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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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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6:1)

(시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날 교회의 주요 절기 중 하나로 지켜지고 있는 추수 감사절의 근대적 기원은 미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한 후 첫 수확을 하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린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추수 감사절 시기는 나라와 교단마다 다를 수 있으며 그 기간이 실제적인 추수기간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늘날의 추수 감사절을 유래케 한 미국은 청교도들이 신대륙 이주 후 첫 추수 감사절 예배를 행한, 버지니아 북쪽 땅에 첫발을 내디딘 1620년 1월 21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 감사절로 정하고 있다. 한편 영국은 전통적으로 8월 1일을 추수 감사절(Lamas)로 지키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부활절 후 40일, 즉 승천일(목요일)전 3일간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음력 8월 15일, 즉 추석이 이 날에 해당하였다. 이때 사람들은 풍성한 수확을 기뻐하며 조상들을 생각하여 성묘하고, 햇곡식으로 빚은 떡과 과일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기독교 전래 이후 교회에서는 교단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인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것을 기념하여 11월 셋째 주 일요일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원래 미국 선교사의 조선 입국은 11월 셋째 주 수요일이었으나 그 후 요일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며 여호와께 감사하라신 말씀을 상고 합니다.

  선하신 여호와께 감사하라
주님은 한 청년에게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말씀 하심으로 절대적으로는 하나님만이 선하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은 또 한편으로 피조물을 대하실 때에 나타나는 속성으로서 피조물을 향한 선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몇 가지로 구분 합니다.

  자선(Benevolence)인데 일반 생물을 향한 선하심입니다.
(시 145:9)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 145:15)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시 145:16)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196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동경 올림픽을 앞두고 스타디움을 늘리기 위한 공사를 하기 위해 어떤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벗겨 내다 보니까, 몸뚱이의 꼬리 쪽 부분에 못이 박혀 있는 도마뱀 한 마리가 벽에 붙어서 도망을 치려고 바둥거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단 말인가? 어찌해서 몸통에 못이 박힌 채로 살아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 그들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쪽의 공사를 잠시 중단한 채, 당초 그 집의 주인을 찾아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 집주인의 말은, 3년 전에 그 집을 지었는데, 그때 그 못을 박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도마뱀은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힌 채 살아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진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도마뱀이 3년 간이나 살아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도대체 3년 동안, 물과 먹이는 어떻게 구해서 먹고 살았단 말인가. ' 그들은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 은밀하게 관찰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글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물과 먹이를 물어다가 먹여 주고 몸에 물을 발라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광경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찮은 미물이 어찌해서 그렇게도 변함없이 장장 3년간이나 먹이를 물어다 줄 수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운 사랑이요, 우정이요, 봉사요, 감동적인 미담이 아닐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찮은 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들에게 자선을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Love)으로 이성적인 피조물을 향하신 선하심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한 토인이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추장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추장은 화가 치밀어 죄인을 사형시킬 것을 명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선교사는 비싼 보화를 싸가지고 가서 추장에게 주면서 죄인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추장은 보기보다 완고하고 냉담했습니다. "저런 물건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상아나 금, 은, 노예 따위는 부럽지 않소. 그런 것들은 저쪽 부락에 가면 얼마든지 빼앗아올 수 있소. 더구나 백인의 물건은 갖지 않겠소. 내가 오직 필요로 하는 것은 피요. 다른 것은 소용없소." 추장은 다시 부하에게 죄인을 죽일 것을 명했습니다. 화살이 시위에서 떠나려는 순간 선교사의 가슴에는 연민의 정이 가득하여 자신도 모르게 죄인 앞을 가로막고는 자기가 화살에 맞았다. 순간 선교사는 쓰러졌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화살을 뽑아 땅에 던졌습니다. 선교사의 몸에서는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는 이러한 몸으로 추장에게 다가갔습니다. "자, 당신이 구하고 있는 피요. 받으시오. 그리고 그를 살려 주시오." 선교사의 행동에 감동한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소. 당신은 당신의 피를 가지고 그를 샀소. 그는 당신의 것이오." 그 때에 죄인은 선교사의 발밑에 엎드려 감격에 떨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은 피로 저를 사셨습니다. 아무쪼록 오늘부터 어디를 가시든지 제가 모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후 선교사가 가는 곳마다 그 토인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에도 결코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합니다.

  은혜(Grace)로 정죄 되어 청구권이 없는 자에게 공로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대학생들에게 수영과 다이빙을 가르치는 한 수영 코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자 수영을 하고 나면 잘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풀장으로 갔습니다. 그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전등을 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풀장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붕이 유리로 덮여 있었기에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달빛으로 사방이 그리 어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었고, 그 빛에 비춰진  그림자는 풀장의 반대편 벽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다이빙을 하려고 발판에 올라섰습니다. 몸과 팔을 완전한 십자가의 형상을 그려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냥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왜 그 순간에 다이빙을 하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위험에 대한 어떠한 예감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그림자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 배웠던 찬송가 한 구절을 암송했습니다. '그가 죽으심으로 내개 용서받으니....'다이빙 발판 위에서 얼마 동안을 서 있었는지 그리고 왜 다이빙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이빙 발판에서 내려와 풀장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바닥에 닿자 차며 부드러운 감촉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전날 밤 풀장 관리인이 물을 다 빼놓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냥 다이빙했다면, 그것은 죽음으로 뛰어드는 다이빙이었을 것입니다. 벽에 비춰진 십자가가 죽음에서 구해 냈던 것입니다. 자비로 목숨을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 차다찬 바닥에 그대로 무릎 꿇고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십사 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순간순간 은혜 주심에 감사 합시다.

