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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그 아홉은 어디에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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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홉은 어디에 (눅 17:11~19)

아동문학가 방정환(方定煥)선생의 집에 강도가 들어와 돈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 때 선생은 순순히 390환을 내주면서 "여보시오. 돈을 가져가면 고맙다고 하고 가져가야 하지 않소?" 라고 말했습니다. 강도는 어이없어 하며 "그래, 고맙소!" 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얼마 안 되어 그 강도가 붙들려왔습니다. 경찰은 "이 사람이 방 선생님의 돈을 빼앗았다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너 잘 만났다. 내 돈을 뺏어가" 라고 했을 것이나, 방정환 선생은 오히려 깜짝 놀라며, "아니요. 나는 이 사람에게 돈을 뺏긴 일이 없어요" 라고 말합니다. "그래요? 이 사람은 당신에게 돈을 390환이나 빼앗았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방선생은 강도를 향하여, "아니 이 사람아! 내가 돈을 주니까 고맙다고 하지 않았소? 빼앗았다면 고맙다고 했을 리가 있겠소?" 라고 말합니다. 경찰은 할 수없이 강도의 포박을 풀어주었습니다. 강도는 너무도 고맙고 감격하여 그 후 방정환 선생 댁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얼떨결에 시켜서 한 감사가 인생을 바꿔 놓는 큰 사건이 될 줄은 방 선생뿐만 아니라 강도 자신도 몰랐던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곳에는 폭력과 착취, 불만과 원망이 있습니다. 더 선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감사하는 말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감사는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인격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 원하면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니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 한 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멀리서 보고 소리 높여서 부르짖습니다.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이들을 불쌍히 여기사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이 말씀은 치유를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문둥병자들은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로 갑니다. 아직 병이 낫지도 않았는데 예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그들은 순종하다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합니다. 본문은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고 말씀합니다. 본문에 보면, 다 나음을 받았지만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둥병에서 치유 받은 사람은 열 사람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만이 예수께 돌아와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안타까워하시며 탄식하십니다.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예수께서는 고침 받은 사람들이 모두 돌아와 감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고침은 받았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은 어디에 있느냐' 고 묻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아홉은 어디에" 란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감사를 찾으라

데이비스(Davis)는 루이지애나주의 카르빌에 위치한 국립나병원에 입원한 나환자이면서 흑인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다리를 절고 눈이 멀었으며 외모도 보기에 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활했으며, 늘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늘 감사의 노래를 불러 동료 환자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기도의 대부분은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구형 라디오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손을 쓸 수 없어서 입으로 켰다 껐다 하면서도 감사하였습니다. 찬송가 405장을 부릅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잘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우연도 아니요, 내 능력도 아니며 오직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발견하고 찾는 사람이 감사하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거리를 발견하는 자가 아니라 언제나 감사를 찾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열 사람의 문둥병자는 똑같이 고침을 받았으며 은혜도 똑같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사람만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나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감사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깨닫고 발견할 때에만이 감사하게 됩니다. 영어의 '생각하다' 인 'Think' 와 '감사하다' 의 'Thank' 라는 말은 그 어원이 같습니다. 생각한다는 것과 감사한다는 것의 뿌리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내지 않으면 환경이 아무리 좋아지고 달라져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를 깨닫고 찾을 때 감사할 수 있으며 세상이 달리 보이게 됩니다.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라는 예수님의 탄식하시는 음성이 들려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를 발견하여 우선적으로 예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삶 속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믿음의 눈이 열려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감사를 행하라

'The Record' 라는 잡지의 스포츠면에 뉴욕 메츠의 투수인 '팀 버크' (Tim Burke)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버크 부부는 세 명의 아이들을 입양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양자로 삼은 것입니다. 첫 딸 '스테파니' 는 한국 고아인데 3개월 반의 조산아로 심장에 구멍이 뚫려 혈관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하는 심장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두 번째로 입양한 아들 '라이안' 은 과테말라에서 입양한 아이로 갑상선에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정신질환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입양한 딸 '니콜' 은 오른 손이 없는 한국 여자아이였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입양한 이유를 부인 크리스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불쌍한 이 아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들을 돌보지 않으면 죽을 아이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 부부가 깨달은 것은 오히려 이 아이들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를 알게 하고, 행복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극복할 힘을 주고 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작은 일에도 고마움을 느끼고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로 행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더 커다란 축복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감사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홉 사람의 유대인 문둥병자는 마음 속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지 몰라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은 사마리아인 한 사람뿐 이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질병을 고쳐주신 예수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감사의 대상을 알고 감사를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를 찾아온 사마리아인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례했습니다. 여기의 '엎드리어 사례했다' 는 말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중심이며 자기 생각, 자기 이익에 상당히 빠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예수께 엎드리어 사례하였습니다. 감사하였습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 앞에 엎드리어 사례한 사마리아인처럼 감사를 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감사로 돌리라

1969년 월남전에서 크레모아(Claymore) 지뢰의 폭발로 다리 하나가 잘리고, 한쪽 눈은 실명되었으며, 양손에 엄지손가락 하나씩만 남아 심한 장애자가 된 장교의 일화입니다. 그는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군목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새로운 소망을 얻은 그는 병실을 돌며 전도합니다. "여러분, 내 손을 보시오. 눈과 다리를 보시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두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하던 천국을 한눈을 가지고 보게 되었습니다. 두 다리를 가지고도 갈 수 없었던 천국을 한 다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를 보고 예수를 믿으시오". 그런데 그가 대구 육군병원으로 후송을 가게 되었습니다. 병실을 찾아온 군목에게 그는 끊어진 엄지손가락으로 헌금 봉투를 내밉니다. "목사님, 제가 눈이 멀고 다리가 끊어지고 손가락이 끊어진 후에 처음으로 쓴 글자입니다. '감사' 라는 두 글자를 쓰는데 20분이 걸렸는지 30분이 걸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내미는 봉투에 쓰여진 '감사' 라는 글자는참으로 엉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라는 글자 속에 그의 진정한 감사가 보이는 듯 합니다. 감사는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실로 그는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사마리아 사람은 육체의 질병만 치유 받은 것이 아니라 영혼 구원이라는 축복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홉 명은 육체의 구원은 받았지만, 영혼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아홉 사람은 그들이 받을 축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감사로 영광돌리는 자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혼의 기쁨과 만족은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자들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별로 배운 바가 없는 무식한 유대의 어머니가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다고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그녀는 말합니다. "저는 자녀들에게 언제나 세 가지를 가르쳤습니다. 첫째는 모든 일에 감사하여라.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둘째는 원망하는 사람하고 지내지 말아라. 누가 원망하거든 다시는 만나지 마라. 그리고 세 번째가 감사하는 사람과 친하라. 감사하는 사람과 늘 함께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갈 때 더 이상 불행을 세며 살지 말고 감사거리를 세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노트와 펜을 준비해서 감사할 것을 기록해보십시오. 그러면 감사할 것이 많음을 이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선한 손길로 지켜주셨고, 앞으로도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부디 항상 감사로 행하며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복된 감사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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