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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교회가 소중한 이유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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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소중한 이유 (마 16:13-20)

오늘 우리는 이곳에 우리 교회가 세우진 지 11주년이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1996년 9월 9일에 이곳에서 조용목 목사님을 모시고 창립예배를 드렸는데, 벌써 11년이 지났습니다. 감사한 것은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11년 동안 한결같은 은혜를 내려주셔서 오늘에 이르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곳에 우리 교회를 세우신 데는 특별하신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의미한 것이 없으므로, 이곳에 우리 교회를 세우신 것도 그만한 까닭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선,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의 유익을 위해서 세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역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성도들은 저마다 소속된 교회가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만, 성도들은 저마다 속한 교회가 있는 법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목장과 같다고 할 때, 우리 성도님들이 영의 꼴을 먹고 쉴 수 있는 목장은 우리 교회이지 다른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교회에 우리 각 사람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서 이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되이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롭고 아름다운 신앙의 공동체로서 손색이 없는 교회가 되도록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봉사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을 들라면,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에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라는 점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므로 귀합니다. 공생애가 마쳐갈 즈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지역인 가이사랴 빌립보로 여행을 가셨습니다. 하루는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사람들에게서 들은 대로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남들이 하는 말을 전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을 것입니다. 그 때 수제자인 시몬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다른 제자들은 시몬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서로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의 표정도 살폈을 것입니다. 과연, 베드로가 정답을 말한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저는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시몬의 대답에 흡족해 하시는 기색이 주님의 표정에 역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답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도 시몬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에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신앙을 고백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무엇보다도 오늘 본문이 중요한 이유는, 교회에 대한 주님의 최초의 언급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구약시대를 포함해서 주님께서 교회를 언급하시기 전까지는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 속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지내던 때를 가리켜 ‘광야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것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몸소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비로소 이 땅에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방금 말씀한 대로 교회가 주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열흘 만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도들을 비롯한 120여 성도들 위에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심으로써 이 땅에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이렇게 진술합니다.

“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본문은 성령의 강림으로 이 땅에 교회가 태동되던 영광스러운 순간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올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알아 둘 점은,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단체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단체도 있고, 경제적인 목적을 위한 단체도 있고, 시민운동을 위한 단체도 아니고, 취미활동을 위한 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들 단체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단체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만드신 것입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신 대로, 주님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만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지상의 모든 교회를 주님께서 몸소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전도자들과 신자들은 주님의 일꾼으로서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데 동참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소속이 하늘에 있는 유일한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의 단체들은 이 땅에 속해 있지만 교회의 소속은 하늘에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교회가 이 땅에 있지만 교회는 이 땅에 속한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영적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서신에 보면,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라고 하였고, 각처에 흩어져 있던 교회들도 하나같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신 말씀은 교회의 주인이 신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설립자시고 주인이십니다. 목회자를 비롯해서 성도들은 주님의 교회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에 구성원이 되다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뿐 아니라, 성경은 우리의 신체에 비유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들은 몸의 지체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교회의 지체인 것입니다.


첫 번째로, 교회가 소중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공동체를 들라면 누구나 가정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가정처럼 소중한 것은 달리 없습니다. 가정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부모, 형제가 혈연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무슨 방법으로든 분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했더라도 부모 형제의 관계를 법적으로 떼어낼 수 없습니다. 사이가 좋아도 부모 형제요, 사이가 나빠도 부모 형제입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파괴되는 가정이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마는, 원래 가정은 파괴되어서는 안 되는 특별한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영적인 가정에 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고,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소개하셨습니다(마 5:).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

그리고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지내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요즘은 부모 자식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부득이 그럴 수밖에 없을지라도 가정의 본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님으로 모신 가운데 성도들이 사랑으로 교제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영적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교회의 일원이 되어서 한 가족처럼 생활해야 합니다. 내 집처럼 마음을 둘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번 주일은 이 교회, 다음 주일은 저 교회, 그렇게 나그네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마치 가정을 멀리 떠난 사람과 같아서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혈연공동체인 가정보다 더 소중한 영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혈연적인 가정은 영원하지 못하지만 교회는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모 형제는 이 땅에서만 지속되는 관계이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성도들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카나다의 사스카체완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고 합니다. 그 선교사는 인디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그 때 그 선교사의 말을 듣고 있던 늙은 추장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위대한 영에 대하여 말했을 때 그가 우리 아버지라고 하였소?”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가 아버지인 것을 압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까요”

그러자 추장이 말하기를 “그것 참 새롭고 달콤한 말이군요. 우리는 위대한 영이 아버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천둥소리에서 그의 음성을 듣고 번개와 폭풍우와 눈보라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려웠죠. 그런데 당신은 위대한 영을 우리 아버지라고 하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잠시 후 추장이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그 위대한 영을 당신의 아버지라고 했습니까?” “예, 그랬습니다.”

