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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하는 성도의 그 이상의 복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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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성도의 그 이상의 복 (눅 17:11~19)

1. 감사, 감사, 감사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지난주 광고 시간에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이니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 감사거리들을 찾아보셨습니까? 감사거리가 얼마나 되던가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하시는 분, 한 번 손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아주 특별한 감사거리가 있다’고 하시는 분, 손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감사거리를 찾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감사거리가 별로 없더라’고 하시는 분, 한 번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 사람이 주님께 감사하는 장면인데요. 이 말씀을 통하여 감사거리가 없는 사람은 감사를 회복하고, 감사거리가 많은 사람은 그 감사로 인하여 더 크고 놀라운 복을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감사하면 그 이상의 복도 함께 주어진다.

1) 감사거리는 모든 사람에게 다 있다(11~14).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어떤 시골 마을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리로 오시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들은 병이 발병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생활,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일체의 신앙생활도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금지당한 채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혹시라도 정상인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나병에 걸렸으니 나를 떠나주세요!”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야말로 가정과 사회와 하나님으로 부터까지 버림을 받은 사람으로, 그리고 가장 수치스럽고 저주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0명의 나병환자들은 만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보고서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소리 만 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13).” 그들에게는 다시 올 수 없는 최고의 기회이자 최후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들을 보셨고, 그들의 형편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고치시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14). 이 말은 ‘내가 고쳐 줄 테니 율법에 따라 나병이 완치되었음을 판단해 줄 제사장에게로 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가던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에게로 가던 중에 자신들의 병이 깨끗이 고쳐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님께 부르짖은 10명 모두 다 고침을 받은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 부르짖었던 10명 모두 다 병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주님으로부터 각양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는 것, 즉 감사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 뿐 아니라 세상사람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이 많습니다.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하늘로부터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지요. 다만 그 받은 은혜를 깨닫는 사람과 깨닫지 못하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어느 사람이 <낮은 울타리>라는 잡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습니다.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가,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 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모임을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나에게 불만을 토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래도 그가 내게 친구로 가까이 있음이 아니던가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도 감사보다는 불평이나 원망이 더 많지 않습니까? 굳이 불평이나 원망은 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것마저 드문 가운데 계시지는 않는지요? 건강, 경제, 인간관계, 자녀의 문제 등으로 아무리 어둠의 터널을 걷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것을 극복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미리 앞당겨 감사한다면, 하나님은 그 감사를 받으시고, 놀라운 은총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의 논리가 아니라, 믿음과 은혜의 논리를 따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관점을 바꾸어 보십시오. 그러면 감사가 보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10명의 나병환자들을 보십시오. 그들 모두 다 주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 모양은 다를지라도 한결같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과 복이 있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 다 감사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감사하는 사람은 드물다(15~19).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병 고침을 받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를 표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16절).” 이것은 주님께 받은 사람은 많으나 감사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적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한 사람의 감사하는 사람의 모습을 통하여 오늘 우리는 감사에 대한 몇 가지의 도전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는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15).” 그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큰소리로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을 굳이 감출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사람처럼 이렇게 전심으로, 또 큰소리로 감사를 드린 때는 언제였습니까?

또한 그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즉시, 그리고 적극적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15). 열 명의 사람이 계속 자기 길을 가는 중에 자기 혼자 돌아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 사는대로, 남들 가는대로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힘들지 않고 편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10명이 함께 가던 길에서 홀로 돌아섰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따질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당장 감사를 표하지 않고는 자기 길을 갈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감사할 일을 깨닫자마자 그 즉시로 감사하셨습니까? 혹시 잊었거나 미루고 있는 감사는 없습니까? 혹시 감사를 적당히 넘겨버린 적은 없습니까?

그리고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감사를 드렸습니다(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그는 자신의 몸을 던지면서 감사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사마리아인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 주님께 무릎을 꿇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에게 돈이 있었다면 돈을 드렸을 것이고, 명예가 있었다면 명예를 드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이 진정한 감사는 자신의 전부,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수에 끌려 다니지 않았습니다. 분위기에 편승하지도 않았습니다(16). 한 마디로 남 눈치 보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러나 그는 눈치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로부터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마리아인이라는 것 때문에 주님께 감사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환경적인 어려움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먼저 앞장섰습니다. 여러분들의 모습이 이 분과 같기 바랍니다. 환경과 처지를 넘어서서 적극적인 감사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인명 구조원으로 있으면서 많은 생명을 구조한 사람이 명예로운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성공적인 임무 수행과 공로, 특히 수많은 사람을 살려낸 것에 대해 치하하기 위하여 모여 들었습니다. 예식이 끝난 후, 한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재직한 동안에 목숨을 구한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그랬더니 뜻밖에도 “단 2명 뿐이라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의 친구와 거기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삼십년도 넘게 일한 자네가 단 두 명밖에 못 구했다고? 농담하지 말게.” 그러자 그 사람은 “내 평생에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해낸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 그러나 그 후 나를 찾아와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감사를 표시한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지. 나는 그 두 사람만 진짜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짐승과 같지 않은가!”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는 감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 않습니까? 감사를 표하는 사람, 아니 적극적으로 감사를 나타내는 성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처럼 큰 소리로 감사를 표하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진심으로 감사하는 삶, 이것이 오늘 여러분의 모습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복이 ․․․ (19).

