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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까? (막 2: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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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까? (막 2:23-28)

오늘 우리가 다루는 주제는 개신교2000년 역사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주제중의 하나입니다. 과연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 과거에도 뜨거운 주제이고 지금도 뜨거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너무 자유로운 안식일을 지키려고 합니다. 나이든 성도들은 너무 율법적인 안식일을 지키려고 합니다.자유와 율법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안식일의 법을 중요하게 다루셨습니다.
십계명을 기억하실 것입니다.십계명은 1-4계명까지는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지켜야 할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5-10계명까지는 “성도와 성도들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그 십계명 중에 제4계명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이 어떤 율법보다도 귀중한 계명으로 지켰습니다.광야생활 중에서도 안식일은 만나마져도 내리지 않았고 안식일 전날에 이틀분이 하늘에서 내렸습니다. 또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본인뿐만 아니라 집에 유하는 손님도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물론 가축도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가 철저합니다.

저들은 안식일에는 돈도 약 5000원정도 밖에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안식일에는 돈의 액수까지도 철저히 조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옷도 최소한의 옷을 입습니다. 옷을 많이 입는 것도 일을 하는 것이므로 최소한의 옷을 입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런 철저한 안식일을 오늘 우리는 주일날을 안식일로 바꾸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도 안식일교단에서는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자기들만이 진리라고 합니다. 문제는 신구약 어디에도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라고 하는 말씀이 없습니다.이것은 안식일 문제 뿐 만 아니라 성경에서 답을 찾을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성경문자주의“방식입니다. 성경의 어떤 문맥,문장의 이해와 뜻을 무시하고 문자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문자에는 소개되지 않지만 문자의 이면에 흐르고 있는 뜻과 사상을 고려하여 우리가 지키면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가령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님이 성경 에 한하나님으로 소개됩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부터 예수님께서 안식후 첫날 즉 주일날 부활하셨기에 주일이 안식일로 바뀐 것입니다. 안식후 첫날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것이 결국은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문제는 여기서 “거룩히 지키는 것”이 어떻게 지키는 것이냐 하는 해석의 차이의 문제입니다. 과연 어떻게 지키는 것이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길을 가다가 안식일을 범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사이로 지날때에 길을 열며 이삭을 잘랐습니다. 이 광경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님에게 말을 합니다.“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남의 밭을 왜 건드리는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안식일날 밀밭에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기 때문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합니까? 어떻게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까?
이런 공격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2가지 예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다윗의 사건을 예로 말씀하였습니다.
25절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 이 사건은 삼상21;1-6에 나옵니다.다윗이 사울에게 좇겨서 도망다닐 때 일입니다.

다윗이 놉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렀습니다. 그때 다윗은 몹시 배가 고파 있었습니다. 다윗이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습니까? 떡 다섯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대로 내 손에 주소서”라고 부탁을 합니다. 제사장이 다윗에게 “항용 떡을 없지만 거룩한 떡이 있습니다”그러면서 다윗에게 거룩한 떡 제사로 드린 진설병을 드립니다. 진설병이란 성전의 떡상에 두열로 진열해놓은 열두개의 떡을 말합니다.열두개의 떡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합니다.이 떡을 차려놓은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오직 하나님께 양식을 받아서 하나님과 함께 먹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그런데 이떡은 매 안식일마다 새로운 떡으로 교체가 됩니다. 시일이 지난 진설병은 아론과 그의 후손들에게만 주는 거룩한 떡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다윗이 성전에서 그 음식을 먹은 것은 예외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것은 굶주림의 본능 때문에 먹은 것입니다. 다윗은 놉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떡을 먹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것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왜 예수님이 안식일에 범죄하였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특별한 경우 예외를 둘 수 있는 율법의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규례에는 예외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필요” 앞에서는 법도 해석은 에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애초에 율법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율법이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오용한 것은 바로 우리 사람들의 잘못때문입니다. 율법으로 사람죽이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문자의 의미와 정신보다 문자에 매인 율법숭배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데 있어서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문자적으로 모든 법을 획일적으로 적용한다면 아마 많은 부작용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날 주일날을 어쩔 수 없이 범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같은 이는 주일날 예외를 둘 수 있는 분들을 인정합니다. 바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가령 병원에서 근무하는 분들입니다. 응급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는 누군가 일을 해야 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예외가 됩니다. 또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가령 학교에서 숙직이 걸리시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자의에 의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해서 되어지는 경우입니다. 가령 친척이 죽어서 주일날 장사를 치룰 경우에고 주일을 범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이 본문에 대해서 마태복음 12장 5절에서 예수님은 제사장들의 일상적인 실례를 예로 들고있습니다. "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고 합니다.
구약에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비천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려면 안식일에 번제할 짐승을 죽여야 하고 가죽을 벗겨야 하고 태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안식일을 모독하는 일들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런 일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전봉사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에 정당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날 보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 차를 운행한다든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방송실에서 일을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해당됩니다. 주님의 예배를 돕기 위하여 드려지는 모든 봉사행위가 이에 해당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까?


