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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려면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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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하려면 (골 3:15-17)

  요즘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많이 불평한다. 하지만 불과 30-4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삶은 모든 면에서 풍족하게 살고 있다. 당시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승용차를, 대다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고, 휴대폰도 어린 자녀들까지 하나씩 가지고 있다.

  옛날에는 제왕도, 제 철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던 신선한 과일을, 이제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가마를 타고 다니던 왕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본다면, 얼마나 부러워할까? 지금 우리의 생활은, 왕들도 부러워할 만큼 호사스럽고, 편리한 생활을 하면서 산다.

  그러나 궁색했던 옛날 사람들에 비하여, 과연 더 행복할까? 안타깝게도 현대인의 삶은 메마르고,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삶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감사가 없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행복하려면 감사에 눈을 떠야 한다.

  많이 가졌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감사의 크기에 비례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감사가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늘 감사하는 인생이 되자.

  우리 주변에는, 감사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불평불만을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그 때문인지, 과거에는 없었던 병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에 인류를 괴롭히는 10대 질병 중 하나로 우울증을 지적했다.

  2020년에는 우울증이 심장병 다음으로, 세계 2위의 질병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도 성인 6명 중의 하나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전 국민의 8%, 약320만 명이 극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며, 만병의 근원이 된다.

  우울증을 방치할 경우, 생활에 흥미를 잃어, 자기 활동을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자살로 이어진다. 우울증이 생긴 원인이 여러 가지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생활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1. 그러면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평강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화평함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과 화평하면, 놀라운 평안이 선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이 평안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다. 그래서 (골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에 심판관이 되게 하라.”는 말씀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떻게 결정 내려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하나님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의 평안’이라는 잣대를 주셨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결정은, 십중팔구 올바른 결정이다. 그러나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다시 생각하는 게 좋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평안은 중요한 근거가 된다.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평강을 유지하고, 공동체 안에 나타나게 해야 한다. 평화의 공동체가 될 때, 불안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저토록 평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된다. 그래서 평화를 사모하게 되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자 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15) 했다. 평화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서로 잘났다고 하고, 시기 질투하는 곳에는 평화가 없다.

  이 평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다. 성숙한 인간관계는 성숙한 감사 속에 있다. 감사는 우리를 깊은 관계로 인도해 준다. 원망은 사람과 사이에 벽을 쌓게 만들지만, 감사는 막혀 있는 벽을 허물고 다리를 연결시켜 준다.

  인간은 감사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성숙한 사람들은 더욱 감사하게 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곳에는 진정한 평화가 넘쳐난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된다.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집에 살고,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매일 같이 갈아입을 옷이 가득해도, 마음에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가난하며 불행하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도 기쁨의 편지를 썼다. 그런 마음 때문에, 최악의 조건 속에 살면서도,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쳤다.

(2) 감사하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다.

(12-17)까지 신앙인의 덕목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 사랑, 그리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감사를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다.

  (15下)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다. (16下)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下)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3번 말씀했다. 감사는 삶의 기본이요, 최고 강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감사하는 성도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반드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런데 감사는 겸손한 사람이 한다. 16절은 ‘감사함으로 찬양하라’는 말씀은 은혜 안에서 찬양하라는 말씀이다.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겸손하다.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 겸손하다.

  교만한 사람은 원망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한다. 하나님이 주신 성품 가운데, 겸손만큼 좋은 성품은 없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을 평가하실 때, 우리의 드러나는 은사가 아니라,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품으로 검증하신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표현하지 않는다면, 선물을 포장만 하고 주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감사를 겸손히 표현함으로,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란다.

  하나님으로부터 다윗이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고의 칭찬을 들을 수 있던 이유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전천후 감사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 따라서 사람에게 가장 큰 저주는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름이다.

(3) 감사는 아름다운 인격의 표현이며, 축복이기 때문이다.

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님 집에, 어느 날 밤 강도가 들어와,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순순히 390환을 내주면서 “여보시오. 돈을 가져가면, 고맙다고 하고 가져가야 하지 않소?” 라고 말했다.

  강도는 어이가 없어 “그래, 고맙소!”하고는 가버렸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그 강도는 붙들려왔다. 경찰은 “이 사람이 방 선생님의 돈을 빼앗았다지요?”하고 물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이놈! 너 잘 만났다, 내 돈을 뺏어가”라고 했을 것이지만, 방정환 선생님은 오히려 깜짝 놀라며

  “아니요, 나는 이 사람에게 돈을 뺏긴 일이 없어요.”라고 했다. “그래요? 이놈은 이 댁에서, 돈을 390환이나 빼앗았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방 선생님은 강도를 향하여 “아니 이 사람아! 내가 390환을 주니까, 당신은 고맙다고 하지 않았소? 빼앗았다면 고맙다고 했을 리 있소?”라고 했다.

  그래서 경찰은 포박을 풀어주고 가버렸다. 감사하는 자가 멋있지 않은가? 강도는 너무도 고맙고 감격하여, 그 후 방정환 선생님 댁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얼떨결에 시켜서 한 감사가,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는 큰 사건이 될 줄은, 방 선생님뿐만 아니라 강도 자신도 몰랐다.

