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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초막절 감사 (레 23: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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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 초막절 감사
+ 설교본문 : 레 23:33-44

한국교회는 11월 셋 째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처음 들어오던 때를 기념해서 11월 셋째 주에 지킵니다. 그런데 요즘은 11월 셋 째 주일은 추수와 시기가 맞지 않기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교회에 따라서 시기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과 비슷한 이스라엘의 절기는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추수를 마치고 곡식을 창고에 들이는 7월 15일에 초막절 혹은 수장절을 지킵니다. 전에는 해마다 이 명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나가서 빈들에다가 초막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집 옆이나 옥상에다가 초막을 짓습니다. 초막은 네 개의 프레임에다가 천 같은 것으로 사방을 막아서 벽을 만든 다음에 그 위에는 감람나무나 종려나무 혹은 버들가지들을 얹어서 지붕을 만듭니다. 이런 초막을 가리켜서 히브리 사람들은 ‘수코트’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자기의 초막에 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남의 초막에도 방문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또 서로 어울려서 파티를 열고 즐거워합니다.

34절에 보면 초막절은 ‘여호와를 위하여’ 드려야 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에 가장 핵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좋은 방법은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며 감사했던 내용들을 말씀드리고 그들의 감사를 통해서 우리가 감사해야 할 감사의 제목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원에 대한 감사

43절에 보면 초막절의 유래가 나오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던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에 거주했던 때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을 통해서 애굽으로 이주 했습니다. 처음에는 요셉의 공로로 애굽생활이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를 당하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학대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학대하는 애굽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9가지나 되는 재앙을 내렸지만 애굽의 왕 바로는 강퍅하여 백성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더 큰 재앙을 불러왔고, 바로왕은 열 번째 재앙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열 번째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애굽 전역에서 장자를 칠 것인데 이 때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갈 것이고 피가 발라지지 않은 집에는 죽음의 천사들이 들어가서 장자를 죽이는 끔찍한 재앙입니다. 결국 장자를 잃은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이 날이 유월절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이후에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이 초막을 짓고 생활했던 때를 회상하며 드리는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는 심판의 날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었습니다.

절기상으로 봐도 초막절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절기입니다. 초막절이 이스라엘의 달력으로 7월 15일입니다. 양력으로는 10월 15일입니다. 그런데 초막절 5일 전인 7월 10일이 무슨 날입니까? 대속죄일입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황소에게 안수하여 자신과 가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하여 제물로 드립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는 두 마리의 염소를 선택하여 안수를 합니다. 이 두 마리의 염소 중에 한 마리는 ‘레아도나이’라고 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고 한 마리는 ‘레아사셀’이라고 해서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레아도나이’는 도살해서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한 ‘레아사셀’은 머리에 안수하고 붉은 끈을 매고 광야로 보내는데 이 염소는 죄와 수치를 상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염소를 향해 돌을 던집니다.

그러나 맞아서 죽으면 안 되니까 염소 주변에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염소를 끌고 가는 일을 처음에는 일반인이 했는데 사람들이 염소와 똑같이 취급을 해서 그 사람에게도 돌을 던지는 일이 있어서 나중에는 제사장이 염소를 끌고 광야로 나갔습니다. 동쪽 광야로 가는데 10개의 쉬어가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발해서 해지기 전에 동쪽 절벽에 도착을 합니다. 그리고 동쪽 절벽에 아사셀 양을 떨어뜨립니다. 염소를 떨어뜨릴 때는 염소가 절벽을 보면 무서우니까 춤추는 자세로 염소의 앞발을 잡고 절벽을 보지 않게 해서 밀어서 떨어뜨립니다. 아사셀 양이 떨어져 죽으면 붉은 색 근이 흰색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흰색 깃발이 올라가고 중간에 쉬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연이어 깃발을 올리고 마지막에 감림산에서 하얀 깃발이 올라가게 됩니다.

이 때 마지막 깃발을 확인한 성전에 있던 사람들은 시103:12로 찬양합니다. 시 103:13 말씀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는 말씀인데 여기서 동은 아사셀 양이 있는 곳을 말하고 서는 ‘레아도나이’의 피를 뿌린 지성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멀리하셔서 죄에서 구원하셨음을 기념하는 대속죄일이 지난 후에 곧 이어서 초막절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구원의 감사, 죄사함에 대한 감사의 절기인 것입니다.

