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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인의 용기 (요 9: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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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용기 (요 9:17-27)

  저는 오늘부터 몇 주 동안 자유에 대해서 주의 뜻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참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인 자유의 의미와 자유인의 삶과 책임에 대해서 주의 뜻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날 때부터 소경된 거지, 이 불쌍한 사람을 주님께서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 그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 해서 눈을 뜨게 한 사건입니다. 한 사람을 주님께서 자유케 하신,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저주에서 건져주신 자유인으로 축복을 주신 이 복음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불쌍한 소경 거지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자유인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면서 내게 자유를 주신 그를 높이며, 찬양하며, 감사하며, 그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대단한 용기, 자유인에게 있는 용기, 자유가 주어져도 용기 없는 분은 잃어버리는데 이 사람은 참으로 사명을 감당한 훌륭한 자유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다니엘 웹스터는 “하나님은 자유를 사랑하고 그것을 항상 보호하며, 방어할 줄 아는 사람에게 자유를 허락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주신 자유를 잘 지키고 잘 방어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주신 이 소중한 축복이 영원히 여러분의 것이 되고,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제퍼슨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동시에 자유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이 왜 소중합니까?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생명은 바로 생명과 함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 바다에 있는 물고기, 수많은 곤충, 수많은 생명에게 자유를 주신 것처럼 인간에게도 자유를 주셔서 만물을 다스리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자유는 정말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에덴동산에 자유가 있었다는 것은 에덴동산에 생명이, 하나님의 축복이 같이 했던 것입니다.

  자유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창조주로부터 주어집니다. 자유의 반대는 노예입니다. 노예보다 더 비극은 없습니다. 자유보다 더 큰 기쁨, 축복은 없습니다. 러스키는 말하기를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은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 잃어버린 것이 자유입니다. 다 찾은 것이 자유입니다. 자유를 가진 자는 모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분은 모든 가능성이 끝납니다. 유명한 조류학자가 산에서 앵무새를 가져다가 집에서 길렀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새장 속에 넣어서 예쁘게 기르려고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날 어미 앵무새가 와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겁니다. 사람만 없으면 먹이를 가져다줍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제가 어렸을 때 경험한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새를 가져다가 길러보면 그 다음 날 어미 새가 날아옵니다. 날아와서 밖에서 지져기고 야단입니다. 방안에 넣어놨다가 2,3일 되면 어느새 이 새를 데려갑니다. 어디로 해서 데려가는지 데려갑니다. 정말 너무 신비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조류학자도 가져다 놨는데 어미 앵무새가 와서 계속 먹이를 줬습니다. 여러 날 먹이를 줬는데 하루는 나가보니까 앵무새 새끼가 죽었습니다. 왜 죽었느냐하면 어미 새가 가져다 준 과일을 먹고 죽었습니다. 학자가 오래 연구했습니다. 어미가 몰랐을까? 아니라는 겁니다. “너는 그 안에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어미의 판단입니다. 다른 동물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그 자녀가 정말 살기 어려울 때는 그 자녀를 없애는 것을 저도 여러 번 영화를 통해서, 동물의 왕국을 통해서 본 일이 있습니다. 죽입니다.

