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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이 (요 3: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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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이 (요 3:31-36)

  본문이 들어있는 요한복음뿐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 아니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귀한 말씀이며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아마도 요3:16의 말씀일 것입니다. 누구나 다 외우고 있을 그 말씀과 뒤따르는 17절 말씀을 함께 읽어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의 핵심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요약해놓은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이 간결한 말씀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옛 이스라엘 백성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까지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 앞에 죄 지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무한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지독한 사랑입니다. 어느 정도로 지독한가 하면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실 정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 가운데서 하나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썽피우고 속 썩이는 아들을 내보내신 것 아닙니다.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을 내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편안히 쉬며 놀다 오라고 세상에 보내신 것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거기 달려 죽으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의 몸을 입고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보통 희생과 자기포기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빌2:7에서 말한 대로 그것은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포기하고 자기를 낮출 대로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갖는 일입니다. 강아지애호가가 있다고 합시다. 유럽 사람들의 애완견 사랑은 참 유별납니다. 너무 유별나서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비오면 우비 입혀서 데리고 산책하고 겨울철에는 스웨터 떠서 입히고 미장원에 가서 멋부려주고 휴가나 여행 다녀오느라고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할 때는 사람 묵는 호텔보다 숙박료가 비싼 강아지호텔에 맡겨 호강을 시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아지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강아지 애호가들이라 할지라도 결코 자기 친아들 보고 “얘야, 너 강아지가 돼서 몇 년 살다가 다른 강아지들 대신 네가 잡혀 죽어서 보신탕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먹혀줘라. 그러면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살려서 내 품에 안기게 해주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지독한 일을 할 부모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지독한 일을 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을 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고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된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과 정죄와 멸망을 당하지 않고 영생하도록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넷째는 이제 우리가 그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아들의 은혜를 실제로 누리기 위해서는 그 아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해도 누구나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둠을 사랑하던 데서 구원의 빛으로 오신 아들에게 나아오고 영원한 진리이신 그 아들을 따르는 이만이 심판과 정죄와 멸망을 면하고 구원과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요3:18-21).

  이 위대한 복음의 말씀에 이어지는 22-30절은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오고간 대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앞서 말한 그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세상에 보내주신 그 분, 세상을 심판하시되 그를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그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보충설명이며 요3:16-21의 내용의 반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을 말합니다. 31절에서는 그를 “위로부터 오시는 이”,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라 하며, 3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존재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35-36절).

본문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31절에 보면 그를 “만물 위에 계신 이”시라 하고, 35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34절에서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신 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셨다는 것은 성령을 “한량 있게” 즉 제한적으로 받은 모든 인물들과 그를 구별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단순한 선지자나 선생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키시며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마11:9)라고 하셨으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마11:11)고까지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례 요한이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자기의 관계를 말하며 “그는(즉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역사상 그 누구도 감히 그와 비교조차 될 수 없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와 꼭 같은 인간으로 사셨지만 동시에 그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신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셨다는 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이신 것처럼 성령과도 완전히 하나이심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2절을 봅니다: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으로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친히 보고 들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가 하시는 말씀은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의 증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증언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33-34절의 뜻이 그것입니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은 참되시다고 하는 믿음을 확인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참된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다는 것은 그의 모든 말씀이 전적으로 참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그 첫머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1-3).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이들과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36절을 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5절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 즉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대한 권세를 다 쥐고 계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를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권세도 그에게 있습니다. 그는 만유의 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를 믿고 그에게 순종하는 이는 하나님의 우편에서 그와 함께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영원히 우리의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기독교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세력들이 창궐하는 때 우리는 이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음해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기를 서슴치 않는 자들에 맞서기 위해서도 이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외부로부터의 비난과 공격이 있을 때마다 이에 부화뇌동하여 기독교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를 일삼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도 이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본문 32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했습니다. 악하고 거짓된 세상은 본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기독교를 배척하며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8-1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능욕하는 자들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영원히 거할 자들을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만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를 더욱 더 바르게 알고 더욱 더 확고히 지키는 일에만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 안에 굳건히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고 그의 사랑을 깨닫는 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요일4:7-12의 말씀으로 대신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사랑,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완성이라 했습니다. 사랑,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 길입니다. 사랑은 오늘날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며 교회에 닥쳐오는 온갖 위기와 도전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교회를 부정하려 하는 자들 앞에서 우리의 진리를 타협하려 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팎에서 사랑을 강화하고 확대함으로써 그들의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어가야 할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하는 사랑만이 모든 것을 바꾸고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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