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꿈을 이룬 사람 (창 41:1-45)

  • 잡초 잡초
  • 705
  • 0

첨부 1


꿈을 이룬 사람 (창 41:1-45)

I. 천국의 진주문

창세기 40장 마지막 절과 41장 1절 이 한 절 사이에 만 2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셉에게는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었고 하나님은 요셉을 위하여 부지런히 뭔가를 준비하셨던 시간들이 성경에 생략된 채로 한 절 사이에 2년을 흘려보냅니다.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요셉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며 나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40장 마지막 부분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기억이란 자카르의 모티브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왕에게 아뢰어 기억되게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요셉은 잊혀졌습니다. 40장 마지막 절 "그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요셉을 잊었더라"는 말씀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한마디 다음 2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2년 요셉에겐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웠던 2년이었습니다. 억울하고 한편 서운하고 배신감에 몸서리 쳐야 했던 긴 2년이었습니다. 그 2년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요셉을 잊은 적이 없으셨습니다.

요셉은 자기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품안에서 쉬고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아파하는 어간이었지만 하나님의 손안에서 지금 때를 기다리고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자카르 2년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요셉이 기억되어선 안되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감옥에서 요셉이 나와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의 모든 꿈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지요. 바로가 꿈을 꾸고 요셉을 부르는 그날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고통 중에 기다리게 하실 땐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삶의 상황이 감옥이라고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간다고 답답해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때에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 보다 하나님이 작정해 놓으신 때에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확실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방법으로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때에 아름답고 영광스런 방법으로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최상의 성취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에 가면 열 두 대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승리의 면류관 쓰고 그 문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 문이 진주로 되어 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조개 한 마리가 먹을 것을 찾아서 입을 벌리고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날카로운 모래알 하나가 조갯살에 와서 박힙니다. 어리석은 조개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살이 썩어 들어갑니다. 모래사장에 빈 껍데기만 내동댕이쳐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혜로운 조개는 호르몬을 흘려보냅니다. 조개에 피를 흘려보냅니다. 하얀 피가 그 날카로운 모래를 감싸고 감싸고 오랜기간 동안 노력과 각고의 몸부림 가운데 영롱한 진주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 진주문에 들어서기까지 많은 아픔과 고통의 피를 흘려 진주 조개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꿈을 이루기까지,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앙이 성숙되는 아름다운 모습의 자리까지 우리는 진주 조개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2년 요셉은 영롱한 진주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II. 준비하시는 하나님

창세기의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으로 등장합니다. 천지창조를 보면 인자한 한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유산을 준비하듯이 꼼꼼하고 섬세하게 준비 해놓고 마지막날에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에덴 동산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모리아산 언덕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나타나신 자신을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얼굴은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 엄청난 요셉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을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셨을까요? 먼저 하나님은 13년동안 요셉을 당신의 그릇으로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실 그릇으로 준비해 주셨습니다. 야곱의 가족을 구하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건국하시기 위해 요셉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굽과 가나안 땅에 극심한 기근을 치유하기 위한 치유자로 요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꿈을 주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넉넉한 성품의 기름을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란 인물을 당신의 그릇으로 다듬고 또 다듬어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 다듬는 어간 요셉은 만져지는 순간 아픔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고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때로는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울어야 했던 긴긴 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하나님이 요셉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1절 "바로가 꿈을 꾼즉" 하나님은 바로 왕을 준비하셨습니다. 애굽사람들은 히브리 사람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그들과 함께 밥 먹는 것조차도 부정하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애굽을 다스리는 왕이 애굽인이었다면 애굽을 절대로 국무총리로 등용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무렵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역사의 무대에서 펼쳐주셨습니까? 힉소스 왕조가 애굽을 침공해 들어가서 애굽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바로 왕은 애굽 사람이 아니라 힉소스 족입니다. 오히려 요셉이 히브리 사람이었지만 국무총리로 등용되는 데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바로 왕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꿈이 너무 생생했습니다. 잊혀지지 않습니다. 숫자까지 정확하게 기억됩니다. 무엇인가 의미심장한 뜻이 있다는 것을 그는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나라에 심각한 문제가 밀어닥친다는 것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는 혼자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진지하게 이 문제를 대면하기 시작합니다.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다 불러서 이 꿈이 무엇인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8절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꿈 해석이란 수학공식처럼 꼭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점쟁이라면 짐작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점술가들이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꿈이란 것은 적당히 짐작해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떤 한 점쟁이가 "폐하, 이것 참 좋은 꿈입니다. 기가 막힌 꿈입니다. 살찐 암소가 올라오고 충실한 이삭이 올라왔다는 것은 임금님의 성은을 입어서 온 국민이 임금의 은덕으로 태평성대를 누린 다는 뜻입니다. 삐쩍 마른 소도 먹을 게 있지 않습니까? 삐쩍 마른 곡식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임금님 성은이 암소고기로소이다." 이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간섭으로 점쟁이들의 생각을 막아버립니다. 입을 봉해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술 맡은 관원장의 2년동안 중지되었던 자카르 - 기억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를 형장의 이슬로 보내고 자기 자신은 복직되었던 그 감격의 날을 어찌 잊을 수 있었습니까? 그러나 잊어버렸습니다. 문득 2년만에 바로 왕이 꿈을 꾸자마자 기억상실증이 치료되어지는 것입니다.