  여러분! 생명이 왜 소중합니까? 갇혀있는 생명은 죽음보다 더 비극입니다. 그래서 페드릭 헨리는 말하기를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우리 모두가 아는 이 진리가 성경에서 나옵니다. 자유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자유가 없다면 그 생명은 죽은 것입니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제일 귀한 선물이 무엇입니까? 자유입니다. 아무리 코끼리가 힘 있고 능력 있으며, 코끼리를 당할 힘은 없지만 붙잡힌 코끼리는 차라리 토끼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토끼는 코끼리보다 백배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새의 왕으로 아무리가 능력이 있어도 잡힌 독수리는 참새, 종달새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자유가 제일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이 자유라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인 줄로 믿습니다. 귀해서, 높아서, 잘 되어서, 성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게 주님이 주신 참 선물, 자유가 있다면 나는 이 세상의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자요, 행복한 자요, 가장 위에 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유명한 “빠삐용”이라는 영화를 보셨을 겁니다. 빠삐용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 받고 프랑스령 남미 가이아나 형무소에 수감이 됩니다. 이 사람은 13년간 감옥에 있는 동안 열 번이나 탈출을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대단한 집념의 사람입니다. 그는 그곳으로 갈 때 누구를 만나느냐하면  위조범, 안경을 내려쓰는 드가를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위조범인데 멍청합니다. 별로 어떤 의식과 사명이 없습니다. ‘거기서 벗어나야 되겠다.’ 이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빠삐용은 어떻게 하더라도 탈출하려고 합니다.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잘못함이 없는데도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이 옛날이나 오늘이나 무수히 많습니다. 대구에 있는 어떤 장로님은 판사로 있는 동안 한 사람을 사형 언도했는데 그 사람이 사형집행이 되고 죽고 난 다음에 진범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판사 복을 벗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도 철저하게 조사하고 조사했는데도 그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우리 고향인 면에 지서장이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5년 있다가 진범이 잡혀 나왔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파출소 소장도 억울하게 뒤집어쓰는 걸 보니 이 세상이 정말 아직까지 멀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검사하고 검사해도 이 세상에는 빠삐용 같은 억울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너무 정죄하면 안 됩니다.

  빠삐용은 그곳에서 혹서와 독충과 벌레와 뱀과 쥐와 이런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탈출하려고 그러다가 붙들려 2년 동안 독방에 갇히고, 또 탈출하려고 그러다가 붙잡혀 5년 동안 독방에 갇히고, 빛 한번 보지 못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또 탈출하려고 하다가 드디어 어디로 가느냐? 이 세상에 가장 무시무시한 악마의 섬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이곳은 사방이 완전히 절벽입니다. 외로운 고도입니다. 여기는 탈출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설령 탈출해도 상어 밥이 됩니다. 탈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빠삐용은 기어이 꿈을 갖습니다. 길을 찾습니다. 야자열매를 푸대에 담아 하루는 밑으로 딱 던지니까 파도에 산산조각이 납니다. 너무 파도가 무시무시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봅니다. 계속 길을 찾아내려 보는데 놀라운 것은 파도가 두 번 치고, 세 번치고, 네 번 치는데 그다음에 오는 파도는 치면서 어떤 조류의 힘인지, 그곳에 물길이 있는지 돌아나가는 걸 보게 되는 겁니다. 부서지는 파도가 있는가 하면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드가를 보고 “나가자. 탈출하자.” 그럽니다. “나는 안 돼. 너나 해라.” 이래서 드디어 야자열매를 갖다가 그 밑에 던지고 빠삐용은 뛰어내립니다. 다이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뛰어내립니다. 뛰어내려 그곳에서 탈출하면서 유명한 말을 합니다. “나는 자유를 얻었다. 나는 자유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드가를 향해서 “야~ 이놈들아. 나는 자유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4대 자유를 말했습니다. 신앙, 언론출판, 공포, 궁핍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초입니다. 민주주의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 국가는 두 진영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를 그래서 자유진영이라고 말합니다. 민주주의를 향해서 동독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솔제니친으로부터 수많은 사람이 탈출해 왔고, 북한으로부터 오늘도 우리나라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탈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인간에게 다 자유를 주셨다는 것은 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자유, 아무도 국가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남녀는 평등합니다.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이 사회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성경에서 하나님이 주신 진리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입니다. 

