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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 레슨 (시 119:6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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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레슨 (시 119:65~72)

  우리 인생에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그 불청객의 이름은 다름 아닌 ‘고난’입니다. 정말 그렇죠. 누구도 고난을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고난은 찾아옵니다. 다만 그 종류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패러디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고생한다. 고로 존재한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이 살아 존재하는 한 고난은 있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모든 인생에 고난이 있지만, 고난의 의미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고난이 고생만 실컷 하다 마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고생을 하지만 더욱 성숙해지고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소모적인 고난’이 있는 반면 ‘생산적인 고난’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뜻에서 유명한 고대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비유해서 생각하면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똑같이 끓는 물에 넣어도 당근은 흐물흐물해지는 반면 계란은 단단해 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고난을 당해도 어떤 사람은 고난에 짓눌려 주저앉지만 무너지지만, 어떤 사람은 더욱 견고히 세워집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무엇이 중요합니까? 어차피 고난을 피할 수 없을진대, 어떻게 고난을 선용할 것인가 궁리하면 좋습니다. 고난이 닥쳐올 때 멍청하게 당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고난에 대처하면, 얼마든지 우리 인생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전도서7:14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여기서 되돌아본다는 말은 ‘깊이 생각하다’ ‘숙고하다’(consider) 등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고난이 올 때 깊이 생각해 보면 분명히 내 인생에 유익한 점이 있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고난의 ‘잠재적 가치’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멸망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큰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난은 제3의 성례이다.” 공식적으로 기독교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도 그에 못지않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비유적으로 ‘제3의 성례’라고 표현한 겁니다. 

  또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더욱 성숙하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기에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고난은 인생 학교이다.” “고난은 인생 레슨이다.” 정말 고난을 잘 감당하면 인생이 더 깊어지고 지혜로워지고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애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애3:27,28,32,33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우리 인생이 고난을 겪는 게 하나님의 본심은 아니지만 고난 속에 잠재된 가치 때문에 고난을 주신다는 겁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열이 펄펄 끓고 밤새 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본인도 고생스럽고 부모도 안쓰럽지만 앓고 나면 아주 똘똘해집니다. 그래서 이것을 ‘지혜열’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인생의 순간순간 파도처럼 닥쳐오는 고난을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바랍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시는 ‘레슨’(lesson)입니다. 단순히 성경을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삶 속에서 고난을 겪으며 성경을 묵상하면 더욱 신앙이 깊어집니다. 말씀과 고난이 겸비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본문 성경이 바로 그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런 사실을 마음속에 새기시고, 고난을 통한 인생 레슨을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인생의 레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함께 살펴봅니다. 

[1] 겸손의 레슨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법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겸손의 레슨’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은 단순히 외적으로 얌전한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은 착각이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교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인생에 예기치 않던 고난이 오면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은 그게 진짜 자기 모습인데 미처 몰랐던 겁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쉬운 수학 문제만 풀 때는 자기 실력이 대단한 줄로 착각합니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자기 실력이 별 게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은 이게 진짜 실력이죠. 

  시편 기자는 고난을 통해 바로 그것은 깨달았습니다. 67절 보세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이 없을 때는 자기 힘으로 다 되는 줄 알고 ‘제멋대로’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졌다고 고백합니다. 또 70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마음이 살져서 기름덩이 같다는 것은 교만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교만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표현한 겁니다. 그러나 자신은 고난을 통해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이게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비굴하고 불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가장 강한 자세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육체의 가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는데, 아마 평생 그를 괴롭힌 안질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병도 고쳐주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렸는데, 대장간 식칼이 노는 격이 되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래서 세 번씩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어떤 응답이 왔습니까? 한 마디로 거절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이유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바울이 약하기에 그 가운데 역사하셔서 능력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바울이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완벽했다면, 그도 인간인지라 혹시 교만해져서 오히려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바울이 그 사실을 깨닫고 이제 육체의 가시로 고난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약한 것을 자랑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12:10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니라” 

  어떤 성도의 고백입니다. 자기가 병들기 전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 모든 게 잘 될 때는 하나님에게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발병 후 인생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니까, 병이 나으면 좋고 안 나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정도의 신앙이 생기니까 병 걸린 게 오히려 큰 축복이었다고 간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고난이 올 때 그 가운데 겸손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시고 크게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2] 감사의 레슨 : 하나님의 은혜를 자각하는 법

