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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심에 합당한 삶 (엡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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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에 합당한 삶 (엡 4:1~6)

앞으로 5년간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 대통령이 되겠다는 열두 명의 후보가 나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로가 자신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적합자라고 주장하며 당선이 되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겠노라며 유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국민의 부름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오는 12월 19일 투표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차기 대통령이 결정될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부름을 받고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후입니다.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을 위하여 국가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볼 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고 그대로 행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힘써 지켜야 할 oneness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1) 이 말씀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히 붙잡고 있어야 할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며,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합당하다’란 헬라어로 ‘악시오스’라고 하는데 이는 ‘가치 있다, 어울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뜻에 맞춰 가장 어울리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2~3)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말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쓴 서신서를 보면 크게 두 개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부분은 영적 진리에 대한 부분이고, 뒷부분은 이러한 영적 진리를 바탕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은 이러한 구체적 실천편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첫머리에서 강조하는 핵심이 바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공동체가 oneness의 축복을 가장 최우선적으로 누려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oneness는 모든 사역의 출발점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사단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oneness를 이루지 못하도록 가라지를 뿌립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사단의 계략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사단의 공격에 당하지 않고 oneness를 이루어 가는 영적 비결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그 첫째가 바로 겸손입니다.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겸손이란 종이나 노예가 지녀야 할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의 인격과 하는 일을 존중하며 섬길 줄 아는 마음입니다. 자기의 기준에 매여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나를 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충만하여 지는 상태가 진정한 영적 겸손인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교회는 하나 됨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는 온유입니다. 이 온유를 잘못 생각하면 아무 힘이 없는 무기력한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힘이 있지만 그 힘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고 조절하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온유란 부드럽게 포용하는 마음, 다른 이와 화평을 이루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셋째는 오래 참음입니다. 이는 창세기 3장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인으로 전락한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타인과의 관계 가운데 나타내어야 할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에 대해 바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른 사람에 대해 오래 참음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용납은 오래 참음보다 더 확장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참음이 수동적이라면 용납은 능동적, 적극적입니다. 오래 참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여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라는 것이 용납이 가진 의미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영원한 용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덕목은 일순간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체질화되기 위해서는 훈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는 자동차 운전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초보운전자는 실제 도로에서 운전할 때 당황스럽고 위험한 상황을 자주 겪게 됩니다. 운전은 앞만 보고 간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옆 차선으로 옮기려면 앞은 물론 옆과 뒤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게다가 한정된 공간에 주차를 하는 일은 초보운전자에게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운전이 서툰 초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운전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숙달이 되어 나중에는 여유롭게 운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의 용납과 같은 영적 덕목도 처음에는 막상 실천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갈등과 아픔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을 가지고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복음을 가진 자는 모든 문제를 넘어서고 수용해야 합니다. 복음적으로 삶에서 적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네 가지 비밀-영적 덕목을 지켜 나간다면 여러분으로 인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614명의 중직자가 세워졌고 교회 조직과 규모도 크게 부흥되고 있습니다. 또한 내년 사역을 위한 렘넌트 공동체 훈련장과 성전 건축의 시공계획과 청지기 선정도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변화의 시간표 속에서 우리는 성령인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그 핵심이 완전 oneness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영적 싸움을 싸워 참된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는 증거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부르심의 한 소망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6) 바울은 우리가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할 다양한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의 몸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우리는 그 지체이기 때문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한 몸이 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은 동일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주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러분 인생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동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 각자의 믿음도 마찬가지로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여기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의 믿음이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오직 한 분의 하나님을 섬기며, 한 분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근거로 우리는 영적인 한 가족임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하나 됨을 이룬 우리는 한 가지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부르심의 한 소망을 향한 삶입니다. 여기서 소망은 장차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존재입니다. 완벽하게 보장된 존재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삶의 현장에는 창세기 3장의 문제 속에서 유리방황하며 소망 없는 삶을 사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란 바로 이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현장전도제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는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자신의 독일식 발음으로 인해 학생들이 강의 도중 자주 웃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존심이 상한 폴 틸리히는 고민에 빠진 나머지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생이 그에게 카드를 보냈습니다.
“교수님, 학생들이 웃는 것은 교수님의 발음 때문이지 강의 내용 때문이 아닙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너무나 훌륭합니다. 우리는 모두 교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 위로의 카드가 폴 틸리히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폴 틸리히는 나중에 “우리에게는 주님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주님을 믿는 사람의 위로도 필요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성경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4~25)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복음공동체의 축복을 모든 성도 여러분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서로에게 힘을 주는 복음적인 말을 건네시기를 바랍니다. 어렵고 힘든 이에게 전하는 이러한 말 한마디는 목마른 이에게 건네는 생수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복음으로 서로 격려하며, 위로하고, 완전 oneness를 이룰 때 힘을 얻게 되고 세상에 영적 영향력을 입히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현장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준비해 놓으신 삶인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언약의 말씀이 개인과 가정을 비롯한 모든 사역 현장에 성취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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