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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의 혁명을 주도하십시오 (엡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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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혁명을 주도하십시오 (엡 1:3-10)

< 혁명적인 감사를 하십시오 >

현대인들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좋은 문명의 이기들을 통해 많이 누리며 살고 있지만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만족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이라는 역설적 얘기도 있습니다. 대형 마트에 가면 얼마나 살 물건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라면 종류만 수십 개입니다. 너무 선택할 것이 많고, 너무 누릴 것도 많지만 동시에 너무 우울한 사람도 많고, 불행을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 그런 문제가 생깁니까? 하나님을 모르고, 삶의 의미와 영생을 모르고, 현재 눈에 보이는 것만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도 없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도 없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천국처럼 되고, 일은 잘 풀리고, 만족하기를 원하니까 그럴수록 마음은 더 비참하고 우울하게 됩니다.

지금도 TV 광고들은 돈이 행복을 주는 것처럼 유혹합니다. 그 광고를 보면 브랜드 있는 아파트가 행복을 줄 것 같고, 좋은 외제 차와 명품이 행복을 줄 것 같고, 다이어트가 행복을 줄 것 같습니다. 또한 부동산 전문가들의 말을 들으면 다 부자가 될 것 같고, 좋은 학력과 경력이 행복을 줄 것 같습니다. 그처럼 잘못된 환상에 빠져 있으니까 불행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오히려 행복으로 나가는 출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진짜 행복과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잘못된 환상을 버리면 진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잘못된 길을 버리면 진짜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개봉한 “선을 따라 걸으라(Walk the Line, 바른 길을 걸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는 가수 자니 캐쉬(Johnny Cash)의 삶을 그린 영화로 한국에서는 ‘앙코르’란 이름으로 개봉되었습니다. 그 영화 초반부에서 12살의 자니는 형 잭(Jack)에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성경 얘기들을 기억하는지 묻습니다. 그때 장래에 목회자가 되길 원했던 형 잭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사람들에게 바른 얘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돕지 못해.”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지금 세상 문화와 TV 광고는 바른 얘기를 하지 않고 거짓된 희망을 심고, 결국 인격 장애를 초래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는 원리들을 가르쳐주는데, 그 중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감사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면 우리는 무엇보다 감사해야 합니다. 욥은 엄청난 시련을 당하고 하나님을 저주하라는 말을 들어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윗도 극심한 시련 중에 감사의 시편을 많이 썼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파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 본문에서 감사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 혁명적인 감사(radical gratitude)가 필요합니다.

< 혁명적 감사를 위해 필요한 것 >

우리는 감사할 것이 있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감사할 것이 없을 때도 감사하는 혁명적인 감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혁명적인 감사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이 시간에는 우리가 혁명적인 감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 3가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이 선하심을 믿으십시오(Believe that God is good.)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구구절절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본문 3-5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셨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아들로 삼아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감사의 출발지점은 ‘하나님은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않으면 삶은 혼돈에 빠지게 되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악이 통제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면 우리의 삶은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생각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우리 안에 능력과 기쁨, 그리고 감사와 소망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가끔 보면 하나님과 교회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우리는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창조주가 없다고 믿는 것은 마치 삶의 목적도 없다는 것이고, 삶의 목적이 없다는 것은 결국 삶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처럼 목적도 결핍되고 좋은 것도 결핍된 삶이 사람을 얼마나 우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캐나다 출신의 작가 더글러스 커플랜드(Douglas Coupland)가 쓴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 친구(Girlfriend in a Coma)’란 소설이 있습니다. 그 소설의 여주인공 케렌 멕네일(Karen McNeil)은 1979년 이래로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기적적으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그녀에게 90년대 말에 사는 사람들의 인상에 대해 묻자 케렌은 가장 큰 문제를 ‘결핍(lack)’이라고 꼽았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녀가 혼수상태에 빠진 20년 전보다 더 풍요롭게 되었지만 그녀는 사람들에게 확신, 믿음, 지혜와 같은 것이 결핍되어 있고, 심지어는 슬픔이나 고난과 같이 인생에 필요한 것들도 결핍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사람의 영혼에 물질적인 것을 아무리 채워 넣어도 그 영혼은 채워지지 않고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을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 세상을 사랑해서 그 세상에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비록 사단에 의해서 세상은 어둡게 되고, 사람은 멸망으로 빠지게 되었지만 그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그 일을 이루시려고 직접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역사는 그 선하신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 잘 통제되어 최종 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우리의 삶도 최종 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와 고통도 하나님의 선한 목적으로 잠시 주어진 것입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던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여사의 고백입니다. 어느 날, 그녀는 수용소에서 자기 눈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동생 베치(Betsie)를 보고 너무 낙심해서 말했습니다. “베치!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해.” 그때 동생이 말했습니다. “아냐 언니!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셨어. 하늘이 땅보다 큰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크실 거야.”