그런데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시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고침을 받았으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에게 돌아와 감사를 표시하는 바로 그 한 사람에게 또 다른 약속과 축복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9절,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주님은 그의 질병을 고치신 것으로 끝내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심으로서 영혼의 구원이라는 더 궁극적인 축복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삶에 베푸신 주님의 은혜와 그 사랑에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성도는 그 감사로 인하여 그 이상의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 사이에, 그리고 축복과 축복 사이에는 사다리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그 사다리는 바로 “감사”입니다.

어떤 성도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어서 몹시 실망하고 있던 중,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천사의 손에 이끌려 하늘의 보물 창고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창고는 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창고는 어떤 창고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천사는 “이 창고는 기도 창고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 라고 애원하듯이 기도할 때마다 이 보물 창고를 열고 나누어 주었더니 이렇게 빈 창고가 되었습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옆 창고로 갔습니다. 그 창고는 조금 전에 본 기도 창고보다 훨씬 더 큰 창고였는데, 그 창고에는 보물이 천장까지 가득히 쌓여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도는 “이 창고는 무슨 창고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천사는 “감사의 창고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창고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보물을 쌓아 둔 곳이지요. 그런데 성도들은 구하기는 많이 하고 또 많이 받으면서도 정작 감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보물이 그대로 쌓여 있답니다”라고 했습니다. 꿈에서 깬 그 성도는 그날부터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는다는 불평을 그치고 감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일 때문에 감사하는 자에게 주님은 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더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면 할수록 여러분에게는 감사할 일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또 그대로 체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적극적인 감사로 더 큰 복을 누리며 살자!

이해인 시인의 “감사의 행복”이라는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그리고 내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되도록
감사를 하나의 숨결 같은 노래로 부르고 싶습니다.

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
감사하면 행복하리라
감사하면 따뜻하리라
감사하면 웃게 되리라

감사하기 힘들 적에도 주문을 외우듯이,
시를 읊듯이 항상 이렇게 노래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서 하늘과 바다와 산을 바라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하늘의 높음과 바다의 넓음과 산의 깊음을 통해 오래 오래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중간생략) ···
열심히 가꾸지 않으면 신앙의 나무도 이내 시들어 버리기에
조금은 긴장하며 살고 있고
이 긴장이 나의 삶을 더욱 탄력 있게 만들어 줌을 믿기에 행복합니다.

나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가족, 친지, 이웃···.
얼굴과 목소리와 성격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통해
삶의 다양함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어 감사합니다.

그들이 나에게 준 웃음, 칭찬, 격려, 그리고 눈물, 비난, 충고,
모두 삶의 양식이 되고 나의 성숙에 보탬이 되었음을 새롭게 깨달아 행복합니다.
··· (중간생략) ···
선과 악을 분별하는 차가운 지혜,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는 서늘한 지성을
필요할 때마다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세속적인 욕심을 줄이고 영적인 갈망을 늘여 가는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여 행복합니다.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은 참회와 용서임을 날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어 감사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마무리하며 나의 게으름과 불충실함을 참회하고
나름대로 선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부분들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때로는 부끄러워 얼굴 못 드는 자신의 모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지닐 수 있기에 행복합니다.
감사하기 힘든 때일수록 더 자주 감사함으로써
감사가 기도의 시작임을 새롭게 배우고 확신할 수 있기에 행복합니다.
오직 감사 안에서 새 날, 새 삶으로 이어지는 순결한 기쁨이여, 빛나는 행복이여
이제 다시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려는 나의 다른 이름이 바로 '감사'이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불신앙은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도 불평합니다. 반면 믿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조건에서도 ‘감사’라는 꽃을 피웁니다. 여러분의 지난 삶과 그 모두를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시하십시오. 여러분의 입술로, 물질로, 그리고 여러분의 전 존재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그리고 하는 일마다에서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그 이상의 복, 그 다음의 은혜를 여러분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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