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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성도가 되자 (눅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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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 건강한 성도가 되자.
+ 설교본문 : 누가복음 2장 52절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생활입니다. 롬 8:29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신자가 거듭날 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믿는 자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유전인자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부모의 유전인자가 자녀 속에 주어졌으므로 자녀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간에 부모를 닮아가게 되어 있는 것처럼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자라면서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를 닮은 부분은 거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버지를 닮은 부분을 하나씩 발견하고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아버지의 유전인자가 제 속에 분명히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야 하는데 예수님의 어떤 부분을 닮아야 할까요? 사실 모든 부분에서 예수님을 닮을 수만 있다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가능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능력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면 가능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사역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닮으려면 성령을 통하여 비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또 다른 각도에서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4가지 측면을 보여줍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건강한 성도가 되자]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건강한 분이셨는데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건강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주님을 닮아 건강한 신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건강한 신자가 되어야 할까요?

1. 정신적으로 건강한 신자가 되자.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지혜가 자라가셨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정신적인 면에서 건강하셨던 것입니다.
인격의 3요소는 지, 정, 의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균형 있게 발달해야 인격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저는 정신적인 건강을 위하여 복음적인 측면에서 세 가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라.
복음 안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김기현 목사님이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생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할 때 S대학교 법학과 출신에게 자신의 장점에 대해 물었더니 그 고시생이 정색을 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장점 없어요"라고 하더랍니다. 그 옆에 있던 Y대학교 대학원을 나온 고시생에게 물었더니 "한 가지 있어요”라고 하더랍니다. 몇 사람에게 질문을 했는데 비슷한 대답만 나오더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S대학 교수들이 가장 열등의식이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실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을 모르고 있다는 말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진 것과 상관없이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은 인간적인 장점이 부족해도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럽게 보고 계십니다(사 43:4). 성경은 믿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무나 존귀한 자들이다”라고 말씀해 주는 책입니다. 도스트예프스키는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습대로 본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면 자신은 정말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나 자신이 사랑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요 3:16에서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하신 가장 첫 번째 이유가 ‘나를 사랑하셔서’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해 보십시오. 죄 없으신 그분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극한 고난도 참아내시고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가치 없는 존재라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우리를 가치 있게 보셨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전입니다. 고전 3:16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전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행복합니다. 그래야 정신적으로 건강합니다.

  2) 상처에 매이지 말고 상처를 신앙적으로 보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상처를 받았으나 상처를 잘 처리하고 상처에 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에 대한 방응입니다.

요셉은 엄청난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고 계모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이복형제들 밑에서 미움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웅덩이에 버렸다가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팔아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가 된 후에 열심히 일했지만 주인아주머니의 욕정을 채워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엄청난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상처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주님 안에서 상처를 극복했습니다.

상처에 매이지 않으려면 상처를 보는 시각이 좋아야 합니다. 광야를 고난의 길이라고 보면 광야생활은 고달픈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광야도 즐거운 것이며, 광야도 감사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을 고통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드렸습니다. 요셉이 상처를 믿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오히려 상처가 요셉을 영광스럽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과거에 상처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내기를 좋아합니다. 자꾸만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상처 받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떨어뜨립니다. 자존감이 떨어지면 그 때부터 경건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단이 생각나게 한 과거의 상처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 때의 아픔을 곱씹습니다. 과거의 일을 지금의 일처럼 여기고 아파합니다. 결국 과거의 상처에 현재의 내가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아프면 주님에게 가지고 나가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치료를 구하세요. 주님의 치료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세요. 이전 일을 생각지도 말고 기억지도 마세요.

  3) 비전에 사로잡히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비전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방황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방황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방황합니까? 비전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이 방황하는 것입니다.
목표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흔들리는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왜 인생이 흔들립니까? 왜 가정생활이 흔들립니까? 비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육체적으로 건강한 신자가 되자.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키가 자라가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주님은 육체적으로도 정상적으로 성장하셨다는 말이며 주님은 육체적으로도 건강한 분이셨다는 의미입니다.
설교에 건강을 다루는 것은 주요한 주제는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좀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건강을 위하여 포도주를 먹을 것을 권면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 중에 건강만큼 큰 관심사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찌 보면 목사보다 여러분들이 건강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1) 복음의 능력으로 건강 하라.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이유는 우리의 치료를 위해서입니다. 벧전 2:24에 보면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셨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신 이유를 마 8:17에서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에게로, 주님의 강건함을 우리에게로 돌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질병도 주님에게로 옮기셨고 주님의 건강은 우리에게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는 병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할 것입니다.

