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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뭇 사람을 섬기는 자 (막 9: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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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사람을 섬기는 자 (막 9:33~37)

우리 교회는 주일마다 새벽예배를 비롯하여 다섯 번의 주일 낮예배와 저녁예배를 드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하는지 모릅니다. 카메라, 음향, 찬양대, 안내위원, 수금위원, 차량안내위원, 새가족위원, 난방 등등 이렇게 섬기는 수백 명의 일꾼들이 한가족이 되어 수고하는 가운데 우리 교회가 아름답게 유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에 갔다 돌아온 우주비행사들이 마치 큰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신문에 크게 보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그 사람 혼자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수십만 명의 기술자와 섬기는 사람들을 통해 거대한 프로젝트가 이룩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통해 큰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수많은 일꾼을 필요로 합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들은 사람 일곱 명을 택하여 집사로 세운 후에 그 문제들이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크게 부흥 성장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공이 바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예수 믿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믿음이 쑥쑥 자라나 큰 일꾼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교회에 나온 지 십수 년이 지났어도 믿음이 자라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예배당에서 같은 목사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이는 한 사람은 행함 있는 산 믿음을 가졌고 또 다른 사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집회에 참석도 잘하고, 여기저기서 부지런히 강의도 들어보지만 섬기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좀처럼 자라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많이 배울수록 더 교만해지고 점점 더 완벽한 종교적인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마가복음 9:31~32을 보면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날이 몹시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제자들은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쟁론을 벌였습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이때 예수님께서는 철없는 제자들을 불러 세우시고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얼마나 다른 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가장 큰 사람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가장 작은 사람일 수도 있고. 이와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시시해 보이고 천해 보여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뭇 사람을 섬겨야 하는 이유는?

1. 우리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어야 하고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과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크기는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크기와 정비례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나병환자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선을 정해놓고 그 선을 넘어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길을 갈 때에도 종을 치면서 “나는 더럽습니다.” “나는 더럽습니다.”라고 외치며 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예수님 만은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 이런 나병환자들에게 가까이 가셨습니다.

마가복음 1:40~42을 보면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라면 자랄수록 예수님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의 수준을 알려면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 마치 예수님처럼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풀 줄 압니다.

큰 병원에는 암에 걸린 어린아이들만 모여있는 병동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호스피스들은 이들을 얼마나 잘 보살펴주는지 안아주고 씻겨주고 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반 이상이 과거에 암으로 자신의 자녀를 잃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호스피스로 봉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분들을 보면서 아마 각자 믿음의 비밀을 가진 분들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으로는 이분들이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이분들에게 희생의 봉사에는 엄청난 기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희생은 엄청난 기쁨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안타깝게 여기시고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9:13).

여러분,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우리가 긍휼을 베푸는 것을 더 원하신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 때, 처음에는 희생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매일 외부로부터 걸려오는 전화가 대단히 많습니다. 따라서 전화를 받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전화를 친절하게 잘 받고 또 어떤 부탁을 해 왔을 때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잘 알려주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의 어떤 교회에서 한 성도가 자원하여 이 일을 했습니다. 이 성도는 매주 화요일 자신이 쉬는 날 교회 사무실에 나와 하루종일 전화를 받습니다. 이분은 1주일에 하루 쉬는 날을 포기하는 희생을 한 것입니다. 어느 날 그 교회 담임 목사가 이분에게 “이렇게 희생봉사를 해주어서 고맙습니다”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대답하기를 “희생이라뇨? 저는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데요. 저는 이 사무실에 나오고 싶어 매주 쉬는 날을 기대한답니다. 이곳에 오면 내 영혼이 기쁘고 마음이 즐거워요 그리고 새롭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해줘요. 그래서 직장에 갈 때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갈 수 있게 된답니다. 저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신 목사님께 제가 더 감사할 뿐이죠”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분의 희생이 기쁨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인은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 행복한 것입니다. 섬김에는 이런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섬김으로 수고해 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뭇 사람을 섬기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가 섬김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배우려면 가장 훌륭한 스승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22:24~27을 보면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잘 배우려면 반드시 ‘섬기는 자리’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리에서 크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설교를 통해, 성경 말씀을 통해, 또는 집회를 통회 배웁니다. 그러나 사실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은 섬김을 통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될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더 성장하게 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우리를 성장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뭇 사람을 섬기는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며 축복하시고 높이시고 귀하게 쓰십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입영통지서를 발부해 큰 도시로 결집하도록 했습니다. 유니온 정거장에는 기차에 오르기 위한 수백 명의 젊은이들과 이들에게 따뜻한 차나 커피를 따라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밤늦은 시간까지 뜨거운 코코아를 쟁반에 들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코코아 잔을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잘 다녀오세요. 그대들의 건승을 위해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한 젊은이가 그를 알아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대통령 각하가 아니십니까?” 그는 허허 웃으며 “날 알아보셨군요. 고맙소. 내가 끓여주는 코코아 한 잔은 미미한 것이지만 꼭 승리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즈벨트였습니다. 그는 금세기에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존경받았으며, 더구나 그가 신체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탄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섬김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 스승으로 ‘가가와 도요히꼬’를 꼽을 수 있습니다. 메이지 학원과 고배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톤에서 신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빈민굴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전도와 사회사업, 농민운동에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가 젊었을 때, 폐결핵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날을 기다릴 때가 있었습니다. 친지와 교회에서 찾아와 고별예배를 드리고 갔습니다. 예전부터 일본 사람들은 남자답게 목숨을 끊는 것을 옳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밤새도록 고민하던 그는 만일 예수님께서 나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이라면 목숨을 끊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이대로 죽는 날을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목숨이 붙어있는 날까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고 받들어 주기 위해 오신 분이었기에 섬길 자를 찾아갔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고 실천했습니다. 그는 곧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몇 가지 살림도구만 수레에 싣고 빈민굴로 찾아갔습니다.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다니면서 청소와 어린이를 돌보는 그의 삶은 70세가 넘도록 보람되게 살게 하셨습니다. 혹 여러분 중에도 병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더라도 죽을 날을 기다리기보다 뭇 사람을 섬기다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MK택시는 독특한 경영으로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MK택시는 일반택시보다 요금이 10% 저렴하지만 서비스 면에서는 최상입니다. 교토 시민들은 이 회사를 교토의 자랑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MK택시는 독특하게도 대졸 운전자들을 채용하고 있으며, 현재 최고의 운수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회사의 주인은 재일교포인 유봉식, 유태식 형제로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그분들은 성경의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섬기라”는 말씀에서 경영기법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운전자를 가족처럼 섬긴 결과 운전자들이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하게 되었고 따라서 최고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밝고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됩시다. 뭇 사람을 섬길 때 기쁨이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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