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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딤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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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딤후 4:1~5)

  출애굽기 4장의 기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시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출 4:1) 무슨 말입니까? 자기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고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전에 한때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디안 땅에서 도망자로 사십 년을 보낸 지금은 도무지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 4:2 상반절) 그가 대답했습니다. “지팡이니이다.”(출 4:2 하반절)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까짓 지팡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기껏해야 잠시 쉬기 위해서 피곤한 몸을 의지하는 용도 외에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그 지팡이를 손에 잡고 모세는 이적을 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바로 그 지팡이를 가지고 모세는 히브리 노예들을 구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놀라운 일이 가능합니다.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 4:17)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별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전에 한때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큰 꿈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 들면서 그 꿈도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돈이 있습니까? 아니면 남다른 재능이 있습니까? 반듯한 예배당 건물이 있습니까? 사람이라도 많이 모입니까? 어느 것 하나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믿음을 지키는 것도 벅차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때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주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과연 그렇습니까? 진짜 아무 것도 없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맡기신 일을 도무지 할 수 없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말씀에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말씀으로 오늘도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는 유대인인 어머니와 헬라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혼혈아는 천덕꾸러기 아닙니까? 특히 순수한 혈통을 중요시하는 유대인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혼혈아였지만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말씀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의 외조모와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던 디모데가 초대교회의 뛰어난 지도자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말씀이 그를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되게 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보다 공부를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시편 기자는 말씀의 유익함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던 것입니다.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시 119:54)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시 119:127)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고 합니다. 여기서 배우고 확신한 일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배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며 온전히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연 어려서부터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에 거했던 디모데가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았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에 거하는 삶의 구체적인 유익은 과연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들려 주고 있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그렇습니다! 말씀은 참 지혜를 줍니다. 이 지혜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입니다.

  또한 말씀은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7)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즉 힘을 준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말씀에 사로잡혀 살았던 인물 아닙니까? 그래서 그는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오늘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상반절) 왜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님이 친히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이 주님의 마지막 명령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명입니다.

  더욱이 때가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씀을 힘써 전파하되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고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은 먼저 범사에 오래 참아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다 보면 도저히 참기 어려운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죄인들에 대해서 무던히도 오래 참으신 하늘 아버지를 생각하며 끝까지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누군가가 죄를 범하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또한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은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해야 할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쓴소리를 하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을 가르침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죄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주하기 위해서 죄를 지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책망할 것은 책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죄를 책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은 경책이나 경계를 통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혀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권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권하는 것입니다. 넘어진 사람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는 것이요 상처난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바로 권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경책하고 경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권하고 감싸 주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제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고난은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고난이 오히려 전도자의 직무 수행의 분명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결코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다만 전도자의 직무를 다할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운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볼 때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하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었기 때문에 참 지혜와 능력을 갖추고 복음 전도자의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이 맡기신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어둠 속을 방황하는 많은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막중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 없는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씀을 붙잡을 것 같으면 주님이 주시는 참 지혜와 능력으로 그 사명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사도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마침내 주님 앞에 섰을 때 의로우신 재판장이 예배하신 의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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