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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패역한 자의 표징이 되어 (민 17:1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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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역한 자의 표징이 되어 (민 17:1 ~ 11)

38년간의 광야생활이 끝이 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째 가나안 정복을 시도할 때입니다. 이때 모세와 아론의 지도권에 대하여 고라 자손들이 도전해 왔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주동이 된 족장 250명이 하나님의 거룩한 공권에 특히 아론의 지도권에 대해 도전해 왔습니다. 이러한 반역 행위를 하나님은 침묵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반역의 주모자격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들에게 속한 가족을 땅이 입을 벌려 삼켜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족장 250명은 불로 태워 죽였습니다. 그 외에도 염병으로 죽게 했습니다. 이 엄청난 참상은 공권에 도전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초자연적인 형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고라 자손의 반역행위를 사람들 앞에 정돈하기 위하여 죽은 나무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므로 제사장직의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으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하나씩의 지팡이를 가져오게 했습니다(1-7절). 그리고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는 12개 지팡이에 족장들의 이름을 쓰라고 했습니다. 물론 레위지파는 아론의 이름이 쓰였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레위지파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돋게 했습니다.
본문 17장 8절에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라고 했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아론의 권위를 인정하기에 앞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본문 17장 12-13절에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공적인 직무를 보장하기 위하여 역사적인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표징이 나타난 그 지팡이를 증거궤 앞으로 가져다가 간직하고 패역한 자들에게 표징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패역한 자(베네메리, yrIm,AynEb)를 직역하면 반역의 자녀들이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세우신 뜻과 신적제도를 거역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모세와 아론을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운 신적 권위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는 그 자체가 패역입니다.
하나님을 도전하는 오늘의 이 세대는 패역한 세대입니다. 이 설교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습니다. 밀 추(推)가 나을까, 두드릴 고(鼓)가 나을까, 패역한 이 세대의 표징이 나을까, 이 세대의 표징이 되라가 나을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성경에 있는 대로 '패역한 자의 표징이 되어'로 결정했습니다.

Ⅰ.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았습니다.

본문 17장 8절에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 안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라고 했습니다.
움(budded)에 대한 사전적인 해석은 초목의 어린 싹 혹은 나무를 베어 낸 그루의 뿌리에서 나는 새싹을 말합니다.
레위지파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은 것입니다. 움은 베임을 당한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표징으로 돋아나는 움입니다.
이것은 생명세계의 신호입니다. 움은 생명체의 희망이자 소망입니다. 죽은 나무에서 움이 돋는 것이야말로 죽었던 인간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예수생명을 호흡하는 사람들의 생명의 약동을 상징합니다.
패역한 자의 표징이 되어

Ⅱ. 아론의 지팡이에 순(筍)이 났습니다.

본문 17장 8절에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라고 했습니다.
순에 대한 사전적인 해석은 식물의 싹이라고 했습니다.
순은 식물의 씨앗이 썩어서 내놓는 생명의 표징입니다. 식물이 내는 순은 약하고 가냘프기까지 합니다. 순은 보잘것없이 작고 약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은 식물의 생명 자체입니다.
그 순은 식물의 소망이자 미래의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순입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欽慕)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순은 곧 생명 그 자체입니다.
패역한 자의 표징이 되어

Ⅲ. 아론의 지팡이에 꽃이 피었습니다.

본문 17장 8절에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라고 했습니다.
꽃은 움과 순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생겨나지 아니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꽃 화(花)가 아니고 될 화(化)를 씁니다. 이 말은 따뜻한 봄이 되어 온갖 식물이 나서 자란다는 말입니다.
꽃에 대한 사전적인 뜻은 현화(顯花)식물의 유성(有性)생식기관이라고 했습니다. 꽃은 그 식물의 상징인 동시에 가치입니다. 좋은 꽃은 나비와 벌을 불러 모읍니다. 꽃은 만인을 즐겁게 해 줍니다.
꽃은 감미로운 향기를 발합니다. 꽃은 뭇사람들의 무성한 감정의 소재로 포섭됩니다. 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입니다.

