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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참된 교제 (엡 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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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참된 교제 (엡 4:12-16) 

교회의 기능은 4가지로 나눈다. 즉 말씀선포, 교육, 봉사, 교제이다. 오늘은 교회의 기능 중에 교제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한다. 교제가 없는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하나가 되지 못하면 교회는 이루어질 수 없다. 성경은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도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서 온전하게 기능을 발휘하려면 교제가 있어야 한다. 성도들은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서 주님의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있다.
그러면 성도들이 참된 교제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一) 비판을 삼가야 한다.

프랑스의 시인 퐁테너는 “이웃을 볼 때 고양이 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자기를 볼 때에는 두더지 같은 먼눈으로 본다”고 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 하는냐?(마 7:3)고 지적하셨다.
이 말들은 모든 인간은 남을 비판하기를 잘 한다는 말이다.

성도 여러분! 성도라고 해서 완전한 것이 아니다. 허물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허물들은 분명히 다른 성도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된다. 특히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믿음이 약한 자들을 볼 때 허물이 더 많이, 더 크게 보인다. 이런 경우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을 비판하기 쉽다.
그러나 성도들은 다른 성도들에게 허물이 보인다 할지라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가 다른 성도를 비판한다면 교회는 결코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의 다툼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왜 다툼이 생겨났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도들 간에 비판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추종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파당을 형성하고 다른 파당에 속한 성도들을 판단하는 일을 했다. 보통 믿음이 강하다는 자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을 비판한다.
이런 일은 로마 교회에도 있었다.
그래서 Paul은 Rome 교회를 향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롬 14:1)

성도 여러분! 성도 간에 비판을 가하면 그 교회는 교제가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판을 삼가야 한다. 다른 성도들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 물론 죄를 용납하라는 말은 아니다. 무분별한 비판을 삼가라는 것이다.

(二) 마음을 같이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부부사이다. 부부는 흔히 한 몸이라고 한다. 창 2:24 보면 하나님도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다. 참으로 부부는 진정한 교제의 전형을 보여 준다.
그런데 부부도 때로는 서로 다투기도 하고 심해지면 갈라서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하면 가장 가까운 부부도 온전한 교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갈라서고 만다면 성도들은 참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 된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진정한 교제를 나눈 교회이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행 2:46)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에 힘쓰고 성령 충만 받아야 한다. Paul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다.(엡 4:3)

그러므로 Paul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라”고 했다.(빌 2;1)
그리스도인에게는 성령이 하나이요, 소망이 하나이요, 주님이 하나이요, 믿음이 하나니요, 세례가 하나니요, 하나님도 하나이기 때문에 마음을 같이 하시기 바란다.(엡 4:4-6)

(三)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공동체가 언제나 온전한 교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주님의 공동체도 주님의 생전에는 완전한 교제가 있지 못하고 다툼이 일기도 했다. 예수님께서 구속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들을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주님의 보좌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 요청 했다. 이것은 주님의 나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들은 분명 자신들이 다른 제자들 보다 낫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주님의 친척이며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주님은 특별한 경우에는 베드로와 그들 두형제를 동행시키셨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교만해 졌던 것 같다. 결국 이 두 형제의 교만은 주님의 공동체에 분란을 가져 왔던 것이다.
막 10:35-41절을 보면 다른 제자들이 이들의 말을 듣고 분히 여겼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성도들이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다른 성도와 참된 교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기는 교만을 언제나 분란을 야기 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교제를 위하여 언제나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겨야 한다. 남을 자신 보다 낫게 여기고 섬기려 하는 곳에는 분란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Paul 사도는 “높은데 마음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하였고(롬 12:16)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다.(빌 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자세를 갖고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진정한 교제에 들어가시기 바란다.

(四) 각자 자기의 분량을 다 해야 한다.

16절 보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라고 했다. 성도들이 온전한 교제를 이루려면 각자가 자기의 분량을 다 해야 한다. 우리의 몸은 여러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체의 기능은 각각 다양하다. 손의 기능이 다르고 입의 기능이 다르며 눈, 코, 입의 기능이 다르다. 이러한 다양한 지체들이 각기 제 기능을 다 할 때 몸이 불편 하지 않으며 머리가 원하고 지시하는 바를 이루어 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각 성도들도 그 기능이 다양하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각자의 받은 은사가 다른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은 성도들이 각자가 받은 은사에 따라 자기 분량을 다 해야만 온전해 질 수 있고 주님의 뜻도 이루어 갈 수 있다.

성도 여러분! 교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님의 몸을 온전히 세우고 그것을 통해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도들 각자는 자기의 분량을 다 해야 한다. 만일 성도들이 각자의 분량을 다하지 못한다면 성도들은 온전한 교제에 들어 갈 수 없다. 몸의 지체 중 각자의 분량을 다 하지 못하는 지체가 있다면 그 사람을 지체 장애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성도 각 자가 자기의 분량을 다 하지 못하면 온전한 교제에 들어 갈 수 없고 주님의 몸 된 교회도 영적 장애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로서 각자 자기가 받은 분량대로 충성을 다 하시기 바란다.
그러므로 Paul 사도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다. (고전 4:20

(결론)

성도 여러분! 오늘 교회를 보면 다툼의 소리가 많이 있다.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할 교회에서 은혜스럽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성도들 끼리 비판하고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분량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공동의회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목사님을 영입하고 목사님을 중심으로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허물을 덮어주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각자의 분량을 다 하여 주의 일에 충성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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