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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만한 믿음이 되어야... (눅 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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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믿음이 되어야... (눅 7:1-10)

성도의 모든 생활은 믿음의 산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항상 크게 믿어야 됩니다.  항상 확실하게 믿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감동되게 믿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성도의 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깨어서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 그 믿음을 크게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 믿음을 귀하게 보았습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믿음을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믿음은, 당신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이 항상 맑은 것만은 아닙니다.  갈릴리 바다가 잔잔한 날이 없듯이 늘 파도와 폭풍이 밀려오고 밀려갑니다.  파도가 밀려오고, 폭풍이 휘몰아쳐 올 때에라도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어느 때든지 그의 자녀의 믿음을 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어떤 환경,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약해지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역사하는 믿음,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시간 환경에 짓눌려서 근심과 염려와 불안으로 허덕이고 있는 심령들은 그 환경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에 지배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영에 지배를 받는 자는 모든 갇힘과 억눌림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평안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어떤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문제가 크든 작든, 그 정도가 심각하든 덜 심각하든 간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인생사의 모든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믿음의 문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믿음이 적은 까닭에 우리의 삶이 불안에 떨고 초조해 합니다.  믿음이 적은 까닭에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가정은 평안합니다.  믿음이 충만한 가정은 행복합니다.  만사가 형통합니다.  어느 권위 있는 갤럽 조사에 의하면 교회 생활에 깊숙이 헌신하며 사는 사람들은 약 70%가 그들의 삶이 매우 행복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경제 때문에 우리의 가정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라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나라의 근본 문제는 정치,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터전인 교회 생활이 즐겁고 만족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교회의 삶이나 믿음의 삶이 즐겁고 만족스럽고 흡족하면 여러분 개개인의 문제나 가정의 문제, 그 외 다른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믿음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저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말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가리켜서 믿음이 좋은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서울의 어떤 목사님께서 지하철 1호선을 탔다가 경험한 일을 어느 글을 통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흰색 저고리에 검정색 치마를 입고 있는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앞에 앉아있는 어떤 청년하고 대판 싸움이 붙었다는 겁니다.  그 싸움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면, 이 아주머니가 이 청년의 목에 걸고있는 불교 표지의 목걸이에 대해서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 얼굴도 잘생긴 사람이 우상인 불교 표를 달고 다니다니 거참 아깝구만"

사건의 발단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멀쩡하게 잘 생긴 젊은이가 왜 사탄의 목걸이를 달고 다니느냐?  그 목걸이를 떼고 목걸이를 달려거든 생명의 십자가 목걸이를 달고 다녀야지 사탄의 목걸이를 달고 다니면 어떻하냐?"

요새 젊은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습니까?  이 청년이 대들었습니다.  "이것 보세요.  아주머니.  내가 무슨 사탄의 목걸이를 달고 다니든지 아니든지 당신이 무슨 간섭이냐?  당신 십자가 목걸이가 그렇게도 좋으면 당신이나 달고 다닐 것이지 이 아주머니가 미쳤나?"  이렇게 시작이 된 것입니다.
"당신이 지옥 갈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기이지, 이 청년이 정신이 돌았나?"

나중에는 자신이 어느 교회에 집산데…  그래서 나중에는 이년저년 이놈저놈 이렇게 갈 데로 갔습니다.  대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주 심각해지고 분위기가 아주 더러우니까 썩은 콩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 분위기가 어색해졌습니다.  그 목사님도 생각하기를 참 재수가 없는 날이다.  재수가 없는 지하철을 탔다.  하필 이 칸을 타서 이렇게 됐는가

모든 사람들이 어색해하고 있는데, 그때 마침 지하철 차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자동 안내 기계가 고장이 나서 육성으로 차장이 안내 방송을 하는데…  "손님 여러분, 이번 정차할 역은 대방역입니다.  다음 정차할 역은…"  그러다가 이 사람이 잊어버린 겁니다.  이 사람이 더듬거리면서 말합니다.
"다음 정차할 역은, 다음 정차할 역은 … 여러분, 어디겠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박장 대소를 하고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 지하철 칸만이 아니고 다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더러운 기분이 다 사라지고 솟아오르는 웃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 차장 얼굴을 한번보고 싶었다는 겁니다.  믿음 좋은 아주머니 집사님과 지하철 차장…  그날 하루종일 그 목사님의 머리 속을 맴돌던 두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사람을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때때로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의 저질스러운 모습 앞에 우리들 스스로가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을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좋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오늘 마가복음 7장에 나와 있는 본문의 말씀은 이 같은 우리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우리가 본분에서 보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이 백부장을 보시고 믿음이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대대로 수 천년동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좋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없는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믿음이 있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내가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처음 만나본다."  예수님이 아주 감탄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만한 믿음을 내가 본적이 없다." 예수님께서 깜짝 놀라실만한 그런 믿음이라면 진짜 좋은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의 믿음이 어떤지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본문 말씀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이 도대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께서 그토록 극찬하신 것입니까?