  미국은 특별히 자유주의 국가의 어머니입니다. 이 땅 위에 자유를 건설하여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가 피부가 같고, 혈통이 같고, 같은 족속, 같은 민족 안에서 국가가 건설되지 미국 같이 잡다한 민족이 모인 나라는 이 지상에 없습니다. 한 나라도 없습니다. 그냥 모인 나라들입니다. 전부 여기저기에서. 그래서 180개국의 피부가 다른 사람들이 그 나라에 같이 살면서 한 나라를 만든 겁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출발은 어디에서 옵니까? 청교도들이 자유를 찾아 하나님을 믿으려고 영국에서 유럽에서 출발하여, 자유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메이플라워를 타고 건설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래서 미국 독립 100주년에는 프랑스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했지 않습니까? 30층 높이보다 더 높은 자유의 여신상은 횃불을 들고 있습니다.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져 있습니다. 미국에 오는 모든 이민자들이 대서양을 타고 그 강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자유의 여신상에 불을 켜줍니다. 이 나라에서 이 횃불 같이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 세상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이 자유,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만든 그 의도, 그 목적이 바로 자유로운 인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횃불을 든 것입니다. 이쪽은 쇠사슬의 멍에를 다 벗어던지고 짓밟는 것입니다. 자유의 횃불을 어머니가 높이 드는 것입니다. 세계의 자유를 주는 자유의 어머니인 나라 미국을 상징하는 게 이것입니다. 그래서 머리에 7개의 유명한 관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세계 7개의 나라와 7개의 바다와 7개를 주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오래 됐으니까 지중해까지 다 포함시켜 7개의 바다, 우리는 5대양 6대주라고 하지만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이 자유를 누리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 이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들게 된 것입니다.

  자유는 무엇입니까? 자유는 해방입니다. 히브리말로 ‘데로르’입니다. 억압,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곳에서 해방되는 것이 자유입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자유롭게 창조되었지만 에덴동산에 살고 있던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마귀에 의해서 이 자유를 빼앗겼던 것입니다. 마귀는 자유를 준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 자유, 내 마음대로 살아라. 하나님을 대적해라. 먹어라. 놀아라.’ 이렇게 전부 자유의 나라로 이끄는 것 같았지만 마귀는 실질적인 참 자유를 빼앗아갔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를 빼앗긴 겁니다. 자유는 창조자 하나님을 섬기고 그 나라에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만 자유가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는데 마귀는 아담 이브를 하나님 밖으로 이끌어 내었습니다. 준다고 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모든 것을 빼앗아갔는데, 자유를 빼앗아 갔으니 다 빼앗긴 것입니다. 마귀의 종, 죄의 종, 사망과 저주의 종이 되어서 우리 인간은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자유는 그리스도에게, 하나님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이 자유를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에밀 부르너는 말하기를 “인간은 자유롭다. 그러나 그 자유는 하나님께 얽매일 때 비로소 자유하다.” 그리스도가 없는 곳에는 자유를 모릅니다. 그것은 그의 제품이 아닙니다. 찰스 킹슬리는 말하기를 “거짓된 자유가 있다.” 거짓된 자유는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자유요, 다른 하나는 진정한 자유로서 그가 해야 할 일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자유는 거짓된 자유, 사탄으로부터 주어지는 자유, 참 자유가 빼앗지는 자유, 노예가 되는 입구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참 자유는 하나님 앞에 자유인의 사명을 다하고, 자유의 소중함을 알아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잘 섬기며 그의 계명과 그의 율례와 그의 법도 아래 살아갈 때 이 자유는 참된 자유, 진정한 자유를 영원히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에덴동산의 사탄은 하나님 밖에, 불순종 하는 곳에, 내 마음대로 하는 곳에 자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 생각대로 살아라. 너 뜻대로, 너 마음대로 행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자와 분리해서 행복이 있는 것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원인이 바로 사탄의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살아도, 미국에 살아도, 한국에 살아도, 이 세상 어디에 살아도 그리스도 밖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 인류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핵심은 무엇입니까? 자유입니다. 구약에 가장 큰 사건, 압록강, 두만강이 백두산에서 시작되듯이 구약의 뿌리는 어디입니까? 에덴동산입니까? 아닙니다. 구약의 뿌리는 출애굽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니 신구약에 나오는 모든 사건의 뿌리는 출애굽에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선민이 애굽의 노예에서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절기, 이스라엘의 예배, 십계명, 여기에서부터 모든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해방에서 옵니다. 예배가, 안식일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애굽에서 해방되면서 드디어 예배가 생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유인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노예가 무슨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자유인에게 계명이, 책임이, 법이 있는 것이지, 노예가 무슨 법이 있습니까? 어떤 책임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주시는 참 자유인으로 사명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하나님의 날 아버지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찬송가 40장)

