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눈을 어둡게 하는 뇌물 (출 23:6~9)

  • 잡초 잡초
  • 374
  • 0

첨부 1


눈을 어둡게 하는 뇌물 (출 23:6~9)

얼마 전 발행된 한 신문 사설의 일부입니다. “지금 대선판은 지저분하고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미 국민의 마음속에서는 폐기되거나 지워졌던 인물들이 등장해 큰소리치는 광경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두려워하기는커녕 이참에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떠들고 있다. 도대체 그들에게 회복할 명예가 있기는 한 것인가. 부패와 비리를 저지르고 정치를 오염시킨데 대해 반성하고 칩거해야 할 마땅한 자들이 말이다......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쓰레기들이 물이 일렁이니 물 위로 뜬 현상이다. 정치인이란 사람들은 세력을 따라 부평초처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는 게 일이라지만 이것은 너무하다.” 

한 언론인이 오늘의 현실 정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정치, 경제, 사회가 과거의 부패와 부정을 정확히 집고 넘어가지 않았던 우리의 태도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보다 선진화되고 성숙한 정치문화, 경제문화, 기업문화가 쉽게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 살고 있습니다. 

2007년 국제 투명성 기구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부패인식지수(CPI)에 있어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1점으로 조사 국가 108개 중 43위에 올라있습니다. 이는 2006년 국가별 순위 42위에서 한 단계 내려간 것입니다. 부패인식지수란 기업인과 국가 분석가들이 바라본 국가 공공 부분 부패정도에 대한 인식입니다. 0점에서 10점까지 환산한 수치인데 부패정도가 심할수록 그 점수가 낮습니다. 3점대 이하는 전반적인 부패상태, 7점대 이상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를 말합니다. 덴마크, 핀란드, 뉴질랜드가 9.4점으로 공동 1위였습니다. 싱가포르가 9.3점으로 공동4위, 홍콩이 8.3점으로 14위, 일본이 7.5점으로 17위, 미국이 7.2점으로 20위에 해당되었습니다. 한국은 2004년도에 4.5점이였다가 2005년에는 5.0으로 상승했지만 다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2006년 ‘뇌물공여지수(BPI)’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5.83점을 받아 OECD의 뇌물방지협약 가입 국가 30개국 중에서 2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활동 중인 우리나라 기업들의 뇌물공여지수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계속된 부패의 악습이 국제무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국제투명성기구의 한국 본부장이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수출기업이 특히 저소득국가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뇌물을 많이 주고 있다는 것은 한국 기업의 심각한 이중기준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개발도상국정부와 국민이 부패를 줄여서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버리고자 하는 노력을 가로막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1960년대, 1970년대 우리나라 산업이 발달하면서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이런 잘못된 관행을 저질러 우리가 고통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최근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일들을 열심히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권력에 아부하기보다는 소비자들의 관심에 귀 기울여서 투명성과 도덕성을 지키고, 사회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가지고 있던 생산적인 이익을 소비자들인 국민들과 함께 나누려는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정부패와 뇌물이 우리 삶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출애굽기 23:8) 

뇌물은 우리의 생각을 흐리게 하고 꽈배기처럼 비틀어지게 합니다.  뇌물과 선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선물에는 사랑의 마음이 들어 있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을 받게 되면 사람의 마음이 밝아지고 맑아집니다. 즐거워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되면 그때부터 사람의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아, 이것을 받지 말걸. 받았을 때 되돌려줄 걸.”하는 후회가 생깁니다. 이것은 뇌물이 마음의 족쇄를 채우고 숨통을 조여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뇌물과 선물을 나름대로 구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나를 위해서 주면 뇌물이고, 상대방을 위해서 주면 선물이 됩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 기준이 있는가, 나에게 기준이 있는가는 굉장한 중요합니다.  나를 위해서 쓴 뇌물이지만 아주 애교스러운 선물도 있습니다. 치매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나이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딸이 조그만 선물을 뇌물처럼 썼다고 고백한 글이 있습니다. 

