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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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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1-22)

다음 주일은 우리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해마다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이기에 별 의미 없이 지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깨닫고 보면,
추수감사절은 그렇게 연례적인 행사로만 지낼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축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 감사할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나병환자가 고침 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10명의 나병 환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멀리 서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외칩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 말씀을 믿고 가다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나병이 고침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그 동안 이 병 때문에, 그들이 받았던 설움이 얼마나 많았으며,
고통이 또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객관적으로 보면, 감사할 일이 많이 있는데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감사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어요.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에 바로 교회 앞에 살던 김순봉 집사라는 분이 있었어요.
그분은 땅 한 평이 없어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입니다.
늘 가난하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천식이 얼마나 심한지, 늘 숨이 차서 헐떡거립니다.
그러다가 끝내 병원에 가서 산소호흡기를 끼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일 년에도 몇 번씩 병원신세를 져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분의 입에는 언제나 감사가 떠나지 않습니다.
이웃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나 같으면 저렇게 못 살 것 같은데, 저분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떤 말이 나오고 있습니까?
감사와 찬송의 소리가 나옵니까? 아니면 불평과 원망, 혹은 근심과 걱정입니까? 

본문 1-5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기서 송축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찬송하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고, 축하하다, 칭찬하다는 말도 될 수 있어요
영어 성경에는 Praise the Lord 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정말 잘하셨습니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주님을 높여 드립니다. 

특히 2절에서 그의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는 잊어버리고, 섭섭한 것은 너무나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늘 마음에 감사를 간직합니다.
하지만 미성숙한 사람은 늘 섭섭한 것만 간직합니다. 마음이 꼬부라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8절-13절)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하나님이 얼마나 인자하시고 자비하신 분이신지를 다윗은 깨닫고 있습니다.
자신은 너무나 부족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죄대로 갚지 않으시고 용서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그러기에 하나님은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은혜와 자비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송축한다면
그 자체가 놀라운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은혜를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입니다.
지금 당장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그때는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이며,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세상은 우리를 부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 두고 보자” 하면서 오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부자집에 입양이 된 아이는 아직
자기가 얻게 된 신분의 변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되면, 그것을 실감하게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세상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세상이 우리를 부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송축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시며,
온갖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해 주시며,
우리의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사실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물질도, 재능도, 은사도, 열정도, 모두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송축해야 할까요?
우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처럼 이렇게 시로,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우리 입술의 찬송으로, 몸으로 드리는 헌신으로, 물질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어느 시골교회의 장로님 한분은 예배 시간마다,
은혜되는 말씀을 들으면 감사의 표현을 이렇게 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그런데 이 소리를 혼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 중에 모든 교인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하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목사님이 “장로님, 아무리 은혜가 돼도 조용히 감사할 수 없을까요?
제가 설교하는데 신경이 쓰이거든요.
이번 주일 예배 때 조용히 하시면 제가 장화를 사 드릴게요.”
그 당시는 장화가 귀할 만큼 어려운 때이므로 큰 선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저도 모르게 너무 감사해서 자꾸 그러거든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번 주일에는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제 주일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데 장로님이 가만히 계시는 거예요.
아하 약효가 있구나! 생각한 목사님이 장로님께 대한 신경을 끄고
소신껏 말씀을 전했어요. 그러니 말씀이 더 은혜가 되는 거예요.

참다 못한 장로님의 소리가 드디어 터졌어요.
“장화가 문제냐!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표현이 지나친 것도 문제이지만, 표현할 줄 모르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입술의 찬송으로 표현하시고, 몸으로 헌신함을 통해 감사를 표현해 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정성을 담아서 진실한 감사를 표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연례적이고 습관적인 감사가 아니라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 말입니다.

1969년 월남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하들과 함께 크레모아 장치를 하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다리 하나는 잘렸고, 한쪽 눈은 실명되었으며,
양손은 엄지손가락 하나씩만 남은 채 불구가 된 ROTC장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몇 차레나 자살을 시도했었지만
당시 그 부대 군목으로 있던 김 우영목사님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새로운 소망을 얻고 병실을 돌며 전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내손을 보시오. 눈과 다리를 보시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두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하던 천국을, 한눈을 가지고 보게 되었고,
두 다리를 가지고도 갈 수 없었던 천국을, 한 다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를 보고 예수를 믿으시오.....

날마다 전도를 하다가 대구 1육군병원으로 후송되기 전날
목사님이 병실에 들어갔더니 끊어진 엄지손가락으로 환자복 주머니에서
감사헌금 봉투를 꺼내 주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눈이 멀고 다리가 끊어지고 손가락이 끊어진 후에 처음 쓴 글잡니다.
제가 어깨로 썼는지 손으로 썼는지 모릅니다.
이 ‘감사’라는 두 글자를 쓰는데 20분이 걸렸는지 30분이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봉투에 쓰여진 감사라는 두 글자를 보니
유치원 어린이도 그 보다는 잘 쓸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감사, 그것은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는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가능한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를 드리시는 감사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 결과 우리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절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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