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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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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

오늘은 우리교회에서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우리들이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서 감사한 일들을 조용히 헤아려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60년 전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것이 72가지였고, 절대로 필요한 것이 18가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생활에 필요한 것이 500가지이고 절대로 필요한 것이 50가지라고 합니다. 이렇게 더 많은 것을 가진 현대인이 과거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불만이 더 많고 불행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이나 문명의 발달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게 나타난 나라는 방글라데시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감사함의 깊이와 행복의 척도는 정비례합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전도서 5:10)라고 하셨으며,“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잠언 27:20)고 하셨습니다. 몸으로 누리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함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욕심을 줄이고 이미 받아 누리고 있는 것을 살펴보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때에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一.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만사를 우연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존재를 우연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사를 우연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인식은 삶의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만사를 우연으로 보는 사람은 우주와 만물까지 우연히 있어진 것으로 봅니다. 이러한 사람은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많은 것이 있어도 감사함이 없습니다. 현재 있는 모든 것이 우연이요, 당연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요,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마태복음 10:29-3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떨어져 죽는 참새 한 마리,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다고 하셨습니다. 결코 우연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로 바라볼 때 신비롭고, 감격스러우며, 감사할 뿐입니다. 여기에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오래전 겪은 제 자신의 경험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주시는 큰 은혜를 체험한 때가 있었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를 받고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며 설교 듣는 것이 내 발걸음으로 찾아간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깊은 은혜를 깨달은 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같이 못난 죄인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주의 종을 통하여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알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보니 설교 말씀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매 시간마다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설교를 듣되 머리로 들었습니다. 그러니 설교를 비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섭리로 알 때“이시간도 하나님께서 주님의 귀한 사자를 세우셔서 내 영혼을 다듬고 계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감사와 감격이 넘쳐났습니다.

철이 없던 때는 어머니가 싸주시는 도시락 반찬이 김치밖에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철이 들고 난후면, 어려운 살림살이가운데 나를 가르치시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하는 깨달음에 어머니의 정성에 감사하며 효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깊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연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마태복음 10:29-30)라고 하셨습니다.

2. 모든 것을 자기능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자기 힘으로만 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의 마음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보면 감사한 마음이 샘솟듯 솟아나게 됩니다. 이른 봄 농부가 들판에 나가 씨앗을 뿌렸습니다. 열심히 김을 매고 가꿨습니다. 풍년이 되었습니다. 농부의 노력으로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고, 햇볕이 쪼이지 않고, 시원한 공기가 없었다면 그래도 풍년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라나는 것, 열매 맺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편 65:10~13 말씀에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열매 맺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생활필수품이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생활필수품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곡식이나, 과일, 생선 등을 사면서 물건 값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것은 물건 값이 아닙니다. 모든 물건은 값없이 하나님이 그냥 주신 것입니다. 물건을 사면서 돈을 주는 것은 물건 값이 아니라, 그 물건에 대한 사람들의 수고비입니다.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 그 많은 물고기는 사람이 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어부들이 잡아 올린 것뿐입니다. 우리들이 지불하는 생선 값은 고기 잡는 어부들의 수고비와 유통과정에서 소요된 비용을 지불 하는 것뿐입니다. 생선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무료로 주신 것입니다. 먹을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양식 값이 아니라 농부들의 수고한 대가입니다. 싹이 나고, 자라는 것, 열매 맺는 것에 대하여 농부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곡식 값은 하나님께서 무료로 주신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다른 사람보다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몫이 다른 사람보다 적다고 생각할 때 감사보다는 부평과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항상 남과 비교하려는 좋지 못한 습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나보다 더 넉넉하게 살거나, 나보다 더 성공한 사람을 보면 열등감이 생깁니다. 또 하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바라볼 때 그를 멸시하는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내 모습 이대로”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한 대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대학을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라고 했습니다. 그 대학생의 말이“대학을 다니면 뭐합니까? 서울에 있는 대학도 아닌 지방대학인걸요.”그렇다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감사하게 생각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에 소재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을 만나 물어보았습니다.“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그 학생의 대답은“서울이면 뭐합니까? S대학도 아닌걸요.”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S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여 교회에서 S대학을 다니는 학생을 불러 물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S대학을 다니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그 학생의 대답은“S대학이면 뭐합니까? 인기학과도 아닌걸요.”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S대학 인기학과를 다니는 학생을 만나 물었습니다.“S대학 그 좋은 학과를 다니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그 학생의 대답이“S대학 인기학과면 뭐합니까?”장학생도 아닌걸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교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면 감사할 여유가 없어집니다. 불만과 불평만 가득하게 됩니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한 사람의 경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88년 뉴욕 마라톤 대회가 있었습니다. 뉴욕 마라톤대회는 전문적인 마라톤 선수들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참가하는 대회입니다. 이 날 뉴욕 주립대학에 다니는‘린다 다운스’라는 여학생이 목발을 짚고 당시 신청자 32,000명과 함께 참가 신청서를 냈습니다. 일반적으로 목발을 짚은 장애자들은 휠체어를 타고 경기에 임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이 여학생에 대하여 관심을 두는 사람 없이 경기에 임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어 두 시간이 지나자 1,2,3,등이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1시쯤 되자 경기는 파장이 되어 열띠게 취재경쟁을 벌이던 방송사 기자들도 철수하고 중계하던 아나운서들도 모두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저녁 8시쯤 CBS방송국에 한 시민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지금 멘하탄 허드슨 강변의 마라톤 경주로에 한 장애 여인이 클러치를 끼고 뛰고 있는데 이 장면을 보도해야 않겠느냐?”하는 제보였습니다. 방송국에서는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저녁 8시면 “골든아워”라고 해서 하루 중에 가장 시청률이 높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방송국에서는 모든 프로그램을 다 취소하고 이 여인이 다리고 있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중계했습니다. TV중계를 보고 있던 많은 뉴욕시민들은 거리로 달려 나와 박수를 보내며 눈물로 이 여학생이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여학생은 출발한지 11시간 54초 만에 결승선에 골인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시 대통령 레이건도 전화를 걸어 축하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경주자들입니다. 믿음의 경주는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가 아닙니다. 즉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오래 참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모습 이대로” 항상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야합니다. 여기에 감사가 있고, 보람이 있고, 감동이 있고,  삶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二. 감사하는 삶에 나타나는 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 수 있다.”하셨습니다. 감사를 보아 그 사람의 신앙 인격을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