나도 뇌물을 주었다. 그것도 아주 여러 번. 나 역시 뇌물을 준 그들에게 어떠한 특별한 대가를 바랬다. 아름다운 가을 햇살이 아파트 놀이터를 화사하게 비추고 있었다. 맑은 가을날이라 그런지 학교를 마치거나 유치원을 마친 아이들은 모두 놀이터로 나온 듯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는 마치 작은 운동회를 연상케 했다. 나는 아름다운 가을볕과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운동도 시켜드릴 겸 걷기 힘든 엄마의 손을 붙잡고서는 천천히 놀이터로 나갔다.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은 놀이터 이쪽저쪽을 달리고 소리 지르며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와 놀이터를 산책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내게 인사도 없이 지나갔다. 유일하게 우리 동 2층집 초등학교 1학년생 경아가 우리를 알아보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서운해 하던 차에 경아의 인사는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난 자주 밖에 나오지 못해서 엄마가 아이들에게 인사조차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문 밖을 혼자 나갈 수 없는 엄마를 동네 아이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엄마, 여기 잠깐만 앉아있으세요. 어디가면 안돼요. 꼭 여기 앉아있어야 해요. 나 슈퍼잠깐 다녀올 테니깐 꼭 여기 앉아서 기다려야 해요.” 

몇 번의 당부를 한 다음 난 슈퍼로 달려가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아이스크림 15개를 골라 쏜살같이 놀이터로 돌아왔다. 그리고 경아를 불렀다.  “경아야, 네 친구들 다 여기 앞으로 오라고 해봐. 할머니가 너희들한테 선물 좀 주겠단다.” 

그랬더니 경아가 자기 친구들 이름을 다 불렸습니다. 아이들이 구름 떼 마냥 엄마와 나를 둘러쌌습니다. 
“자, 할머니가 너희들 반갑다고 아이스크림 너희들에게 하나씩 준단다. 어서 받아라.” 

그러면서 그 아이스크림이 든 봉지를 어머니의 손에 맡겨보았습니다. 
“엄마, 애들한테 아이스크림 하나씩 좀 나눠주세요.” 

아이들이 몰려들어 엄마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할머니, 잘 먹겠습니다.” 나 역시 “앞으로 할머니 뵈면 인사해라. 요 앞 동에 사는 할머니야. 알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 모두 큰소리로 “네”하고 합창으로 대답했습니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딸의 애교스러운 뇌물은 사실 뇌물이 아니라 지혜의 선물이고 우리 삶의 따뜻한 정이기도 합니다. 

뇌물과 선물을 구별하는 두 번째 지표는 은밀히 주고받되 보안이 필수적이면 뇌물이고, 그렇지 않으면 선물입니다. 선물이나 뇌물은 개인적으로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그때 보안이 필수적이라면 그것은 틀림없이 뇌물입니다. 그러나 보안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면 그것은 선물입니다. 선물은 개인적인 호감이나 애정을 표시하는 고마움과 감사입니다. 선물을 받는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취미와 삶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정성을 반영하는 것이 선물입니다. 선물도 개인적으로 은밀히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보안이 결코 필수사항은 아닙니다. 누가 선물하는 것을 알았다고 큰일 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뇌물은 다릅니다. 뇌물은 너만 알고 나만 알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지면 곤혹스럽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와 나만의 뒷거래이고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기에 숨깁니다. 

우리 민족은 선물을 참 좋아하고 선물을 잘 주는 백성입니다. 가난했을 때에도 선물을 주고받았고, 함께 나누기 위해서 잔치를 베풀었던 것이 우리 백성입니다. 선물은 아름답고 좋은 것이며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물은 잘못된 것입니다. 뇌물은 문제를 발생하게 하여 우리 삶을 망가뜨립니다. 