9절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요셉이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탁하지 못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하신 것이었습니다. 요셉을 2년동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모든 사건을 준비하시고 그 기억상실증을 하나님께서 치료하십니다. 바로에게 드디어 요셉을 소개할 수 있도록 자카르를 회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생각을 멈추게도 하시고 인간의 기억을 되살려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때에 방법에 그 꿈을 이루시는데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보십시요. 하나님은 모든 상황, 모든 역사를 준비하시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정확한 때에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드디어 감옥에서 요셉을 불러내십니다. 잊혀진 요셉.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잊은 적도 없고 떠난 적도 없고 버린 적도 없었습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요셉의 꿈을 보호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III.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때는 바야흐로 하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14절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내 종 요셉 훈련기간 끝났다. 옥에서 내어 놓아라! 하나님 말씀하시니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하나님이 내어 놓아라 말씀하시는데 이 세상에 그 어떤 권세자가 그 어떤 힘있는 자가 요셉의 방해꾼들이 요셉의 걸림돌들이 요셉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할렐루야.

요셉 드디어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앞에 자신의 무죄를 알아 달라고 애원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예언자로 당다히 바로 앞에 선 것입니다. 바로 임금의 스승으로 나온 것입니다.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치유자로 해결자로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바로가 초조해 하며 15절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이어지는 16절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샬롬을 대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는 요셉에게 신통력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꿈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미래에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에 불과합니다. 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God is the kdy! 하나님이 열쇠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얽히고 설킨 문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 하나님이 하셨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일도 하나님이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IV. 네가 대안이다

