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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내가 주를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시 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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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를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시 30:4-12 )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한 해 동안 따뜻한 햇볕을 주시고 비와 바람과 이슬을 내려주시고, 풍성한 오곡을 거둘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여야겠습니다.  금년 한 해를 돌아보면 폭우와 홍수, 몰아치는 태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금년에도 풍성한 추수의 기쁨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농사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고 거두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추수감사절은 미국교회로부터 들어왔습니다.  1620년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새로운 신앙의 세계를 찾아 신대륙 아메리카로 102명의 청교도들이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추위와 기아, 풍토병과 맹수의 위협으로 절반 정도가 죽고, 생존자 55명이 1년 간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자기들을 해치지 않고 도와준 인디언 100여명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래되면서 1904년부터 한국교회에서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번 지나보내야 하는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우리의 일생을 감사로 충만하고, 감사의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농사짓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추수감사절이 되면 우리만의 감사가 아니라, 우리의 감사가 전 교인들의 감사가 되고, 우리 교회의 감사가 우리 가정으로, 우리 사회로 흘러넘치고, 이어지는 감사가 되어야겠습니다.  감사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고, 우리 자신은 항상 인내하면서 신실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의 사건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항상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은혜 중에 살아갑니다.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만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올해는 홀로 사는 노인들을 오후찬양예배 시간에 초청하여 함께 예배드리며 정상급의 음악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 모든 소그룹에서 준비한 과일을 예배당 앞에 진열하였는데, 오후에는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도 나누어드리고, 그들에게 떡을 드리고,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시라고 외투를 한 벌씩 선물하려고 합니다. 하나의 감사가 열의 감사로, 나의 감사가 우리의 감사로, 오늘의 감사가 내일의 또 다른 감사로 이어질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은 설교의 핵심 주제를 ‘감사’에 맞추어놓고 설교해야 하는 날이요, 감사를 말할 수밖에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오늘 교회에 오실 때에, 오늘이 추수감사절이니 ‘감사하라’는 주제로 말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셨습니다.  저도 감사를 말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피할 수 없는 벼랑 끝에서 ‘진정한 감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헨리 나우엔 박사의 책 중에 “춤추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중에 감사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가장 깊은 의미에서 감사란 삶을 고맙게 받아야 할 선물로 산다는 뜻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감사란 우리의 전 삶을 고맙게 받아야 할 하나님의 선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 전부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야 합니다. 

한 잡지사에서 앙케트 조사를 하면서 거리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에게 그런 질문이 주어졌다고 생각하십시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특유한 발뺌 작전입니다.  정확한 대답을 피하고, 중간 치기를 잘합니다.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많은 대답이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좀 나은 대답입니다.  잘 살고 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라는 대답도 많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실 것입니까?  감사가 없는 삶은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 감사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붙잡고 사용하기 싫어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붙잡고 사용하시는 이들을 보면 다들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사람들이 차지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나우엔의 감사의 정의를 정말 좋아합니다.  “가장 깊은 의미에서 감사란 삶을 고맙게 받아야 할 선물로 산다는 뜻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삶을 고맙게 받아야 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어려서 작은 저수지, 저희 시골에서는 둠벙이라고 하는데, 논에 파놓은 좀 커다란 웅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둠벙에 빠져 죽었으면 그만이었는데, 하나님은 저의 작은 아버지를 보내어 죽어가는 것을 건져내어 살려주셨기에 제가 사는 것은 선물로 받은 생명입니다.  몇 번의 교통사고로 죽을 수 있었는데, 살려주신 것은 저의 삶이란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저는 하루하루를 고맙게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은 저 한 사람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선물로 받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요, 일생 고마운 심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일사후퇴 때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넘어오시지 않았습니까?  사선을 넘어오면서 살려달라고 얼마나 간구하셨습니까?  저도 일생에 살려달라고 기도한 적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한번 봐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사가 진정한 감사가 되기 원하면 우리의 삶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 기쁜 일과 아픈 일, 거룩한 부분, 거룩하지 않은 부분을 가리지 않고 삶 전체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삶 전체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은총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은총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애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함께 동행 하셨고,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셨기에 감사하고, 나를 위하여 역사하셨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환경을 감사할 것인가?  아니면 어려운 환경도 감사할 것인가?  좋은 것과 나쁜 것, 기쁜 일과 아픈 일, 성공과 실패 모든 일에 있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시16:2에서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동안 앞을 보아도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옆을 돌아보아도 도움을 줄 사람이 없습니다.  뒤로 돌아보면 나를 잡아 끌어내리려는 경쟁자들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험한 경쟁사회에서 나 혼자 뒤처져 있고, 외톨이가 된 느낌을 받습니다.

그 때에 나는 아무도 없구나,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탄식하게 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의 눈이 바라보는 것은 동서남북뿐이 없더냐?  위로 바라보라.  하늘을 바라보라.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나 하나님이 너의 편이 되어주마. 너를 지지해주마.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않았노라.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시편을 읽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시30편은 제가 가장 고통 중에 있을 때, 질병으로 장기간 입원하고 있을 때에 힘이 되어준 말씀입니다.  곧 나의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는 이 말씀은 바로 저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11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다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11절입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에게 마지막으로 “감사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입니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함으로 살자.  하나님을 부를 때마다 감사하신 하나님으로 부르자고 다짐했습니다. 

