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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는 집 (막 1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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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집 (막 11:15~18)

교회에 이런 저런 문제로 실망한 한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가서 문제없는 교회가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하자 그 부탁을 받은 목사님은 “그러지 그런데 청년, 자네도 한 번 찾아보고 그런 교회가 있으면 나에게도 소개시켜 주게. 그런 교회가 있으면 나도 그 교회를 다니겠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최근에는 어떤 젊은이가 기독교계에서 발행하는 신문의 기자에게 "어떤 교회가 좋습니까?" 라고 물었는데 그 기자는 "어떤 교회이든 당신이 그 교회를 감을 통해 그 교회가 더 좋아지는 교회라면 그 교회를 가십시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문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다 문제가 있는 것인데 그 문제를 딛고 일어서야 하고 더 좋은 교회를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세상에 많은 교회가 있고 그 교회들마다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또 말도 많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잘 알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 있어서는 안 될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교회의 문제라고 하는 문제가 다 정말로 교회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교회에서 있어야 할 문제는 있어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교회가 그 말을 듣고 다 고치고 바꾸어야 할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그런 말은 들으면서 오히려 기쁘게 여기며 교회가 그동안 해오던 것을 굳세게 밀고 나가야할 것도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간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들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오히려 더 덮고 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러기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바로 알아야지 교회가 버릴 것은 버리고 붙들고 살아야할 것은 붙들고 살 수 있습니다. 듣지 말아야할 것은 고치고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도 괜찮은 말, 들어야할 말들은 당당하게 듣고 오히려 기쁨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일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이렇게 화내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양이나 비둘기 등 물건을 팔고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물건을 팔거나 돈을 바꾸는 자체도 그렇지만 많은 이익을 남기고 파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바깥에서 팔았는데 이제는 아예 성전 안에서만 팔게 되어 독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점차 이윤을 더 많이 남기고 성전 안은 더 소란스럽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관행처럼 행해졌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세상말로 말하면 완전히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화내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행동으로 분노를 드러내신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화를 내신 것입니다. 더구나 한 번도 아니라 성경전체를 연구해보면 3년 공생애 동안 두 번이나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한참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또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어 이렇게 뒤집어엎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주님께서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두 가지 측면으로 보아야하는데 하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다른 면으로 본다면 이것은 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 하나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다는 것일까요? 성전에서 무엇을 팔고 돈을 바꾸고 과다한 이익을 남기는 일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우리가 보아도 이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잘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는데 저 어른이 갑자기 왜 저러실까? 이렇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보아야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주님께서는 이것은 아니라는 것이 틀림없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예수믿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하는 행동들 가운데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 눈은 자꾸 바뀝니다. 이상한 것도 한참 보다 보면 이상한 것이 이상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눈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아닙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시대의 흐름이 모든 사람이 다 그런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그런 시대의 흐름에 끌려가는 분이 아닙니다. 2천 년 전, 3천 년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 2천년 3천년이 흘러도 우리 주님께서는 아닌 것은 틀림없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뒤집어엎으시면서 이것은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그러하듯이 개혁이 있는 곳에는 반개혁의 세력이 있습니다. 18절에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대제사장들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교계의 어른이고 사회나 나라의 지도자인 이들은 성전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독점이라 점점 더 이윤이 많아지니 대제사장과 그 집안사람들이 그 일을 한 것입니다. 돈을 바꾸는 것도 맨 처음 경쟁자들이 많았을 때는 예컨대 1% 남겼다고 하면 그 1%도 많은 이윤이라고 생각하고 했었는데 독점이 되다보니 점점 더 많은 이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알고 이 일이 바뀌게 되면 그 이익이 한꺼번에 다 날아가 버리고 전임 대제사장들이 얻던 것들을 자기는 얻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그 많은 이윤을 취하면서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로 살았는데 이 일이 드러나면 존경은 커녕 욕을 먹는 부끄러움이 만천하에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피차간에 잘 알아야할 것은 대제사장이든, 대통령이든, 목사든 그 누구라도 교회를 통해서 이득을 챙기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눈,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이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아닌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세습문제를 보겠습니다. 세습이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 제정이 힘들어 아무도 그 교회의 목사로 오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에 아들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느 정도 넉넉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받는다면 세습은 아니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유도 거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가끔 교회에 이런 저런 이해관계가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어떤 경우에도 교회를 통해서 이득을 누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것이 좀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성전에서 제물을 파는 것도 맨 처음에는 바깥에서 파는 물건보다 좀 더 싸고 질이 좋은 것으로 하겠다고 하여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시작하였지만 그러다가 오늘 마가복음 11장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유이든 교회를 이용하여 내 이익을 챙기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누구든지 잘 알아야합니다.