1. 형식도 중요하지만 먼저 바른 정신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형식은 누구보다도 잘지켰습니다.
형식을 지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신이 없는 형식의 실천은 문제가 됩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안식일의 정신이 없었습니다. 정신이 없는 형식의 안식일은 안됩니다. 바른 안식일의 정신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안식일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일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주일 날에는 예배드리는 일에 이 형식에 우리가 우선순위를 두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랑없는 예배는 하나님 앞에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형식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제사를 드리지 말아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의미없는 제사,내용없는 예배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고 합니다.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진정한 경배와 진정한 사랑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껍데기 형식만 붙들고 지키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그래서 형식을 문제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할 것은 형식은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형식이 없으면 내용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가령 여러분 집에 보석을 어디에 담아둡니까? 그 보석을 아이들의 장남감통에 두시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보석들은 좋은 통에 담아서 장롱깊은 곳에 두는 것입니다. 구별해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구별하지 않고 잘못 보관하면 보석을 잃어버립니다.여러분 주일은 분명히 구별하여서 형식을 갖추어서 지켜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일을 지킬 때 형식를 잘 지켜야 합니다. 주일 날에는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이 기뻐하는 날로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형식적으로 지킬뿐만 아니라“인애와 자비”의 참정신으로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께 진정으로 인정받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참의와 정신을 갖고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우리가 의미를 갖고 내용있는 주님의 날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중에 누구도 그렇게 믿음에 성공하시는 분들이 없습니다. 우리들중 대부분은 형식을 통한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 중에서 아직도 율법 안에서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복음 안에서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율법의 안식일인가? 복음의 안식일인가? 그 정신을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받아야 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은혜가 임하면 성령을 따라 말씀을 따라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모든 것들이 지켜지고 실천되게 됩니다.

2. 안식일은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한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병행구로 있는 막2:27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왜 안식일을 제정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인간의 건강을 지켜줍니다. 그리고 인간을 행복하게 합니다. 6일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7일째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면 건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합니다.주일날 주님께 오시면 마음에 쉼과 평안을 얻습니다. 위로부터 새힘을 얻습니다. 얼마전에 통계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수명이 불신자들도보다 더 오래산다는 통계가 외국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당연한 결과라도 봅니다. 사람은 일주일중에 하루를 쉬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쉴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금 덜벌고 덜쓰는 것이 낳습니다. 좀 더 벌어서 더쓰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주일날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도 쌓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출16장에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위해서 전날에 만나를 배로 내려주십니다. 전날 거둔 것을 안식일 아침에 두어도 냄새가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습니다. 먹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육일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칠일은 안식일인즉 그날에는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욕을 품고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들판에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도 얻지를 못합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책망을 하십니다. “볼지어다 너희에게 안식을 줌으로 제 육일에는 이틀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 칠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 나오지 말지니라”고 합니다.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40년동안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내려주지 않았습니다. 왜 안식일에는 만나를 주시지 않습니까? 쉬라는 것입니다. 먹는 문제로 아침부터 스트레스받지 말고 쉼으로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우리의 삶이 윤택해집니다. 우리의 삶이 복을 얻습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은 성도의 가장 즐거운 특권을 주일을 축제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청교도들은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이미 토요일 저녁부터 모여서 기도로 주일을 준비하엿습니다. 우리는 주로 금요일 저녁에 기도회를 가지는데 청교도들은 주일을 위해서 토요일 저녁에 모여서 준비기도회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체험합니다. 청교도들은 주일날 보통 3시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도 불평을 터뜨리는 사람이 없이 예배에 집중하였습니다. 바로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주일을 지킬때 가족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미국이 있기까지는 청교도들의 주일성수의 신앙이 있기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안식일이 짐이 됩니까? 안식일이 축제가 됩니까?

