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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 (스 2:6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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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 (스 2:64-70)

(스2:64-70)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 삼백 육십명이요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명이요 말이 칠백 삼십 륙이요 노새가 이백 사십 오요 약대가 사백 삼십 오요 나귀가 육천 칠백 이십이었더라.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었더라.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그 본성들에 거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그 본성들에 거하였느니라.

1. 솔로몬 왕의 우상숭배 죄악으로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분열된 남과 북 두 왕국 역시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악으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B.C.722년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B.C.586년에 함락되고 말았습니다.(왕하17:6, 25:8) 본문은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1차 포로로 잡혀간 이후 약 70년의 세월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스1:1)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바사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내린 조서에 따른 1차 예루살렘 귀환자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멸망당했다고 해서 아주 진멸해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다윗 왕이 “나는 백향목 궁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언약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7:2)며 자신은 잘 지어진 왕궁에 살고 있지만 정작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과 축복으로 인도하시며, 이스라엘 나라 통치의 핵심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는 왕궁 한 구석에 천막으로 가려져 있는 모습이 너무나 죄송스럽고 가슴 아파 언약궤를 안치할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러한 마음에 감동되어 다윗에게 몇 가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7:8-16)

그 중 하나가 다윗의 왕권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의 아들 솔로몬이 죄를 범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할지라도 사울에게서 왕권을 완전히 빼앗은 것같이 빼앗지는 아니할 것이며, 다윗의 집과 그 나라와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삼하7:15-16)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죄악으로 나라가 분열되고 멸망당해 바벨론에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이는 다윗에게 언약하신대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신 것이지 아예 진멸해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렇게 예언했던 것입니다.

(렘30:10-11)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얻을 것이라 너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은 진멸한다 할지라도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공도로 너를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죄악으로 더럽혀진 이스라엘 백성, 언약 백성을 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가 이스라엘 멸망과 포로 생활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징계의 기간이 끝나자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 나라 왕의 마음을 움직여 포로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70년이란 길고 긴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서도 그 나라의 우상이나 우상 문화와 풍습에 동화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신앙을 순결하게 간직해왔던 사람들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 나라 민족 회복의 구심점이 되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셨습니다.

2. 고레스 왕의 조서에 따라 바벨론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 전부가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 즉 42,360명만 1차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지도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였습니다. 그 중 스룹바벨은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대상3:19) 남 유다가 멸망당할 때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야긴 왕의 손자입니다.(왕하24:15) 그리고 예수아는 대제사장의 직계 자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약속하신 바를 성취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당시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대략 20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 중 4만여 명만이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고레스 왕의 조서에 따라 유대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이미 포로로 끌려와 바벨론에서 70여년을 살다보니 정작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70년 전 나라가 멸망당할 때 선지자들이 외쳤던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들 4만 여명은 그 당시 선지자들의 약속, 나라 민족이 70년 징계가 끝이 나고 반드시 돌아오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고, 자신들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잊지 않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기억하고 있었던 약속은 첫째, 오직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사10:20-23)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참조 : 렘31:7-8)

둘째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자에게만 번성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렘23:3-4)  내가 내 양 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 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슥8:12)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굳게 믿는 가운데 바벨론 포로생활 중 이방 우상숭배와 그 문화에 신앙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아무리 그곳 생활이 편안하고 풍족할지라도 주어진 모든 기득권을 미련없이 포기한 사람들만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에서의 눈에 보이는 생활이 제아무리 좋아보여도, 지금 황폐하게 버려진 약속의 땅에 주어진 미래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거침없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히11:1)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눈으로 약속의 땅, 예루살렘의 미래를 바라보고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은 아무리 살기 좋아도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바벨론은 세상을 우상숭배로 더럽히는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이며,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입니다.

(계14:0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17:0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18:0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바벨론은 아무리 크고 견고해 보여도, 그리고 물질이 풍부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일시에 멸망해 영원히 사라질 세상 나라를 의미합니다.

(계18: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계18:15)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계18: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바벨론에서 약속의 땅으로 나온 사람들 명단 중에는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스2:58) 이들은 혈통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전쟁 포로로 끌려와 이스라엘에서 일손이 부족한 성전에서 막일을 하거나 천한 일을 하던 사람들의 자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함께 살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망하는 바람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이들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문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사는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 사는 것보다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바벨론 생활을 포기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이스라엘 포로가 되어 성전에서 막일이나 천한 일에 봉사하면서 오직 하나님을 믿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만 구원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은 대접을 받을지라도 그곳은 ‘약속의 땅’이 아닌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은 장망성(將亡城, City of destruction), 장차 망할 도성입니다. 장망성, 바벨론은 “귀신들의 처소요 더러운 영들의 처소이고 각종 음행과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지만 망할 도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요한계시록18:4) 하나님의 교회는 바벨론에서 나온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약속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장망성 바벨론에 눌러 앉지 말고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그곳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약속의 땅’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되었던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이 땅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들이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만 들어가 영원히 사는 복된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영원한 생명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예수 믿고 사는 것이 비록 좁은 길을 가는 것과 같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을지라도 그 길로 가는 것만이,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영생복락의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입니다. 바벨론 포로 당시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무려 200여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겨우 42,360명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성경은 “남은 자들”로 부르고 있습니다.

(렘31:7-8)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8)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남은 자들”은 예수께서 “(마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좁은 문, 좁은 길’을 선택하여 사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넓은 문, 넓은 길로 간다고 하는 것은 세상과 더불어 편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좁은 문, 좁은 길로 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불편하고, 힘들고, 손해보는 것이 많을지라도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넓은 문과 넓은 길은 당장 편하고 좋아보여도 그 끝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과 좁은 길은 힘들고 불편한 것이 많아서 찾는 사람이 비록 적을지라도 영원한 생명과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어려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두뇌 집단으로 분류되어 왕궁에서 생활하며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하나까지 바벨론 왕이 지정하는 진미와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마시도록 해서 생활하며 왕궁 교육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이 제공하는 모든 진미와 포도주는 모두가 우상숭배에 바쳐진 제물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단1:8)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며 우상숭배의 음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이러한 행위는 분명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으로 포로 교육 감독관은 물론 포로에게도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습니다. 왕의 지정 음식을 취하지 아니하고 우상의 제물로 사용되지 않는 채식만을 먹고 생활한다는 것이 여간 위험하고 불편한 것일지라도 다니엘은 결코 자신의 신앙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에게 바벨론의 그 누구보다 10배나 나은 지혜와 총명으로 축복하셨습니다.

그 후 바벨론의 여러 총리들과 방백들이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는 악법을 제정하여, 평소 자기 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던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평소처럼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이 사실이 여지없이 왕에게 고소되어 다니엘은 어찌 할 수 없이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봉해서 몸에 상한 곳 하나 없이 구원되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다니엘을 고소했던 무리들이 사자굴에 던져져 사자 밥이 되어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단6장)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은 비록 포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상숭배로 자신의 신앙을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들이 날마다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70년 포로생활의 징계가 끝이 나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리라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지정한 진미와 포도주는 온 세계를 취하게 하며 미치게 하는 금잔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예언되었습니다.

(렘51:7)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계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신앙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위험하며 불편한 것이 많다 해도 약속의 말씀대로 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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