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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성과 속의 하나님 (창 18:26-32, 빌 3:18-21, 요 15: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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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의 하나님 (창 18:26-32, 빌 3:18-21, 요 15:18-21)

490년 전 독일 베텐베르크에서 마르틴 루터라는 사람이 95개 조 반박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저희들이 알고 있는 종교개혁운동의 시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을 때 마다 루터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교회 개혁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면서 서양 땅에서는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당시 우리 땅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생각을 하다가 우연하게 한 보도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 보도 내용은 아마 여러분께서 관심을 안 가졌을 것 같고 저도 별로 관심 없이 대한 내용인데 지난 10월 1일 날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일본에 매장된 우리 400년 전에 조상들의 무덤을 사천시로 옮기겠다는 간략한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420년 쯤 전인 1520년 선조 왕 때 임진왜란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면서 20만이나 되는 군대로 조선을 침략해서 휩쓸고 지나갔는데 그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 명령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사람의 코를 한 개씩 베어서 가지고 와라.

그래서 조선 땅을 휩쓸고 가는 일본군들이 싸우다가 지쳤거나 넘어진 전투군의 코를 베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코를 베고 심지어 어머니가 젖을 먹이는 아이 코까지 베어서 가지고 가는데 기록에 보면 코가 썩으면 안 되니까 소금에 절여서 가죽주머니에 넣고 허리춤에 차고 다니다가 큰 통에 모아서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가져간 곳은 교토라고 합니다.

히데요시가 너무 기뻐하면서 교토에 무덤을 만들고 코 무덤 그러니까 너무 말이 흉측해서 귀 무덤 이렇게 하고 무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무덤에 묻힌 코가 126,000개입니다. 근데 히데요시가 죽은 다음에 그 옆에다가 히데요시를 기념하는 신사를 만들었는데 도요토미 신사라는 신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기록한 조선 이야기를 봤더니 조선 사람들이 이제부터 일본을 방문한 때마다 이 귀 무덤 앞에서 일본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일본식으로 코 무덤을 만들어 놨습니다. 이걸 계기로 조사를 해봤더니 히로시마에 있는 코가 18,050개가 묻혀있고 오카야마라는 곳은 3,000개의 코가 묻혀있습니다. 사실 1996년 여러 신문들이 보도를 했습니다.

교토에서 흙을 파다가 자비사로 옮깁시다. 스님이셨던 박삼중 스님이 파다가 금년 10월 달에 사천시로 이관하였다고 합니다. 처음 듣는 얘기이고 감히 생각도 못했습니다. 126,000명의 코. 이럴 수가 있었을까. 저는 이 당시 하나님께서 우리 땅에 오셨다고 신앙적으로 교회적으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선교사들이 전해주었던 복음이 이 땅에 온 것이 120년쯤 전인데 그때부터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기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전파하고 안하고 이전에 하나님이 만드신 온 땅에 자기 방식대로 역사를 하셨는데 당시 하나님이 이 조선 땅에 있는 사람들이 군화에 짓밟히는 것도 억울한데 사람의 코를 베다가 소금에 절여서 가지고 다녔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일본군이 지나간 동네는 개도 짖지 않고 닭도 울지 않았습니다. 어느 나라나 이런 비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하나님 우주를 만드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디계시고 뭐하십니까? 이때 하나님은 내 코도 베어가라. 그 코를 귀로 바꿨다 하더라고 하나님의 코도 이 땅에선 베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고통당하고 괴롭습니까? 왜 우리는 그런 사실도 모르면서 오늘 이렇게 한가히 살아가고 있을까? 루터가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던 당시 우린 이렇게 코 베임을 당하는 역사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가 복음이 아직 전달되지 않아서 당시 이 땅의 역사를 속된 세상의 역사라고 합시다.

세속의 역사. 아직 종교나 신앙의 역사가 아니라고 합시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이 땅에 코들과 함께 묻히시고 코 베임을 당하시면서 나는 이 땅에 악취나 이 땅에 향료나 냄새를 맡고 싶은데 내 코가 잘렸다.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자기가 만드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역사와 사회의 모든 모습 속에서 하나님은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너무나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향내가 난다 했는데 이젠 하나님은 코가 없으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코를 붙이십시다.

하나님이 우리보고 냄새를 맡으시고 악취가 난다고 말씀하게 하시고 아니면 향내 냄새가 난다고 말씀하게 하십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스러운 역사라고 표현하던 속된 역사라고 표현하든 아니 세상의 일반사라고 표현하든 교회에 성사라고 표현하든 간에 하나님은 어느 경우에든 계셔서 우리와 고초도 같이하시고 우리 고난도 함께 짊어지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시려고 이 땅에 역사하십니다.

어느 방식으로 하나님이 그 당시 우리 땅에 역사하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우리가 고백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계셔서 울고 계셨고 냄새를 맡으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400년이 지났습니다만 우리 땅에 이런 말씀하신거로 제가 감지합니다.

