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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날이 이르면 (사 65:17-25, 살후 3:6-13, 눅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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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이르면 (사 65:17-25, 살후 3:6-13, 눅 21:5-9)

1. 최근에 조이선교회 출판부에서 데브라 리엔스트라가 쓴 「영성의 시작」이라는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영어로 「So much more」입니다. 우리 인생과 그리고 이 세상에는 우리가 현재 보고, 알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훨씬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책 첫머리는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이 전부일리 없습니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고 적막한 우주, 쉴 새 없이 운동하는 소립자가 전부일리 없습니다. 무심한 산등성이에게 속삭이듯 일렁이는 소나무가 전부일리 없습니다. 아침 인파, 손에 든 커피, 하루를 시작하는 포장마차 아줌마, 입에 발린 말들이 전부일리 없습니다. 저녁뉴스 때마다 나오는 전쟁과 범죄소식, 의미 없는 잡담과 자동차 광고가 전부일리 없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 진부하고 덧없는 오락이 전부일리 없습니다.....평범한 일상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속삭입니다.....(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일들 이런 것이 전부일 리가 없다는 일종의 회의론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바로 이 “전부일 리가 없다”고 하는 의심이 신앙의 출발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현실에 회의를 가지고 우리 인생과 우리 사는 이 세상과 그리고 온 우주 그 배후에 존재하는 더 큰 실재(實在)와 삶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거기 하나님이 계시고 또 우리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력으로 한 해의 막바지에 이르게 되었으며, 2007년도를 불과 1개월여 남겨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 해라고 하는 시간의 단위에서 끝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숨 가쁘게 살아오느라고 내가 지금 어느 시점, 어느 지점에 있는 것조차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이 절부일 리가 없다는 말과는 반대로 이런 일상적인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습니다. 이해관계, 감정문제로 복잡하게 얽혀 살아왔으며, 욕망이 원하고 시키는 대로 처신해 왔습니다.

 내가 청도 있을 때 장로님 한분은 허리가 좀 굽으셨는데, 교회 오실 때 보면 두 팔을 허리 뒤로 해서 성경 가방을 들고 주로 길바닥에 시선을 두고 오는데, 하루는 땅만 내려다보고 무슨 생각에 골몰하다가 교회로 들어오지 않고 계속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실컷 내려가서는 서서 둘러보니 교회를 지나쳐 왔단 말입니다. 그래 혼자서 씩 웃고는 다시 가던 길을 돌이켜서 교회로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삶은 그것이 하루건, 한달이건, 일년이건, 평생이건 목표가 있습니다. 사실은 우주도 그렇고 인류 역사도 그렇습니다. 목표지점이 있습니다. 떼이야르 드 샤르뎅이라는 사람은 이것을 오메가 포인트라고 했습니다. 시간이나 역사는 무한정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끝이 있습니다. 그 끝이 바로 인류역사의 종점이요 거기에 하나님이 마련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 살아가는 우리는 그 오메가 포인트가 순간마다, 매일매일, 그리고 매년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거기서 우리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우리의 현 위치를 확인하고, 우리 목표를 향하여 새롭게 진로를 설정하게 됩니다.

