖고 있었어요. 오순절이 기독교의 시작 포인트라면 교회가 시작하기 이전부터 그들이 기본적인 교리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1절 말씀을 보시면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public life - 공생애. 요한의 세례부터 시작해서 승천하실 때까지, 그것이 예수님의 공생애인데 여기에 베드로가 한 말도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요한의 세례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그 공생애 기간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 한 구절을 가지고도 복음서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정황을 볼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22절 말씀을 보시면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여기에 부활에 대한 신앙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되는 조건 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사도를 세우는 목적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볼 수 있는 교리는 원시 기독론을 보여주는데 기독론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냐를 논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열두 번째 사도를 뽑기 위해서 제비뽑기를 하기 전에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4절에 그들의 기도문이 나오는데 ‘저희가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라면서 기도합니다. 여기서 ‘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될 사람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가 될 것을 우리에게 보여 달라고 예수님에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예수님이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면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주여’라면서,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라면서 예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믿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고 이것이 성삼위일체 하나님 교리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배신을 하고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시면서 기독 공동체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상처를 입었습니다.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지요. 그리고 이들이 입은 상처를 돌아보았을 때 그 상처가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빈자리를 메꾸었습니다. 이제 기다리는 것은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만 임해서 역사하시면 됩니다. 이들은 준비가 됐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음 주에 공부할 내용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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