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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능력 (막 5: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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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능력 (막 5:21-34)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았습니다. 젊은 날을 병과 씨름하면서  보냈습니다. 세월뿐 아니라 가진 재산도 다 허비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치기 어려운 병일수록 밑 빠진 독과 같이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 여인은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의원들은 이 여인에게 많은 괴로움만 더 해 주었고, 병은 날이 갈수록 더 중해졌습니다. 벌지 못하고 12년 동안 계속 쓰기만 하다 보니 가진 것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병든 몸에, 가진 것은 없고, 얼마나 딱한 처지입니까?

우리 속담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십년이 넘도록 병고를 치르다 보면 가족들도 싫어하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이 여인의 병은 부정한 병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혈루증에 걸린 사람은 부정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접촉하면 부정해 집니다. 심지어는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기만 해도 부정해 지기 때문에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레 15:). 그러므로 이 여인과 같이 오랫동안 혈루증을 앓는 사람은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격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을 사귈 수도 없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도 없습니다. 자연히 이 여인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 고독한 나날을 보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도 한 두 해가 아니고 무려 12년 동안이나 외롭게 살아왔으니 마음의 병도 깊을 대로 깊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여인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바로 그 절망적인 때에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나사렛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능력이 크셔서 중풍병자들도 고치셨고, 간질병자, 앉은뱅이, 소경, 문둥병자,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리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의 많은 부분을 병자의 치료에 할애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왔다가 거절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귀신 들린 자기 딸을 위해 예수님께 호소한 스로보니게 여자도 처음에는 거절당했으나 결국은 주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긍휼이 크신 주님이신지요!

예수님에 대한 이 같은 소문을 들었을 때, 길고 긴 죽음의 터널을 지나는 이 여인은 한 줄기 밝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많은 의원에게 괴로움을 당해 왔고 속기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곧이들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달랐습니다. 예수의 소문은 이 여인으로 하여금 이전에 갖지 못했던 치료에 대한 열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여인의 마음속에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소문들과는 다릅니다. 복음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요,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에게 해방을 선언하는 소식이요, 병든 자들에게 치유의 희망을 주는 소식입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하신 대로 복음은 듣는 자의 마음속에 믿음을 산출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의 소문 곧 복음을 듣고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믿음을 가지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왜 그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들어야 합니다. 듣는 것이 그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로마서 10장 14절에 이르기를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지만, 예수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면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전도의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열 두 해 혈루증 앓던 이 여인이 꿈속에서 환상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소문이 공중을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이 여인의 귀에 들린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이 여인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전해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주변에 이 여인과 같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없으십니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문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알고 믿고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해 주십시오.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아람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왕의 총애와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위대한 장군이었으나 문둥병자였습니다. 하루하루 병이 깊어가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집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사로잡혀온 작은 계집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그 아이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말하기를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나아만은 곧 왕의 승낙을 받고 이스라엘로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문둥병을 고침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여종의 한 마디 말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는 복 된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당신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긍휼을 입을 수 있다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열 두 해 혈루증 앓던 이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마음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그런 분이시라면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믿음은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이 복음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께로 나아오도록 도와주십니다.

드디어 이 여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많은 사람에게 에워싸여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열 두 제자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에워싸고 있는 예수님에게로 다가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무리를 뚫고 기어코 예수님의 뒤로 다가가서 주님의 옷가에 손을 댔습니다. 주님의 옷을 움켜잡은 것이 아니라 다만 살그머니 손을 갖다 댔을 뿐입니다. 아마 이 여인은 예수님도 알아채지 못하시게 할 작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여인의 혈루증이 즉시 나았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고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았습니다. 온 몸이 날아갈듯이 개운해지고 몸속에서 힘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삼손이 자기를 얽어맸던 삼줄을 불에 탄 실오라기처럼 끊어버렸듯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여인을 괴롭혀 왔던 혈루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만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느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셨습니다.

