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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의 범람 (창 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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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범람 (창 39:1-6)

1. 꿈의 상징: 요셉의 놀랍고 놀라운 총천연색 코트 ‘케토넷 파심’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노년에 얻은 아들이라 함은 요셉이 태어날 때 야곱의 나이는 91세였고, 성경-문학적인 의미로는 매우 현명한 아들을 얻었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창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1) 요셉의 놀랍고 놀라운 자긍심

아버지 야곱이 지어준 채색옷(케토넷 파심)은 마치 앙드레 김 선생님이 만든 옷처럼 "손이나 발까지 소매가 내려오고, 소매에 레이스가 달린 총 천연색 옷입니다. 사실 요셉의 형들이 이 옷을 입으면 외모 상으로나 지적능력으로 볼 때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전 재산과 인생의 지혜와 장자권을 고스란히 물려줄 것임을 단호하게 드러내는 상징이 바로 ‘케토넷 파심’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채색옷으로 인해 더욱더 자긍심이 강한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누구나 약간의 자긍심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증상이 조금도 없다면 아마도 이 사람은 자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 채 항-우울제를 투약하는, ‘인생-부작용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심각한 교만덩어리가 만져지는 사람이거나, 흘러 넘치는 우월감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치료(?)를 고려해봐야 하겠지만, 요실금처럼 찔끔 찔끔 - 약간의 자존감이, 다소간의 자긍심이, 미량의 공주병이, 소량의 왕자병이 - 흘러나와야 ‘정상-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요셉도 자긍심이 강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야곱이 대대적으로 설계한 자긍심 고양-프로젝트의 일환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의 하늘을 찌르는 왕자병은 아버지 야곱이 지어준 총천연색 코트 채색옷(케토넷 파심) 때문이었습니다.


2. 꿈의 연마 : 요셉! 과연 꿈만 꾸는 자였는가?

요셉이 과연 꿈만 꾸고, 채색옷을 입고 유행에 민감한 패션리더가 되었기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는 아무나 부르지는 않습니다.
근면함과 성실함을 일상 속에서 누적시키지 않는 자는 절대로 부르지 않습니다. 이 말은 누적된 성실함과 일상적인 자연법칙에 충실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법칙이 적용되어지고, 기적 또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팔레스타인의 목축 왕인 아버지의 부를 바탕으로 수많은 영적-교사 아래서 신앙과 학문을 전수 받았습니다. 다대한 교육으로 이룩한 요셉의 학문성에 대한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노아-우트나피시팀’ 즉, ‘노아시대의 쐐기 문자까지 읽는 녀석’이라는 뜻입니다. 홍수시대 이전 점토판을 읽을 만큼 영특하고 영민함을 나타내는 별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셉은 꿈만 꾸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꿈을 연마하기 위해 신앙으로 양육되어지고, 학문으로 준비되어진 아이였습니다. 요셉이 많은 영적-교사를 통해 배운 분과학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교육, 농사, 기후, 목축, 역사, 우주론(자연 질서의 조화), 수학(계산, 시간, 달력), 무역(계약, 물물교환), 이집트의 계산 방식, 교환가치, 왕실의 척도, 각국언어(바벨문자, 페니키아 문자, 애굽 언어 등 수 많은 외국어), 노아시대 쐐기문자, 점술, 해몽, 질병과 그 치유법, 법률, 세상의 교훈, 예절,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법 등등이었습니다.

요셉은 학습을 통해 신앙과 인문사회 교육과 언어와 기후와 경제와 살림을 마스터해 나갔습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 영혼과 육체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면서 남다른 통찰력과 기억력, 암기력을 소유한 걸출한 인물로 성장해갔습니다. ‘노아-우트나피시팀’인 요셉은 17세 까지 가정에서 배울만한 기초적인 학문은 모두 연마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꿈만 꾸는 아이가 아니었고. 꿈을 연마하기 위해 신앙과 학문으로 준비되어진 아이였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핵심 리더였던 루터와 깔뱅은 하나님을 믿음 사람들이 복음을 잘 이해해야 하지만, 동시에 복음을 전할 세상의 학문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깔뱅은 복음과 함께 헬라어, 라틴어와 같은 고대언어와 과학, 의학, 사회, 경제, 정치학에 이르는 방대한 분야를 골고루 가르쳤습니다.
주일학교의 창시자인 영국의 로버트 레이크스는 주일학교를 통해 아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힘을 길러주고, 하나님 말씀의 비밀을 발견한 아이들이 세상의 각분야에 진출하여 탁월함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했던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교회와 사회의 미래성장동력은 깔뱅과 같은 신앙과 학문을 겸비한 선생님들의 출현이며, 로버트 레이크스와 같은 교회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가교역할을 감당할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주력운동이라는 것입니다.