다시 추장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 인디안들의 아버지라고도 말하셨죠?” “예,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당신과 나는 형제이군요” 이 인디언 추장의 말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인종에 상관없이 다 형제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영적 가정인 교회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 사랑이 충만한 교회,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목회자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님들이 마음을 쓰고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교회에 대하여 불평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당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만일 교회가 은혜롭지 못하다면 그 책임이 불평하는 우리 자신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내가 형제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교회가 은혜롭지 못하다고 불평하기 전에 내가 교회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가, 얼마나 헌신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신자들의 책임으로 돌리기 전에 나 자신의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책임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에게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하여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주님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이 교회가 은혜가운데 사명을 감당하도록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두 번째로, 교회가 소중한 이유는 영생의 복음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감람산에 모이게 하셨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 여쭙기를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니 이제 메시야로서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실 때가 된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말씀을 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7-8)

주님의 이 명령은 제자들과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회에게 주신 명령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언제나 교회의 일원으로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도, 유다 여러 지역에도, 사마리아에도, 이방인들이 사는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에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복음 전파와 교회를 세우는 것이 동일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교회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무교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는, 그들은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같은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한 바와 같이, 교회는 사람들의 이해타산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오순절 성령 세례 받은 사도들이 맨 먼저 한 일은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만일 무교회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교회가 불필요한 것이었다면, 주님께서 교회를 이 땅에 세우셨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 점에서, 무교회주의자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역행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잠언 14장 4절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결점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때로 인간적인 갈등으로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 같은 갈등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가다듬고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 나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생활을 은혜롭게 하려면 교회의 존재 목적이 복음 전파에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성도 각 사람이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복음 전파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곧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11년 전에 우리 교회를 이곳에 세우신 것 역시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믿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보면,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집,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이 반석이란 베드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 뿐 아니라 열 두 사도 모두가 초대교회의 초석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방인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주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그 믿음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교회가 소중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머리와 몸에 비유합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로 23절에 “22)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존귀함을 일깨워 줍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가장 소중히 여깁니다.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끼마다 밥을 먹고, 몸을 단장하기 위해 옷을 입고, 몸이 병들면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몸에 좋은 것을 챙겨서 먹고,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바로 주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주님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에 보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곧 십자가에 달려 목숨을 희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다면 우리가 교회를 소중히 여겨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주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이유 역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함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지시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머리와 몸의 관계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머리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머리가 지시하는 대로 우리 몸의 각 지체가 움직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이는 몸의 지체들인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이신 주님의 명령이 몸의 각 마디를 통해서 말단 지체까지 내려옵니다. 그러면 지체들은 그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제 몸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성도 각자가 자기의 영적 건강을 지켜나가야 하고 또한 믿음의 형제들이 서로를 보살피고 격려해야 합니다. 각 지체가 건강해야 온 몸이 건강하지, 만약에 어느 지체라도 병들면 온 몸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신발 속에 가려진 새끼발가락 하나가 아프면 온 몸이 함께 아파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가 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중한 직분을 맡은 성도 뿐 아니라, 가장 어린 성도가 시험에 들어 고통한다면 온 교회, 온 성도가 함께 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성경이 머리와 몸과 지체의 관계로 주님과 교회와 성도들의 관계를 설명한 이유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이처럼 귀하게 여겨주신 주님께 감사합시다. 그와 더불어 교회의 소중함을 올바로 알아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가 소중한 이유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교회가 소중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교회가 소중한 이유는 영생의 복음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교회가 소중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소중한 이유는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에 비유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그만큼 친밀한 사랑의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상의 빛과 소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 세상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교회를 가리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1:9)라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영광스러운 신분과 특권을 말합니다.

교회가 이처럼 영광스럽고 존귀한 신분을 갖게 된 것은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그 분의 교회이기 때문에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 교회를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하고 흠 없는 교회로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 당시에 소아시아에 있었던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는 사도 요한 당시에 로마 세계에 있었던 모든 교회와 더 나아가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합니다. 그런데 이 일곱 교회 가운데는 주님의 칭찬을 받은 교회도 있지만 책망을 들은 교회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책망과 칭찬을 겸하여 받은 교회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떠한 주님의 평가를 받을까 궁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배당 건물이 크건 작건, 교인수가 많건 적건,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교회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소중함을 바로 알고, 우리 교회가 은혜와 사랑과 진리가 충만한 믿음의 공동체로서 손색없는 교회가 되도록 사랑으로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해를 더해 감에 따라 주님의 인정을 받고 칭찬 듣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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