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17)

  • 잡초 잡초
  • 734
  • 0

첨부 1


본문: 골로새서 3: 15-17
제목: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사람을 잘 관찰해보면 사람들을 보통 세가지 성향을 가지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로 습관적으로 불평이나 원망의 말이 입에 가득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매사가 부정적입니다.  뭘 잘해줘도 불평이고 은혜를 받아도 감사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불평이 가득합니다.  둘째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으며 감사와 찬양과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잘 되는 사람들을 보세요..한결같이 입술이 긍정적이고 할 수 있다는 믿음가운데서 “나는 할 수 있습니다..나는 행복합니다.”하고 외치며 선포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겁니다.  셋째로 때로는 불평하고 때로는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다시말해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감사도 나오고 불평도 나오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사람일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과연 이중에서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불평의 사람도 아니고 조건적인 사람도 아니고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사람이 사람이 되기를 기원드립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아세요?  왜냐하면 우리가 감사해야 감사할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대로 우리가 입술로 선포한대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대로 내 인생이 만들어져는거에요...내 인생이 지금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왜요? 내가 지금까지 “나는 행복하다..나는 평안하다. 나는 잘될것이다..”하면서 입술로 시인하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나는 불행하다...내 인생은 버림받았다..나는 망했다..” 여러분! 이런말이 입에 달려 있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보셨습니까?  여러분! 남에게 가서 구걸이나 하고 얻어먹는 사람들 치고..“나는 행복하다”...“나는 감사하다”.“나는 복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없습니다...왜요?  인생이라는것이 다 말한대로 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가 말할 때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떤 말을 쓰느냐가 중요한것입니다....저는 그런면에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리 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요즘 학생들 말하는것을 보세요...욕이 아니면 말이 안통해요...남 욕하고 비방하는 말은 가르켜 주지도 않았는데도 아주 기가막히게 잘합니다..그런데요...남 칭찬하고 세워주고 격려해 주라고 하면 어떻게 할줄을 몰라요...왜요?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못하는것입니다..그러니 앞으로 희망이 있겠습니까?..사실 이것도 부정적인것인데... 그래도 희망이 있는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축복의 말, 감사의 말, 찬양의 말, 믿음의 말로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가장 불행한 인생은 불평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요...불평인생이다보니 세상 모든 것이 다 불평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밥상을 쳐다보아도 불평이 보이고, 자녀들을 보아도 못 마땅하고, 공무원을 보아도 정치인을 보아도 사회 구조를 보아도 불평만 가득 보입니다. 심지어 교회도 못 마땅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불만이 가득합니다.  말만했다하면 불평이에요...그러니 옆에 사람들이 붙겠습니까?  사람이 없으니 더 불평하고 또 불평하니까 또 불평할 일이 생기고...그게 불평의 악순환이라고 하는것입니다....그래서 불평은 불평을 낳고...원망은 원망을 낳는거에요...
자 그러면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불행한 사람이 불평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행복한 사람은? 네!!맞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에요..감사인생은 아무도 감사하지 않을 때도 감사거리를 찾아냅니다.  입술에 언제나 감사가 매달려 있습니다. 감사인생의 눈에는 감사할 요소가 너무나 잘 보입니다. 가족을 보면서도 감사하고, 날씨를 보면서도 감사하고, 세상 돌아가는것을 보면서도 감사하고, 교회에서도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감사의 내용이 너무 많고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어떻겠어요...? 늘 감사하다보니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얼굴도 항상 밝지 않겠습니까? 옆 사람 얼굴 보세요...그렇게 보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감사인생을 살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또한 그렇게 살다보니까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모여들 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그리고 모이니까 좋은일도 많이 생기고...또 좋은일이 많다보니까 더 행복해지고...뭘 하더라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항상 감사가 입술에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대머리도 감사할 조건이 있다는 글이 있더라구요...저도 요즘 머리가 빠져서 고민이 많이 되는데 이 글을 보고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습니다...자 그러면 대머리를 통하여 감사할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로 대머리는 여성에게는 거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여성은 내가 여성으로 태어나서 대머리가 안될 확률이 많음에 감사해야 합니다...한번 생각해봐요...권사님이 대머리라..어때요? 어울립니까?  사모님이 대머리라..안 어울리잖아요....여성분들은 대머리가 안됨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대머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왜요? 하나님께서 이쁘다고 사랑스럽다고..매일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니까 대머리가 됐다는거에요..