3. 나는 선생님이다  - 존 W. 슐레터

나는 선생님이다. 아이의 입에서 질문이 솟아오르던 그 순간에 나는 태어났다. 나는 수많은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로 존재했다.

나는 헬렌 켈러의 펼친 손으로 우주의 신비를 느끼게 해 줬던 앤 셜리반이다. 나는 모든 어린이들의 배움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마르바 콜린스다. 나는 오렌지 상자를 책상으로 삼으면서도 내 민족을 위해 위대한 대학을 세웠던 매리 맥클로이드 베쑨이다. 인류 역사의 명예의 전당 속에서 나와 똑같은 일에 종사했던 수많은 이름들이 메아리쳐 울린다. 랄프 왈도 에메슨, 레오 부스칼지아, 모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과 얼굴은 이미 오래 전에 잊혀졌지만, 그들이 심어놓은 교훈과 인격만은 그들이 양육한 학생들의 업적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선생님들 중의 하나가 바로 나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의 결혼식에서 나는 기쁨으로 울었고,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날 때 나는 정신없이 함께 웃었고, 무덤에 묻히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젊은 육체들의 죽음 앞에서 혼돈과 슬픔에 젖어 오열하기도 했다. 나는 때로는 배우가 되어야 했고, 때로는 친구, 간호원, 의사, 감독,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사람, 택시 운전사, 심리학자, 부모-대리인, 정치인, 그리고 신앙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는 모순이다. 아이들이 가장 열심히 들을 때 나의 목소리는 가장 커진다. 나의 가장 위대한 재능은 학생들로부터 감사히 배우려 하는 열린 마음에 있다. 물질적 부는 내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보물 같은 새 기회들을 찾아 떠나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멸감에 빠져 사그러져 버릴 수 있는 숨어있는 보물 같은 재능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이기도 하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행운아이다. 의사는 한순간에 이 세상으로 생명이 나오게 하는 일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 생명이 새로운 질문과 개념과 우정으로 매일 새롭게 다시 태어나도록 하는 일을 부여받았다.
건축가는 자신이 정성스럽게 지으면, 그의 작품은 몇 세기가 지나도록 무너지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러나 선생님은 사랑과 진실로 쌓으면 그가 짓는 것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는 전사(戰士)다. 매일 나는 아이들간의 알력과 부정적인 태도와
두려움과 편견과 무지와 무관심과 전쟁을 치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위대한 전우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지성, 호기심, 부모의 지원, 개성, 창조성, 믿음, 사랑, 그리고 웃음들이다. 그들은 전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나의 깃발 아래로 모여든다.

내가 즐기는 이 놀라운 삶에 대해서 가장 감사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여러분 모두이며, 부모님들이며, 교사들이다. 당신들이 영원 속에 남긴 가장 위대한 작품인 당신들의 자녀들을 내게 맡겨 준 것을 나는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나는 선생님이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독일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요셉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주역을 키우기 위해서는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학교에서는 많은 교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요셉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주역을 만들어내는 부모, 그리고 교사들이 넘쳐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21세기를 빛낼 다니엘과 같고 에스더와 같은 아들-딸들을 길러내는 교사, 이 어두운 시대에 요셉과 같은 위대한 리더를 양육하는 교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깔뱅과 같은 신앙과 학문을 겸비한 선생님들의 출현, 로버트 레이크스와 같은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주력운동이 이 여러분을 통해서, 이 새문안교회를 통해서 일어나길 기대하고 계십니다.


4. 꿈의 범람 : 보디발의 아내 줄라이카와 오페트 축제

훌륭한 가정교육과 수많은 영적-교사들로부터 실로 다대한 교육을 받았던 요셉은, 그의 재능과 에너지를 노예로 팔려갔던 보디발의 집에서 십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로 승격되었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집요한 유혹 때문에 형들이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졌던 것처럼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가정총무의 옷을 벗김 당하고 다시 한번 국사범이 갇히는 깊은 감옥 구덩이에 던져지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이 그 큰 저택에 둘만 남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창 39:11)

보디발의 아내가 벼르고 벼르든 날이 다가왔습니다. 바로 그날은 이집트의 정월 초하루였습니다. 이집트의 정월 초하루는 설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적 축제인 ‘오페트 축제’가 열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의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은.. 나일강이 범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고대 수 천년간 거의 오차 없이.. 7월 18일 무렵에 이집트의 전 국토는 나일강의 범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집트는 새해 첫 날.. 나일강의 범람으로.. 물들이 자연 제방을 넘게되고 4개월 동안 이집트 전 국토는 물 속에 뒤덮히게 됩니다. 이 때 이집트의 삼각주 전역에는 농사 짓기에 유익한 유기물과 충적토로 충만하게 됩니다.