주일날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고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나의 삶에 축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마치 잔치집에 가는 것과 같은 기쁨의 날이 안식일입니다. 신령한 만나 말씀의 떡을 먹고 모든 삶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영적인 형제들과 믿음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오늘 우리의 삶에 주님과 더불어 진정한 안식을 회복하실줄 믿습니다.마음에 새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경험하는 기대와 사모함으로 안식일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3.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으로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28절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자신을 “나”라고 하지 않고 “인자”라고 하는 것입니까?
인자는 말은 예수님께서 자기 사명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자기 증거입니다.
인자라는 말이 마태,마가,누가,요한 4복음서중에서 82회 나옵니다.
이것은 구약의 다니엘서 7장에 보면 다니엘의 이상을 표시합니다.

그 꿈에 의하면 큰 짐승 4마리가 바다에서 나왓습니다. 첫째는 사자같고 둘째는 곰과 같습니다. 셋째는 표범같습니다. 넷째는 열뿔이 있는 짐승이 나옵니다. 그런데 4마리가 다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5번째 짐승의 형태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모양을 한 존재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권세를 행사하십니다. 다니엘7:13의 “인자같은이 ”예언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라는 말은 바로 자신이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야 이심을 소개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메시야 되는 주님은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구약의 안식일을 예수님과 관련하여서 해석하여야 합니다.
엣날 구약시대에는 일주일이 노동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안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몸소 대속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금요일날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즉 구약의 안식일에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의 노동을 십자가에서 져주셨습니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히4:8“ 영원한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날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구약을 해석할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신약 즉 복음 아래에서 해석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7장 산상복음에 보면 율법의 의미를 해석하여 주었습니다. 문자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율법의 정신 본래의 의미를 직접 풀어서 해석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의 문제는 이론적으로 설명하여 주셧을뿐만 아니라 친히 몸으로서 우리에게 증명해 보이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주일날은 주님께서 왕으로서 역사하도록 지키시기 바랍니다. 주일에 주님을 진정으로 주인으로 기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일이라고 하는 이유는 주님의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육상선수 에릭 리들은 영국대표로서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경기의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그러나 100m 경기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첫 예선 일자가 7월6일 주일 오후3시와 5시였습니다. 그는 그 일정을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 뜁니다.”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습니다. 그의 그런 결정은 그의 주일을 지키기 위한 자기 희생적 결정이었고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그의 신앙의 고백이며 표현이었습니다.
에릭 리들의 100m 출전포기를 들은 영국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라고 비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그러한 냉소적인 비난에 전혀 굴하지 않고100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6일 주일에는 스콧트 커크(Scots Kirk)교회에서 간증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서 동료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성도들을 섬기며 온전히 그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100m 경기에서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에릭보다 약간 뒤졌었습니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릭 리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에도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400m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습니다.예선에서만도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같은 선수들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각광을 받았었습니다.
드디어 결승전이 왔습니다. 에릭 리들은 신들린 사람처럼 무서운 속도로 첫 코너를 돌았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며 불안감을 표현하였습니다.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등의 우승후보를 제치고 47초6 이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하게 되었을 때 안마사가 손에 쥐어준 쪽지가 응답되었던 것입니다.
『In the old book it says, "He who honouse me-I will honour" Best wishes always』
『구약에 이런 글이 있네.“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히 여기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그는 400m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하였다.

“처음 200m는 제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그는 주일이 자기의 날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설교한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오늘 나의 날에 주인은 주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주일을 통해 주님이 날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을 찬양하고 경외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주일을 주님을 위해서 그 정신 인애의 정신으로 지킵시다.참된 심령의 안식을 누리면서 지킵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날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드립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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