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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와 벌 (골 1: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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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골 1:21-23)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좀 평안하려고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는 좀 푸근하고 싶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고,
예배를 드리고,
그런데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교회를 다니면 왜 그리도 하지 말라는 것이  많은지 몰라요,

안하면 지옥엘 간다고,,,
이건 우리를 겁나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그냥 그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건 아예 우리를 도망 칠 수도 없게 하구요,
평안은커녕  마음만 더 무겁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가리켜서
.죄인 중에 죄인이며,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고,
.만물의 찌꺼기 같으며,
.만삭이 되지 못해서 태어 난 사람이고,
.뒤로 내 버려야 하는 배설물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아예 “내 어미가 나를 죄악 중에 나를 잉태하였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유하지를 못해요.

저는 오늘 죄책감에 눌려서
자유를 놓치고,
기쁨을 모르고 사는 그리스도인 들 에게 평안을 선포 하려고 합니다.

사실 죄를 저지른 사람이야 말로 얼마나 고통스러워요.
죄책감이 저 미포조선의 쇳덩어리 보다 더 무겁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용서하시지 않을거야”
“나 같이 더러운 죄인이” 이런 생각!

자식에게 어려움이라도 좀 생기면, 그게 다 내 죄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정말 하나님의 용서를 맛 봐야 할 사람들이 아니겠어요?

아직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방황하고,
불평하고,
고개를 옆으로 흔드는,
저 불쌍한 사람들이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죄에서 용서를 받고,
그래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고,
자유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하여서 뜨거운 찬양이 울려 퍼지기를 축원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이 쓴 소설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용서해 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만일 판사가 모든 사람이 다 자유하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 잔인한 강도들이,
살인자들이,
강간을 하고도,,, 그런 자들과 함께 천국에서 희희낙락 할 수 있을까?

저런 자들도 용서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알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내 속에서 깊이 갈망 하면서,
체험으로,
모든 수치심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습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용서에 대하여 이런 질문들을 쏟아 내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인간들 모두에게 너무나도 감미로운 초청장을 보내셨습니다.

들어보세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할렐루야.

사1:18의 말씀입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나와 함께 이야기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다시 말하면 기도하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멘 하는 생활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면

.용서를 경험하고,
.욕망이 다 사라지고,
.욕심이 없는,
.평안을 누리면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시는 거예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나를 묶고 있는 죄책감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는 저 죄의식에서,
.이 더러운 죄인을...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변화 시킨다는 말입니까?

그건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결하게 변화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나를 죄에서, 기쁨과 평안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11;6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롬1:17에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주기도문에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하였고 사도신경에서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합니다.

제가  아버지잖아요?
하나 밖에 안 되는 딸이죠.
지난 수요일에는 너무나도 마음이 허전하고요,
짜증을 부려도 귀엽고요,
울퉁, 불퉁해도 그렇게 예뻐요.
봐도, 봐도 또 보고 싶구요.

그 아이가 대구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제가 운전을 참 많이 해주었죠.
그렇게 헤어지죠.
차는 떠나고, 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또 다시 전화를 합니다.
그럼 짜증을 부려요.
‘왜 자꾸 전화하고 그래’
그러면 다짐을 하죠.
‘그래, 내가 다시 전화하면 성을 간다, 성을’ 그래요. 그러고는 또 다시 전화를 하죠.
왜? 또 전화하고 그래.
그럼 제 대답이 뭔지 아세요?
그래, 왜, 보고 싶어 그런다.

그럼 대답이 어떻게 나오냐면?
조금 전에 봤잖아,
그래도 보고 싶어 전화했다.

이게 아버지 마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가 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면 나의 죄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제서야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 나를 용서하시고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저지른 죄악을 아시죠?

간음죄,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인 죄 살인죄,
그 죄악을 숨기려고 했던 죄

그러나 이 무거운 죄악을 다 하나님께 고백 하였습니다.
삼하12;13에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면서
시51;7에서는 나를 우슬초로 정결케 하소서“ 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고백하고,
.감추지를 아니 하였더니,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다 용서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신다. 이것을 생각하니 다윗은 기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무서운 징계자로만 보질 마세요. 죄와 벌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징계하시기에 앞서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시고, 우리가 기쁘게 살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계십니다.

왜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를 용서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기쁘게 살기를 원하신다.

이 믿음으로 죄와 벌이 아니라,
죄를 사함 받고,
언제나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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