1.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4절입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새번역입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여라.” 여호와를 찬송하라. 주님을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위에 거룩하신 하나님, 엄위하신 하나님, 지존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써 지켜야 하는 자리를 지키며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엄위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으셔야 하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우리도 거룩할 수 있었고,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도 무언가 다르게 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 요즈음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도록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하신 우리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만일 없다고 하면 그렇게 인생을 반듯하게 살아올 수는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  하나님이 주시는 평생의 은총을 생각하며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5-6절입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평생이다,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때로는 밤새도록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했지만, 새벽에 함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잠깐 노여워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는데도 하나님은 때리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은 버린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인데, 왜 노여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잠깐 노여워하시는 것도 사실은 은혜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하며, 슬픔이 찾아올 때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었고, 그의 은총은 평생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잠깐의 노여움으로 낙심하지 말고, 저녁에 깃들인 울음으로 원망하지 말고, 평생에 주시는 은총과 아침의 기쁨으로 감사 찬송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수원에 내려가면서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애청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글이었습니다.    사회초년병으로 직장 생활하면서 자존심을 버려야 했던 신입사원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을 감원하려고 한 부서의 사람들을 나누면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로 한 팀 만들고,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묶어서 일을 맡기면서 무능하다고 하여 한 팀을 자르려고 하였습니다.  일을 잘하는 팀을 맡은 박팀장이라는 사람이 애청자가 속한 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자르려고 작심하고 야단을 치고 간섭하고, 눈물이 쑥 빠질 정도로 나무랐습니다.  사소한 실수만 해도 가차 없이 나무랐습니다.  “너 학교 어디 나왔어?”, “너 이 정도 밖에 안 돼?”, “너 때문에 똑똑하고 운 없는 경쟁자가 잘린 것 알아?”,  “너 연봉 얼마야?”, “월급 받는 만큼은 일해야 되는 것 아니야?”, “ 너 어느 대학 나왔어?”, “너 대학 졸업한 것은 맞아?”  “대학 졸업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까먹어?”, “야, 명문대 나왔으면 무엇해. 실전에 약한데 말이야.”, “너 이러는 것 네 부모님은 아시냐?” 

이 남자가 이런 말을 듣고 완전히 자존심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의 팀은 감원의 대상이었고,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그만 회사를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의 참패가 오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회사에서 당한 처절한 구박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성공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좋은 회사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고, 고액연봉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서 그 때 자기를 야단친 박팀장이라는 분에게 ‘감사한다’고 인사하고 있습니다.  그 때 박팀장으로부터 야단을 맞고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답니다.  그는 자기를 깨우쳐준 박팀장에게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한 팀이 되기만 하면 힘이 되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주어지고 환난이 찾아올 때는 누구나 낙심하게 되고,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고통과 환난으로 인하여 몹시 슬퍼 울었습니까?  고통과 환난은 우리를 연단하고 성숙하게 하였고,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지나고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깊은 밤이 지나가면 곧 이어 찬란한 아침이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의 구원과 승리는 고난을 통과하고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었고, 그의 은총은 평생입니다.  저녁에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찾아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잠깐의 노여움으로 낙심하지 말고, 저녁에 깃들인 울음으로 원망하지도 말고, 평생에 주시는 은총과 아침의 기쁨으로 감사 찬송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통할 때에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나서 성공한다고 말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조금 살게 되었다고 해서 자만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8:18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인생의 자만은 곧 패망입니다.  인생의 감사는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감사는 성숙한 성도들의 표시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십시오.  그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불러줍니다.  우리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감사할 것뿐이 없습니다.  행동보다는 태도가 더욱 중요합니다.  원망하는 말은 성도의 마땅한 말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감사는 계속해서 감사를 불러옵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10절 말씀을 봅니다.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지켜주셨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시면 그만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나님, 여기가 좋사오니 이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놓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의 기도하는 것보다 항상 더 좋은 것으로 주셨지, 못한 것으로 주신 적이 없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어떤 일에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나를 몰라주는가?  아니, 이런 일에 반대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면 그날의 반대가 오늘의 성공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전화위복이 되게 하시고,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죽음의 순간에 처해진 적이 많았습니다.  그는 그 순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8-10절에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다윗은 죽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보다 살아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주의 진리를 선포하겠다고 살려달라고 부르짖어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각하면서 감사하십시오.

4.  우리는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외치며 감사해야겠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고, 그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 띠우시는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송하고, 감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11-12절입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겨버리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으로 갈아입혀주셨습니다.  우리는 잠잠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원토록 감사하고, 찬송해야겠습니다. 

축복을 받는 삶을 위한 5가지 습관이란 책이 있습니다.  제임스 맥도날드 목사님의 책인데, 그는 미국 하비스트 성서교회를 1988년에 개척하여 담임하고 계시는데, 세계적인 대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그는 감사의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감사도 수준이 있는 감사가 있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의 수준에 머무는 감사도 있지만, 대학수준의 감사를 하라고 합니다. 항상 감사하는데, 성령에 충만하여 감사하는 것,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는 수준이 높은 감사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 앞에 있는 여러 가지 중에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가 선택한 우리의 결정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태양은 찬란하게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는 하루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평할 수 있는 조건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인생을 바꾸는 선택입니다.  여러분, 순간순간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감사는 우리 성도들의 가장 고귀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일마다 때마다 축사하셨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는 말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가장 뛰어난 가치는 감사의 삶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의 품성을 가진 감사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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