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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화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롬 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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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롬 15:1~1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하심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용서받았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의 은혜를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구원을 베푸신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느낌이나 생각으로 그쳐서는 아니 됩니다.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서 주님께 감사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맙게 생각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했습니다. 또 말로만 사랑하는 것도 충분치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참으로 험하고 추한 모습들을 봐 왔습니다. 각 정당마다 경선을 통한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 그토록 심하게 물고 뜯고 싸우지 않았습니까? 이제 대선 후보 등록도 마쳤고 공식 선거 운동 기간이 시작되었으니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는 것입니까? 물론 후보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비전이 다를 수 있고 거기 따른 정책도, 공약도 다를 수 있습니다. 아니 다른 것이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다만 이제는 국민들로 하여금 신중히 검토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각자 나름대로 특색있는 정책과 공약을 내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입만 열었다 하면 상대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상대를 비방하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까? 그런 인물들에게 어떻게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맡길 수 있습니까? 참으로 한심하고 또 안타깝습니다.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이 대림절은 교회가 주님이 오신 것을 기념하고 그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절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평화 없는 이 땅에 평화를 주시려고 주님이 오셨습니다. 과연 주님은 오셔서 먼저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셨습니다. 아울러 형제, 자매, 이웃과 더불어 우리를 화목케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요 그 평화의 주님을 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바로 그 주님의 뜻을 받들어서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먼저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2) 그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 당시 교회 안에서 강한 자들은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또한 약한 자들은 강한 자를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결코 이웃을 기쁘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선을 이룰 수 없고 덕을 세울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그는 서로 다름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이웃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떻습니까? 이웃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까?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고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아무 것도 아닌 문제를 가지고 늘 다투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과연 그토록 심각한 문제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별로 문제가 될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세례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침례이면 어떻고 영세이면 어떻습니까? 일제 시대 신사 참배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신사 참배를 했던 분들은 이 세상을 떠났거나 아니면 다 현역에서 물러나지 않았습니까? 서로 다름이나 다양성이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다양성이란 교회를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권장해야 합니다. 이 대림절 절기를 지내면서 주님이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오셨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막힌 담과 벽을 허물고 교회 안에서 먼저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애당초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먼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지체들 모두가 한 가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족이기 때문에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마땅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그는 또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기 위해서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합니다. 여기서 서로 받으라고 한 것은 한 몸의 지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같은 권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가족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대신 짐으로써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없애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차별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받아들이며 함께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편지를 쓸 때 항상 그 편지를 받는 교회의 형편과 처지를 감안해서 썼습니다.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울려서 세운 교회입니다. 따라서 로마 교회 역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자유인과 노예의 차별, 여자와 남자의 차별은 완전히 철폐되었습니다. 이제 한 가족입니다. 한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 여전히 차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그 어떤 차별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말씀들을 근거로 들어 그런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편 18편 4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롬 15:9 하반절) 다음으로 신명기 32장 43절 말씀입니다.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롬 15:10) 또한 시편 117편 1절 말씀입니다.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롬 15:11) 마지막으로 이사야 11장 10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롬 15:12)

  그렇습니다!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옛날 신명기 기자와 시편 기자가,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가 한 목소리로 열방들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자고 한 것을 귓전으로 흘려 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 때 그들에게 있어서 열방들이란 결코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없는 원수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원수 같은 자들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자고 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먼저 교회 안에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벽과 담을 허물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들은 이 사회의 지역 감정을 비롯하여 세대 간, 계층 간의 모든 차별을 없애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곧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평화의 촛불을 밝히고 그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아픈 상처를 평화의 왕, 그 주님이 오셔서 말끔히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우리가 반목하고 시기하며 다투고 싸울 이유는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먼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교회가 먼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기 위해서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기꺼이 담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 화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실 때 모든 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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