  긍휼(Mercy)하심으로 고통과 수난에 대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입니다.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냇물 위로 외나무다리가 놓여있고 한 여인이 이 다리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금방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호흡을 길게 심호흡을 해보지만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다리를 무사히 지나가게 해 주신다면 전 재산을 바쳐 하나님 사업에 쓰겠나이다.” 다리 중간쯤 갔습니다. ‘이제 절반이나 왔는데 전 재산을 바친다?’ 이 여인은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 다리를 지나가게 되면 저는 땡전 한 푼 없는 알거지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 제가 그렇게 되는 걸 원치는 않으시겠죠? 제가 재산의 절반만 바친다 해도 하나님은 이해하실 거예요 그것도 저는 엄청나게 큰 것이랍니다.” 이래서 다리를 다 건너게 되자 이 여인은 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 재산의 반을 바친다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요? 이 다리가 그렇게 위험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 딱잘라 5만원만 헌금하더라도 이해하시겠죠?” 마지막 다리가 흔들거리며 여인의 중심도 흔들거렸습니다. 다급해진 여인은 얼른 고쳐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맨 나중에 지껄인 제 말을 정말이지 농담이었습니다. 그걸 진심으로 받아드리다니 너무 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인간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나 하나님의 긍휼심이 함께 하므로 오늘도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오래참으심(Long Suffering)으로 죄인들의 회개와 관련된 하나님의 선입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조금만 인내했더라면 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 가정>의 예입니다. 직장 상사에게 꾸중을 들어 마음이 불편한 새신랑이 있었습니다. 퇴근한 신랑이 밥상을 받아 첫 숟갈을 뜨는데 그만 돌을 씹고 말았습니다. 그는 소리쳤습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둔 거야. 밥도 못하나?' 속이 상한 신부는 '그럴 수도 있지. 남자가 그깟 일로 화를 내요?' '잘못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웬 말대꾸야' '남자가 쫀쫀하기는...' 화가 난 신랑이 홧김에 신부의 뺨을 때렸습니다. 보따리를 챙기며 화를 삭이지 못하는 신부. '우린 완전히 실패한 결혼이야. 맞고는 못살지' 결국 이 신혼부부는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가정>입니다. 치약을 사용할 때 여자는 치약의 중간을 아무렇게나 꾹 짜서 퍽 집어던지는 반면에 남편은 치약의 꼬리부터 차근차근 눌러 사용하기 때문에 아내에게 왜 그렇게 쓰느냐고 잔소리를 하면 아내는 뭐 치약 하나가 얼마나 한다고 잔소리를 하느냐고 덤벼들곤 했습니다.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곤 하다가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가정>입니다. 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다 남편이 몹시 화가 났습니다. 화가 난 남편은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가 버려!' 아내도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나가라고 하면 못 나갈 줄 알아요!' 그런데 아내는 가정선교교육원(HOME)의 '결혼과 가정생활 상담세미나'에서 배운 것을 떠올리며 다시 자존심을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남편은 왜 다시 들어오느냐고 소리를 지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두고 갔어요!' '그게 뭔데?' '바로 당신이에요!' 남편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선하심이 우리를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 합니다.

  인자하신 여호와께 감사하라.

(벧전 2:2)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인자 (헤세드 Hesed)는 (요일 4:8)에 말씀하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심에 대한 구약 성경적 반영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유한 포도원 주인이 자기가 고용한 일군 중 한 사람이 값비싼 포도주 통을 엎질러서 포도주를 다 쏟은 것을 알고 그를 법정에 고발합니다.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법은 당신 편에 있소. 당신의 일군은 마땅히 당신에게 손해 배상을 해야 하오. 그러나 당신은 부자이고 일군은 가난하지 않소. 듣기에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이라고 들었소. 그래서 오늘 나는 당신에게 법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헤세드에 따라 행동하기를 판결하는 바이오. 헤세드의 원리에 따라 고소를 취하하고 당신의 일군에게 임금을 지불하여 주시면 좋겠소. 당신은 경제적으로는 조금 손해를 보지만 영적으로는 더 부요해 지실 것이오. 그래서 당신이 일군을 용서한 것처럼 하나님도 당신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헤세드로 인해 세상이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해주시면 좋겠소"(해롤드 쿠스너, The Lord is my shepherd, p.160-161) 그는 재판관의 권고를 따랐다고 합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 이 시편23:6을 부끄럼 없이 고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영원하신 여호와께 감사하라.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하나가 영원성입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고 인간은 유한하고도 순간적인 존재로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유한한 인간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그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죤 웨슬레(John Wesley)가 꿈꾼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꿈속에서 지옥에 내려가 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여기 우리 감리교인도 와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랍니다. “장로교인도, 침례교인도, 천주교인도, 루터교인도 다 와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랍니다.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어 천국에 가봤더니 거기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또 묻기를 “여기 감리교인도 와 있습니까?”했더니 “아니요! 장로교인도, 침례교인도, 루터교인도 다 안와 있다.”고 하여 깜짝 놀라 그럼 누가 와 있느냐 하였더니 오직 어린양의 피로 구속 받은 사람들만이 와 있다고 대답해 주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참으로 믿는 그리스도만이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시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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