 1년을 단위로 할 때 이런 일은 주로 연말연시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사실 하나님의 심판은 종말에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순간순간 있으며 그리고 해마다 우리에게 닥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의 천국은 단지 죽은 후에 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는 시간의 종점에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되고 이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건 일상적인 일을 하건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가는 길이 어딘가를 알아야하며,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건 무작정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뜨고,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목표를 지향할 때 성과가 있고 승리하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2. 오늘 복음서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지금 그 생애의 마지막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 유다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관한 내용을 매우 심각하게 심도 깊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는 단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현실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고 준비하라고 촉구하십니다. 마치 가을이 깊어지면 겨우살이를 준비해야하듯이 인생과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고, 세상의 종말 징조가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것을 볼수록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 외형적인 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그 훌륭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주님께 자랑스럽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46년에 걸쳐 건축된 건물로서 그 외양은 말할 것도 없었으려니와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 유대인들의 자랑이요 자부심이었습니다. 제자들도 성전을 바라볼 때 이런 감격이 넘쳤습니다. 그야말로 흥분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눈에는 그 외형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화려하고 장엄한 성전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온갖 불의와 추악한 일이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눈이 멀어버린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 돈에 마음 빼앗겨서 성전을 마치 시장바닥 같이 만들어 버린 당시 종교적 관행에 대하여 우리 주님은 분노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표출된 것이 성전 정화 사건이었으며 결국은 우리 주님 입에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관한 말씀까지 나오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 프로에 출연한 31살 먹은 아가씨에게 신랑감의 조건이 무엇이냐고 아나운서가 물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하는 말이 “키는 175cm이상, 몸무게 65kg의 늘씬한 대한민국 청년”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 문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든 것이 외형적인데 치우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도한 포장문화요, 소위 “얼짱, 몸짱”하는 것도 그 부산물입니다. 성형외과가 장사가 되니까 돌팔이들도 성형한다고 달려들었다가 남의 얼굴 망치는 난센스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너희 보는 이것들이...다 무너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기에 훌륭하고 자랑스럽던 예루살렘 성전이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첩 놓이지 아니하고 다 무너져버릴 것을 예견하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 외형적인 것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집착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은퇴 목사님 댁에 강도가 들어왔습니다. 식구들을 한방으로 몰아넣고 “가진 것 다 내어놓으라.”고 협박했습니다. 목사님은 엉겁결에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다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강도는 모조리 뒤져서 가져가면서 “앞으로 10분 이내에 일어나면 온 가족을 다 죽일 것이다.”라고 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바닥에 엎으려 있는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사랑하는 종아, ‘목숨만 살려 주면 가진 것 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에게 실로 듣고 싶었던 고백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내가 들었구나. 그런데 그 고백을 꼭 강도 앞에서 해야만  했느냐? 누가 너를 살려주었느냐? 네가 진정 엎드려야 할 곳이 어디더냐?”

   노 목사님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목 놓아 울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날 위하여 십자가 지셨는데 나는 목숨 바쳐 내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나이다. 이제 하루를 살아도 정말 주님을 사랑하면서 살겠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외형적 조건이나 자랑거리나 연륜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왕 되심을 고백하고, 주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주님께 붙들려 사는 것이 참 신앙생활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2) 우리 주님은 마지막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씀 하십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를 테스트할 때가 언제입니까? 시험을 치를 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했는지를 판단 받을 때가 언제입니까? 주님 앞에 설 때입니다. 그 마지막을 알지 못하면 모든 일에 방자해 지고 교만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을 아는 지혜를 가지게 되면  성실하고, 진실 되게 그리고 겸손하게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오늘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은 종말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매 순간마다 진지하게 생각해야할 질문입니다.

   고든 맥도널드라는 사람은 인간을 3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첫째, 쫓기는 사람입니다. 늘 일에 쫓겨서 잠시도 여유 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둘째,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유혹 따라, 마음의 욕심이 시키는 대로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셋째, 부름 받은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시작은 단일회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는 한번 주님을 영접하므로 영원히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닙니다. 매 순간마다 주님과 교제하며 순간순간 거듭나는 삶을 살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준비된 사람으로 “오 주여, 오시옵소서.”라고 영접하게 될 줄 믿습니다.

(3) 주님은 환난 날에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프리카 어느 곳에 가면 강을 건너려고 하면 몸에 묵직한 돌을 매달고 가야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물살이 너무 세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살에 몸이 떠내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이런 저런 시험도 많고 시련도 많습니다. 그것이 너무 심하여 때로는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미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지만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어주시는 일은 다 유익한 일인 줄 믿어야 합니다. 그 묵직한 시험이라고 하는 돌 때문에 내가 주님을 더 찾게 되고, 더 의지하게 되고, 더 기도하게 되어 세속 죄악의 물결에 떠내려가지 않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뉴질랜드에는 새는 새이지만 날지 못하는 새가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새를 해치는 동물이 없기 때문에 굳이 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뱀도 독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뱀을 해치는 다른 동물이 없기 때문에 굳이 독을 품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오래전에 어떤 분의 글을 읽는 가운데 필리핀은 상하의 나라이기 때문에 꽃이 엄청나게 많은데 꿀벌들이 꿀을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겨울이 없으니까 양식을 예비해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고난이 있습니까? 시험이 있습니까? 아픔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것을 통해서 여러분의 신앙을 금보다 귀하게 연단시킨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셉은 이런 하나님을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바람이 불고 폭우가 몰아치는 악천후 다음에 바라보는 태양은 정말 “오 맑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시련의 날들을 통하여 우리 믿음이 연단되고,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 그때 그 감격과 기쁨이 얼마나 크겠으며, 그런 시련을 통과하고 하나님 앞에 어엿이 서게 된 우리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기쁨은 또 얼마나 크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 한번 멈추어 서서 내가 온 길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이제부터 내가 가야할 길, 나의 목표를 다시 한번 확실하게 설정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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