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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사람들 (행 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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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사람들
본  문  :  사도행전8:26-40

오늘은 한국교회가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우리 주님이 강림하심을 대망하는 대림절 기간에,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성서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성경이 들어오게 된 것은 1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1877년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에 만주에서 영국의 선교사 로스와 매킨타이어 목사님이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씨와 함께 한글 성서번역에 착수하였습니다.  로스와 매킨 타이어 목사님은 1873년에 한국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압록강 가까지 왔었으나, 멀리 바라만 보고 돌아가는 길에 고려문에 들려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으나 불러서 인사하려고 해도 한국인들이 만나주지를 않았습니다. 외국인을 만나는 것을 국법으로 금하고 있었기에 때문이었습니다. 

1874년에는 로스와 매킨타이어 목사님이 만주의 고려문에 왔으나 직접 나가지 않고 중국인 서기를 시켜서 한국인들을 여관으로 데려오게 하여 은밀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에 한꺼번에 4명의 한국인을 만났는데, 의주에서 온 한 동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네 분은 한국교회사에 길이길이 기억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4명입니다. 이들은 서양의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기 위하여 만주에 나온 사람들이었는데, 먼저 이응찬이 선교사를 따라 우장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3명은 다음해에 합류하였습니다. 이들은 선교사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었고, 선교사로부터 신학문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들 4명은 3년 후 1876년에 가서야 예수 믿기로 하고 매킨타이어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들이 우리 한국의 최초의 개신교인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이 처음 개신교인들에게 중국어에서 한글로 성경을 번역할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후에 서상륜이 합류합니다.  이래서 최초로 우리 한국인의 손으로 성경이 번역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성경을 읽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원로장로님들이 앞장서서 성경을 읽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루에 5시간 이상 성경을 읽으실 때가 있고, 일 년에 13독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 열정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그렇게 수십 번 읽지는 않습니다.  금년 6월에 번역된 시크릿이란 책이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슈퍼 베스터셀러입니다.  초판발행 이후에 3개월 만에 73쇄 판을 가지고 있으니, 이 책을 번역 출판한 회사는 완전히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을 수십 번 읽지는 않습니다.  이 책이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미국의 최고의 책으로 소개되면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시크릿이란 비밀이란 말인데, 우리 사람에게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인생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비밀스러운 일인데, 자신이 끌어당긴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마음에 그린 그림과 생각이 그것들을 끌어당겼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는 모든 생각은 실체이며, 끌어당기는 힘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것을 끌어당기라고 합니다. 사랑은 위대한 감정입니다.  좋은 생각을 구하라, 믿어라, 그리고 받으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획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웃으며, 긍정적인 그림을 그리라고 합니다.  불치병이란 없습니다.  당신은 과거의 당신이 아닙니다.  자신의 웅대함을 받아들이라. 참 좋은 책입니다. 

그러나 그 책에는 자신의 힘, 자신의 생각, 자신의 신념, 자신의 능력을 말하지,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려고 하는 헌신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좋은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한번 읽고 책장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비밀이라는 책 정도는 수십 권도 쓸 정도의 위대한 책입니다.  그래서 일 년에 수십 번 읽고 또 읽는 우주적인 베스트셀러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수용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 말씀을 받아 달라지고 싶다,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탈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유대의 랍비들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건을 예로 들어 성경을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려서부터 그 탈무드를 읽었으며,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억지로 짜 맞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려고 했습니다. 내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성경이 아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스티븐 모티어라는 학자는 “열려라 성경”이라는 책에서 “성경이 스스로 말하게 해야 실제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성경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계속 읽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 책 중에서 하나의 책이요, 소장용으로 한 권을 더 가진 것에 불과합니다.  성경을 전혀 읽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가장 위대한 보화요, 인생의 길잡이요, 위대한 보검을 한 번도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항복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히4:12에서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마4:4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7집사님 중의 한 분이신 빌립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복음전도자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불레셋 땅이었던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길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광야였습니다.  빌립은 사실 사마리아에서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의 명령을 받들어 순종하여 일어나 가사로 가는 광야에 도달하고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의 여왕 간다게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에디오피아 사람은 경건한 사람으로, 유대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기를 지키러 머나먼 길을 나선 사람입니다. 

지금은 광야요, 다른 사람이 없고, 이디오피아의 내시가 수레를 타고 돌아가고 있고, 빌립이 광야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가 에디오피아에서 온 관리요,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였습니다.  그 내시가 수레를 타고 내려가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큰소리 내어 성경을 낭송하였지 눈으로 읽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들어보니 이사야서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에게 내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내시는 분명히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을 붙였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내시가 대답합니다.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고 하더니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고 했습니다. 