  저는 찬양대가 찬양하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자유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노래에는 자유인의 노래가 없습니다. 노래 속에 자기가 얽매여 있습니다. 괴롭고 답답하며, 죽고 싶고  싫고 싫은 이 상처를 이미 가지고 노예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 자유인이이라 춤을 쳐도 그는 노예로서의 동작입니다. 자유인은 창조자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내게 참 자유를 주신 우리 하나님을 내 마음으로부터 찬양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구약은 이제 안식일이 지나면서 7년마다 오는 것이 안식년이라는 게 있습니다. 6년 동안 지나고 안식년, 최고의 명절입니다. 안식년이 다 가고 안식년을 7번 가면 희년이라고 게 옵니다. 49년 지나고 50년 희년입니다. 이 두 절기는 최고의 절기입니다. 이 절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절기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자유롭게 하는 겁니다. 안식년이 되고, 희년이 되면 1년 동안 모든 노예는, 육체적으로 고통당하는 노예는 다 풀어줘야 됩니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빚진 것, 사람이 살다가 다 빚지지 않습니까? 육체가 노예에서 풀렸을지라도 물질이 가난하면 다시 그 육체는 물질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물질까지 빚진 거 다 풀어줍니다. 은 나팔을 온 나라의 제사장들이 불면서 이제부터는 자유다라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자유는 창조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주신 선물입니다. 유대인이 자유케 되고, 모든 사람이 자유케 되는 건 그 이상의 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온 인류의 안식일에 주인 되셔서 우리인간을 안식하게 하시고, 희년을 선포하게 하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고통당하는 종 된 모든 우리를 풀어주실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희년입니다. 희년에 생명을 풀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아무리 많이 빌려도 석 달 그믐만 넘기면 끝나는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으면 절대로 못 받습니다.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우리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떤 분은 빚이 몇 대를 넘어가는 집이 있지 않습니까? 대를 넘어가는 집이 있는데 불쌍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저지른 것도 아닌데, 부모가 물려준 재산 때문에 자손만대에 가난한 것, 우리나라에도 희년이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참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그래서 자유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가질 수 없습니다. 마음에 원한다고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구약에는 양이 죽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자유케 하듯이, 온 인류를 위해서 예수님은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저주 같은 노예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사망에서, 모든 억압하는 죄에서 건져주십니다. 참 자유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고,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했습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므로 여러분을 고통에서, 주님이 매 맞고 아프심으로 여러분은 모든 아픔에서, 낮아짐으로 지옥에 음부에까지 내려가심으로 여러분을 천국으로 끌어올리시고, 주님이 양손에 노예 같이 붙들려 묶여서 못 박히심으로 여러분을 풀어주신 겁니다. 자유가 오게 되는 겁니다.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자유, 아담이 빼앗겼던 이 자유를 주 예수님께서 찾아서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여러분에게 안겨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자유로 자유하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61장 1절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오면 자유를 얻습니다. 자유는 주님이 주십니다. 힘 있고 능력 있는 나라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알링톤 국립묘지에 가면 자유는 그냥 얻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것이 자유입니다. 많은 사람의 죽음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자유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누워 있다는 겁니다.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거기에 가야 됩니다. 너가 대통령이 된 것은 이분들 때문이라는 겁니다. 교회에 나올 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여러분에게 이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위대한 인물은 언제나 국민에게, 인류에게 자유를 준 사람입니다. 링컨이 왜 100년 동안 위대한 인물입니까? 노예를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우리야 노예해방 별 거지만 고통당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팔려가서 짐승같이 손발이 쇠사슬에 묶여 살아가는 그들을 생각하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이것을 링컨이 만들어 준 겁니다. 그래서 링컨이 죽고 장례행렬이 지나갈 때 흑인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번쩍 들면서 “너가 자유를 얻었다. 너가 얻은 자유는 저분이 돌아가심으로 너에게 주어졌다. 저분의 은혜를 잊지 말아라.” 우리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자유, 어디에 가면 자유가 있습니까? 얼마나 잘살면 자유가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자유가 있습니까? 어디가도 자유는 없습니다. 참 자유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미국에 아무리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을 높이 들어도 미국에 자유가 없습니다. 참 자유는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솔방울을 들어도 예수를 믿으면 자유로운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 나와야 자유롭습니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탈출을 했습니다. 작년에만 넘어온 사람이 2100명이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2100명 가운데 지난 해 형사사건으로 인해서 구속이 되거나 감옥에 간 사람이 285명입니다. 자유를 찾아왔지만 여기 와서 강도가 되고 윤락녀가 됐습니다. 별의 별 죄에 빠집니다. 여기에 오면 자유가 있는 줄 아는데 참 자유는 대한민국에도 없고, 미국에도 없습니다. 참 자유는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람은 자유를 목마르게 찾습니다.