오늘 그대들한테서 하나님의 가슴에서 나오는 진실 된 아름다운 냄새를 맡고 싶다. 나한테 코를 돌려다오. 우리 땅에 있었던 세상사의 이야기. 하나님은 가슴이 아프십니다. 거룩한 이야기로 가보겠습니다.

중세기간 동안 서구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라고 자부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도 시켰고 그러나 신앙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도 줬고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욕심을 선포하기도 했고 그래서 중세가 거의 저물어 가는 즈음에 1517년 독일에 베텐베르크라 이름 하는 작은 동네에서 루터라고 하는 수도승이 나와서 반박문도 게시하고 그리고 성스러운 역사로 부름 받은 교회가 앞장서서 개혁하자 하는 이야기.

썩은 냄새를 치우지 않으면 교회는 망한다. 아니 하나님이 계속 고통을 당한다. 그래서 루터가 보기에 교회가 너무 썩어서 성스러운 역사가 너무 썩어서 하나님이 냄새를 맡을 수 가 없다. 하나님께 코를 돌려드리자. 그래서 시작한 것이 종교개혁운동입니다. 일일이 당시 역사를 살필 수 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만 말씀드리면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과 교회와 또 나라들 민족의 역사 아니 자기 실존적인 삶까지 포함해서 너무나 하나님의 은총이 감사하여 그 감사한 마음을 감동으로 표현하기보다 마지막에는 감사한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지성, 이성, 논리 이걸로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고 분석하는데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신학도 많이 나왔습니다.

교회의 온갖 곳에서 생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싸우는 이야기 위로의 이야기를 다 모아서 아름다운 신학적 필체로 잘 기록해 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모든 이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도 잘하십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은 질식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이성으로. 철학책에 보면 초기 사상의 대부라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빌려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성으로 풀고 설명하고 논리를 찾고 그래서 사람들이 당시 역사를 스콜라신학의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의 모든 축복과 모든 아픔에 동참과 새로운 생명의 능력을 이성으로 설명하는 것에 그치면서 한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 잘못이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왜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읽고 말씀으로 하여금 말씀으로 말씀하시게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이야기는 강연으로 선포되고 책으로 인쇄가 되고 사람들에게 전파됐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 원전을 성서의 말씀을 직접 접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성경 말씀이 전부 라틴말로 되가지고 보통 사람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에서 라틴말을 공부해야 성서 접하고 신부들이나 접할 수 있지. 혹시 수녀들이나 접할 수 있고 누구든 성경 말씀을 접할 수 없었습니다. 라티말로 진행되는 통에 무슨 기도를 하는지 무슨 순서를 하는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 수 있는 것은 분위기, 의식, 외형, 그러고 나서 다시 전해진 말이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받고 싶으시면 선한 일을 행하십시오. 선한 일을 하되 선교를 위한 봉사나 특별히 헌금을 많이 하시면 선한 교회 목적 위해서 많이 하시면 여러분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면죄부라 이름 하는 문서가 팔리고 융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루터가 무슨 얘기를 해서 종교개혁을 했을까? 그 말속에는 다른 것보다도 루터라는 사람이 나와서 우리의 모든 현실 속에 사람이 행하는 선한 행실이 훌륭하긴 하지만 어떻게 인간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내 죄를 내가 어떻게 사할 수 있습니까? 질문을 시작합니다. 루터의 발견입니다.

죄는 인간이 지었지만 인간이 지은 죄를 사해주시고 새로운 삶을 주시는 것은 창조주 구세주 하나님 그분밖에 없습니다. 단순 소박한 진실을 그때 발견 합니다. 선행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을 주셔야 구원받습니다. 이 사실을 면죄부 판매가 갖고 있던 비리를 통해서 루터가 깨닫습니다. 루터의 주장입니다.

이걸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진실로 깨닫기 위해서는 경험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고 어떻게 우리 가슴이 우리 지성으로 말씀하신지 성경에 가보자. 하고 가봤더니 라틴말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1년 동안 성에 칩거하면서 장군의 도움을 받아 성경 말씀을 독일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성경 번역했다는 것이 다른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듣지 말고 직접 읽고 들어봐라. 하나님을 만나되 누굴 통해서 만나지 말고 하나님을 직접 만나라. 죄지으면 죄지은 데로 만나고 용서받으면 용서받은 데로 만나고 말씀이 말씀하신다. 저는 종교개혁의 특징이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저에게 말씀하신다.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계략으로 인간의 꼼수로 하나님을 이렇게 규정하고 설명하기보다 제가 직접 말씀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 예수를 통해하신 말씀 사도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접하고 그 말씀 속에서 내가 누구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아 봐라. 이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이제 490년이 지난 오늘입니다. 속세는 속세라고 치십시다. 오늘 말씀 보면 수많은 사람이 진노를 당할 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열 명의 의인이 없어서 멸망시킬 수밖에 없다. 전부다 썩어도 하나님은 열 명만 있으면 성스러운 모습을 되찾게 해줄 수 있다. 그런데 없다. 왜 없나.

