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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일을 경영한 사도 바울 (행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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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일을 경영한 사도 바울 (행 19:21)

저는 최근에 새벽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명에 붙잡혀서 달려가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감동과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행19:21 말씀을 읽으면서 깊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은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저는 여기 ‘경영’이란 말을 새롭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 안에는 ‘경영’이란 말이 많이 유행하고 있고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강대학교에는 ‘경영대학원’이 있고 대학과 기업들에서는 ‘최고경영자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자’를 CEO 즉 chief executive officer라고 하는데 기업의 최고 책임자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CEO는 대개 회장이나 사장이 맡고 있는데 기업의 방침과 계획을 결정하는 등의 책임을 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기업이나 사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경영하여 기업과 사업을 성공시키는데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업가나 사업가뿐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개인의 삶이나 자기 가정의 삶이나 자기 자녀들의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경영하여 성공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자기 가정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자기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서 어릴 때부터 유학을 보내는 등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성공을 기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도 자기의 삶을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그런데 사도 바울의 삶의 경영은 우리들의 것과는 달랐습니다. 자기의 건강을 위한 경영도 아니었고, 가정의 행복을 위한 경영도 아니었고, 자녀들의 성공을 위한 경영도 아니었고, 자기의 기업이나 사업을 위한 경영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의 경영이 무엇을 위한 경영이었으며 어떤 방식의 경영이었는지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도 바울의 경영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경영이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주님께로부터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9:15). 사울은 주님께로부터 사명을 부여 받은 후부터는 자기의 삶을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경영을 했습니다. 사도행전20장 24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또는 직접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서 그가 이루어야 할 사명을 다짐하시곤 했습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결국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경영하며 계속해서 달려갔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의 경영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경영이었습니다.

우리 나라 성경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라고 번역했지만 영어 성경은 대부분 “바울이 성령 안에서 또는 성령에 사로잡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라고 번역했습니다. 킹 제임스 역본은 Paul purposed in the Spirit (KJV) 이라고 번역했고 개역본은 Paul resolved in the Spirit (RSV) 이라고 번역했고 리빙 바이블 역본은 Paul felt impelled by the Holy Spirit (The Living Bible)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영은 주님의 일을 이루기 위한 경영이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경영이었고 성령에 사로잡힌 경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교회를 떠나 제1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도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서 갔고 제2차 선교여행을 진행할 때도 성령에 이끌려서 갔고 제3차 선교여행을 진행할 때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진행했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행13:4).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기늘”(행16:6). “바울의 몸에서 손 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행19:12).

셋째 사도 바울의 경영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경영이었습니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사도 바울의 경영은 철두철미 주님의 선교명령에 따라서 땅끝으로 달려가는 경영이었습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은 이방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 당시 악의 중심부인 로마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사도들과 자기에게 분부하신 분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13:46). 사도 바울은 제3차 선교여행 중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쓰면서 자기의 소원과 경영을 다름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0,13-15). 사도 바울의 경영은 지금으로 말하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와 북한을 향해서 달려가는 야만이나 어리석은 자들에게로 달려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경영이었습니다.

넷째 사도 바울의 경영은 곳곳에 흩어져 성도들을 돌아보는 경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영은 목적만을 위한 경영이 아니고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달려가는 선교여행의 길목마다 며칠씩 일주일씩 또는 몇 달씩 머물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돌아보고 저들을 격려하며 저들을 위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행20:1-3).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20:6,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행20:17,18).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행20:36-38).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쌔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행21:1,3-8).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행21:17-2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28:30,31). 이렇게 볼 때 사도 바울의 경영은 사역만을 위한 경영이 아니었고 사람들을 돌아보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랑한 사람 중심의 경이었습니다.

다섯째 사도 바울의 경영은 고난과 수고와 핍박과 죽음의 위험을 개의치 않는 모험적인 경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영은 안일이나 안주나 노후대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경영이었습니다. 은퇴 후에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를 마련하고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편안하게 살려는 생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영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과는 정 반대의 경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전에는 안주나 안일과 평안과 같은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과 경영의 사전에 등장한 단어들은 고난과 환란과 수고와 핍박과 결박과 죽음이란 단어들이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21:13). 고린도후서에는 사도 바울이 몸에 지녔던 고난과 수고와 핍박의 흔적들을 묘사하는 단어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고행주의자나 자학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고난과 수고와 핍박을 통해서 주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기뻐한 십자가의 사람이었고 승리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7-10).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결국 사도 바울의 경영은 자기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남기는 십자가 짊어짐의 경영이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갈6:17).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주님의 일을 경영한 사도 바울의 경영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삶을 경영합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도 경영하고, 자기 가정의 행복을 위한 삶도 경영하고, 자기 자녀 손들의 성공을 위한 삶도 경영하고, 자기 사업의 성공을 위한 삶도 경영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누구를 위한 삶을 경영하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남은 생애가 조금이라도 주님의 일을 위한 경영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경영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경영이 되기를 바랍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경영이 되기를 바랍니다. 곳곳에 흩어져 성도들을 돌아보는 경영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난과 수고와 핍박과 죽음의 위험을 개의치 않는 모험적인 경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의 경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리는 멋진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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