  유명한 말을 알려드립니다. 빠삐용은 실제 인물입니다. 대탈출, 독일에 일어났던 사건, 실제사건입니다. 이 사람이 탈출에 성공해서 어디 가서 사는지 아십니까? 베네수엘라에 가서 삽니다. 그러나 거기 가서 뭐가 됐는지 아십니까? 도박중독자가 되어 암으로 죽습니다. 많은 사람이 돈만 있으면 자유다 하는데 돈 벌어 뭐가 되는지 아십니까? 가정이, 인간이 파괴되고. 자유는 그런 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자유는 주님이 주십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가 있을 때만이 모든 어두움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는 주님이 지켜주시고, 주님과의 만남이 지속될 때 이 자유는 강같이 여러분을 지켜줍니다.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분이 육해공군 60만, 하늘에는 인공위성 미사일이 오고 가고, 후방에도, 바다에도 잠수함이 계속 떠있듯이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이 세세무궁토록 여러분이 자유를 누리도록 여러분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불 말과 불 병거로 보호해 주십니다. 어리석은 우리가 주님의 품안을 떠나면서 고통을 당하는 겁니다. 예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이것을 벗어나야 되겠다. 저기가면 얼마니 자유로울까? 이번에 새로 짓는 저 아파트, 캐슬, 삼성, 현대, 저 강남에 어마어마한 좋은 집들...”

  여러분! 우리교회 뿌리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강동아파트입니다. 강동아파트 5천세대가 우리교회 뿌리였습니다. 교인들이 70%였습니다. 다 복  받아 수많은 분들이 좋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똑같은 결론은 “목사님!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왜?  도적놈도 안 오고, 청소할 게 없습니다. 물건도 별로 없고, 평수가 좁아 앉아서 다 했다는 겁니다. 청소도 앉아서 다 했습니다.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 갔다 와도 물건 누가 가져가는 법도 없습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옆 사람과 늘 대화하고 잘 만났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음식 다 나눠먹고, 점심은 저 집에 가서 먹고, 저녁은 여기에 와서 먹고 참 행복했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것은 집값이 오르냐, 내리냐 신경 안 썼습니다. 지금은 집값이 내릴 때마다 잠이 안 옵니다. 세금 때문에 긴장합니다. 결혼하면 자유, 돈 벌면 자유, 출세하면 자유, 좋은 집에 가면 자유, 아닙니다. 세상 사람이 말하는 이 자유,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예수 안에, 믿음 안에, 교회 안에 주님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여러분의 앞날은 영원토록 확실히 자유가 있을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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