1. 감사하는 곳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하셨습니다. 기도하는 방법 중 한 가지가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형편에서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기도하며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져도 역시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속담에 “감사하는 자에게 상을 주고, 감사하지 않는 자에게 벌하는 법이 없는 것은, 감사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벌하시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2. 감사하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패망할 때 포로로 붙잡혀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달리 명철하여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총애를 받는 수석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을 시기하는 간신들이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어 사자의 밥이 되게 하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 억울한 상황을 알고 있는 다니엘은 아무 변병도 하지 않고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억울하게 죽어가는 처지에 무엇이 감사하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이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막도록 하셨습니다. 이 신비로운 기적을 지켜본 왕은 다니엘의 무죄함을 밝히고 간신들을 사자의 밥이 되게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 “황금의 입”으로 불리는 크리소스톰이라는 교회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복음을 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살고 있던 당시 로마 황제는 기독교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금령을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쉼 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크리소스톰은 채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감옥에서“하나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곳에 파송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사형 언도를 받았을 때“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죽음은 순교라고 하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했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 졌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눈물을 흘리면서“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이 할일이 더 남아 있군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감사했습니다.

3. 감사하는 곳에 건강함이 있습니다.

암은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 중 으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명중 1명은 암으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암 예방을 위해 신선한 야채를 매일 먹고, 비만을 피하고, 과음과 흡연을 피하고, 불에 탄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체내에 암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은, 몸에 정상적인 산소가 부족할 때라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불만이나 불평, 미움이나 증오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게 되면 몸 안의 정상적인 산소를 많이 소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삶, 기쁨이 넘치는 삶,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을 때 인체 내의 신진대사가 정상화된다고 합니다. 이때 면역력이 높아지고, 자연치유력을 활성화시켜 건강한 몸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교단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하루에 적어도 열두 번 이상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새날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아침식사 때는 식물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일터로 나갈 때는 살아 움직이며 일할 수 있는 건강주신 것을 감사하고,
일할 때는 삶의 보람에 대하여 감사하고,
일하면서 책망이나 압력 또는 비판을 받을 때에는 도전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칭찬을 받을 때에는 만족하여 감사하고,

점심때는 대화할 수 있는 친구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일을 마친 후에는 하루를 통해 이룬 성과를 두고 감사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정과 가족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신문과 TV를 보면서 여가의 쉼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침대에 들 때에는 잠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당시의 무감각한 시대를 비유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태복음 11:16-17)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참으로 무감각, 무감사, 무감격의 시대입니다.

이것은 세상 종말기에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디모데후서 3:1~2)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말세에 나타나는 타락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시인 워즈워드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무지개를 바라볼 때 가슴이 뛴다.
  어렸을 때에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늙었을 때에도 그러하기를,
  그렇지 않다면 죽는 것이 나을진저.”

무지개를 보고 가슴 뛰는 감격이 없다면 이제 이 세상을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는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 그리고 이 풍성한 추수감사의 절기에도 가슴 뛰는 감사함이 없다면  그것은 불신자와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딸이 반지를 잃고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낙심하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말했습니다.“얘야, 손가락을 잃지 않은 것을 감사해라. 네 손가락이 그대로 있지 않니? 만일 손가락마저 잃어버렸으면 어떡할 뻔했니? 반지야 다시 살 수 있지만 손가락은 다시 살수 없지 않느냐?”라고 위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감사의 범위는 범사입니다.
어떤 경우든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의 조건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 하시게 됩니다.
감사하는 것은 건강의 비결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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