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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접속(The Contact) (요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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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The Contact) (요 3:1-8)

1. 요즘 휴대폰이 얼마나 급속도로 발전하는지 영상으로 상대방을 보며 통화하는 show 폰이 등장했습니다. 휴대폰은 나 혼자 갖고 있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도 갖고 있어야 비로소 쓸모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휴대폰은 내 것이 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것도 됩니다.(이어령, 목회와 신학, 2007. 9월호, 151)

  우리사회는 이미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입니다. 상대방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형성할 줄 아는 능력이 오늘날 리더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이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 없는 나, 이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없는 존재는 하나님 보시기에 무의미한 존재요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도 내 안에 나와 함께 공존하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기독교인입니다.

  요즘 인터넷 시대가 아닙니까? 어디든지 주소만 치면, 수많은 사람들과 접속하여 대화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 일본인, 러시아인과 인터넷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접속은 상호적입니다. 나 혼자서는 접속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나와 상대방이 함께 접속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열어놓았는데, 내가 하나님께 마음을 닫아두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향하여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면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과 접속하게 됩니다. 인터넷에는 영화, 드라마, 텔레비전, 강연, 좋은 글 등 엄청난 자료와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 접속하면, 엄청난 프로그램과 화면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해도 엄청난 것을 얻을 수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과 접속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생기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또 오늘 교회에 처음 나오신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분과 접속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축복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2.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접속한 니고데모란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이요, 최고의 권력을 지닌 산헤드린 공회의 관원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회의원 이상입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백성들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인 바리새인이자 서기관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돈, 권력, 지식, 명예 다 가졌습니다. 그러면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지만, 남들이 모르는 그의 마음세계는 때때로 공허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도 예루살렘에서 대단한 인파를 몰고 다니는 스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병자를 고치는 등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는 기적을 보면서, 니고데모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내게 없는 뭔가가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계속 니고데모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날을 정하여 밤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만남으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믿었고 후에 훌륭한 신앙인이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요한복음 7:50-51을 보면, 니고데모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옹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9:39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 쯤 가져와서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치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도망간 상황에서 니고데모는 신실한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의 역할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은혜의 집인 교회에 나오신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3.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의 기적을 보면서, ‘저 양반 대단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문서답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지금 거듭남 즉 새로운 탄생, 새로운 삶, 내면의 삶의 변화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삶의 변화입니다. 마음의 변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마음이 바뀌고, 생각이 변화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이것이 겉보기에 대단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4절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여러분, 지식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게 아주 어렵습니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자세로 신앙을 접근하면, 신앙을 갖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과학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과학의 세계를 뛰어넘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과학으로 신의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고는 그 누구도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접속하기 힘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는 접속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최고의 석학 이어령 박사는 지난 7월에 75세란 노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난 주간에 기독교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세례받을 때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생 누구에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 때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나? 혼자 바등바등대며 살아왔나? 그토록 사랑하던 내 딸에게 내가 해준 게 뭐냐? 별로 없지 않느냐? 그런데, 하나님은 내 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행복을 안겨주었느냐? 난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세례를 받고 난 후,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는 이솝 우화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은 토끼였다고 합니다. 늘 남보다 앞서 달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전엔 토끼였는데, 토끼로 살면 절대로 인생 경주에서 이길 수 없다고 하면서, 거북이로 살아야 경주에서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똑똑하고 잘 난 토끼, 오만한 토끼가 아니라, 이제 비로소 거북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비록 천천히 가도 인생의 마지막에 이기는 거북이,
그는 세례를 받으면서, 비로소 인간의 오만(human pride)이 해체되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뭔가 해냈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야’ 라는 그의 오만이 해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이런 인간의 오만함이 해체되는 데서 나온 회한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인정하십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뭔가 부족한 사람, 모자라는 사람, 슬퍼 애통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겉으로는 부유하고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의 내면세계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가난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5:3)
오늘도 가난한 마음으로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신 분들은 하나님과 접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친절하게 거듭남의 방법에 대해 니고데모에게 설명해주십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탄생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인가?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 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물은 세례와 연관됩니다. 더러운 죄를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씻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청산한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청산해야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여러분의 과거의 실수와 실패, 죄악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과거의 잘못 살아온 인생을 이미 청산해주셨습니다. 그냥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받아들이시면, 여러분의 과거가 청산됩니다. 지난 날 어떻게 살아왔든지 관계없이 모든 더러운 삶, 문제 투성이의 삶이 다 청산됩니다. 오늘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이 계신다면, 권면드립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믿으십시오. 그 피가 여러분의 과거를 깨끗이 씻어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물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물에 빠지면 죽습니다. 물에 몸을 던져 철저하게 자신이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몸을 과감하게 하나님께 던지십시오. 생명의 물이신 하나님께 던지십시오.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던지십시오. 포기하십시오. 물에 몸을 던지면, 바닥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릅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 던져보세요. 여러분의 미래를 하나님께 던지십시오. 여러분의 사업, 직장, 자녀양육을 하나님께 던지십시오. 죽을 것 같지만, 그 때 비로소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사업이 일어나고, 가정이 회복될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청산하면, 새로운 미래가 열립니다. 성령께서 열어주시는 새로운 미래는 밝고 희망적입니다. 새로운 힘과 결단, 새로운 은혜가 넘치는 미래가 될 것입니다.
성령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시는 능력입니다.
6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우리의 육체는 흙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연약합니다. 쉬 상처입고 깨어집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육체를 믿고, 육체의 가진 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인간의 연약한 본성의 한계를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근본이 죄인이기에 그러합니다.

이어령 박사는 기독교방송과 인터뷰를 하기 전에 무슨 넥타이를 맬까 고민했다 합니다. 어떤 넥타이를 매면 인터뷰를 망치고, 어떤 넥타이를 매면 인터뷰를 잘 할 수 있다는 미신적인 습관이 있었습니다. 아니,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이, 얼마나 허약합니까? 이게 우리가 모르는 그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그는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냐, 뭐 대단한 사람이냐, 전혀 그렇지 않다’ 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성령을 만날 때,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됩니다.

거듭난다고 할 때, 거듭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그리고 새롭게 란 뜻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즉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난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탄생, 새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 이게 새사람, 거듭난 사람입니다.
오늘 이 자링에 오신 여러분은 모두 거듭난 사람, 새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이렇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과 접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접속한 사람도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날마다 새로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인터넷 선이 깔려 있어도 내가 컴퓨터를 켜고 접속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만날 수 없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대하여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접속하지 못하면 새로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접속합시다. 그리하여, 날마다 주님의 은혜로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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