두 번째 서기관들이 반대했습니다. 서기관이란 하나님의 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인 이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개혁에 반대하는 일을 할 수 있는가? 여러분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학자들이, 신학자들이, 법학자들이 소위 힘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입맛에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소위 어용학자들입니다. 사람들은 신학자가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라고 말하면 믿게 됩니다. 법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판단하였는데 오죽 잘 하였겠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행동을 하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믿게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전통이라고 하면 일반 평신도들은 교회의 전통으로 알고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하면 그렇게 압니다.

그러므로 어떤 행동이든 간에 정말로 조심해야하는데 오늘 본문은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존귀한 사람까지도 얼마든지 완전히 부패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나 당사자들은 밤낮으로 깨어서 기도하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느덧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들처럼, 서기관들처럼 자기 이득을 위해서 참으로 부끄러운 노력을 다하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저렇게 멀리서 힘들게 왔으므로 돈만 들고 오면 편안하게 제사 드리게 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 핑계를 댈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배를 편하게 드리는 일에 이와 같은 핑계를 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뭐든지 편하도록 하는 것이 정말로 잘하는 것일까요? 물론 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는 것도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겠지만 아무 수고하지 않고 입만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정말로 좋은 일일까요?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고 하나님의 종들이 해야 하는 일일까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실까요? 예배드리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예배드리는 것이 정말로 좋은 것일까요?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드리는 것은 희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제사를 드릴 때 제물로 나 대신 죽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이고 예배입니다. 나의 아픔을 드리고 내 정성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익을 남긴다는 사실을 제쳐두고 예배드리는 일에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로 잘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참된 교회를 이루어 나갈 수 있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며 성경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기도해야합니다. 교회에는 교육, 선교, 봉사 등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무리 많고 잘해도 기도가 없으면 아니 됩니다. 교인이 아무리 잘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심지어 설교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기도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성도가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그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맨 처음 이 땅에 교회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사람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기다리는데 그 때 교회가 처음 생겼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사도행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교회행전이라고 말하는데 교회출발을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2~1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여서 기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기도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교회행전인 사도행전 1장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뒤를 이어 이런 저런 기적과 이적을 행했는데 그 때 그 교회의 모습을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가장 힘쓴 것은 기도였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출발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가장 큰 어른 중 한 분이신 사도바울이 유대교인에서 기독교인으로 바뀌는 장면을 사도행전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감옥에 넣으려다 다마스크에서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 바울은 유대교인에서 기독교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니아라는 제자에게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행9:1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자 마자 시작한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목회에 관한 대표적인 서신인 디모데전서 2장에서 교회에서 할 일의 첫째는 기도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다시 디모데 목사님이 시무하는 그 교회뿐만 아니라 각 처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모든 교회에서 기도에 힘쓰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에 대해서 오늘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교회의 어른인 야고보가 잡혀가서 처형당하고 또 다시 베드로가 잡혀가 처형당할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 때 이미 예루살렘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성경에 어떤 날은 3천 명이 예수를 믿었고 어떤 날은 5천 명이 예수를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모으면 상당한 세력이 될 것입니다. 교회의 기둥인 야고보가 이미 죽고 가장 큰 기둥인 베드로가 죽을 위기에 있었는데 그 때 교인들은 나가서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조용히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어떤 것이 더 힘이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 결과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감옥 속에 있는 베드로를 데리고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꿈꾸듯이 나와서 간곳이 교회였는데 교회에는 교인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것입니다. 다른 것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능력과 권세와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힘있게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특별히 교회의 기도는 지도자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사도행전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장에서는 그렇게 교회가 기도하면서 시작하였고 2장에서는 교회가 기도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3장에는 우리가 잘 알듯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이 일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는 길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힘있고 기쁘시게 일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어떤 사람이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인가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까? 많은 교회가 참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어떤 교회가 권세있는 교회인가?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할 때 그곳은 참된 교회가 될 수 있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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