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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엡 4: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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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엡 4:30-32)

(엡4:30-32)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셔서 우리가 힘이 없어서 낙심할 때 조력자가 되시고, 우리자신이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망설일 때 조언자가 되시며, 우리가 낙심하여 좌절할 때 위로 자가 되십니다. 즉 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시며, 조언자가 되시며, 조력자가 되셔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살아 계신 인격체이므로 그분께 다가갈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을 신뢰할 수도 있고, 그분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을 사랑할 수도 있고, 그분을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께 슬프게 할 수도 있고, 그분께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를 기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분께 근심을 끼쳐 드릴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첫 절인 30절은 엄중하고도 강력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렇다면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이 무엇이며, 성령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1. 점진적인 성화가 이루어질 때 성령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는 말씀은 본문의 전절과 관련되어진 말씀입니다. 어떤 것이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입니까? 허망한 것과 같은 행동들, 총명이 무뎌지고 지혜롭지 못한 것, 마음이 굳어짐으로 생명이 떠난 황폐한 마음, 영적인 감각을 잃고 방탕하면서 욕망에 사로잡힌 것, 유혹의 욕심을 따라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것, 참된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 분을 내어도 해가지도록 품고 있는 것,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지 못하는 손, 선한 말을 하지 못하고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좋은 부모,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을 쫓아가게 되면 점차적으로 좋은 부모와 친구, 선생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게 돼 있습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할 때 환경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부모를 만난다는 것과 신앙생활을 하는 반려자, 신앙생활을 하는 이웃과 형제들이 있다고 하면 우리들의 영적생활은 더욱 진지해 지며, 우리의 육적인 삶도 좋은 결과들을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신앙생활의 배경보다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영적인 삶이 진지해지며 점차적으로 우리의 삶이 변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충만할 때 우리들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살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이나 감정대로 살던 사람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과 진리대로 살면 점차적으로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게 됩니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던 자들이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헛된 것을 실천해보다가 허무를 느끼며 살던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우상숭배하고 이단에 빠졌던 자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원수 맺고 분쟁하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속에 살던 자들도 절제하며 양선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게 될 때 온전한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성도가 처음 거듭날 때 성화가 이루어지는데 웨슬레의 견해에 의해서 보면 그것을 초기의 성화라고 합니다. 거듭남으로 인해서 성화의 단계에 들어섰으나 온전한 성화에 이르기 전까지의 신자의 상태를 웨슬레는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는 겸손하나 온전하지 못하며, 그의 겸손은 자만과 섞여져 있다. 그는 온유하나 때때로 분노가 그의 온유를 부숴버린다.....결국 그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융해되지 못한 것이다.”

  우리들은 전적으로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융해되는 온전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자기의 무능함을 깨닫고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삶이 되어 봉사와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온전한 성화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초기성화의 단계에서 온전한 성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점진적인 성화가 이루어질 때 성령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변화되지 않을 때 성령님은 근심하는 것입니다.

 
2. 죄성을 이기게 될 때 성령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말씀을 드린대로 온전한 성화에 이르게 되면 자기의 죄를 깨닫고 무능함을 깨닫게 되며,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령 충만하게 될 때 자신의 죄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다가 기도하면서 용서하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이 뜻에 나의 의지와 이성이 융해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죄성이 남아 있게 될 때 음행과 더러움과 호색에 빠질 수 있고, 원수 맺고 당짓고 살아가며, 술 취하고 방탕할 수 있습니다. 죄성이 남아 있게 될 때 교만하며 오래참지 못하며, 절제 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31-32절에서 보면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은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에서 벗어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쫓아 행하십시요. 그러면 죄성이 성령충만속에 녹아질 것입니다. 베드로가 초기 성화의 단계에서는 실수하고, 자기중심적이었지만 완전한 성화에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는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면서 살게 된 것을 우리들은 압니다. 욥도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될 때 전보다 더 깊은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된 것을 우리들은 압니다. 17세 때 젊은 여자를 취하여 아들을 낳을 정도로 어거스틴은 호색적이었으나 완전한 성화를 이루어 성자가 된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온전한 성화경험을 우리들도 하여야 합니다. 웨슬에는 초기의 성화단계는 불신자가 신자로 변화되는 단계로써 중생하는 단계를 말하고 있으면 온전한 성화단계는 신자가 자기의 무능과 자기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죄를 깨닫고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죄성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성령충한하여 온전한 성화에 이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성령충만하십시요!  성령을 쫓아 가십시요! 그러면 여러 성도님들의 삶이 죄성을 이기고 온전한 성화를 이루어 가며 주님을 전적으로 이루어 가게 돼 있습니다. 죄성을 이기고 성령님은 기뻐하시는 것이며, 죄성에 사로잡힐 때 성령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 때 성령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자연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의 열매인 죽음과 멸망을 얻게 되지만 영적인 것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과 평안의 것을 소유하게 돼 있습니다.

  누가복음6:44절에 보면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는 무화과와 포도나무에서는 포도를 얻게 되는 것이 법칙입니다.

① 하나님에 관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희락이라는 것은 영적근원에서 오는 기쁨을 말하고 있습니다.  화평이라는 것은 샬롬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쉼과 평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타인에 관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마크로 두미나인데 이 단어는 마크란(멀다, 길다) 말과 듀모스(욕정,분노)라는 헬라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오래 참는 것이란 남에게 학대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분노를 나타내지 않고 오랫동안 참는 것을 뜻합니다.

③자신에게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가져야 합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믿음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온유는 겸손을 말하며, 절제는 쾌락에 대한 탐욕을 극복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성령의 열배를 맺고 살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과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으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이며, 나뉠 수 없는 몸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모든 성도들을 하나 되게 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야 합니다(빌2:2).

  몸의 지체가 서로 분열되어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를 거역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리는 일이며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쫓아 행하는 자는 성령이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그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배를 맺고 살게 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열배를 맺게 되며, 서로가 하나 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안에서 성령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의 충만 함속에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며, 죄성을 이기게 되며, 좋은 열매를 맺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성령의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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