  2) 좋은 것은 먹고 해가 되는 것은 먹지 말라.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치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좋은 것은 먹고 해가 되는 것은 먹지 않는 것이 건강에 있어서는 중요한 것입니다. 몸에 좋은 것은 자연에 가까운 것이고, 몸에 좋지 않은 것은 가공된 것입니다. 특히 흰쌀, 흰설탕, 흰소금, 흰밀가루 등이 좋지 않지만 현대인들은 이런 것들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3) 적당한 운동을 하라.
운동을 하려면 규칙적인 생활이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은 1주일에 몇 차례씩 청량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기 운동이 쉽지 않습니다. 간단한 방법 하나 가르쳐 드리지요. 박수를 많이 치는 것도 건강의 비결입니다. 하루에 30초씩 세 번만 박수를 쳐도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사람의 손바닥에는 8,400개의 혈이 있어서 30동안에 130번 정도 박수를 치면 10분 달리기를 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3. 영적으로 건강한 신자가 되자.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사랑 받았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건강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배생활과 봉사에 균형을 유지하라.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성경의 역사는 예배의 역사입니다. 성경에 나온 사람들은 예배의 사람들입니다.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은 예배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죽은 예배는 병든 신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배가 살아있는 사람만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예배는 영적인 충전을 받는 시간입니다. 자동차가 주유소를 들리지 않는다면 오래 달릴 수 없습니다.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주유소에 들려서 기름을 채워야 하듯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영적인 충전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고속도로를 힘차게 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마땅히 할일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서 영적인 충전을 받은 후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달란트 그리고 힘과 지식으로 섬기는 자리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기름을 넣는 이유는 달리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주와 및 복음을 위하여 교회와 가정과 세상에서 봉사의 자리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2) 기도와 말씀을 게을리 하지 말라.
딤전 4:5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짐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함은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육체가 건강해 지기 위해서는 호흡과 식습관이 중요한 것처럼 영적인 건강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것은 영적인 음식을 먹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은 영적인 호흡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하루 세끼니 밥을 먹는 것처럼 규칙적인 경건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3) 신속한 회개 생활로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라.
육체의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해가 되는 음식을 자주 먹는다면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배를 잘 드리고,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에 전념해도 영혼에 해가 되는 죄를 품고 있다면 영적으로 건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누구든지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죄를 얼마나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느냐가 영적인 건강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으시고 신속히 자백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잘 못을 고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즉시 사해 주시는 분입니다. 요일 1:9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시 32:5에서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고백합니다.


4. 사회적으로 건강한 신자가 되자.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빛인데 세상에서는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해서 기독교가 욕을 먹는 것입니다. 우리 교우들은 영적으로 건강하듯이 사회적으로도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1) 책임감 있는 생활을 하라.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 더욱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에서 내게 주어진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니엘은 국사에 틈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적들이 흠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2) 늘 웃고 인사를 잘하라.
세계 5대 기업을 조사를 해봤더니 분위기가 성공의 65%를 좌우했고 시스템은 35%를 좌우했다고 합니다. 연구결과 시스템보다 분이기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도 분위기를 위해서 웃음과 인사에 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불란서제 화장품이 좋다고 했는데 요즘은 국산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화장품은 미소표 화장품입니다. 웃으면 자신도 행복해 지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미소는 자신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모나리자의 초상화가 가치가 있는 것은 그녀의 미소 때문입니다. 모나리자가 인상을 쓰고 있다든지 심각한 표정이었다면 그렇게 유명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첫인상이 경쟁력입니다. 면접을 봐도 몇 초 안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첫인상이 주는 이미지가 당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첫인상을 좋게 하는 방법 중에 가장 쉬우면서 좋은 방법은 역시 미소입니다. 입고리가 올라가야 인상이 좋습니다. 그런데 동양 3국 즉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은 입고리가 약 6도 정도 쳐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노력하지 않으면 웃는 인상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분이 우수개 소리로 입고리가 올라가야 하늘에서 내리는 복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입고리가 쳐진 사람이나 일직선인 사람은 위에서 복이 내려와도 받을 수 없고, 입고리가 올라간 사람만 받는다고 농담반 진담반합니다.