그렇게 말하며 죽어가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가끔 교회 야유회 때 비가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대로 좋은 날씨를 주시면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좋은 날씨를 주실 때도 선하셨지만 수용소에서 저의 동생 벳치(Betsie)를 굶어죽게 하셨을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나친 표현이 아닙니다. 컴퓨터 화면에 그림 한 장 띄우려고 해도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암호 정보가 필요한데, 세상의 곳곳에 미친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다 우리가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랑은 곳곳에 넘쳐 있고, 결국 그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도 이겨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2. 삶이 선함을 믿으십시오 (Believe that life is good).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심령을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예정하실 때 그분의 기쁘신 뜻을 따라 예정하셨습니다. 그 말은 결국 삶은 비극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봅니다. 물론 세상과 삶에는 나쁜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 자체는 선한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절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즐겁고 기쁘게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세상도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좋게 창조하셨고, 사람을 즐겁게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워싱턴 DC에는 홀로코스트 박물관(Holocaust Museum)이 있습니다. 그 박물관에는 유대 회당에서 가져온 큰 나무 제단이 있는데, 그 제단에는 그 제단을 파괴하려고 나치가 도끼로 내려친 흔적과 함께 이런 히브리어 문구가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 앞에 서 있는지 알라(Know before Whom you stand).”

요새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누구 앞에 서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의 가치와 목적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세상과 삶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게 되고 삶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삶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삶은 비극이 아닙니다. 삶에 아무리 큰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도 삶 자체는 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련이 있고 사단이 공격해도 삶을 비관적으로 보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새 잘 알려진 리더십 강사 중의 하나인 어윈 맥매너스(Erwin McManus)의 얘기입니다. 어느 날, 그의 아들 아론(Aaron, 에이런)이 교회 어린이 여름 캠프에 갔습니다. 교회 캠프에서는 유령 놀이나 유령 얘기를 안 하니까 그는 안심하고 아이를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어린이 캠프에서 아이들이 재미있으라고 대개 유령 놀이를 하는데 그렇게 유령놀이를 하고 돌아오면 아들이 꼭 악몽을 꿨기 때문입니다.

역시 기대대로 교회 캠프에서는 유령 놀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령놀이 대신에 선생님으로부터 사단 마귀 얘기를 듣고 왔습니다. 사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에게는 사단 마귀 얘기는 되도록 하지 말고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영계의 비밀을 알려준다고 사단 얘기를 해서 오히려 듣는 영혼이 사단의 포로가 되고 두려움의 영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마귀 얘기를 듣고 난 후부터 아들은 공포에 젖어 있었습니다. 불을 끄면 질겁했습니다. 침대에 가기 전에는 항상 말했습니다. “아빠!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마귀가 무서워요. 선생님들이 마귀가 많데요.”

어느 날, 아론이 침실에서 또 공포에 젖어 말했습니다. “아빠! 제가 편안하게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그런데 그날따라 침실에 하나님의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것 같고,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안전하게 붙잡아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론! 아빠는 네가 편안하게 되도록 기도하지 않고 너를 무섭게 만들어달라고 기도할게. 그처럼 네가 무섭게 되면 마귀가 방에 들어올 때 무서운 네 모습을 보고 금방 도망칠 거야.”

그 말을 듣고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 정말 제가 아주, 아주 무섭게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우리는 삶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도 두려워하지 말고, 사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우리의 삶에 직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좋게 창조하셨고, 우리의 삶을 좋게 창조하셨다고 믿으면 우리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사단이 무서워서 도망을 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삶을 선하게 보십시오. 감사는 흩어진 우리 삶을 아름답게 정리해줍니다. 삶이 힘겨워도 머리를 숙이고 감사의 렌즈로 지난날을 돌아보면 삶 자체가 은혜임을 깨닫게 되고, 조용히 우리 곁에 계시며 선한 길을 만들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처럼 감사의 렌즈로 삶을 바라보면 삶이 기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감사의 렌즈로 세상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감동이고,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것도 감동입니다. 길 가다가 들꽃 하나 핀 것만 봐도 전율하는 감동을 느낍니다. 또한 삶 자체에서 감사를 느끼면 봄이 와도 감동이고, 여름이 와도 감동이고, 가을이 와도 감동이고, 겨울이 와도 감동입니다. 하나님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다른 계절 언어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런 철의 변화 속에서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끼면 진짜 철든 인생이 됩니다.

우리의 삶은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사랑의 손길로 통제하고 가장 멋있는 길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비틀거리게 하는 현실에 처해 있어도 삶이 선하다는 확신은 결코 잃지 말아야 합니다.