  우리는 고난을 통해 ‘감사의 레슨’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아쉬운 게 없으니까 모든 게 자기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리는 고난을 체험하면서 역설적으로 모든 게 본래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본문 68절을 보십시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편기자는 고난 중에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하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미국에 상담 전화라인인 ‘위로의 전화’가 있습니다. ‘뷸라’라는 이름의 신실한 간호사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그녀는 본래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급성 관절염을 앓게 됩니다. 차츰 몸이 굳어지더니 손도 못 쓸 정도가 되었습니다. 겨우 오른 쪽 손가락 신경만 남게 되었습니다. 병상에 누워 날마다 눈물로 지내며 원망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오른쪽 손가락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됩니다. 무엇을 할 수 있나 생각해 보니 전화는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병실에 전화를 설치하고 병자들과 그 가족, 슬픔 당한 사람들에게 전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전화를 하니까 오히려 큰 위로가 됐습니다. 심지어 자살하려고 결심했던 사람들도 용기를 얻고 재기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이게 바로 위로의 전화의 유래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올 때 역설적으로 모든 게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 때 오히려 감사가 넘칩니다. 고난 중에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하며 행복해지니 이 얼마나 큰 인생의 자산입니까?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함으로 감사하면서 행복의 비결을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3] 순종의 레슨 :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

  우리는 고난을 통해 ‘순종의 레슨’을 받게 됩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비로소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고난이 없을 때에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형통하니까, 내 생각이 옳고 내가 가는 길이 바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닥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가던 길이 과연 옳은지 따져보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보장하는 축복의 하이웨이가 펼쳐집니다. 그 앞에 거칠 게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고난을 통해 깨닫게 된 게 바로 그것입니다. 본문 71절을 보십시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니 고난이 오히려 유익한 겁니다. 72절 보면 고난 후에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비유컨대 하나님의 말씀은 ‘보물섬 지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위해 많은 보물을 예비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보물섬 지도를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길을 갑니다. 엉뚱한 데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이 실패하고 망하는 겁니다. 인간이 자기가 똑똑한 줄 알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지만, 사실은 ‘겉똑똑’입니다. 그러나 보물섬 지도인 성경 말씀을 따라가면 보물섬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게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요 축복의 지름길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연단의 레슨 :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법

  우리는 고난을 통해 ‘연단의 레슨’을 받습니다. 고난은 성화를 위한 중요한 방편이 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점점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을 오직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구원받았어도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여전히 죄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되지만, 고난을 통해서도 변화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연단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강하게 훈련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신32:11 보면 하나님께서 구역 이스라엘에게 독수리 훈련을 시키셨음을 증거합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 ” 어미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킬 때 매정하리만치 혹독하게 다룹니다. 날개도 아직 시원찮은데 절벽 위로 끌고 가서 떨어뜨립니다. 새끼가 날개 짓도 제대로 못해서 푸득거리다 추락하면 쏜살같이 날아가 날개로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절벽으로 올라가 떨어뜨립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새끼가 요령을 터득하고 제법 날개 짓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하늘의 왕자 독수리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자기 공장을 견학했습니다. 전시실 입구에 두 개의 꽃병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같은 재료에 같은 스타일입니다.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윤기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데, 다른 하나는 빛깔도 흐릿하고 볼품없는 싸구려 같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안내원에게 물으니까 설명을 해줍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불 구덩이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 차이라는 겁니다. 불에 들어가 구워져야 아름다운 도자기가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고난이 힘들지만 그로 인해 성도의 영혼이 풍성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거친 인격은 고난을 통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난 자체는 반갑지 않지만 고난 이후의 결과를 바라보면서 즐거워하자고 권면합니다. 롬5:3~4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난을 당하다 보면 인내하게 되고, 인내하다 보면 연단이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연단’이란 단어가 영어 성경에 보니까 character, 즉 인격이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고난으로 성화된 인격이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베드로 역시 비슷한 말씀을 합니다. 벧전1:6~7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고난을 통해 인격이 연단되고, 그렇게 형성된 거룩한 인격으로 하늘의 영광과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잘 감당하기만 하면 인생길에  좋은 스승이 됩니다. 우리 인생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풍성케 해주는 인생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역사 속에서, 우리 주변에서 고난으로 인해 오히려 인생이 빛나게 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일본의 소설가로 19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1935∼  )의 간증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일찍이 문학 평론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나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부에게 ‘히로키’라는 정신지체아가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없었고, 현실을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밝히고 싶은 것은 이 아이가 나의 문학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 아이를 통해 생명의 신비로움을 깨닫게 되었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의 소중한 아들 ‘히로키’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나의 문학의 스승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큰 고난을 인생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그의 작품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의 신비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어떤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그 고난을 인생의 스승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깨우침을 주시려고 하는지  기도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음악가는 까다로운 선생님에게 사사함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 인생도 고난을 통해 아름답게 만들어집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시고, 고난을 통한 인생 레슨을 잘 받으심으로 더욱 풍성한 인생으로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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