어떤 이는 최고의 사랑을 꽃으로, 어떤 이는 최고의 행복을 꽃으로, 어떤 이는 최고의 안식을 꽃으로, 어떤 이는 최고의 희생을 꽃으로, 어떤 이는 최고의 단장을 꽃으로, 어떤 이는 자식을 꽃으로, 어떤 이는 최고의 존경을 꽃으로, 어떤 이는 순박한 삶을 꽃으로, 어떤 이는 무고히 고난당하는 충신열사를 꽃으로, 어떤 이는 빼앗긴 조국산하를 꽃으로 비유했습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꽃은 숲 속에서 뛰어납니다. 색깔이 뛰어나고 향기로 매료시킵니다. 그 식물의 꽃이 그 식물의 진실입니다.
성경은 이 꽃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상징합니다. 그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였습니다.
아가서 2장 1절에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89장은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이 참사랑의 향기로 간데 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샤론의 꽃 예수 이 세상에서 어느 꽃과 비교할 수 있으랴
나의 삶에 한결같은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사론의 꽃 예수 모든 질병을 한이 없는 능력으로 고치사
고통하며 근심하는 자에게 크신 힘과 소망 내려 주소서
샤론의 꽃 예수 길이 피소서 주의 영광 이 땅위에 가득해
천하 만민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영광 돌릴 때까지"
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오신 꽃입니다. 그는 하늘의 비밀을 알려준 꽃입니다. 그는 온갖 기적을 베푸신 꽃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신 꽃입니다. 그는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한 송이의 꽃이었습니다.
패역한 자의 표징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열매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의 열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처음이요 나중인 열매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묻히고 썩음과 동시에 그 씨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씨는 다시 나는 열매가 그 씨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씨는 썩어서 없어졌으나 그 씨에서 나온 열매가 그 씨에 대한 모든 것을 공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약고구(良藥苦口)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입니다. 이 말의 요지는 "좋은 약은 입에 쓰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은 간(諫)하는 충신이 있었기 때문에 번영했고 하(夏)나라 걸(傑)과 은(殷)의 주(紂)는 뜻에 따르기만 하는 신하들만 있었기 때문에 멸망했다 임금의 잘못은 신하가, 아비의 잘못은 아들이, 형의 잘못은 동생이, 자신의 잘못은 친구가 간(諫)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들로부터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본질상 타락한 인간의 말은 충언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아니한 인간의 충언 자체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충언은 절대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신자를 통하여 충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말 못하는 나귀를 통하여 발람 선지자를 책망했습니다(민 22:21-30).
이때 나귀는 이지러진 길로 가는 발람선지자를 책망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의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기 고라 자손들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의 고유한 영역에 도전하므로 곧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민수기 16장 3절에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6장 10절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6장 11절에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총회에 도전하기 위해 자신들이 당을 지으므로 붕당(朋黨)행위를 했습니다.
민수기 16장 2절에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어두워졌습니다. 그 결과 육적 평등과 영적 평등을 등식화시키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성직의 권위까지 무시했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못했습니다.

민수기 16장 12-14절에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지도자에 대한 충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유익과 명예를 얻기 위하여 신권에 도전하는 범죄행위입니다.

우리를 도전하는 자들을 고라 자손과 같이 징벌을 내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 편에서의 표징이 없다고 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심령에 십자가의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충만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묻혀서 부활의 밀알로 많은 열매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종은 불가항력적으로 하나님이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종은 그 사역에 생명의 결실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6절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종들은 담대하게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사도행전 18장 9-10절에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3장 11절에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우리는 이 세대의 패역한 자들에게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타고 가는 갈보리호가 서울과 아시아와 세계를 향해 표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 앞을 가로막고 목자적 공권을 도전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의 세력들을 이미 결박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 교회에 움이 돋게 하시고 순이 나게 하시고 꽃이 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움을 주시고 순을 주시고 꽃을 주시고 열매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의 가슴에
예수의 움을, 예수의 순을, 예수의 꽃을
예수의 열매를 담아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를 통하여
예수의 움을, 예수의 순을, 예수의 꽃을
예수의 열매를 수태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전능하신 주시여
예수의 움으로 예수의 순으로 예수의 꽃으로
예수의 열매로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세대에 패역한 자들 앞에 표징이 되게 하소서!

지상 교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허물과 약점들이 없지 않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살려고 하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온갖 패역한 사상들과 불경건한 단체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이미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다수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과학지상주의와 곧잘 영합하는 이 세대는 목자적 공권에 대담하게도 기회만 있으면 도전을 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패역한 자들 앞에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100번 싸워 100번 다 이겨야 하지만 사탄은 한 번만 이기면 됩니다.
교회운동에 말할 수 없는 안팎의 장애들로 인하여 피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예측을 불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패역한 이 세대의 도전을 향하여 맞서 싸울 것인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있지 아니합니다.
그렇다면 밟히고 찢기고 내어 쫓겨서 목자적 공권과 거룩한 교회운동을 송두리째 빼앗겨도 좋은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세대에 패역한 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유형무형의 지팡이에 움이 돋게 하시고 우리의 어두운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의 지팡이에 순이 나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오고 오는 자자손손들의 지팡이에 꽃이 피게 하시고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생업의 지팡이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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