"이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내가 보지 못했다."

우리가 본문에서 보시는 대로 내용이 아주 간단합니다.  가버나움에 사는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백부장'이라는 것은 로마 군인으로 백명을 다스리는 중간 간부의 직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로마 사람입니다.  이 백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 장로들을 보내어서 예수님에게 자신의 병든 종을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인 장로들의 간절한 청탁을 받아서 백부장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서 "주님, 그렇게까지 더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나는 주님을 내 집에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께로 나아올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서 내 종을 낫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덧붙여서 말합니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그렇게 아주 간청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너무도 놀라워하는 사이 종들이 가보았더니 그 종의 병이 나았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이 말을 들으시고 깜짝 놀라서 그이 믿음을 아주 칭찬하셨습니다.  "이것은 최고의 믿음이다.  수 천년 하나님을 믿어왔다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믿음이다.  나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잘 살펴보면 백부장의 믿음 가운데 몇 가지 특별한 부분이 있음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백부장의 믿음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허공을 떠도는 것처럼 결코 추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연결되어진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믿음이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는 마음의 세계, 영적인 세계의 일로 믿음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한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입니다.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우리의 삶의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이라는 것은 허구가 아닙니다.  막연한 사변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증명할 길이 없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법 밖으로 나타나 있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져볼 수 있어야 하는 구체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병들어 죽게된 자신의 종의 구체적인 문제에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백부장이 기도를 얼마나 한 사람인지, 금식기도를 한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그가 안수 집사였는지, 장로였는지 잘 모릅니다.  어떤 신앙 생활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인생의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는 그것을 신앙의 과제로 삼았다는 사실입니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신앙의 과제로 삼는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 교인들의 신앙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앙 따로, 생활 따로 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신앙과 생활을 이중적인 잣대로 놓고 본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다.  사업은 사업이고 신앙은 신앙이다.  자식을 교육하는 것은 신앙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사업하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이 똑같이 사업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교육시키는 그 논리대로, 그 방법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도 그대로 자식교육을 합니다.  신앙은 신앙이고 자식교육은 자식 교육이다.  그야말로 신앙 따로, 삶 따로 입니다.  예수를 믿는 정치가들도 정치 따로, 신앙 따로 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업가들도 사업 따로, 신앙 따로 입니다.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과 삶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당면하고 있는 모든 삶의 문제를 신앙의 과제로 신앙과 연결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당면하는 삶의 문제를 그냥 세상적인 삶의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삶의 문제를 신앙의 과제로 채택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는가?  삶의 문제를 신앙적으로 생각하느냐, 안 하느냐?  그것이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교회를 다닌지가 수 십년이 되고, 봉사도 잘하고, 예배에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을 보면 신앙과는 관계없이 살아갑니다.  신앙적으로 세상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삶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믿음 있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나는 믿음있는 사람이다.  내가 보통 집사가 아니다.  딴 집사와는 차별이 있다.  집사가 다 똑같으냐?  스스로 그렇게 믿음 있는 집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그러니까 교회에서도 저 집사 믿음이 있는 집사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서 물질에 대한 가치관을 가만히 보면 전혀 신앙적이 아닙니다.  욕심이 있고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든지 더 모으려고 애쓰고, 쓸 줄 모르고…  신앙은 신앙이고 경제 물질 따로 입니다.  자본주의적이고 세상적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물질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사람은 결코 믿음 있는 집사가 아닙니다.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중에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신앙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사업에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까?  신앙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자녀의 문제, 자녀의 교육을 신앙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과외를 안시켰더니 이 녀석이 공부 못하고 이러고 있구나."  이런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머리 나쁜 여편네 얻었다가 애가 형편없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질 더러운 씨받았더니 그대로 됐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신앙적으로 사셔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실패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이 사람, 예수님께서 믿음이 있다고 칭찬하신 백부장,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하인이 병이 든 것을 보고 "세상의 의원이 고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백부장의 이러한 태도를 보시고 "이 사람이야말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문제를 신앙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이 어려움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하고 거기에서 대답을 얻고 거기에서 해결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본문에 나오는 이 백부장의 믿음은 계산이 없는 단순한 믿음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가만히 보면 예수 믿는 것도 체질적으로 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도 체질의 문제다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본래부터 생기기를 계산적이고 복잡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합니다.  좋은 신앙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신앙 생활을 잘 하려면 단순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보십시오.  성질도 고약하고 배운 것도 없고 실수도 곧 잘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까?  그가 단순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계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다 나를 따라와서 죽어야 된다고 말씀하시니까 죽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얼른 "예, 죽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대답부터 해놓고 …

어느 글에 보았는데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 자기 교회에 10년을 다닌 교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께 오더니 "자기는 이제 교회 안 다니겠다"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래, 어디 먼 곳으로 이사가느냐?"  그랬더니 아니, 그게 아니고 아예 예수를 안 믿겠다는 겁니다.  깜짝 놀라서 "아니, 10년씩이나 교회 다니다가 이제 예수 안 믿겠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랬더니  "목사님, 사실은 제가 10년 동안 아무리 예수 믿으려고 노력해도 안 믿어지니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고민 끝에 결정했다는 겁니다.