  죄가 있는 곳에는 감사가 없다. 감사가 없는 곳에는, 폭력과 착취, 불만과 원망이 있다. 더 선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감사하는 말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감사는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은 인격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 원하면,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그러면 늘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풍성히 거하라(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평소에는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가다, 급하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일시적으로 말씀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해야 감사하게 된다.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안에 자리를 잡는다’는 뜻의 헬라어(ἐνοικέω)를 번역한 말이다. 말씀이 마음 가운데 자리를 잡아야 한다. 말씀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으려면,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말씀이 자연히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간다. 성경을 지적인 목적으로 공부해서는 안 된다. 삶이 되어야 한다. 말씀에 지배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게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2) 예배하는 자가 되라(16下).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였다.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은, 은혜 안에서 살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이다. 은혜를 받으면, 찬양이 흘러넘치고, 감사가 넘쳐난다.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예배하는 자가 되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지배를 상실하면, 제일 먼저 찬양이 멈춘다.

  다윗이 죄를 짓고 나서 참회의 시, 시편 51편을 지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참회하면서 주님 앞에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노래다. (시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고백했다.

  성도들이 범죄 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지 않다. 한 번 구원받으면, 그 구원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우리가 범죄할 때 잃어버리는 것은, 구원의 즐거움이다.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지만, 구원받은 기쁨, 구원받은 감격,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감사가 없어진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께 이 즐거움을 거두어 가지 마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다윗은 (14-15)에서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 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 하리이다.”라고 하였다. 구원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지 말아 달라고 기도 한 후, 자신의 입술로 주님을 다시 한 번 찬양하고 싶다고 한다. 입술로 주님을 찬송하며 살겠다고 열망하였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찬양을 잃어버린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성령 충만한 상태다”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성경학자 F.F. 브루스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의 초점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있다. 감사가 시로 표현되었다. (시95: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찬미의 본질은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라는 고백에 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다, 사랑이 많으시다. 이런 고백은 모두 찬미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다.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 분이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 이런 표현들이다.

  신령한 노래의 본질은 간증이다. 간증은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참된 찬양은 주님의 은혜가 감사한 것을 묵상할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주님을 찬양하려면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묵상하시기 바란다. 이처럼 주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라.

(3) 어떤 입장이든지, 예수님을 생각하라(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주 예수를 힘입어(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예수님이라면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을까?”를 생각해 보면, 감사하는 삶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를 배울 수 있다. 예수님은 이런 4가지 경우에도 감사하셨다.

① 조그만 것이라도 감사하셨다.

오병이어의 이적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어린아이의 도시락,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어야 할 상황에, 작은 분량이지만 감사하셨다. 그때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만 보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비교하다가 불행하게 된다. 작은 것을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감사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예수님의 감사에서 배울 수 있기 바란다.

② 실패 속에서도 감사하셨다.

예수님은 전도 여행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수모와 멸시만 돌아왔다. 수고한 결과에 비해서, 열매가 너무 초라했다. 그들이 영접하지 않았을 때 화가 있으리라고 했지만, 곧 감사하셨다.

  (마11:25-26)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어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아이들이 주님을 받아들인 것이 감사했다.

  큰 비중을 두고 애쓴 일이, 뜻대로 안 되어서 가슴 아팠지만, 부스러기 은혜로 아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일이 감사하였다. 이렇게 실패 중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으셨다.

③ 슬픔의 자리에서도 감사하셨다.

  예수님은 바쁜 사역으로,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 그의 무덤 앞에 도착하셨다. 나사로의 몸에서는 이미 냄새가 났다. 주님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시며, 슬픔의 눈물을 흘리셨다. 사람에게 죽음은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절망을 의미했다.

  그런데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시고, (요11:41)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하며 아버지께 감사했다. 초상집에서 금기시되는 언어, ‘감사’를 주저 없이 사용하셨다. 죽음 후에 부활이 있고, 죽음 후에 영생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기에, 슬퍼할 일이 아님을 아셨기 때문이다.

④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감사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도 감사하셨다. 젊은 나이에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다면, 감사함이 생길 리가 없다. 죽음의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것도 죄인들이 당하게 되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감사하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런데 주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눅22:17)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눅22: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눠 주시며 감사하시고, 또 감사했다. “이는 내 몸이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피다 받아 마시라.” 하시며,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감사하셨다. 죽음을 앞둔 감사는 오직 영생에 대한 확실한 소망,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생애 모두를, 감사로 연결하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셨다. 감사의 씨앗을 심는 사람만이, 더 큰 감사의 열매를 거둔다. 이것이 믿음의 법칙이고, 예수님은 삶으로 보여 주셨다.

  결론이다. 고양이가 많다고 불평하면, 머지않아 생쥐가 많다고 불평해야 한다. 행복하기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탈무드는 말한다. 감사를 배우시기 바란다.

  어떤 사람은 장미를 보고 왜 가시가 있느냐고 불평하지만, 어떤 사람은 가시 중에도 장미가 피는 것을 감사한다. 우리는 불평하는 사람인가? 감사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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