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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랑하고픈 사람 (욥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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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고픈 사람 (욥 1:6-12)

중앙일보사에서 출판된 “선한 사람들에게 왜 불행이 오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유대교 랍비인 헤럴드 사무엘 쿠시너가 지은 책입니다.  이 랍비에게는 사랑스런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몸이 빨리 늙어 가는 조로증 환자로서 생명이 끓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14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왜 이 아이가 고통을 당해야 되는가" 라는 질문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했습니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정이 많은 분이지만 모든 곳에 다 계실 수는 없다.  세상은 임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고통을 홀로 다 막으실 수가 없다.  그저 하나님은 바라보시고 손을 잡고 가만히 계실 뿐이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이 사실일까요? 

그는 자신의 이성으로 고난의 문제에 답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이땅에 있음을 보고 이런 추론을 합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2) 그렇다면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분일까?
3)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4)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럼에도 고난을 막지 못하시는 것은 그 분이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전능하심 가운데 사랑을 남겨두고 전능하심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픈 가슴으로 고난 받는 우리의 손을 잡고 계신다고 결론 내립니다.  부분적인 신학적 오류는 있지만 충분히 감동할 부분이 많은 책입니다.

사실 고난의 문제는 신학의 가장 어려운 난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 라는 질문은 모든 신학자들의 난제였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우리는 욥기를 통해 부분적인 진실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고난의 비밀에 대한 온전한 진실은 하나님 안에 영원히 감춰져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천국에 간 후에도 이 비밀을 풀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사탄의 정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사탄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역시 사탄의 존재를 믿어야 합니다.

사탄은 간교한 두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는 마치 자신이 전능한 존재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귀신을 무서워하게 만듭니다.  엑소시스트나 오멘 같은 영화를 보십시오.  그 영화를 보면 하나님은 존재치 않고 오직 사탄만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마치 자신이 존재치 않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악은 없습니다.  실수와 불완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죄라는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황당해 보입니까?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사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듯, 사탄도 존재합니다.  단지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어떤 존재일까요?  먼저 우리는 사탄의 숨겨진 정체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탄의 정체

성경은 사탄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지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천사들의 우두머리로 하나님께 반역을 하여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1. 사탄은 고발자입니다.

사탄이 하는 가장 큰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끊임없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우리는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계 12;10절에서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사탄은 지금도 우리의 죄를 들먹이며 하나님께 참소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가장 큰 사탄적인 모습이 바로 이 고발과 저주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것, 남의 허물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모습들이 바로 사탄적인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2. 방랑자입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사탄은 베드로의 말과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인간들을 하나님의 품에서 떼어 놓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치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는 어디든지 갑니다. 

그래서 루터는 심지어 사탄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가 잠자는 순간에도 사탄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가?”

사탄은 오늘도 우리의 빈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 그 공격을 받게 될지 모릅니다.

3. 냉소자입니다.

사탄은 이간질시키는 자입니다.  그리고 냉소하는 자입니다.  함께 9절을 읽겠습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욥을 비방합니다.  욥이 이유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사탄은 이런 방법을 하와에게 사용하여 재미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괜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야.  그건 네가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이것이 사탄의 일관적인 방법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실제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늘 깨어 대적해야 할 원수입니다.  사탄은 감히 예수님까지도 유혹하려 했던 자입니다.  그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흔들고 싶어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품에서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까?  우리가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사실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사실 한 가지, 그것은 바로 사탄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한계성

사탄은 아마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 것 같습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아마 정기적으로 사탄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사탄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욥을 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욥의 이름조차 거론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욥을 칭찬하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자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스런 자녀였습니다.  말하고 싶고, 자랑하고픈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참을 수 없는 기쁨으로 이렇게 욥을 자랑하십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욥의 순전과 정직을 칭찬하십니다.  욥의 순전과 정직은 하늘 아버지에게 큰 자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에 사탄은 견디지 못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어 욥을 비방합니다. 

9-10절을 읽겠습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사탄은 오히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욥의 울타리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그가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욥이 괜히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산울타리가 되어 우리를 지키고 계시다는 것, 그것은 우리도 종종 잊어버리는 위대한 진실이었습니다.  오히려 사탄은 그 사실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이 모든 소유물을 산울타리로 지키듯 지키고 계십니다.  만일 그 울타리가 없다면 우리는 한 시도 이 땅에서 평안하게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울타리를 거두시는 순간 우리의 삶은 어둠과 공포, 시기와 탐욕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사탄은 욥의 이 산울타리 근처를 수 없이 배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히 그 산울타리를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그 산울타리를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말과 같이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결코 산울타리를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사탄이 욥을 겨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랑스레 욥을 칭찬하시며, 욥의 산울타리를 넘지 못한 사탄은 대담하게 하나님께 욥을 비방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믿기에 복을 받습니까?  눈치 빠르게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에 복을 받는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까?  욥과 같은 고난이 다가와도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니라 저의 믿음입니다.  그것도 저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게 주신 믿음입니다.  물론 아직 100% 까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저도 욥처럼 푸념도 하겠지요.  제 생일 저주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믿음 하나만으로 어떤 시련도 이길 수 있습니다.

종교심리학에서 종교를 어떤 다른 목적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신앙, 다시 말해서 복을 받기 위해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을 비본질적인 종교인이라고 말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종교가 아니라 목적 자체가 되는 신앙, 다시 말해서 복이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든 자신의 믿음이 생활이 되는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본질적인 종교인이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본질적인 신앙인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사탄은 반드시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그의 재물과 가족이 사라진 후에도 그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에 반해서 하나님은 욥이라는 인물이 바로 본질적인 신앙인이라고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넘치는 자신감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래, 네 소원이 그렇다면 어디 욥을 건드려 보아라.  하지만 그의 몸은 건들지 말아라.  단지 그의 소유만을 취하거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본질적인 신앙인입니까?  아니면 비본질적인 신앙인입니까?

결론

고난의 큰 비밀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땅의 고난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시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탄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호시탐탐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 4;26-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모든 사람을 분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연약한 인간의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화가 나기 때문에 사람을 죽입니다.  화를 참지 못해 집에 불을 지릅니다.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자신을 송두리째 마귀에게 내어줍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공격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공격 앞에 맥없이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공격을 막아내고 쓰러뜨릴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엡 6;11-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싸움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싸움에서 승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랑하십니다.  욥을 자랑하시듯, 우리를 자랑하십니다.  “사탄아, 행복한 교회의 성도들을 보라.  저들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들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비록 우리에게 여전히 죄와 허물이 있지만 세월이 갈수록 더욱 하나님이 자랑하고픈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랑인 사람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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