이 목사님,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10년 동안 주일날만 해도 500번을 넘게 설교했는데 그 교인이 적어도 500번의 설교를 들었을 텐데, 500번 이상의 설교를 들려줬는데 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이러고도 내가 무슨 목사인가?  자괘감이 들어서 그 충격으로 몇일 동안 자리를 펴고 누웠다고 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콩을 가지고 10년 동안 이게 팥이다, 팥이다 500번 세뇌를 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콩을 팥이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10년 동안 기독교의 진리를 이야기했는데도 "나 예수 안 믿겠다."  몸살 날만 합니다.  이 글을 보고 이거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그럴 수가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 말에 공감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좀 단순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계산하고 따지고 그렇게 인생을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심플하게 단순하게 살아야 합니다.  단세포적으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의 삶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가만히 보면, 우스운 소리를 해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웃을까 말까, 웃어도 되는가 웃으면 안 되는가 계산하고 따지느라고 웃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참 계산하고 따지다가 다른 사람들이 다 웃고 난 다음에 빙긋이 웃습니다.  그를 가리켜서 소위 3분 후의 인생이라고 합니다.  복잡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아니, 우스운 소리를 하면 덮어놓고 웃어야지 이것 웃을까 말까, 웃어야 되는가 안 되는가 따질게 뭐가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사오정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핸드폰 광고에서처럼 사오정이 삼장법사와 나란히 대나무 숲을 걷고있습니다.
그때 사오정의 핸드폰 소리가 울립니다.
"띠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전화벨 소리는 요란한데 사오정이 묵묵히 앞만 보고있자 삼장법사가 말했습니다.
"오정아, 전화 왔구나."
"......"
"오정아, 전화 왔다니까!"
"...."
"야! 사.오.정! 전화 왔어!!"
그러자 사오정이 근엄하게 하는 말,
"법사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입 좀 다무세요!"

가끔 학생들에게서 어떤 남자하고 결혼해야 합니까, 어떤 여자하고 결혼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잘 웃고 잘 우는 사람을 골라라, 그러면 인생이 행복하다.  웃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 눈물 한방울 안 보이는 사람은 인생을 사는데 고달픈 사람이다.  여러분은 제 말의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백부장이라는 사람, 그는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종을 고쳐줄 것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꼭 믿었습니다.  그러니 구태여 자기 집까지 올 필요도 없다.  "예수님이 고칠 텐데 뭣 하러 집에까지 오시는가?"  이것 말고 백부장은 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길 말고 딴 길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단순함, 시종여일한 마음, 오직 한 길만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도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하다가 그만 둡니다.  팔방미인이라고 하는데, 무엇이든지 잘 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극히 어렵습니다.  이것 하다가 안되면 저것 합니다.  그러니 부자 될 리가 만무합니다.  오직 한 길을 가야 됩니다.  오직 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백부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께 무슨 문제를 가지고 기도합니다.  무슨 제목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서도 딴 궁리를 합니다.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해주시면 좋고 만약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겠습니까?  이게 무슨 신앙입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 길 이외에 딴 길이 없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백부장은 바로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이런 시종여일한 마음, 단순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백부장의 신앙은 성취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죽을 병에 걸렸던 종이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이 믿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를 10년, 20년 믿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하나 내세울만한 믿음의 결과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증거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0년, 20년 믿었다고 하는데, 믿음은 있다고 하는데 무슨 결과가 없습니다.  자녀 교육이 똑바로 된 것도 아닙니다.  가정이 믿음대로 된 것도 아닙니다.  사업이 그런 것도 아니고 도대체 자신의 믿음으로 무엇하나 나타난 것이 없다 그 말입니다.  신앙의 흔적이 없다.  이거 신통치 않은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를 검증해 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내 믿음 때문에 무슨 결과가 있는가?  없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결과가 있어야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의 흔적이 있어야 됩니다.  무엇이든 사람에게 보이고 내세울 수 있는 신앙의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의 증거가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의 찬송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나타난 무엇인가의 열매가 있어야 됩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보이지 않는 믿음, 사변적인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셨습니까?

백부장 같은 큰 믿음, 우리가 그런 아름다운 믿음을 가진다고 한다면 우리 삶에 있는 그 어떤 문제도 다 해결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백부장의 믿음을 가진다고 하면 이 나라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될 것입니다.  큰 믿음, 아름다운 믿음, 그것은 삼손의 머리카락입니다.

이만한 믿음이 되어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만한 믿음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만한 믿음이 되지 않는다면 오기로라도 이만한 믿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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