나일강이 범람하기 시작하는 정월 초하루에 전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오페트 축제를 거행하고, 바로 이날 이집트의 파라오는 즉위식을 올리면서 자신이 이집트의 신인 것을 재확인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4개월 후가 되면.. 토지 위에 물이 모두 빠지면서 비옥하게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땅과 흙이 드러나고, 그 비옥한 땅위에서 모든 농경생활이 시작됩니다.
“나일강을 다스리는 자가 이집트를 다스린다”는 말처럼 파라오의 위대함은 물을 다스리고 땅을 보호하는 능력에 있었기에, 새해 첫날에 벌어지는 오페트 축제는 실로 성대하고 그들에게 있어서는 성스러운 축제였습니다. 파라오와 왕상장후들과 전국민이 모두 나와 축제를 벌이는 날입니다. 심지어 죽어 가는 사람들도 사람들의 손에 이끌리어 나오기 원하는 축일이기도 합니다.

5. 요셉을 범람하다

사실 이날은 장애인이나 심한 병자 이외에는 모두 나와야만 하는 범국가적으로 중대하고, 또한 의무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축제 첫날에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의도적으로 집에 남게 됩니다. 결국 나일강이 범람하는 날이 보디발의 아내의 정욕이 범람하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일강의 범람과도 같은 보디발의 아내의 정욕의 범람은 요셉의 꿈마저도 범람하게 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종들이 한꺼번에 집을 비우는 날은 정월 초하루 밖에 없었기에 보디발의 아내는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창 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0절에 나타나는 날 마다라는 단어는 "욤"을 연이어 두 번이나 쓴 것입니다(욤, 욤). 이것은 반복적으로 동침하기를 요구하는 ‘강의형 명령법’으로 집요한 강요를 의미합니다. 이는 이러한 요청이 한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행하여졌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강요하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보디발의 아내는 오페트 축제를 기점으로 해서 요셉을 취하려 했지만 끝내 거절당했고, 요셉은 가정총무의 옷을 벗김 당하고, 국사범이 갇히는 감옥 그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6. 요셉 - 엄마 라헬 닮았더라..

당시 요셉이 가정총무가 되어있던 나이는 혈기 넘치는 27세였습니다. 또한 엄마 라헬을 닮아 예쁘장하고 용모가 준수해서, 허우대가 멀쩡한 꽃-미남으로 통했습니다. 요셉의 용모 준수함과 아름다움은 당시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흠모-모드’로 돌입하게 하였습니다. 고대의 글을 보면 요셉이 여인들 앞으로 지나갈 때마다 금붙이나 패물을 던지면서 소리내어 불러 보았지만 요셉은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고 전합니다. 구체적인 한 장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느 날 이집트 상류사회 부인들이 보디발의 집에 모였다.
여주인이 상냥한 태도로 과일을 대접하고 있을 때
저쪽에서 요셉이 걸어 들어왔다.
모여 있던 귀부인들은 동요했고, 혼란스러워 했다.
그들은 너무 놀라 팔을 움츠렸다.
보디발의 아내는 숨죽이며 내뱉듯이 말했다.
“바로 이 사람이 내가 매일, 매순간 참아야 하는 그 사람이에요.”

- 요셉의 잘 생긴 외모는 이집트 상류층 부인들의 연회를
피 흘리는 연회로 만들었다고 보도한다.
귀부인들이 함께 모여 과일을 깎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잘생긴 요셉이 나타나자 모두 얼이 빠져 쳐다보다가
그만 모두 과도에 손을 베었다.


6. 결론 : 꿈의 순결(그 형통함이 우리에게도)

요셉이 정월 초하루에 왕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지속적으로 삶이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지키고, 그 육체를 순결하게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의 비전과 야망이라는 큰그릇에 은혜와 형통으로 채우시는 분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에 하나님의 비전과 후대하심을 채우시고 형통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입에 복을 주셨습니다.
악과의 키스를 거절한 요셉에게 사람들의 입술에서 존경과 찬탄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목에 복을 주셨습니다.
음란의 목을 끌어안기를 거절한 요셉에게
하나님은 바로를 통하여 금목걸이를 걸어 주셨습니다.

손에도 복을 주셨습니다.
음란한 여자를 만지지 않았던 보상으로 요셉의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사용하는 인장을 끼워 주었습이다.

다음으로 요셉의 몸에도 복을 주었습니다.
죄와 접하지 않은 몸이기에 고귀함을 주시고 최고의 자리에 앉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발에도 복을 주셨습니다.
악인의 길을 걷지 않았던 발이 왕이 타는 마차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머리에게도 복을 주셨습니다.
죄된 생각을 머리에 두지 않았던 보상으로
그의 머리에는 온갖 지혜가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나 자신과 성도님들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언행의 정결함과 심사의 흠결 없음과 몸의 순결함을 드려 요셉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길을 맛보며 걸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박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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