저도 소망교회에 와서 선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름 없이, 또 어떤 분들은 이름을 적어서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름이 없든지 있든지 저는 개별적으로 선물 받은 것에 대해서 다 응답하지 못하지만 받는 순간 제가 하는 한 가지 행동이 있습니다. 바로 이름을 알든지 모르든지 그 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분을 축복해 주세요. 이분의 가정을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제목을 아시오니 응답해 주세요.” 

선물을 받을 때 이런 마음으로 받습니다. 때로 어떤 분들은 돈을 가져다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을 받는 경우는 장학금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선물이나 뇌물을 받은 후에 기쁜지 아니면 찜찜한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것입니다.선물을 받고 나면 기분이 좋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뇌물을 받은 경우에는 틀림없이 마음이 찜찜해지고 걸림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순간적으로는 받았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이것을 빨리 돌려줘야 한다는 갈등이 시작되면 그것은 뇌물입니다. 선물에는 사랑과 존경이 들어 있습니다. 선물에는 친밀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뇌물은 받는 순간 부담감이 생깁니다. 뇌물은 보상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무엇인가 반대급부가 들어와 마음을 헝클어 놓습니다. 그때부터 받은 사람의 눈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상대방이 잘못해도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판단력이 무뎌지고 총명과 지혜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때 뇌물은 인격과 삶을 갉아 먹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좋은 성품이 잘못된 길로 갑니다. 두려워지기 시작하여 숨고 도망갑니다. 

인간의 생각을 마비시키는 마약과도 같은 뇌물은 한 번 받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은밀하게 즐기게 됩니다. 특히 지도자가 뇌물을 받게 되면 위험해집니다. 권력을 가져 법을 운용하고 재판을 하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뇌물을 받게 되면 공동체의 파멸이 오고 도덕적인 가치가 무너집니다.자기도 무너지고 남도 무너집니다. 악과 부정이 뇌물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사회통념 위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잘못한 것이 별로 없어도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혹은 돈이 있으면 잘못하고 부패해도 쉽게 풀려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온 국민들의 마음속에상처가 났던 어려움이 우리의 과거 진실 속에 있습니다. 거의 30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이사야 5:23) 

하나님은 의인의 공의를 빼앗고 뇌물로 악인을 의롭게 하는 잘못된 일에 대해서 징계하십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많이 배운 사람,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의 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풍요와 직책과 권력은 오히려 공동체를 위해 바르게 사용될 때 참다운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과 직책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는 일을 하거나 반대로 백성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는 일을 거절하는 것은 잘못된 직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백성을 조롱하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온전한 선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많아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셔서 고난당하며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고통을 통해서 새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선물을 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마음속에 늘 뇌물의 성격을 가지고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축복을 나누는 것은 뇌물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뇌물의 역사'를 쓴 누난(Noonan)이라는 사람은 뇌물이란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 사회적인 강자에게 자기 영혼을 파는 행위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금권이 제 멋대로 사회전반 분야에 침투하게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성숙한 문화는 뇌물이 없는 문화가 되는 것이라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고 합니다. 뇌물이 아니라 인간 한 사람, 한사람의 값어치를 통해서 인간이 존중되는 시대, 그리고 기업들이 권력가에게 붙어서 뇌물을 주는 과거의 시대가 아니라 소비자와 공동체를 두려워하며 백성을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들이 갖고 있는 이득을 나눌 수 있는 시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새로운 정치 문화, 기업문화, 경제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뇌물이란 줄어들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하는 선물은 소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물이 너무나 커서 우리는 그 선물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은혜의 선물을 하며 우리 삶을 풍성하고 윤택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은혜의 선물, 구원받은 사랑을 알게 되었고 이웃을 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내 욕심과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뇌물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지 않도록 우리 삶을 붙들어주옵소서. 우리 마음과 기업과 사회가 더 도덕적이고 투명하며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을 통해서 함께 나누는 복된 사회로 더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정치 문화, 기업과 경제 문화가 바뀌는 귀한 일들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