성경이 기록했는데 그 속을 파고 들어갔더니 소돔고모라에 사는 사람들이 다 타락에 탐닉하다보니 실제로 열 명쯤 되는 성인들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열 명이 없어서가 아니라 열 명은 숨어있었습니다. 역사의 뒤안길에 세속의 뒤안길에 숨어서 숨도 죽인 체 아마 들어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오늘 성스러운 교회 와서는 루터를 불러서 우리한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행으로 구원받는다는 옛날 옛적 이야기고 오늘도 행해지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은총으로 구원받는다는 얘기를 다시 선포하여라. 왜 오늘 우리가 종교개혁 된지 500년이 됐지 않습니까? 구원을 사고 싶지 않습니까? 직분으로 사고 싶은 생각 없습니까? 제 헌금과 헌물로 사고 싶은 생각 없습니까?

모든 하나님 나라 이야기나 세상 이야기를 뭔가 보상을 치루고 제가 받으면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오늘 마르틴루터가 이런 얘기합니다. 당신들은 중세기 기독교가 품은 잘못을 하나하나 들춰내고 썩어 빠진 관습 속에 비치는 인간의 비리를 구원의 길로 착각했던 당신. 오늘 당신들은 수많은 문명의 발전과 문화의 발전 중에서 오늘도 500년 전 얘기를 반복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저희들이 천주교 수녀님을 모셔서 얘기를 듣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수녀님이신데 제 생각에 천주교가 했던 엄청난 중세 비리를 비난하고 새롭게 개혁된 교회가 섰습니다. 근데 오늘 하나님은 개혁은 한때 했지만 지금은 다시 개혁 당해야 될 수많은 비리와 교회의 아픔과 교회의 착각과 교회 비난 우리 신앙의 아픔이 있습니다.

이걸 다시 깨우쳐서 새롭게 개혁해야 됩니다. 저는 이런 바람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먼저 개혁을 당했든 한 중세 기독교의 전통을 갖고 있는 수녀님한테 한번 들어보는 기회다. 하나님은 누굴 통해서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유입니다.

근데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속된 세상 속에서도 말씀하시고 성스럽다고 이름 하는 교회 속에서도 말씀하시면서 나는 냄새 맡고 싶다. 왜. 내 코를 잘라놓고 나보고 냄새 못 맡게 하느냐. 나를 어디다 가둔 거냐. 저는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신 건 코로 말씀하시고 싶다. 말씀 읽어보세요. 성경말씀에 가보시지요.

하나님은 지금 숨어 계서서 제가 만날 수는 없지만 한번 기도를 통해서 한번 얘기해 보시지요. 하나님이 저한테 말씀하신 게 뭡니까. 나한테 귀를 막아 놓은 작자들이여 나한테 코를 막아놓은 작자들이 심지어 나한테 입술에 말을 하지 말라고 테이프를 붙여놓은 작자들이여.

그러고 나서 나한테 뭘 얘기하고 간구하느냐. 루터이야기는 490년 이야기지만 오늘이야기는 다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말로 된 성경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굉장히 기쁨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문 있으시거든 말씀에 가보십시오. 직접 말씀을 읽으시고 말씀이 저한테 뭐라고 하는지 얘기해 보십시다.

만일 말씀이 얘기를 안 하면 제가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말씀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말씀이 글자가 아니라 영이라고 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으면 저는 제가 귀가 먹었거나 하나님을 귀먹게 한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우리 한국 땅에 온 기독교도 많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왜 이렇게 속세로부터 비난을 받습니까?

거룩한 공동체가 왜 이렇게 썩었습니까? 신앙이 깊다고 하는 교회가 왜 이렇게 신앙의 흔적조차 없이 메말라 가고 있습니까? 저는 오늘 종교개혁 통해서 다른 얘기보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이 직접 저희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귀 좀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냄새 맡을 코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실 입도 열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 제게 말씀하십시오. 종교개혁은 교회의 개혁은 세상의 개혁은 항상 있어야지 한때 역사적 일들로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말씀하게 하십시다. 그러면 종교개혁주일이 보람 있습니다.

뭘 말씀하실지 각자 기도로 읽는 것으로 하나님께 호소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대들의 시민권은 보이지 않지만 그대들과 함께 역사하는 하늘나라에 있다. 그 나라를 가기 위해서는 십자가라는 관문을 통하면 되는데 십자가 관문은 말씀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듣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냄새 맡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직접 나에게 말씀하게 하시는 관문이다. 십자가를 어려운 죽음의 십자가만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통하는 길 하나님이 말씀하게 하시는 길. 그 길을 십자가라고 이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를 벗어나지 마십시오. 하나님으로 하여금 말씀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을 우리의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입시다. 자유입니다. 원하시면 그렇게 하시고 원치 않으시면 하나님 귀를 막아드립시다. 입을 막아드립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숨어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통탄하면서 그러나 오늘은 하나님이 직접 여러분에게 찾아가는 귀한 개혁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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