사람이 하루에 15초씩 큰 소리로 웃으면 현대인의 가장 문제가 되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답니다. 면역력이 강해집니다. 사실 현대병의 70% 이상이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입니다. 암에 걸리는 사람들을 보면 스트레스 많이 받고 웃을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웃으면 몸에서 NK(nature killer) 세포가 많이 발생해서 암세포를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서울대병원에서 웃음치료를 하시는 김상태목사님은 항암 치료를 한 번도 받지 않으시고 암이 치료가 되신 분입니다. 많이 웃으면 건강해 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웃으면 더 큰 효과가 있습니다. 혼자 웃는 것보다 마주보고 웃으면 33배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인사만 잘해도 칭찬들을 수 있습니다. 인사만 잘해도 인간성 좋다는 말 듣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은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인천에는 인사를 잘해서 4선 의원이 되신 분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출마해서 6명중 4등으로 낙선했는데 선거 후에도 열심히 인사를 했더니 그 다음에는 당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사는 상대가 알아듣도록 해야 합니다. 인사는 하는데 상대가 보지도 못했다면 하나 마나입니다. 상대가 알아듣게 큰 소리로 고개를 숙이고 해야 하는데 요즘은 인사 예절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일삼일만 운동의 세 번째 일이 한 번 더 인사하고 한 번 더 미소 짓기입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고개가 뻣뻣한 것은 덜 익은 벼든지 핍니다. 머리에 든 게 많으면 무거워서 잘 숙입니다. 머리에 든 게 없이 텅 비어 있으면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입니다.

  3)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칭찬하라.
대인관계의 오해는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3번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오해가 풀립니다. 이해는 아는 만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해는 대화로 가능한 것입니다.

사회생활의 문제는 대부분 대화부족에서 생깁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제 아내가 아주 속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제 아내의 말로 시험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굉장히 속상해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러니 상대를 만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들은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 하고 풀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만나서 오해를 풀어주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면 잘 못 전달되었으니 속상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당사자를 만났습니다. 결국 상대가 한 말이 아니라고 듣게 되었고 제 아내는 상대로 인해서 속상했던 마음이 풀렸습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말로 문제가 되면 피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덮어두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커지는 일들을 봤기 때문에 말이 나오면 바로 대화를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해서 이해가 되고 오해가 풀려서 지금 교회에 계속 나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대화로 상대를 이해하고 장점을 찾으면 칭찬할 거리들이 많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칭찬에 익숙하지 못한 문화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칭찬 거리가 있어도 칭찬에 인색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칭찬할 사람에게 칭찬할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칭찬에 인색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칭찬합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3가지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재미있을 때 움직입니다. 둘째, 의미 있을 때 움직입니다. 셋째, 칭찬을 들을 때 움직입니다.

상대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칭찬에 있어서 좋은 방법입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박수에 인색합니다. 특히 남자들이 더 그렇습니다. 박수로 상대를 칭찬해 봅시다. 어느 대기업에 평사원으로 들어간 사람이 박수를 잘 쳐서 초고속 승진으로 부회장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너는 사람에게 박수를 칠 때는 13번 이상 쳐줘라”라는 엉뚱한 유언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아버지의 유언대로 열심히 박수를 쳤고 그가 열심히 박수를 쳤기 때문에 상사들의 눈에 들어서 승진하게 되었답니다.

[매혹적인 여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200만부 이상 팔린 책입니다. 어떤 여자는 가정이 깨진 후에 이 책을 여섯 번이나 읽고 남편을 찾아가서 다시 재결합하자고 재의를 했고 지금은 아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정 회복의 방법 중에 하나는 남편을 칭찬하는 방법입니다. 월급날이 되면 남편이 받아온 봉투를 들고 자녀들에게 “이 돈은 아빠가 한 달 동안 수고해서 번 돈 인데 이 돈으로 너희들 학교도 가고 학원도 다니고 용돈도 준다. 아빠가 너무 수고하셨다. 아빠에게 박수를 쳐드리자”라고 말하고 온 가족이 힘껏 박수를 쳐주고 감사를 표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칭찬을 좋아하십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하신 일들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칭찬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점은 적극적으로 칭찬하셔서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처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건강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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