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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 비타민T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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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비타민T (골 3:15~17)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교회에 여러 가지 절기가 있는데, 그 중에 감사절이 1년에 두 번이나 됩니다. 전반기를 마치며 맥추감사절, 한 해를 마무리하며 추수감사절 이렇게 지키는데, 왜 비슷한 절기를 두 번이나 지키는지 의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감사가 중요하고, 감사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신앙과 인생에서 감사가 너무 중요한데 잘 안 되니까 1년에 두 번씩 지키면서 감사신앙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절의 취지를 이해하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 감사신앙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맛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감사가 중요한 이유 : 하나님께 영광, 인간에게 행복

  감사가 우리 신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을 보면 감사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 말씀이 대개 “감사하라”는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15절을 보시죠. “ ...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믿는 성도라면 당연히 감사하라는 겁니다. 또 17절을 보면 뭐라고 말씀합니까? “ ... 그(=예수)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역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감사에 관한 대표적인 구절인 살전5:18도 마찬가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가 너무 중요하니까 강한 명령형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이렇게 감사에 관해 누누이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① 하나님께 영광 :

  시50:23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하나님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나니 ... ”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감사로 예배하고, 감사로 찬양하고, 감사로 봉사하고, 감사로 헌신하고, ... 감사가 빠지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 감사가 없는 찬양, 감사가 없는 봉사, 감사가 없는 헌신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감사가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② 인간에게 행복 :

  흔히 행복의 조건을 세상의 여러 조건이나 소유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행복은 성적순이고 재산 순이겠죠. 그런데 현실을 보십시오!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조건과 많은 소유를 갖고도 불만과 불평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별로 좋은 조건도 많은 소유도 가진 게 아닌데, 심지어 고난과 역경 중에 있는데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골로새서는 옥중 서신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쓴 편지가 성경이 된 겁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주의 일을 하다다 고난을 당하게 되었느니 섭섭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그러기에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할 수 있었던 겁니다. 

  또 다른 옥중 서신인 빌립보서를 봐도 바울이 그런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흔히 ‘기쁨의 서신’이라 불립니다. 그 어려운 환경 중에도 감사할 때 그의 마음 속에 늘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그는 빌4:4 뭐라고 말합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는 찡그리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역경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감옥과 수도원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가 무엇인지! 외적인 환경으로 보면 대동소이합니다. 폐쇄되고 열악한 환경입니다. 차이는 내면적인 겁니다. 내면에 감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감사할 때 마치 수도원과 같은 평안과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인생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만큼 행복하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형편이 어떻든 감사하면 행복하고, 감사하지 못하면 불행한 겁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감사에 정비례합니다.


[2] 감사가 어려운 이유 : 인간의 욕심, 배은망덕

  감사가 이렇게 중요한데, 실제로 감사하면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본성 때문입니다. 욕심이 가득하고 배은망덕한 인간의 본성 때문입니다.

  ① 욕심 :

  인간이 아무리 좋은 조건과 많은 소유를 가져도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불행해집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고질적인지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1:8 “ ...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 하도다” 잘 아시는 대로 솔로몬은 왕 중에서도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도 내면의 욕심이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크고 무한한지 모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이 거주하던 곳은 에덴동산입니다. 인류 역사 상 지구 상에 그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부족한 게 전혀 없는 ‘완벽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으로 욕심이 발동했을 때 먹지 않아도 되는,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러고도 행복해졌으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불행해졌습니다. 마침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욕심이 자리 잡으면 에덴동산도 소용없다는 사실입니다.

  ② 배은망덕 :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무궁무진하지만, 인간은 그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줄 모르고, 그래서 불행한 겁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문둥병자 치유 사건이 나오죠. 예수님을 통해 치유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10명이었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오직 1명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눅17:17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배은망덕한 인간이 얼마나 감사하기 어려운지 이 말씀을 기준으로 보면 10명 중 겨우 한 명 꼴로 감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불행한 겁니다.


[3] 감사 신앙의 훈련 : 신앙적 생각 연습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요? 감사를 훈련해야 합니다. 신앙 훈련 중에 절대로 빼먹지 말아야 되는 게 바로 감사 신앙 훈련입니다. 이것은 생각을 신앙적으로 바꾸는 연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영어로 감사한다는 말(thank)이 생각한다는 말(think)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함으로써 감사가 생겨난다.”(Thinking precedes thanking.)