내시는 집을 떠나서 머나먼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드리고 돌아가는 것도 훌륭하지만, 수레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런데 더 훌륭한 것은 겸손한 성품과 사모하는 마음과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아니 네가 무엇인데 읽는 것을 깨닫느냐”  시건방지게 묻는 것이냐고 호통을 칠 수도 있었습니다.  내가 누구인데, 함부로 나서고, 사람을 무시한다고 야단을 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란 지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바르게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 자라도 더 알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내시가 읽고 있는 성경은 이사야서였고, 이사야53장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이 말씀은 히브리어 성경이라기보다는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으로 보여 집니다.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합니다.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여기서 선지자가 말하는 “그”라는 분이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그 입을 열지 아니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죽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것을 말씀하였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사야53장의 말씀은 메시아의 고난을 말씀한 것입니다.

길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내시가 말합니다.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빌립이 광야를 지나오면서 아주 상당한 말씀을 증거하였고, 내시는 세례 받아야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복음을 깊이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37절에 “없음”이라고 하였지만,  “어떤 사본에는 빌립이 이르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이 그렇게 물었을 것이요, 내시가 또한 바른 신앙고백을 하였을 것으로 보아서 후대에 그런 말씀을 삽입했을 것입니다.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물에 내려갔으며, 빌립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둘이 물에서 올라올 때에 주의 성령이 빌립을 이끌어가 버렸습니다.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빌립을 다시 보지 못하였습니다.  내시는 말씀을 깊이 깨달아 알게 되었고, 주의 종을 만났고, 세례도 받았고, 말씀을 간직하고 예수님을 사모하면서 감격 속에 고국에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런 것은 이 사건은 잠시 동안 광야에서 이루어진 작은 교회였습니다.

에디오피아는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내시는 생각할 때에 천사가 다가와서 자기에게 말씀을 가르쳐주고 세례도 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한 사람이었고, 먼저 믿고 있는 성도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내시를 보십시오. 에디오피아가 이스라엘에서 얼마나 먼 나라입니까?  수륙만리 머나먼 나라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와 예배하고 돌아갑니다.  그 내시는 한 나라의 국고를 맡은 귀한 신분의 사람이요, 여왕의 신임을 받는 관리였습니다.  그 바쁜 시간을 내어 예배드리고 돌아갑니다.  오늘 주일을 경시하고 주일에 조금만 바빠도 마음대로 결석하고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내시를 본받아 예배에 열심을 내어야겠습니다.

이 내시는 돌아가면서 흔들리는 수레에 앉아서도 성경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겸손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을 청하여 올라앉으라고 하고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가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관리이며, 여왕의 신임을 받는 내시인 것을 알렸습니다.  성경은 지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해석, 전통적인 해석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사도행전17:11에는 베뢰아 교인들의 좋은 신앙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했습니다.  베뢰아 교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범적인 교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교회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이 저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듣습니다.  선지서를 읽을 때에 내 앞에 그 선지자가 있는 것처럼, 복음서를 읽을 때에 우리 주님이 앞에 서셔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가 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지 모릅니다.  눅24:32에서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두 제자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들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뜨거운 힘은 성경 말씀에서 나오는 능력인 것입니다.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은 우리 장로교회의 목사님으로 전도폭발을 일으킨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이 “내가 믿는 이유”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성경에는 약2000 가지의 예언이 있는데, 그 모든 예언이 구체적이고 상세한데, 역사상에 이루어지지 않는 예언이 하나도 없다고 하며 몇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예레미야51:58에는 바벨론의 성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제가 확인하면서 성경을 보았습니다.  렘51:58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의 성벽은 훼파되겠고 그 높은 문들은 불에 탈 것이며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잔하리라”(렘 51:58)고 했습니다.  62절 말씀을 보면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이 곳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멸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거기에 살지 못하게 하고 영원한 폐허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라 하니라”(렘 51:62)고 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터스가 바벨론을 여행하면서 바벨론 성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 있습니다.  이 성벽은 높이가 약60m였으며, 그 위에 90m 높이의 망대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성벽의 두께는 밑 부분이 56m였습니다.  그 성벽으로 둘러싸여진 면적이 502평방킬로미터였습니다.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그 위용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가로세로 사방으로 약24km 되고, 넓이가 502평방킬로미터가 되는 어마어마한 도시입니다.  그런 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까?  한번 쌓은 성이 무너진다고 해도 흔적이라도 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위용을 자랑하는 성벽이 어디에 있습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AD 4세기 기독교인이었다가 변절한 줄리언이라는 사람이 로마의 황제에 올랐습니다.  그는 중동의 바벨론의 폐허 근처에서 페르시아 인들과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 폐허가 된 성이 페르시아 군대에게 이용물이 되지못하게 하기 위하여 바벨론의 남은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돌을 멀리 치워버려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이 범람하면서 그 땅은 늪지대가 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의 예언은 하나도 틀림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우리의 운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 성경이 최종적으로 증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성서주일을 맞아 우리는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요한복음5:39에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요20:31절에는 이 성경이 기록된 목적이 잘 나와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1서5:13에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에배 중심의 신앙, 말씀 중심의 신앙, 실천하는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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