주님께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무리를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주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의 말과 같이, 많은 사람이 주님을 에워싸고 밀고 밀리면서 길을 가고 있었으므로 주님의 옷에 손을 스친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그런 식으로 주님의 옷에 손을 댄 사람들을 언급하신 것이 아닙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길을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손이나 팔이 자연스럽게 주님의 옷에 닿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주님께서는 그 같은 접촉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손을 댄 그 여인을 찾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것을 확연히 아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믿음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옷가를 스쳐 지나갔으나 그들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나가지 않았으나, 열 두 해 혈루증 앓던 이 여인에게는 즉시로 주님에게서 능력이 나갔습니다. 이것은 전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전기가 흐르는 전선에 손을 대면 그 즉시 전류가 우리 몸속에 흘러들어오는 것은 우리 몸은 전기가 통하는 물질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압이 흐르는 전선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을 갖다 대면 감전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가진 믿음은 주님의 능력을 통하게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2절에 이르기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과 관련해서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화합하는 사람들이요, 다른 부류는 복음을 들어도 건성으로 듣고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대하여 알았으면 그 다음 단계는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마음으로 믿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 삶을 맡기고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믿음의 반응을 나타낼 때, 전기 스위치를 켜면 전선을 타고 전기가 흘러 들어와서 전등이 켜져서 어둡던 방안을 밝히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역사하여서 온갖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는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의 능력을 삶속에 경험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옷가에 손을 댐으로써 혈루증을 고침 받았던 이 여인과 같이 성도님들의 믿음을 주님께 나타내 보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변함이 없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능력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그 크신 능력으로 문제 해결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9:1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지난날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쳐주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동일한 능력으로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며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 위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대결을 할 때, 아침부터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 같이 방관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한 말도 대답지 않았습니다. 왜 대답하지 않은 것일까요? 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명색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던 자들이 그들의 조상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비롯해서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위인들이 다 그들의 조상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긴 까닭에 그들은 믿음에서 파선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조차도 믿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시자, 백성들은 일제히 땅에 엎드려 외치기를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고 했습니다. 그들이 애초부터 믿음이 있었다면 아합 왕의 우상 정책에 동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믿음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사실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을 때에 한해서 그런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 자손은 이방인만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앗수르와 바벨론과 같은 이방 나라를 들어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결코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사실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믿음이 없이 형식적인 종교 생활로 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열 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과 같이 확고한 믿음으로 행함으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주님께서는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셨습니다. 믿음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이처럼 신속하고 확실합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에게 누가 손을 대었는지 아셨지만, 무리를 둘러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표정이 어땠을까요? 화가 난 불쾌한 표정이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큰 믿음을 표현한 그 여인을 찾으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때 이 여인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는 두려워 떨며 와서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댐으로 혈루증을 치료받은 사실을 고해 바쳤습니다. 어쩌면 이 여인은 혈루증을 앓는 부정한 몸으로 주님의 옷에 손을 댄 일로 책망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르시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여인을 찾으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큰 믿음을 가진 여인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시간,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혈루증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의 영혼의 문제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인자하신 음성으로 이 여인을 향하여 “딸아”하고 사랑스럽게 부르셨습니다. 그런 다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신 것은 이 여인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오랫동안 혈루증으로 인해 평안을 모르고 살아온 여인에게 주님께서는 평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평강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인들처럼 불안하게 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믿음을 활용하여 주님의 평안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믿음으로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한없는 평안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혈루증 앓던 이 여인은 믿음으로 주님의 옷에 손을 댐으로 그 질병을 고침 받았을 뿐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시는 축복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네가 지금 병에서 놓여 건강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건강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여인을 복되다고 하는 것은 그가 혈루증을 고침 받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병을 고침 받은 것도 귀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이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 여인의 이름은 ‘베로니카’로서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자기의 손수건으로 닦아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전승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처럼 큰 은혜를 받은 여인으로서 있음직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우리는 혈루증 앓던 여인이 고침 받은 사실을 통해서 고통의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여인이 혈루증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예수님을 믿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질병은 이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여인과 같이, 우리 주위에는 고통과 역경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체로 인간은 교만해서 만사형통하고 건강하면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좌절을 경험하게 되면 비로소 낮아져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항복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 그 사람이 당한 불행은 더 이상 불행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를 회개케 만들어 구원의 길로 인도한 것이므로 축복의 기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역경을 만날 때, 이를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선용해야 합니다.

혈루증을 고침 받은 여인과 같이 예수님께 우리의 행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행할 때 문제의 태산이 평지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때에 산 아래 남아 있던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 귀신이 얼마나 강하던지 제자들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둘러서서 제자들의 쩔쩔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같은 형편을 아시고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는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시기를 “너희가 무엇을 가지고 나의 제자들과 변론하느냐” 하시니, 한 남자가 나서며 대답하기를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아이가 발작을 일으켜서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물으시니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남자는 덧붙이기를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더니,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대답하기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자,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습니다. 제자들이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 부족한 데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무엇보다도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는지 잘 보여 줍니다. 큰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믿음을 실생활에서 구체적인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믿음은 가능성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실질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함으로 기도가 응답되어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고, 병이 낫고, 생활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고 믿었던 이 여인과 같이, 우리는 어떠한 난관을 만났을지라도 두려워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열 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쳐주셨던 주님께서 저와 성도님들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아무개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는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매일의 삶속에서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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