우리의 추수감사절도 구원에 대해서 감사하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형벌 받으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며, 주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로의 부활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한 우리들은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2. 광야에서도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에 감사

43절에 보면 초막절은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지냈던 과거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기 위한 절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열사의 사막에서 태양을 견딘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구름 기둥이 일종의 천막 역할을 해 줍니다. 구름이 끼면 습도가 낮아서 시원해집니다. 구름기둥은 피난처가 되고 보호막이 되는 것입니다. 사막의 밤은 춥습니다. 그런데 불 기둥이 세워짐으로 공기를 따뜻하게 해줘서 사막의 밥도 춥지 않게 보내게 해주셨습니다. 광야에서는 농사도 짓지 못하고 물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시고 마실 것이 없었을 때는 반석을 깨서 샘물을 솟아나게 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이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애굽도 있고 광야도 있고 가나안도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생활이 애굽이라면 믿은 후에는 광야생활이나 가나안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늘 가나안의 안식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각 사람마다 광야를 통과하게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믿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광야의 훈련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나안을 누리는 듯했는데 다시 광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사울이 교만해지자 하나님은 사울을 대신하여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에게 가서 왕이 되는 기름을 부었지만 그 때부터 다윗은 광야를 통과하게 됩니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도망자로서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늘 자신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 139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살펴보셨고 다윗을 아셨습니다. 그가 앉고 일어섬도 아셨고 멀리서도 다윗의 생각까지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앞뒤에 둘러싸시고 다윗에게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갈지라도 거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광야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어제 천세경 집사의 결혼식을 보면서 저의 광야를 생각해 봤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신혼시절, 개척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주의 은혜입니다. 제가 요즘 중심을 다해서 부르는 찬양 중에 한 곡은 [주의 은혜라]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광야, 혼자 통과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해 주는 중보자들이 있습니다. 감사하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3. 수확에 대한 감사

39절에 보면 추수를 마치고 7월 15일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시기에 포도와 석류를 수확하므로 1년의 모든 수확이 끝이 납니다. 지난 1년간 무화과를 주신하나님, 포도와 올리브를 주신 하나님, 석류를 주시고 밀을 추수하게 하시고 보리를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소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급하심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채우심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습니다. 농사를 놓고 생각해 봅시다. 농부가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 곡식이 뿌리를 내리고 자랍니다. 하나님이 적당한 햇빛을 주셔야 곡식이 익고 추수를 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노력해도 비를 주지 않으신다면 적당한 바람을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시에 살지만 농부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도, 직장생활하는 분들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소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4. 가정에 대한 감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초막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막은 가족에 의하여 혹은 가족들을 위하여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그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에너지가 어디서 왔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이고 둘째는 가족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목사님은 외국시민권을 가진 분입니다. 혼자 한국에 들어와서 목회를 하십니다. 아이들 방학 때면 사모님이 한국에 들어오셔서 함께 계시다가 방학이 끝나면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십니다. 그 목사님은 목회도 안정적이고 대인관계도 넓은 편입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골프장에 나가시고, 오전에는 항상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즐기십니다. 1주일에 한편씩 영화를 보면서 취미생활을 즐기십니다. 겉으로 봐서는 전혀 외로워 보이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아이들 있는 나라로 가시고 나면 가슴이 이상하다고 하시더군요. 갈수록 가족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계십니다.

저는 아내만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기에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비밀도 말할 수 있는 좋은 친구입니다. 아내가 있기에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이들도 참 사랑스럽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족한 것도 많겠지만 제 눈에는 왜 그렇게 예쁘기만 한지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얻는 에너지는 저에게 엄청난 힘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자녀들, 가족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그 사랑의 힘이, 사랑의 에너지가 광야의 고난과 역경과 시련을 이길 수가 있는 힘의 근원, 용기의 근원 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감사해보세요. “여보! 당신이 있어줘서 고맙워요”, “아들아! 네가 있어서 너무 고맙구나” 가족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 사랑하는 가족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5. 언약 공동체에 대한 감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생활하므로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임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이 절기는 언약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절기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동참했던 것입니다.
초막절에 하는 몇 가지 공동의식을 소개합니다. 먼저는 헌수의식입니다. 헌수 의식은 절기 동안에 매일 아침마다 가장 먼저 드리는 공동의식입니다.  초막절의 첫날 아침, 제사장의 행렬은 실로암 못에 가서 일주일 동안 사용하기에 충분할 물을 그릇에 채웁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공동의식은 밤에 거행되었습니다. 이 의식은 축제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4개의 커다란 등대가 성전 4구석에 설치됩니다. 높이는 100규빗이니 약 45m 정도입니다. 이 등대는 제사장들의 낡은 에봇으로 만든 심지가 끼워집니다. 그 등대 밑에서 의식에 참석한 자들은 피리에 맞추어서 횃불 춤을 추었고, 레위인들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시 120-134편)을 불렀는데 이스라엘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걸어 내려가려면 열다섯 계단을 통과하는데 한 계단마다 노래 하나씩을 불렀습니다. 사 30:29에서는 이 의식을 ‘밤의 거룩한 절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의식은 7일 동안 매일 밤마다 거의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셋째로 중요한 공동의식은 매일 새벽에 제사장들에 의해서 행해졌습니다. 닭이 울 때 그들은 성전의 동쪽 문으로 가서, 해가 뜨는 순간 서쪽을 향해 서서 성전을 마주 보면서 다음과 같이 암송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곳에 있을 때 얼굴을 동쪽으로 돌려 동쪽 태양에 경배하였으나 우리의 눈은 주께로 향했다. "(겔 8:16)

이러한 세 가지 공통 의식을 7일간의 축제기간 동안에 매일 행했습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공동의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공동의식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속한 것을 확인하고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초막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의 초막을 방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내 가족이 내게 위로가 된 것 못지않게 또한 주변에서 함께 하나님을 고백하고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함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더불어 격려와 위로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회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비판을 받습니다. 그 비판이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존재해야 합니다. 비록 빛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 입장에 있어도 그런 교회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은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등불을 씌어놓은 유리에 더러운 떼가 많이 묻어 있어도 그것이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입니다.

