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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절한 기도의 회복 (눅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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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도의 회복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I. 본문 배경

이 장면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던 광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신 것은 습관을 따라 가신 것이었지만 그 동산에서 이루어진 기도는 결코 습관적인 기도가 아닌 매우 특별한 기도였습니다. 거기에서 성부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고, 특별한 하나님의 역사를 강권적으로 체험하여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이나 같은 날 아침이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기 전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이 지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모두 쏟아 붓는 헌신적인 기도를 주님 앞에 드리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영혼의 깊은 고뇌를 가져온 견디기 힘든 고난이었고, 이러한 모든 광경을 통해서 이 기도가 매우 간절한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생각해보고자 하는 바는 기도에 있어서 간절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II.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본문은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기도에 예수님 자신을 쏟으시는 장면이 '힘쓰는 것', '애쓰는 것',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것', 이렇게 삼중 적인 모습으로 기록이 되어있는데 희랍어 성경에는 이 부분이 '그 분이 싸움(씨름)속에 계셨을 때에', 혹은 '그 분이 싸움(씨름)속에 들어가게 되셨을 때에' 그분은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싸움(씨름) 가운데'라고 되어 있는 이 '씨름'은 희랍어로 '아곤'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씨름 속으로 들어가게 되셨을 때에 예수님은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간절한 기도가 가지는 두 가지 의미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A. ‘힘쓰고 애써’ : 육체가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혼에 굴복함

첫째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갈망이 있는 간절한 기도는 영혼으로 자기의 육체를 복종시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힘을 쓰셨다’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육체의 힘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자기 자신을 쏟아 놓을 때 육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육체의 힘을 소진하는 일 없이는 하나님 앞에 절실하고 간절한 기도가 불가능합니다.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영혼은 그렇게 자기에게 복종하는 육체를 통해서 힘을 얻게 되고, 육체는 그렇게 쏟아 붓는 영혼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가서를 보면 사랑하는 신랑과 신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 간절히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볼 수 없을 때 병이 나게 됩니다. 시편에 보면 시인과 하나님 간의 이러한 표현들은 더욱 섬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 까지도 병든 자를 섬기고 연약한 자를 돕고 무지한 자에게 복음을 가르치시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육체의 짐을 모두 소진하셨는데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한 순간에 이르게 되자 육체는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예수님의 영혼에 복종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한 영혼의 열렬함에 육체가 복종해 힘을 쏟으며 하나님을 찾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고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고 싶어 합니다. 진실합니다. 그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방향도 올바릅니다. 그리고 자기의 부족도 압니다. 그래서 절대로 교만하거나 혹은 하나님을 향해서 거만하지 않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며, 참된 신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간간히 기도 속에 눈물도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를 다루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영혼이 육체를 장악하고 영혼이 원하는 대로 육체를 영혼 자신과 하나 되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계속 반복해서 미끄러지고 실패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맥스루케이더』라고 하는 미국의 유명한 작가가 있습니다. 그분이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당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받으신 후에는 하나님이 결코 있는 모습 그래도 있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닮기까지 우리를 다루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살든지 하나님께 계속 나를 받아달라고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지만 받으신 후에는 당신의 형상을 이룰 때까지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를 다루는 법을 알아야하는데, 반대로 죄 된 육체가 신령한 것을 바라는 영혼을 향해 거스르고 저항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 성화에 있어 진전은 매우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갈망에 완전히 복종된 예수님의 육체를 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예수님의 육체에는 죄가 없었으니까 그러셨겠지’ 라고 말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을 거스르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성령님을 우리 안에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영혼을 거스르는 육체의 정욕을 굴복시키며 힘쓰고 애써 간절한 기도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영혼에 굴복시킬 때에 육체를 가장 확실하게 굴복시킬 수 있는 그 무기가 바로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나처럼 이렇게 섬길 때에 이렇게 육체가 고단하셨겠지, 이렇게 쉼이 필요한 순간이 그것을 거절하고 하나님 앞에 내게 지워진 의무를 감당하려고 할 때 주님도 나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신 분이셨으니 나보다 조금도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아니하시고 지금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을 겪으셨겠지...’ 그 예수님이 당하신 그 고난 속에서 자신의 고난을 보고, 그 속에서 이 세상이 얼마나 철저히 소망이 없는 곳이고 우리의 육체가 얼마나 유한한 육체인가 하는 것을 동시에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을 영혼의 열망에 굴복시키므로 육체가 굴복하는 것과 함께 우리의 영혼이 정결케 되는 변화까지 함께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이 세상과 육체를 향한 적절한 미움을 갖고 살지 않으면 결코 그 하나님을 향해 갈망해야 할 순간에 자신의 게으른 육체를 복종시키지 못합니다. 우리가 좀 더 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영혼의 열망으로 육체를 복종시키기까지 말입니다.

