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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는 행복의 열쇠 (출 1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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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행복의 열쇠 (출 16:1~12)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애굽기 16:1-12)

사람을 관찰해보면 세 가지 성향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습관적으로 불평과 원망, 부정적인 불신앙의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불평꾼이지요. 둘째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으며 감사와 찬양과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훈련하셔서 이 땅에 큰 축복이 되게 하십니다. 셋째는 때로는 불평하고 때로는 감사하기 때문에 신앙의 사람인지 아닌지 알기 힘든 사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귀로 들으시는 그대로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입술의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데, 내가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말을 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불평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인생은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찬 불행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며 믿음의 말을 하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믿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듣고 그대로 이루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축복의 말, 감사의 말, 찬양의 말, 믿음의 말로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불평불만과 원망을 안고 사는 보통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회중’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10:2 정도를 말합니다. 여호수아에서 스파이 12명 가운데 10명은 부정적이고 믿음이 없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듯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부정적이고 불평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1절) 애굽에서 나온 지 두 달 반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2절)라고 했습니다. 원망하는 사람들이 늘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늘 불평을 합니다. 하면 할수록 전문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도 훈련입니다.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모두 훈련입니다. 많이 해본 것을 잘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입술에는 무엇이 발달되어있습니까? 주로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아니면 오락가락 하나요?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미래가 보이는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오늘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도 감사함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감사함’이라는 단어가 174번이나 등장합니다. 여러분이 늘 감사와 찬송을 연습해서 인생을 밝게 믿음으로 보고 하나님의 역사와 손길을 바라면서 감사가 넘치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달 반 동안 고기와 떡을 못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3절)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죽을 것만 생각합니다. 이들은 애굽에서 종으로 있을 때에는 떡과 고기가 있었는데 종에서 자유함을 받으니까 떡도 없고 고기도 없다, 그때 우리가 거기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이리로 데리고 왔느냐고 불평합니다. 배만 부르면 사는 사람들입니다. 개나 짐승도 배만 부르면 좋아하지요.

그러나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합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와 자유, 창의력,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인간답지 않게 억압받고는 못 살겠다! 덜 먹고 옷이 없어도 인간답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것이 퓨리탄 정신 아닙니까!

유럽인들이 처음 미국에 건너올 때 그들은 정치적 자유와 종교적 자유를 위해서 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참된 자유가 조국과 고향을 떠나는 것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미국을 축복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했습니다. 우리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찾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기 때문에 최고를 찾으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는 하나님께서 다 돌봐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믿음의 말을 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어려움과 시련과 도전들은 우리가 그냥 여기서 이렇게 죽으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발돋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로 살다가 죽어도 밥만 먹고 배만 부르면 괜찮다는 거지요.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3절에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출애굽은 그들을 광야에서 굶어 죽이려는 무모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굶어 죽이려고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자유로운 사람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나라를 세우게 하려고 데리고 나오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도, 감당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를 죽이려고 데리고 왔구나!” 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도전과 시련과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훈련해서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저편에는 가나안 땅이 있고 젖과 꿀이 흐르는 자유의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영원한 승리를 이미 주셨기 때문에 최후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가는 길입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믿음의 삶을 살고, 긍정적이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믿음이 실현되는 체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굶겨 죽이려고 이 땅에 데리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일생토록 우리를 돌봐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어둡고 불행해집니다. 늘 좋지 않은 것을 생각합니다. 어느 분이 300만원이 급히 필요했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에게 300만원이 필요합니다. 꼭 주십시오”하고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딱 300만원을 주셨대요. 그런데 그 돈을 받고 보니 ‘내가 왜 300만원만 달라고 했지? 400만원 달라고 할 걸!’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어느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갔습니다. 좌판에 오렌지가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아이가 먹고 싶은 마음에 오렌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주인은 그 눈길을 외면하지 못하고 오렌지 하나를 주었습니다. 아이는 오렌지를 받고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아저씨가 오렌지를 주셨구나! 그럼 아저씨께 뭐라고 말해야 하지?”하고 말했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오렌지 깎아 주세요.” 아직 훈련이 안 된 아이입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누가 친절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면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더디 노하심과 용서하심과 그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입술에는 늘 감사가 넘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여러 사람들의 삶의 고백을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느 검사의 고백입니다. “검사 생활이 힘들어서 지칩니다. 우리는 늘 사기꾼과 도둑놈들만 만나지요. 이들과 매일 입씨름을 해야 하고, 할당받은 사건이 너무 많아서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 시간에 퇴근하는 날이 없습니다.”