셋째로 대머리치고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감사해야합니다..여러분 대머리로 구걸하는 사람 보신적 있으세요..? 저는 아직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네번째 비교적 목회자들이나 학자들이 대머리가 된 다는겁니다..그 능력많던 엘리사도 대머리였고 최고의 하나님의 종이었던 사도 바울도 대머리였습니다....여러분의 목사도 속알머리가 없는 목삽니다...할렐루야...!제가 이래뵈도 엘리사와 사도 바울과 동급입니다..다섯째 대머리로 감사할 조건은 비누, 샴푸, 물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어서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다 세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가뜩이나 워낙 바쁘신분인데...그런데 머리가 없으니...아주 편합니다...그렇다고 머리를 뽑지는 마세요...그냥 있는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그래요...어찌보면 불평할 조건이지만 또한 어찌보면 이게 정말 큰 감사의 제목입니다.  불평하면 불평할 꺼리요...감사하면 감사할 꺼리인것입니다..어떻게 보느냐..어떻게 생각하느냐..그리고 어떻게 그것에 대해서 말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는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감사가 넘치는 감사인생입니까? 아니면 불평으로 가득찬 불평인생입니까? 여러분들의 입술은 감사로 충만합니까? 아니면 불평으로 충만합니까? 오늘 이시간부터 모두다 감사로 충만한 입술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을 드립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사람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그게 뭐겠습니까?  사는것도 같아요...먹는것도 같아요...환경이나 조건은 다 똑같습니다...그러나 다른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어떠한 환경가운데서도 감사할 수가 있다는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이제 내일이면 심판을 받고 즉결처형을 당할 지경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이럴때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이제 내일이면 꼼짝없이 죽어야되요...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죽음앞에서 두려워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것입니다...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다시말해 하나님앞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는거에요...“하나님 감사합니다...복음증거하다가 이렇게 고난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모든것이 하나님의 뜻에 있사오니 하나님 다 알아서 해주세요...다만 우리들은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 말을 정리해서 한마디로 요약하면...“성도는 범사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사람이다...” 여러분! 감사는 성도의 본래의 모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감사할 이유밖에 안보이는것입니다.
  인도에서 활동하던 선교사가 귀국하여 선교보고를 합니다. 선교 중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감사하였습니다. 그때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말합니다.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인도의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 같은데, 제가 인도에서 사업을 수년간 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교사는 대답합니다. “한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혹시 선생님은 인도에서 호랑이를 보셨습니까?” “그럼요. 제가 호랑이 사냥을 좋아하여 저의 집에도 호랑이 가죽이 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호랑이를 보기도 하고 잡기도 하셨다고 하지만 저는 인도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도 호랑이를 한 마리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말입니까?  결국엔 어느 것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호랑이에 관심이 많으니까 호랑이밖에 안보이고 믿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니까 믿는 사람밖에 안보이는거에요....감사할 조건에 관심을 가지면 감사할 조건밖에 보이지 않고 불평할일에 관심을 가지면 불평할 일밖에 보이지 않는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지금 최고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눈에 보이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눈에 보이는 유목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눈에 보이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눈의 망막을 통하여 사물을 본다고 합니다...바로 이 망막이 감사와 기쁨으로 바꾸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을 드립니다. 
  여러분! 감사는 조건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감사는 바로 마음에서 시작되는것입니다...마음에 감사함이 있으면 세상것이 다 감사할 것으로 보이고 마음에 불평이나 원망이 가득하면 세상이 다 그렇게 보이는것입니다...그러므로 지금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한 눈이 바로 내 마음의 모습이라는것입니다...그 마음을 감사의 마음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은 오늘도 바로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꿀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이 명령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까?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왜냐하면 더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더 큰 감사를 불러들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는 반평생을 병으로 살았습니다. 폐결핵, 척추카리에스, 습진, 파킨스병, 암 등 갖가지 질병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통 속에서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지은 “아프지 않으면” 이라는 시의 내용입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뵈지 못할 거룩한 얼굴이 있다. 아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 없다.”