바로는 요셉을 앞에 두고 해석을 요구하며 자신이 꾼 꿈을 한번 더 자세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성경 저자는 이 내용을 이미 점술가들 앞에서 바로가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앞에 두고 한번 더 설명하는 내용을 상세하게 같은 장에 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두 번씩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TV 드라마 한편을 봐도 템포가 빨라야 재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재미가 없지요. 성경을 기록한 저자의 머리가 나쁜 것 같아요. 살짝 요약하고 넘어가면 될텐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저자의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읽는 모든 독자로 하여금 바로가 꾼 꿈을 자세히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 꿈을 요셉이 어떻게 해석하는가 섬세히 보라는 것입니다. 그 꿈이 역사의 현장 속에서 어떻게 꼼꼼하게 정확하게 이루어지는가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 속에서 답답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성경을 읽다가 템포가 늦어져서 지루하게 느껴졌다 할지라도 텔레비전 채널 성경으로부터 돌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관찰하십시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연구하십시오. 그 말씀을 삶속에 적용하십시오. 그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정확하게 이루어지는가 주목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의 꿈은 나일강에 서서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암소 7마리가 유유자작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바싹 마른 보기 흉한 암소 7마리가 앞서 나와 풀을 뜯고 있는 암소 7을 잡아먹었습니다. 깜짝 놀라 잠을 깼습니다. 어렵사리 잠을 청해 잠이 들었는데 꿈이 꾸어집니다. 살찌고 포동포동하게 영글은 7이삭이 솟아 있었습니다. 기쁨의 얼굴로 그 이삭을 바라보고 있는데 동풍에 바싹 마른 7이삭이 나오더니 그 이삭들을 삼켰다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해석은 "폐하 꿈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7년동안 큰 풍년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유혹일 수 있고 위기일 수 있습니다. 잘 살다보면 흥청망청 교만해 지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보내다 보면 이 나라가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 후 7년동안 무서운 흉년이 들게 될 것입니다. 이 흉년을 잘 대비하셔야 합니다. 너무 많은 곡식을 저장한다는 것은 위험이 있습니다. 관리 방법에 문제가 있고 너무 많은 곡식을 저장하면 값이 떨어져서 시장경제가 흔들려집니다. 1/5씩 창고를 지어 저장방법을 잘 연구해서 저장하시면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시면 좋겠습니다. 임금님께서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꿈을 꾸신 것은 신속하게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금년부터라도 빨리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대답을 했습니다.

바로 임금은 요셉에게 꿈 해석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해석을 뛰어넘습니다. 대안을 제시합니다. 정확한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교육의 문제, 이 사회에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 정치와 경제의 문제들,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침체의 문제들, 우리 자녀의 문제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당하는 온갖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비판하고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대안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단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비판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대안을 말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네가 앉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네게 준 꿈의 그 자리에서 네가 대안이 되라는 것입니다. 네가 대안이 되거라. 한국교회 전도의 문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고? 네가 네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전도의 대안이 되거라. 한국교회 소그룹이 죽어가고 구역이 죽어가고 있다고? 네가 셀교회 비전을 가슴에 품고 셀을 번성케 하고 한국교회 대안이 되거라.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이했다고? 너희 교회가 이 민족교회 대안이 되거라. 세계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세계 선교가 큰 어려움에 빠졌다고? 한국교회여 너희들이 세계 선교에 대안이 되거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대안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대안이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V. 아! 꿈이 이루어지다

요셉의 해석이 아직 이루어진 것 아닙니다. 앞으로 14년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와 모든 신하가 감동을 먹었습니다. 앞으로 7년동안 대풍년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7년 대흉년이 올 것도 알았습니다. 이제 각료회의를 열고 대책을 시작하면 됩니다. 철학자들 가운데 정치가들 가운데 경제가들 가운데 꼼꼼한 사람을 선택해서 이 문제를 맡기면 됩니다. 그러나 바로가 성경에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느냐. 너처럼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겠느냐? 네가 이 나라를 다스리라.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리라. 할렐루야. 요셉의 꿈이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하신 것입니다.

모든 실권을 준다는 의미로 임금의 손에서 인장 반지를 빼서 요셉의 손에 끼워줍니다. 어인을 요셉에게 맡긴 것입니다. 총사령관의 옷인 세마포 옷을 입혔습니다. 계급장을 달아줍니다. 금 사슬 목걸이를 걸어줍니다. 임금의 전용 자가용 두 대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두 번째 좋은 것 버금수레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요셉이 등장하자마자 모든 각료들이 그 앞에 소리지릅니다. 어이 총리대신 납신다. "엎드리라"