B. ‘더욱 간절히 기도하더니’ : 기도의 장애와 극복

두 번째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일차적으로 영혼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욱 간절히'라고 하는 말은 원래 희랍어로 ‘내면으로부터 밖으로 쭉 뻗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가 사도행전 12장 5절에서 사용되었는데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빌더라" 할 때 그 '간절히'가 바로 본문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원급이 사용되고 여기에서 비교급(더욱 간절히)이 사용된 것입니다. ‘무엇인가 힘 있는 것이 쭉 뻗으려고 할 때에 장애물들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쭉 뻗어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희랍어 단어에서 '간절히'라고 하는 단어가 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씨름한다'는 말로 묘사하고 있는데, 자기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면 씨름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이 있는데 무엇인가 못 가게 하면 그때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셨다는 의미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신령한 교통을 갖고 기도를 올리며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 신령한 영향을 받는 통로를 무엇인가 막고 계속 위협하면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해야겠다는 예수님의 마음의 소원이 강렬하기 때문에 위협이 들어올수록 더욱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며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을 물리치시며 계속 더 강하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최초의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자극하면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간절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 간절함이 유지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은혜에 대한 갈망은 생겼는데 장애를 만나게 되면 쭉 뻗지를 못하고 거기에서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멈추는 것은 '간절함'이 아닙니다. 멈추지 않고 그런 장애물이 있는데도 쭉 뻗어나갈 때 그것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간절히'라고 하는 말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불러일으켜지고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되면 우리가 알기 전에 먼저 우리의 죄가 그것을 감지하고, 사단이 그것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살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의 육체가 뒤따라 그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죄는 은혜의 번성함을 통해 자기가 죽임을 당할 테니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인가 방책을 마련해야 될 것이고, 사단은 우리를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죄를 보호해줘야 합니다. 우군은 없습니다. 온통 적군에게 둘려 싸여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유일한 우군이 있는데 게으르기 좋아하는 육체가 우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손잡으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피곤에 지쳐 잠든 제자들처럼 육체로 보면 예수님도 거기에서 잠드실 수밖에 없는 자신을 소진한 피곤한 상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잠든 제자들을 향해 ‘마음에는 원이로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 제자들 또한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육신이 약하도다’ 입니다. 마음은 하고자 하는 원이 있으나 육신이 약하여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보인 차이는 둘 다 기도하고자하는 마음에 원이 있었는데 제자들은 게으른 육체에 졌고 예수님은 그 육체를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기를 쏟아 부으며 간절히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많은 제약요인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그 간절함은 모든 장애들을 뚫고 계속 뻗어 나갔고, 예수님의 영혼의 상태가 그러했기 때문에 자기를 바치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십자가에서 능히 승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지는 그 순간에 모두 패배하고 도망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간절함은 장애를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간절함은 도저히 그 일을 이룰 수 없도록 방해하는 여건들을 물리치고 최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하는 커다란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간절함이 없이 우리들이 신앙생활 해 온 때가 얼마나 많은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육체가 약해서 우리의 진실한 결심을 수행하지 못할 때마다 이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멸시와 욕을 당하고 모든 고난을 받으신 피곤한 육체를 가지고 당신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아 부으며 간절한 기도로 고난의 십자가를 준비하고 계신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에게 정말 이런 종류의 십자가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모두 아십니다. 정말 질그릇 같이 깨지기 쉬운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공급해주시는 능력보다 자신 안에 있는 연약함을 신뢰하는 성도들을 찾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보이신 그 모본을 생각하면서 힘닿는 대로 우리 자신을 이기며 주님께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눈물을 흘리고, 자기 자신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헌신된 삶을 살았는지는 사람은 모두 알아주지 못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하나, 하나를 기억하시며 우리를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III. 기도의 간절함을 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기도를 방해하는 그런 씨름에 에워싸인 상황에서 간절한 기도의 영을, 기도의 은혜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A. 마음을 모아 기도함