그녀는 오히려 아픔이 있었기에 기도할 수 있었고, 노래할 수 있었고, 믿음이 생겼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아파 누워 있는 병실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주위의 환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을까?” 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나는 아프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기쁨을 보여 주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병실에 있으면서 절대로 원망이나 불평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사가 오면 고통 중에도 부드럽게 웃었고, 옆에 있는 환자들을 오히려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병주머니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든 감사를 드렸습니다.
  신앙인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내게 뭔가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것이 아닙니다.  없어도 감사할 수 있는게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의 감사는 내가 평안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감사는 고통과 슬픔과 아픔 속에서 하는 감사입니다.  소말리아나 방글라데시, 그리고 북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려 죽지 않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그것은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왜요? 우리도 가난하게 되면 그때 가서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든 어떻게든 조건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모든일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무엇이든지 감사를 드렸습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즐거워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보고 비교하면서 내가 우위에 있다고 드리는 상대적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무엇이든지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감사하는 자의 어려움은 반드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감사하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  감사하면 감사하는 그 인생이 살기때문입니다.  감사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일본의 파동학자인 에모도 마사로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라는 책에서 감사가 얼마나 우리에게 유익한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물을 가지고 실험을 했어요...먼저 물에다가 심한 모욕의 말을 합니다...그러면 물의 결정체가 흉하게 깨어져 그 모양이 형편없이 변합니다.  그리고 그 물에 악마라는 글씨를 써서 붙이면 결정체가 흉하게 깨어져 그 모양이 완전히 악마처럼 변하는데 중간이 뻥뚤려버립니다.  그런데 물을 보고 ‘고맙습니다.’ ‘감사 합니다’ 라고 말하니까 물의 결정체가 아름다운 육각형을 띠더라는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너를 사랑해’라고 하니가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로 물의 분자가 변했다고 합니다.  이게 책에 사진으로 다 나왔습니다...여러분 우리 몸은 70%가 수분으로 되어 있습니다..거의 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겁니다...그러면 한번생각해보세요.. 에모도 마사로의 실험처럼 물이 다양한 말에 반응을 했다면 과연 몸의 70%이상이 물로 구성된 우리의 몸은 어떨까요? 전혀 관계가 없을까요? 아니면 많은 영향을 미칠까요?  여러분!  기분나쁜 소리가 있고 기분 좋은 소리가 있지요?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좋아요..나빠요? 좋습니다...“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훌륭하십니다...사랑합니다..” 듣기 좋아요..나빠요? 좋습니다...그러면 “당신은 정말 못생겼어...당신 재수없어..당신은 망할 팔자야...” 이게 듣기 좋은 분이 있다면 정신병원에 가봐야 합니다...그래요..이게 무슨의미입니까?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라 내 몸에 유익한 말이 있고 유익하지 않는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익하지 않는 말을 듣고사니 그 인생이 어떻게 되겠어요...몸도 안좋고..생활도 안되고...그래서 범사가 엉망이 되는것입니다...그러나 감사의 말과 사랑의 말을 많이 듣고 살면...그게 능력이 돼서 건강해지고 더 행복해지게 되는것입니다...
자 옆사람에게 한번 해봅시다....사랑합니다...당신은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훌륭하십니다...
  장애우로서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사람중에 송명희 자매가 있습니다. 저도 한번 직접 만나본적이 있는데 정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자매였습니다....태어날 때부터 온 몸이 꼬여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온갖 고통을 겪어야 할 정도인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수많은 찬양시를 썼습니다. 그 가운데 ‘나’ 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 이상을 못 가졌지만 예수님이 그녀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남이 갖지 못한 것이 내게 있고 내가 가진 것이 남에게 없는 것이 보여지면서 오히려 “주님, 나는 세상 사람이 가진 것 없어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감사합니다.” 라고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우리가 예수안에 있을때에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실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틀러는 찬송가 495장에서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라고 일찍이 감사 찬양을 드렸습니다. 높은 산도 문제가 되지 않고, 거친 들도 문제가 되지 않고, 초막에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음은 예수님 때문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떠한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진 것은 환경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십시오” 의 기도보다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 고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면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불행은 감사를 모르는 데 있고 모든 문제는 감사를 잃어버린 데 있습니다. 그러기에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불행한 일이 오고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생기지만,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들이 계속 생깁니다. 그러기에 감사가 죽으면 모든 것이 죽고 감사가 살면 모든 것이 살아남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디 무엇이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듯 이번 추수감사절을 통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