얼마나 감동적인 순간이었을까요? 꿈속에 그리던 역전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17세 어린나이에 꿈을 꾸었습니다. 13년 동안 인간으로 차마 겪기 어려운 고난과 모욕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이 30에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주신 선물 중 최고의 기쁨은 성취의 기쁨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꿈을 꾸는 자에게 주시는 최고의 보상은 성취의 환희였습니다. 꿈이 이뤄지는 순간 지난 모든 과거는 새롭게 해석되어집니다. 모든 상황은 하루 아침에 역전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당한 고난과 고통은 오히려 악세사리처럼 빛이 났습니다. 풍년을 관리하는 일, 흉년의 대책을 세우는 일 아무도 맡을 사람이 없다. 네가 맡아라. 네가 온 땅을 다스려라. 이 얼마나 감동입니까? 요셉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 오고 가는 세대에 사람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장면입니까?

VI. 꿈을 이뤄주신 이유가 있다!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 바로는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라 하는 애굽식 이름을 줍니다. 그리고 당시 명문가문 보디베라 제사장의 딸 아스낫과 혼인을 시킵니다. "사브낫바네아"란 "네가 세상을 살리라"는 뜻입니다. 죽어 가는 세상을 내가 살린다. 병든 이 세상을 내가 치료한다. 넘어진 이 세상을 내가 일으킨다. 사브낫바네아란 이름을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축하잔치가 끝날 무렵 성경은 짧막한 한 절을 기록하며 오늘 본문의 막을 내립니다. 오늘 밤에 공부하게 될 46절에도 동일한 말씀으로 문을 열고 있습니다.
45절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46절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꿈을 이룬 성공의 자리 그곳은 주저앉아 있어야 될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나 혼자 누리라고 주신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완성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총리대신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오른 이유는 세상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치유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임을 요셉은 알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가운데 꿈이 이루어졌을 때 그 보람이 얼마나 컸을까요? 땀 흘린 수고 눈물로 참아왔던 기나긴 지난날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요? 극본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 극적인 반전이 내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그의 가슴이 얼마나 뛰고 또 뛰었을까요? 어찌 노예로 팔려온 양치기 소년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갇혀 있던 죄수가 하루아침에 국무총리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청년의 유혹을 이기며 살아왔던 외로운 젊은이가 결혼을 했을 때 가정에서 누리는 안식이 얼마나 달콤했을까요? 종살이 감옥살이가 지난 13년의 전부였던 젊은이가 왕궁의 향연과 수많은 사람의 아부와 축하 그것들이 얼마나 황홀했을까요?

그러나 요셉은 거기에 도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곁에서 권력에 중독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꿈의 성취는 나 개인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바로 앞을 떠나 온 땅을 순찰하니라. 구체적으로 섬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땀 흘리며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요. 요셉이 꿈을 이루어 가는 그 성품도 아름다웠지만 꿈을 이룬 다음 나타나는 성품은 더욱 빛나고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고난 중에 겸손하고 기도하던 사람이 성공한 다음에 밥술이나 먹고 돈 꽤나 만지면서 기도를 중단하는 사람들, 초라한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나라 내 백성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처하는 지혜는 있었지만 성공과 부에 처하는 지혜가 모자라 꿈을 이룬 다음에 꿈에 안주하다가 초라한 성품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총리대신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그 자리를 통하여 그 영광스런 권세를 통하여 그가 가진 인재, 결재, 반지와 어인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요셉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재물을 주셨으면 재물에 걸터앉아 나 혼자 누리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살리라. 세상을 치유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많이 배우게 하셨습니까? 학위가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자리가 꿈입니다. 그 자리가 전부입니다. 학위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꿈을 이룬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것이 목표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교회 직분이 목표가 아닙니다. 직분을 받았으면 그것을 통하여 이루고 싶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비전 채플이 목적이 아닙니다. 비전 채플을 통하여 이 민족을 살리고 한국교회를 살리고 세계 열방을 살리는 하나님의 그 다음 목적이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공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도구에 불과합니다. 과정에 불과합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여 그대는 사브낫바네아가 되라.

당신의 꿈을 이루어주신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은 요셉처럼 그 이유가 보이십니까? 그 이유를 알고 살아가십니까? (류영모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