우선 첫째로 기도 속에서 끊임없이 흐트러지려는 자신의 마음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위해 엎드렸을 때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모두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 앞에 기도가 간절하게 쏟아져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은 기도의 상태를 느끼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할 때 끊임없이 마음에 오가는 쓸데없는 생각들, 어떤 때는 아주 죄악 된 생각일 수도 있고, 혹은 죄와는 상관이 없지만 전혀 쓸모없는 공상과 같은 생각들이 마음에서 계속 떠오릅니다. 생각이 떠오른 것은 마음이지만 떠오른 생각은 다시 마음과 별개가 되어 마음을 향해서 공격을 하면서 그 생각이 마음을 흩으러 놓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간절해지기 위해서는 마음 그 자체가 하나로 모아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햇빛이 비치면 그 햇빛 때문에 화재가 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조그만 볼록렌즈 하나만 있으면 온 산을 태울 수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빛을 모으는 것입니다 가만 놔두면 퍼질 빛을 한곳으로 집중시켜 모으는 것입니다. 종이를 불태우기 위해서는 접시만한 볼록렌즈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안경돋보기만한 것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으로 종이를 태우고 온 집과 산을 태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집중의 힘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어떻게 하든 기도를 실패하게 하려고 마음을 흩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아진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게 지켜야하고, 흐트러지려고 하는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기도도 마음지킴의 교리와 아주 직접적인 연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끝내놓고 다음 기도할 때까지 사는 그 삶이 기도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다 개방해놓고 아무렇게나 온통 짓밟히면서 살다가 기도 시간에 와서 그 마음을 갑자기 추스르려고 하면 쉽게 추슬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기도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삶 자체가 기도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며 기도의 자리에 나와야 하며, 기도하는 시간에도 마음을 분산시키는 수많은 생각들과 싸우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의지가 없이는 기도의 자리에 있어도 공상만 하다가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간절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모으는 일에 익숙해야 합니다.

B.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함

그 다음에 기도의 간절함을 유지하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가운데 두 번째는 마음을 모으는 것과도 통하는데, 항상 형식적인 기도를 경계하고 기도하는 매순간 진실해지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은혜로운 정서가 우리 안에 불러일으켜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함이 필요합니다. 유창한 기도를 못한다할지라도 어린아이처럼 말을 잘 잇지 못하면서 자신 속에 있는 진심을 토해놓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주지 못할지 모르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의 기도에 함께 하십니다. 의미 없이 부르짖는 큰 함성소리, 진실함이 담기지 않은 유창한 기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진실하게 기도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모아집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는 습관적인 나열하는 것으로는 진실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인데 진실한 기도를 하려고 하다보면 결국 마음이 모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어느 순간에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부어주셔서 우리들이 진실해지고, 우리로 하여금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큰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자고 제안하지 않아도 이렇게 진실하게 기도하려고 할 때 이 기도의 간절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름다운 표현이나 시 같은 섬세한 기도의 묘사가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말에 말을 잇지 못해도 영혼 속에서 토해져 나오는 신음과 같은 진심,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C.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함