어느 판사의 고백입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저는 항상 범죄자들에게 ‘몇 년 형을 줘야 하나?’하는 고민만 합니다. ‘징역 몇 년에 처한다!’는 말로 먹고 사는데, 목사님은 매일 생명을 살리는 말씀을 전하며 사시니 저는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어느 의사의 고백입니다. “목사님, 저는 시장에서 고기 파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의사가 받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닙니다. 제가 매일 상대하는 사람은 아픈 사람, 피 흘리는 사람들이고 환자가 잘 낫지 않으면 그 스트레스가 너무 큽니다. 이런 사람들을 매일 보는 것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목사님은 아십니까?”
어느 대 기업가의 고백입니다. “저는 눈만 뜨면 돈 걱정입니다.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머리가 아픕니다. 가진 자의 고민입니다. 없는 사람은 몇 십 만원으로 고민하는데, 저는 몇 억 가지고 고민합니다.”

어느 한국 남자 탤런트의 고백입니다. “저는 제 눈이 동그랗게 생겨서 불만입니다. 남자가 눈이 좀 날카롭게 생겨야 되는데 이렇게 곱상한 제 눈이 너무 마음에 안 듭니다.”

어느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내게 가정만 없으면 사표를 써서 집어던질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더러워서 못 살겠습니다!”

어느 어머니의 고백입니다. 매일 50-60점 밖에 못 받던 아이가 85점을 받아 왔습니다. 아이가 너무 신이 나서 어머니에게 보였더니 “문제가 쉬웠나보구나!” 했답니다. 아이는 엄마의 부정적 말에 얼마나 낙심했겠습니까? “옆집 철수는 몇 점 받아왔냐?” “너 이것만 안 틀렸어도 100점인데.” 그러니까 아이의 점수가 늘 50-60점밖에 못되는 것입니다. “참 잘했다!” “정말 수고했다!” “너 정말 우리 아들이구나!”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까? 마음이 어둡고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서 아이가 85점을 받아와도 기를 죽입니다.

우리들의 말에, 입술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생명의 언어를 써야 합니다. 감사의 언어를 써야 합니다. 축복의 언어를 써야 합니다. 한마디 말이라도, 들어서 기쁨과 위로가 있고 격려가 되는 말을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그런 내용입니다.

성경에 언급된 여러 가지 감사 중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 118:24) 오늘을 감사하자는 겁니다. 오늘을 감사하고, 오늘을 기뻐하고, 오늘을 즐거워하고, 오늘을 찬양하며 살자는 겁니다. 사실 여러분이 가진 것은 오늘 밖에 없습니다. 어제, 지난 주, 지난 달은 다 지나갔습니다. 영원히 지나가서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잘 했던지 잘 못 했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에게 햇볕을 주시고,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새 날을 주십니다. 왜 새 날을 주십니까? 우리가 새롭게 살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 때문에 묶여서 고민하고 죄에서 헤매고 불평불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제 성공을 했더라도 그것은 어제의 성공이기에 오늘 다시 한 번 성공하라고 새 날을 주셨습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날입니다. 1년 후에 여러분에게 내일이 다시 올지 안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지금 “내가 여든이 넘어서 허리가 굽어지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하는 것은 쓸 데 없습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하면서 어둡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는 영원히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은 오늘 하루뿐입니다. 오늘 하루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지금’입니다. 여기,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저녁에 내가 있을지 없을지 누가 알아요? 모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오늘 기뻐하고, 오늘 감사하고,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어느 날 찾아오는 것이 아니요 오늘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이 날은 주가 지으신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이 날은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이 날은 이 날은 주의 날일세” 이 찬송가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새 날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찬송하십시오. 내게 건강을 주셨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어느 날 내가 행복해지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주어진 그날에 행복을 찾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모든 것을 감사하고 불평하는 대신 축복을 헤아려보라고 하십니다. 주신 축복을 헤아려보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 불행하거나 슬퍼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레바논에서 16개월 동안 인질로 잡혀 고생을 했답니다. 풀려나던 날, 기자들이 모여들어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의 말이 “참 축복된 날들이었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아니 인질로 있던 날이 어떻게 축복된 날이라는 말입니까?” “어느 날은 샤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은 샤워를 할 수 있어서 감사드렸습니다. 어느 날은 음식을 받았는데 채소가 조금 들어있었습니다. 그 날은 채소를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가족을 주신 것을 매일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삶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자꾸 해보면서 훈련을 해야 합니다. 밝고 좋은 쪽을 바라보고 고마운 것을 찾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매일 인생의 작고 사소한 일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 여러분의 입술에 감사가 넘쳐나길 바랍니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자” 왜 그렇습니까? 한 때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그분이 누구인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의 눈이 뜨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두움 속에서 살았으나 이제는 눈을 떠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내 죄를 단번에 다 용서하시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구주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아직도 전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살고 있는데,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 것은 큰 축복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여러분의 눈을 뜨게 하셔서 예수님을 보게 하신 것을 감사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날마다 감사와 찬송을 훈련함으로써 감사가 생활화 된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여러분의 입술이 열릴 때마다 찬양과 감사와 축복과 믿음의 표현을 하면서 우리 모두가 복된 인생, 행복한 인생,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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