3. 결말이 선함을 믿으십시오(Believe that the result is good).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통일시키는 하나님이시고,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앞날을 지금도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지금 아무리 비틀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언젠가는 바른 모습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사실 성도의 시련도 더 나은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가끔 병에 걸리는 것도 안식의 중요성과 예배 회복의 중요성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강제로 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병이 더 큰 병을 막고, 더 큰 불행과 지옥으로 가는 길을 막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쉴 줄 모르면 강제로 쉴 날이 오게 되고, 안식을 지키지 않으면 강제로 안식하게 될 날이 오게 됩니다. 그처럼 강제로 쉬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강제로 쉬면 인생이 후퇴하는 것 같지만 그때가 영혼의 건강이 회복되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결국 인생의 고난은 최종적으로 우리를 멋지게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날씨가 언제나 맑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비도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가 와도 감사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감사하는 혁명적인 전천후 감사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고난은 사라지고 좋은 날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 재정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처음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 동안 사랑의 씨를 뿌렸던 사랑칼럼 독자들이 이번 문제 해결에 많은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한 분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상당한 부분을 감당했고, 어떤 분은 “사랑칼럼으로 저에게 주신 감동을 보답할 길이 없었는데 보답할 기회가 생겼다”고 헌신하셨고, 어떤 자매님은 “양털을 깎아 보냅니다. 그런데 경기가 좋지 않아 양털이 질이 별로 좋지 않아요!”라고 하면서 정성스런 헌금을 보내왔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숨어 있던 감사의 마음들이 발굴된 것입니다.

사람의 진짜 인격과 성품과 가치관과 믿음은 대개 어려운 때 그 진가가 나타납니다. 세상이 어두우면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원망하지만 믿는 사람은 “내가 빛을 발할 때가 이때다.”라고 일어섭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다 어려운 때 일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힘들 때 더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더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요새 사람들마다 상처도 많고 사소한 일로 시험 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과 축구하다가 목사님이 자기 발을 밟고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른 교회에 등록하면서 그 교회 목사님에게 대뜸 이런 질문부터 했습니다. “목사님은 축구 잘해요?” 목사님이 잘 못한다고 하니까 그때 그분이 “정말 다행이네요!”하고 그 교회에 등록했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실망을 잘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복의 날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을 통제하시고, 미래의 가장 적합한 때에 기쁜 날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신실하다면 더더욱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고, 미래에 반드시 신실한 성도에게 기쁨과 승리와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아모스 5장 2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지금 세상은 혼돈 중에 흘러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분명한 목적 중에 제 코스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모든 것을 가장 질서 있고, 정의롭고, 조화로운 상태로 만드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세상은 심판과 징벌과 파괴로 끝나지 않고, 승리와 축복과 재창조로 끝납니다. 우리의 삶에도 반드시 그런 선한 결말이 있을 것입니다.

<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

물론 최종 승리로 가는 과정에는 실패도 있고 시련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시련이 있어도 우리가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없습니다. 아무리 큰 실패를 해도 겨우 한두 번 실패한 것입니다. 사실 감사를 렌즈를 끼고 깊이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승리한 삶이 훨씬 많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당한 실패는 다 남도 겪었고, 겪고 있는 실패들입니다.

어떤 청년은 실연을 당해 자기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어른들은 “별일 아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저렇게 내 마음도 몰라주나!”라고 섭섭하게 생각했지만 점차 인생 경험을 쌓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때는 무서운 실연을 당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시련을 딛고 잘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실패가 인생 전체의 실패는 아닙니다. 실패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선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해도 그 결말은 항상 한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를 체질화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마리아 라이케(Maria Reiche)가 쓴 사막의 신비(Mystery on the Desert)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페루 평원에 있는 고대 나지아(Nazea) 족속에 의해 기원전 약 200년 전쯤에 만들어진 이상한 일련의 선에 관한 묘사가 나옵니다. 그 선은 약 60킬로미터 이상 지역에 걸쳐져 있어서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선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대략 관개수로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러다가 1939년 롱아일랜드 대학의 폴 코속 박사(Dr. Paul Kosok of Long Island University)가 비행기를 타고 그 지역을 연구하다 그 선이 이상한 심벌과 70개의 동식물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은 거미, 새, 원숭이, 그리고 300미터나 되는 펠리칸 둥의 그림이었고, 어떤 심벌은 15킬로미터에 걸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처럼 공중의 높은 곳에서 보자 비로소 마구 그려진 그 선들이 거대한 예술작품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시각으로만 어떤 사건과 사물을 보니까 그 사물과 사건의 의미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거기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일도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난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다 질서와 설계가 있고, 모든 사건과 사물은 다 하나님의 예술작품입니다.

그 엄청난 예술작품을 현재의 우리 눈으로는 다 볼 수 없지만 언젠가 우리가 이 땅을 떠나 천국에 가면 그 하나님의 작품의 신비가 우리에게 명쾌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의 삶에 흑암과 골짜기와 같았던 순간도 하나님의 설계였음을 알고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커지면 천국에서 할 감탄을 이 땅에서 미리 당겨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그런 감사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람도 슬픈 얘기는 싫어하지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에게 슬픈 얘기를 계속 하면 겉으로는 공감하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그 사람 곁에 가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힘들었지만 승리한 얘기를 하면 같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슬픈 표정도 하지도 말고, 슬픈 얘기도 하지도 말고, 슬픈 생각도 하지 말고, 이미 승리한 존재로서 범사에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이제 살아갈 때 더 이상 불행을 세며 살지 말고, 감사거리를 세며 사십시오. 한번 노트와 펜을 준비해서 감사할 것을 기록해보십시오. 그러면 정말 감사할 것이 많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분의 선한 손길이 우리를 지켜주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은 선하시고, 삶도 선하고, 또한 성도의 결말도 선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감사의 혁명을 주도하며 사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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