이런 간절함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세 번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고난 받으시기 직전에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의 이 기도를 묵상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유지하도록 돕는 훌륭한 방편이 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했는데, 이날 밤에 예수님께서 통곡하시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히브리서에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에 “그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었느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심한 통곡과 눈물로 올린 기도였지만 특별히 히브리서 5장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장면은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의 사투의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그 밤에 자기에게 다가오는 십자가, 잠들어버린 제자들을 두고도 홀로 감람산 깊은 밤에 기도로 매달리셨던 그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에게 이렇게 간절히 매달려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까? 핍박과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는 너무 좋은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단 한 번 주님을 위해서 죽기를 결심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매순간 그런 결심을 유지하고 일평생 사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십자가가 있다면 이러한 마음으로 지는 기도의 십자가가 아닐까요? 이 기도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이 이렇게 잡히시던 날 밤에 자기를 쏟아 부어 간절히 기도하셨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신 그분이 자기를 쏟아 부으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이것이 오늘날 편하고 안락한 시대에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십자가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묵상하는 것이 이런 간절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기도의 씨름을 이기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저항하는 세력보다 ‘더 간절히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매달릴 때 씨름의 순간이 지나가고 기도의 아름다운 교통의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IV.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

하나님께서는 사면을 두루 살피시며 이처럼 자기를 간절히 찾는 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시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의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가 죄인이면 그 죄를 사하시고, 그가 곤궁한 가운데 빠진 사람이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를 먼저 도와주십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해서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말씀으로 그 갈 바를 보이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만들어 주셔서 자신의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불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십니다.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힘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시면서 자신의 온 힘을 소진하셔서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실 수 있는 육신적인 힘이 남아있지 않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예수님의 기도에 힘을 더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중보의 남은 기도를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특별한 은혜의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특별한 힘주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왜 예수님이 경험한 특별한 힘주심, 기도 속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우리에게 힘이 되어서 지쳤던 우리의 영혼에 소생함을 주고 쇠약했던 우리의 육신에 강력한 힘을 공급해서 예상을 깨고 아버지 앞에 매달리게 만드는 기이한 은혜의 경험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간절한 기도로 힘을 다 써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주고 싶으셔도 아직 힘이 많이 남아있어 자신을 의지하는데 어떻게 도와주시겠습니까?

너무 힘들고 지쳐서 숨을 쉴 기운조차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기도의 제목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나 기도할 힘이 없습니다. 특별히 몸이 질병상태에 있을 때에는 마음도 상하고 하나님 앞에 너무 힘겹습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 눈물밖에 안 나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하며 그 말에 위로를 받으면서 엎드려서 눈물만 흘리며 하나님을 바라보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예상을 깨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경험하신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경험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가슴을 불붙게 만듭니다. 순간 우리의 육체에 힘이 들어오고 우리의 영혼에 활기가 북돋아지면서 아버지 앞에 폭포수와 같은 기도를 쏟아놓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은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십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그 기도의 시간을 간절함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항상 게을러지고 형식적인 기도생활로 이어가려고 하는 유혹이 들어올 때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그 기도의 모습과 그 기도를 통해 십자가의 고난을 온전히 감당하신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V. 결론과 적용

우리가 간절한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열렬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의 영적인 건강의 가장 중요한 바로메타입니다. 그래서 『죠지 윗필드』도 제일 먼저 하루의 생활을 점검할 때 ‘나는 오늘도 열렬히 기도했는가?’로 자신의 영혼의 건강을 입증했습니다.

죄를 죽이고 승리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성도의 결정적인 특징은 영적 순발력과 열렬함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무엇인가 증거 받으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어떤 증언을 들으면 그 영광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불붙습니다. 그래서 그는 풍부한 정서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죄가 쌓이고 심령이 굳어지게 되면 열렬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간절함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분 속에서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면 그 영혼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험신호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기도를 방해하는 상황보다 더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마음을 모으고, 진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간절함을 회복하고자 하는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간절하게 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그런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잃어버렸던 열렬함을 회복하게 해주셔서 언제나 간절한 기도로 순발력 있는 기도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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