  그렇습니다! 동일한 조건에서도 생각을 잘 하면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 본문 16절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 ” 말씀을 늘 묵상할 때 우리의 생각이 신앙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좋은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말씀에 내 마음 속에서 생각을 컨트럴하는 상태, 그것이 곧 ‘말씀 충만’입니다. 또 1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 그(=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를 힘입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바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신앙적 생각일까요?

  ① 비교 의식 버리기 :

  비교하는 것은 신앙적인 게 아닙니다. 인간은 비교하는 데서 불평이 생기고 결국 불행해집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햄버거를 사서 벤치에 앉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급 승용차가 앞에 섭니다. 차에서 운전기사가 내리더니 햄버거를 사다가 뒷좌석에 탄 사람에게 갖다 줍니다. 가만히 보니까 자기 또래의 젊은이인데 말입니다. 갑자기 기분이 상했습니다. 누구는 저렇게 사는데,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런데 잠시 후 자동차가 출발하는데 유리창 안쪽으로 목발이 보였습니다. 그 젊은이는 다리가 불편해서 그랬던 겁니다. 묘하게도 상했던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부러워하는 게 옳을까요? 비교하기 시작하면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게 됩니다. 사실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틀리는 겁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분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로 비교하면서 기분이 흐렸다 갰다 합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못하고 결국 불행해지는 겁니다.

  ② 남아있는 것을 바라보기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많든 적든 크든 작든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적신(赤身)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제로베이스(Zero Base)에서부터 생각해야 맞는 겁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것을 깨닫게 되고, 여전히 나에게 많은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즘 TV 광고 모델로 등장해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자매가 있습니다. 이지선 자매입니다. 그녀는 대학 재학 시절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다 교통사고로 전신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몸의 55%가 녹아내린 장애를 입은 후 얼마가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죽고 싶은 적도 많았습니다. 끝내 회복할 수 없이 흉해진 얼굴은 가장 고통스런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안에 말씀이 역사함으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게 바로 감사의 신앙입니다. 사라진 것에 연연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봄으로 감사의 제목을 찾으니까 본인도 행복해지고, 남에게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더 나은 것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보면서 감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③ 구원의 은총을 생각하기 :

  인간이 제아무리 대단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구원받지 못하면 영원히 멸망하는 겁니다.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달려 피흘려주심으로 내 죄를 사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사실! 구원의 은총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총에 정말 감사할 수만 있다면, 어떤 환경도 조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육신을 가졌기에 더 좋은 환경과 조건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행복해 지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구원의 은총에 감사할 때 환경을 초월한 절대 행복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바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도 육신의 조건만 바라볼 때는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했던 투정장이였습니다. 그래서 늘 불행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합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나니까 모든 게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역경 중에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미국인 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코르넬리우스 라이언(Cornelius Ryan 1920~1974)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세계 제2차 대전’ ‘머나먼 다리’ ‘가장 긴 밤’ 등의 소설을 쓰고 영화화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5년간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고통 중에서도 죽는 날까지 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뭐가 그리 감사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늘 이렇게 감사하오. 나는 매일 하루하루 맞이할 때마다 5가지 기쁨이 솟아나기에 감사하오. 첫째로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니 감사하고, 둘째로 가족의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셋째로 병들어 눕기 전에 원고를 탈고한 게 감사하고, 넷째로 병마와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하고, 다섯째 주님이 늘 내  곁에 계시니 감사하오.” 고통의 한 가운데서도 아직도 하나님이 주신 게 있으니 감사하고, 무엇보다 구원의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니 감사하다는 겁니다. 고통 중에서도 절대 행복을  누린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행복해지고 싶으십니까? 감사의 신앙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비타민을 복용하는 것처럼 감사의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름 붙여 봅니다! “감사는 행복 비타민 T(Thanksgiving)이다!” 기분 나쁘다고 비타민을 먹지 않습니까? 그래도 먹어야죠. 그것처럼 어떤 형편에서도 의식적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감사가 있기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뻐하고 항상 행복해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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