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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력 있는 인생 (엡 3: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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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 있는 인생 (엡 3:14~19)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 자녀가 되는 순간, 예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성경은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1~12) 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생명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 안에 있는 예수 생명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생명의 힘이 얼마나 놀랍고 사실적인지를 체험하는 것이 참된 신앙생활이며 생명력 있는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생명력 있는 인생을 사는 비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해 기도하는 내용 안에 이에 대한 축복이 모두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이 생명력 있는 인생을 살아가며 현장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삶의 모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 3:16) 바울이 기도한 내용의 첫 번째는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창세기 3장의 환경 속에서 생명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속사람’이란 성경 가운데 바울의 서신서에만 나오는 단어로 ‘겉사람’과 대조되는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라는 말씀에서 쓰이는 바와 같이 겉사람은 육신, 속사람은 영혼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겉사람을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하며 육신적인 것에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바울은 본문을 통해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이러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생명력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적 관심이 속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환경과 배경 등 겉사람적인 요소를 먼저 탓하며 불평과 원망을 내뱉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환경을 탓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속사람을 강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1:2) 속사람-영혼이 강건하면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비결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 진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고 운동을 하면 되지만 속사람의 강건은 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반드시 성령께서 역사해 주셔야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강단메시지를 기억하며 성령인도를 받을 때 비로소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인도를 받는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더 구할 것이 없을 만큼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를 내 삶에 적용하는 만큼 성령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 때에는 매년 한 해 동안 성취될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올해는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렘넌트 공동체 훈련장과 성전 건축을 어떻게 해 나갑니까? 내 가정, 내 사업, 내 자녀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만들어갑니까? 이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는 언약을 내 삶에 적용하면 그러한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내년에는 어떤 메시지를 선포해야 할 것인지를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단 메시지를 바탕으로 매주일 선포되는 메시지가 그 주간에 사실적인 응답을 받는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약속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인본주의적 삶을 살게 됩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욕심, 내 뜻에 따라 살아가면 성경적 삶, 영적인 삶이 되지 못하고 결국 후회와 실패의 인생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눅 11:28) 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적으로 적용하고 응답을 받음으로 날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영적 축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한 사람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7~19) 바울은 우리가 생명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해져야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해지는 첫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에 계시게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계시다’는 헬라어로 ‘카토이케오’라고 합니다. 이는 ‘온전히 전체를 소유하다, 주인이 되어 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자기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있는 사람은 충만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성경은 육신적인 삶을 사는 자, 육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육에 속한 자가 아닌 영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내 인생을 주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사실적, 체험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충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가 어떠한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는 모든 사람을 수용할 만큼 큰 사랑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만을 사랑하신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러한 편협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누구든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만 들어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가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만큼 어느 누구나 수용하는 완전 복음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창세전에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렘 1:5)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까지 지속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한번 사랑하기 시작하시면 영원히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신분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여러분이 천국백성, 구원 받은 성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를 체험하면 할수록 감사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풍성히 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혹시 내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시지 아니하신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처럼 영원한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죄인 된 우리를 용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장차 하늘보좌에 앉히실 정도로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입니다. 이 사랑의 깊이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우리를 구원코자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 사랑,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희생하신 그 깊은 사랑은 우리가 도저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것마저 용서하고 사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여러분은 얼마나 느끼고 있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자식은 곁길로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곁길로 빠졌다가도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다시금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듯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면 우리의 모습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더라도 이제는 감사와 기쁨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전에는 문제가 되던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히 넘쳐서 그 사랑의 감격 속에서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넘치는 사랑의 힘으로 어떠한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입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사실적으로 체험하여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 영적인 지경을 넓혀가는 현장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우리가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그 질병의 원인을 인체에 병균이 침입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은 우리 몸에 병균이 침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병균이 침입했을 때 그것을 막는 면역체계가 저하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상황도 이와 같습니다. 영적 면역체계가 강건하지 못하면 사단의 공격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그냥 당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영적 면역체계를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충만히 깨달아 성령충만한 상태가 되면 사단의 어떠한 공격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생명력 있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생명으로 충만하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불신영혼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생명력 있는 인생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지역을 장악해 나가는 일에 쓰임 받는 현장 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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