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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기름 부으심 (사 3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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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기름 부으심 (사 32:15-20)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그 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먼저 그 삼림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참으로 반갑다. 미국에는 70년 초에 온 적이 있었는데 오늘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어 참 은혜가 된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부담도 있다. 왜냐하면 제 아들(피세원 전도사)이 이곳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위에서부터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는 내용이다. 그래서 제목을 ‘성령의 기름 주으심’이라고 정하였다. 여러분들은 참으로 복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세계 인류, 67억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부유하고 강대한 나라인 미국에 와서 주를 섬기고 비지니스도 하며 자유와 평화 속에서 살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나 우리 삶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 것이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다스리고 계시지만 그 가운데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분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향을 떠나서 많은 재물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사실이다. 예배가 회복되면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이 불 일 듯이 일어날 것이다. 죠지 워싱턴이나 링컨과 같은 미국 대통령들은 그들이 전쟁에서 이기는 곳마다 유적지를 세웠다. 그런데 그들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항상 하나님 앞에 예배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들이 이곳 미국에서 열심히 살면서 또한 주일 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원근각처로부터 모이는 이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다.

(1)본문의 15절을 보자. ‘필경’이라는 말은 ‘절대적이고 틀림없이’라는 뜻이며 강조를 위해서 사용된 단어이다. 그리고 부어주신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차고 넘치도록 주신다는 뜻이다. 15, 16절에는 ‘아름다운 밭’이라는 말이 나온다. 광야는 어떤 곳인가? 그곳은 길도 없고 대단히 건조하며 숨이 막히는 곳이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면 그곳이 아름다운 밭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들은 성공을 위해서 모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들이 최고의 성공을 했다고 해도 그곳에는 참 만족이 있을 수 없다. 등산하는 사람들은 밧줄에 의지하여 정상에 오르려 한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면 ‘야호’라고 소리하며 잠시 기뻐하지만 곧 바로 내려갈 일을 염려하게 된다. 사람들이 세상의 정상에 이르게 되더라도 그들은 그곳에서 술과 마약을 찾는다. 왜 창피를 무릎쓰고 그런 일을 하게 되는가? 그것은 그곳에서 인생의 허무를 느끼기 때문이다.

밭은 물과 열매와 소산이 있는 곳이다. 우리 인생 중에서 최고의 삶은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이여 내게 임하시옵소서, 나를 주관하여 주옵소서’라고 간구하여야 한다.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늘 깨닫게 하신다. 우리 모두는 광야와 같은 삶을 산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늘 생각하며 고민하고 수고한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미래는 평안으로 보장되어진다. 사람의 생명이 그 육신을 떠나면 그저 조그만 무덤 속에 묻히게 된다. 그리고 작은 납골당은 그보다도 훨씬 작고 훨씬 안 좋은 곳이다. 사람의 육체는 오직 살아 있을 때에만 쓸모가 있는 존재이다. 시체는 전혀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몸이 살아 있을 때에는 얼마나 귀한가? 오래 살고 있는 나무를 보라. 한번은 캐나다 벤쿠버에 있는 대단히 큰 나무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나무는 무려 700년을 살고 있다고 한다. 하도 신기해서 한참을 올려다 보았다. 인생들은 100년도 살기 힘든데 어떻게 700년을 살고 있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성령없이 육체로만 산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갓난 아이는 울면서 태어난다. 나면서는 자신이 울고, 갈 때는 남들을 울게 한다. 우리가 살면서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먼저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권세를 받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부자 지간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관계이다. 그것은 계산, 사랑, 그리고 상속이다. 먼저 부자 간에는 계산이 없다. 잘되라고 때릴 때에도 사랑으로 하는 관계이다. 그리고 이와같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구원과 사랑의 언약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천국의 시민권은 미국 시민권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은가? 이 땅의 주인은 백인도 아니고 인디언 원주민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주인이다. 인디언과 한국 사람들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언어도 비슷한 것이 많다. 그리고 엉덩이의 반점도 똑같다. 음식을 가족들이 함께 떠먹는 관습도 비슷하다. 미국 땅에 한국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우리의 영역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우리의 땅이라고 여기며 살자. 한국어는 세계 공통어 중의 하나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우리 한국어는 computer에 입력이 가장 쉬운 언어라고 한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한국어가 유명해지고 있다. 사실 영어는 아주 쉬운 언어이다. 개에게 하는 말이나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똑같은 언어가 영어이다. 한국 민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이다.

(2)16절을 보자. ‘그 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공평이란 말은 평탄하다는 뜻이다. 이야기 한대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평강과 생명이다. 인간은 원래 잔인하고 교만하며 시기와 질투가 있고 유혹에 약한 존재들이다.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근심과 걱정에 빠져 살게 된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인간은 겸손해지고 낮아지며 의로운 마음과 평강을 갖게 된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평생 오만 가지의 근심과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중에서 95%가 쓸데 없는 것이라고 한다. 다만 5%만이 우리를 근심하고 걱정하게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것마저도 다 맡기라고 하신다. 모두 다 하나님께 맡기자. 그리고 천국을 향하는 인생의 길을 평안하게 살아가자. 필요없는 걱정을 하지 말자. 우리는 어짜피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을 가는 인생이 아닌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살다보면 눈치 보는 일에 도가 트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얼굴은 상황과 상관없이 늘 평안하고 은혜가 넘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여, 나의 짐과 나의 염려를 주께서 맡아 주옵소서’라고 간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흥회를 하다보면 처음에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라고 찬송하다가, 끝날 무렵에 은혜를 받으면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이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라고 찬송한다. 이것은 은혜를 받아서 모든 짐을 주께 맡긴 결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또 다시 짐을 지고 살게 된다. 반복해서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의 모든 짐을 다 주님께 내려 놓으라. 어짜피 우리 인생의 고통과 근심은 계속해서 밀려올 수 밖에 없다. 너무 못 살아도 근심이 되고 너무 잘 살아도 고민이 되는 법이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3)17절을 보자.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화평, 평안, 그리고 안전 안에 거할 수 있게 된다. 33장6절을 보자.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우리는 평안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갖춘 듯이 보여도 평안함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사이다. 큰 집에 살던지 작은 집에 살던지, 우리의 고민은 계속된다. 문제는 그 안에 평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 강 같은 평화가 있다면 우리는 어디를 가던지 하늘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을 천사와 같은 얼굴로 살 수 있고, 지옥의 고통을 가지고 살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우리 안에 평안함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이 숨어서 떨고 있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가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이는 성령을 받아야 하늘 나라의 평강을 소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색함은 큰 병이다. 인색하면 그 마음에 평강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숨을 아끼다가 죽었다는 우스운 말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은 항상 평강을 약속하셨다.

(4)20절을 보자.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은 또한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복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영원히 잘 되는 것, 천국 가는 것, 강건하게 사는 것, 그리고 땅에서 복 받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역사상 하나님을 믿었던 나라들은 모두 부유해지고, 그 중에 저주를 받은 나라가 하나도 없었다. 반대로 하나님을 저버린 나라들의 축복은 모두 무너졌다. 우리가 계속 만사형통하려면 지금까지 주신 축복을 감사해야 한다. 인생들이 잘나고 행복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전도서5장19절을 보자.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은 재물과 부요를 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며 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이미 충분히 주셨고 또 그렇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과 부요와 축복을 모두 누리기를 바란다.
(피종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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