이 땅에 단 하나의 교회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세상, 한번 상상 해 보십시오. 저 동토의 땅 북한, 교회가 사라져버린 북한을 보십시오. 교회가 부끄러운 요소도 많지만 교회가 줄 수 있었던 축복은 큰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올 때마다 드리는 예배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과 그리고 삶에 대한 감동과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내 속에 회복된 기쁨과 평화와 안식의 체험들 또 교회 생활하면서 얻어진 수많은 행복한 기억들, 그 추억과 감동의 순간순간들, 성도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면서 함께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따뜻한 사랑과 안식. 그런데 그 교회가 하나도 없이 사라진다. 교회가 사라진 세상. 한번 상상해 보세요. 교회가 없이 내가 지금 인생을 산다. 상상이 되십니까?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노후에 기독교 신앙에 귀의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는 평소에 특별히 젊었을 때 교회를 경멸했다. 교회를 무시했다. 그러나 내 조국 독일이 어두워 졌을 때, 그리고 나치의 핍박 아래 있었을 때 내가 경멸하고 무시했던 교회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었고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노후에 인생의 석양녘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교회로 다시 돌아온다.”는 유명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우리에게 교회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6. 앞으로 베풀어 주실 은혜에 감사

신 16:15에 보면 초막절을 지킬 것을 명하시면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은혜를 베풀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절기를 지키는 자들을 축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 제목 중에 중요한 기도제목은 비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때에 맡게 내려야 1년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절기상으로 보면 초막절이 끝나는 때에 이른 비가 내려야 합니다. 만약 이른 비가 내리지 않고 유대달력으로 9월까지 비가 오지 않는다면 산지와 남방 네게브 지역에서의 모든 식물들은 다 타죽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비가 오면 토양은 더욱 침식하게 되고, 결국 식물의 뿌리가 토양과 붙어있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내면서 이른 비를 내려주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추수감사절도 하나님이 지금까지 지켜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심에 감사하고 현재도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것을 감사하는 것만 아니라 앞으로도 은혜 베푸실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7. 영원한 천국에 대한 감사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을 떠나 초막에 거하면서 인생이 나그네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초막생활을 통해서 인생의 교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에 거하면서 가나안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은 초막에 거하면서 영원한 천국을 바라봐야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나그네 인생길을 걸으면서 영원한 천국을 바라봐야 합니다.

고후 5:1절에서는 육신의 죽음을 말하면서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참 소망은 하늘입니다. 영원한 천국입니다. 이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도 슬픔이 아닙니다. 이 소망이 없으면 죽음은 슬픔이요 절망입니다.

주안장로교회를 담임하시는 나겸일 목사님이 약 30년 전에는 영등포의 어느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 당시 교통사고가 나서 영등포 시립 병원에 32구의 시체가 안치되었습니다. 이 시립 병원의 원장이 나겸일 목사님의 대학원 동창이라, 의사와 간호원을 대동하고 32구의 시체를 쭉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32구의 시체를 둘러본 나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32구 가운데서 7명이 예수 믿고 천당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원장도 웃고, 의사도 웃고, 간호사도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나 목사님이 “그럼 내가 표시해 주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해보라”며 병원을 나왔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이전에 7명을 표시해 두었었는데, 신원을 확인해 보니 그 7명이 정말 예수 믿는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때 나 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니 의사이면서 그것도 모릅니까? 사람이 죽으면 얼굴이 시커멓고 푸른빛이 돕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은 얼굴이 밝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밝습니다.

진짜입니다. 시체를 한번 직접 보십시오. 의사이고 간호사이면서 그것도 모릅니까?” 의사는 가만히 듣더니, 유심히 생각을 해보고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아무개도 돌아가실 때 얼굴이 밝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예수 믿는 집사였고, 아무개도 돌아가실 때 얼굴이 밝았는데 예수 믿는 권사님이셨군요.” 옆에 있던 간호사도 “맞아요. 맞아”하면서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주일날 의사와 간호사들이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어려운 길이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잠시잠간입니다. 마치 아침 안개 같습니다. 안개가 자욱해도 해가 뜨면 다 사라지듯이 우리 인생이 그렇게 짧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영원합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좀 고통스러워도 영원한 천국을 생각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막의 벽은 천으로 둘러서 밖이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그런데 지붕은 나뭇가지를 대충 올려놓았기 때문에 누어있으면 밖은 보이지 않고 하늘만 보이게 됩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세상보지 말고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에 기대하지 말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초막절을 보면서 이렇게 감사합시다.
1. 구원에 대한 감사
2. 광야에서도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에 감사
3. 수확에 대한 감사
4. 가정에 대한 감사
5. 언약 공동체에 대한 감사
6. 앞으로 베풀어 주실 은혜에 감사
7. 영원한 천국에 대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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