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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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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 (눅 17:11-19)

본문에는 나병환자 10명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고침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1.열 사람의 공통점.

① 그들은 다 같은 병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에서는 나병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생기는 천형의 병으로 여겨졌다. 나병으로 진단받으면 그는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스스로 알려야 했고,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과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고, 동네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이런 병을 가지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② 다함께 부르짖었다.
그들은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었다. 성경의 의미는 이들이 한 번만 아니라, 계속해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었다.
주님은 우리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나 달려오셔서, 우리를 도와 주신다.

③ 다함께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다함께 “제사장에게로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는 말씀을 받았다. 오늘도 우리는 다 같이 교회에 나와서 다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④ 다함께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고침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나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고쳐졌다는 확인을 제사장에게 가서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치유의 역사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병이 낫게 되었다. 그들은 믿음과 순종으로 고침 받은 것이다.

주님의 기적은 이처럼 세 가지로 이루어졌다.
① 부르짖음 ② 주님의 말씀 ③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나병환자가 부르짖었다고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주실 때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기적은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일어난 것이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는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 그리고 받은 말씀을 지키라.
그들에게서는 아직 가시적으로 아무 것도 나타난 것이 없다.

신앙이라는 것이 사실 그렇다. 우리가 천국, 지옥, 그리스도, 하나님을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믿는다.
탐험가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나, 지도 한 장만 들고 가듯, 우리는 성경말씀 하나만 믿고 가는 것이다.

인간의 판단이나 이성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고 나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2. 차이 점

그들 중 한 사람은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감사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개나 돼지 같이 천대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마리아 사람은 은혜를 입고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였으나, 선민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9명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몸이 회복된 것만을 기뻐하였을 뿐, 예수님께 대하여 최소한의 감사표시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아홉 사람도 사람인데 예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그 감사를 마음에만 담아 두었을 뿐 주님께 돌아와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표현되지 않는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아니다.

예수님은 돌아와 감사하는 이 사람을 보시고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쓰신다.
마음이 감사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한다. 그러나 원망, 불평, 짜증, 비판 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은, 어떤 경우에서도 감사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인의 가장 큰 병은 “감사할 줄 모르는 병”이다.

원망과 불평은 감사의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다.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 내가 행복해 지는 길이다. 

물론 세상을 살다 보면 원망이나 불평의 조건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가난, 질병, 실패가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다 선을 이루기 위해 주신 것이다.

서양격언=제일 어려운 수학문제는 내가 받은 은혜를 계수하는 것이다.

감사를 회복해야 한다.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건망증이 문제이다.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산다.

「저에게 개인적인 소망이 하나 있다면 제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하고 맑은 정신으로 있다가 최후에“하나님!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잠시 후에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죽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교회는 감사하는 자의 모임이며, 감사는 믿음의 시작이요, 축복의 시작이며, 감사는 능력이다. 감사가 없으니, 기쁨도 없다.

예수님은 하찮은 오병이어를 앞에 두시고서도 감사의 기도를 하셨다.
스펄젼 목사=감사는 축복의 연장이요, 불행의 끝이다.

한숨은 가끔, 감탄사는 자주자주, 걱정은 짧게, 희망은 길게, 지적은 간단히, 칭찬은 풍성하게, 지시는 적게, 솔선수범은 많이, 불평은 하는 듯 마는 듯, 감사는 넘치도록, 그러면 세상 행복은 모두 내 것이 된다.

감사는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감사가 일상화, 체질화되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다.
Think=Thank

감사가 없는 것은 샤머니즘이요, 기복주의이다. 샤머니즘에도 기도(祈禱)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 감사는 없다.

봉사도 감사함으로 하면 귀찮지도 않고, 피곤치도 않는다. 억지로 하면 피곤하고, 짜증나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히 세 가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

① 에벤에셀(Eb-en-e-zer)의 은혜(삼상:7:12)=과거의 은혜
“에벤에셀”은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과거에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이다.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

② 임마누엘(Em-man-n--uel)의 은혜.(마1:23)=현재의 은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이는 현재적인 은혜이다.
지금 현재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호흡하며, 말하며, 생각하며,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한다.

③ 여호와 이레(Je-ho-vah-ji-reh)의 은혜.(창22:14)=미래의 은혜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뜻이다. 이는 미래적인 은혜, 즉 앞으로 주실 은혜이다. 미래적인 은혜는 지금은 우리 눈에 안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이 반드시 주신다. 그러므로 믿고 감사해야 한다.

결론.

주님은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육신의 질병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열 사람이었지만, 육신과 영혼 즉 전인구원(全人救援)을 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돌아오지 않은 아홉 사람으로 남겠는가? 아니면 돌아와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린 한 사람으로 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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